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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문학의 새물결

한국 SF 문학에 새로운 이름들이 속속 등장했다. 모두가 디스토피아를 점치는 시대에 이들의 등장은 빛났고, 사람들은 기다려왔다는 듯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김초엽, 심너울, 천선란, 황모과, 신인 SF 작가 4인을 비대면으로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동시대의 SF 문학, AI 소설가와의 대결, 흥미로운 과학 기술, 인류에게 닥칠 근미래에 대한 상상까지 물었다.

UpdatedOn October 08, 2020

 김  김초엽 |  심  심너울 |  천  천선란 |  황  황모과

본 대담은 시대의 화두가 된 SF 문학의 빛나는 신인 작가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기획으로, 코로나 시국을 맞아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김  세 분 다 좋아하는 작가님이라 오늘 대담이 반갑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출간한 김초엽이다. 첫 장편을 준비 중이다.
 심  SF 소설과 칼럼을 쓰는 심너울이다. 목표는 전업 작가로 롱런하기다.
 천  SF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는 천선란이다. 동식물이 주류가,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
 황  황모과다. 독자로서도 정말 좋아하는 분들인데 묻어갈 수 있어 영광이다. <모멘트 아케이드>로 과학문학상 중단편 수상 후 <밤의 얼굴들>을 발간했고, 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시네마틱 드라마 <SF8-증강 콩깍지>가 9월 방영되고 있으며, 요즘은 열심히 장편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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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기념비적인 책을 낸 작가 김초엽은 서정적이고 유려한 문체와 미래에 대한 희망, 인간에 대해 애정을 잃지 않는 태도로 대중과 평단에게 두루 사랑받고 있다.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관내분실’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판매 부수 12만 부를 훌쩍 넘기며 독자들에게 사랑받았고, 2019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작가들끼리 왕래가 있었나? SF 작가들은 만나면 뭐하고 노나?
 천  여기 모인 분들이 모두 친하다고 믿고 있다.
 심  나 역시 그렇다.
 김  황모과 작가만 직접 뵌 적 없는데 내적 친밀감은 매우 크다. 아쉽게도 코로나19 때문에 오프라인 친분을 쌓을 기회가 적지만 SNS에서 자주 뵙는 편이라 서로 늘 친근감을 느낀다.
 심  만나면 게임을 하고 논다.
 김  천선란, 심너울 작가와 ‘러브레터’와 ‘티츄’를 했다.
 심  김초엽 작가가 나를 경비병으로 찍어 누른 기억이 난다.
 김  기억하고 계신다니 뿌듯하다.
 천  황모과 작가와 나는 따로 ‘미식단’이라는 모임에 참가하는데, 미식을 핑계로 주기적으로 만나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SF 작가들의 보드 게임이라니, 무자비하게 치밀할 것 같다.
 심  나는 규칙을 이해하지 못해서 자멸하고 말았다.
 천  게임 룰을 이해하는 데 30분 걸렸다. 심너울 작가가 져도 왜 졌는지 모르고, 내가 이겨도 왜 이겼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김  나는 그저 게임 규칙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황  에디터님이 SF 작가들에 대한 기대치가 과도한 것 같다. 뭐든지 영리하게 해낼 것 같다, 모든 분야에 지적일 것 같다는 건 편견이다! 보드 게임, 스마트폰 게임에 모두 약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변명해보겠다.

한국에서 이토록 SF 문학이 주목받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평단과 대중의 반응 모두 말이다. 왜 지금인 것 같나?
 천  SF는 소외되고 배제된 인물과 문제를 과감히 전면에 내세운다. 우리 사회에 이제 그게 필요해진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황  난 SF 문학을 3년 전부터 읽기 시작해 비교적 최근에 독자가 된 경우다. 최근 독자들의 콘텐츠 향유 폭이 넓어졌고 당장 과학 기술의 발전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으니 생존 차원에서라도 트렌드를 파악해야 하는 긴급성도 있겠지. SF는 고도의 지적인 메타포다. 어쩌면 이전엔 시대적, 사회적으로 수용할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지금은 낯선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의 척도가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김  재미있어서 주목받는 게 아닐까? 하하. 최근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작품들은 잘 읽히고 재미있는 경향이 있더라. SF는 다른 시공간을 다루므로 재미없기가 어렵다.
 심  모든 작가의 말에 동의하지만 특히 김초엽 작가의 말에 적극 동의한다. 이제까지 SF가 뜨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지, 지금 뜬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 SF는 소수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든 예술의 흐름이 그러하지만, SF는 더 대담하게 나아간다. 인물의 인종, 성별, 성 정체성을 가늠할 수 없게끔 묘사하는 작품도 많고, 장애를 지닌 이들도 수시로 등장한다.
 황  SF를 독해하려면 현재의 세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사는 그 누군가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이해와 연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특이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데, 낯설지 않고, 나여도 저렇게 살 것 같아, 그러한 공감을 일으키는 장르이니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 더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SF 작품을 구상할 때면 비인간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를 생각하게 된다. 로봇, 육체를 버리고 의식만 남은 인간, 혹은 인공지능과 하이브리드된 인간 등. 그만큼 낯선 타자에 대한 묘사와 이해가 전제된 장르이기에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깊다고 생각한다.
 천  SF는 ‘미래 사회’를 그리는 소설이니까. 사회를 말할 때 어떻게 소수자를 배제할 수 있을까? 너무도 당연하게 우리 곁에 있는 걸. 내가 아닌 타인을 그려야 하니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결국 소수자다. 그 소수자들이 모여 사회가 되고. 내 가족, 내 이웃, 내가 사는 도시를 그릴 때만 해도 다양한 형태의 인간들이 모여 있잖아. 인식하지 않더라도 당연하게 그려지는 거다. ‘배제할 수 없다’가 아니라 ‘배제될 수 없다’다.
 김  평단의 관심은 확실히 천선란 작가가 언급한 부분 때문인 것 같다. 또한 대중의 관심은, 윤리적인 글을 선호하는 동시에 재미있는 글을 읽고 싶은 독자의 요구와 SF의 근작들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SF라고 해서 다 윤리적인 것은 아니고 소수자를 배제하는 작품들도 여전히 많긴 하다. 하지만 최근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작품들은 대부분 최소한의 윤리 감각을 지키지 않았나 싶다. 지금 문학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독자가 이끌어가는 것 같거든.
 심  어렴풋이 생각하고만 있던 것을 다른 작가 분들께서 제련된 문장으로 말해주셨다.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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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너울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라는 단호한 제목의 소설집을 출간한 SF 작가 심너울은 번쩍이는 상상력과 블랙 유머, 날카로운 풍자로 동시대의 한국을 들여다보는 신인이다. 현대 사회의 의제를 청년의 시선으로 풍자하는 작품들과 고전적 SF 서사를 그려낸 작품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그는 서강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후 소설 <정적>으로 데뷔했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로 2019 SF 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과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필름 마켓 토리코믹스워드를 수상했다. 장편 <소멸사회>와 단편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를 출간했다.

심너울 작가의 ‘감정을 감정하기’에선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새삼스럽게 호들갑 떨지 않고, 별다를 것 없이 훌쩍 넘어가는 전개가 좋더라.
 심  당시엔 글을 구성한 다음, 캐릭터 성별을 돌림판을 돌려 돌려 무작위로 정하는 방법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성별이 정해져서 물 흘러가듯 썼는데, 그런 평을 들으며 느낀 바가 있었다. 요새는 반드시 필요한 경우 아니고는 아예 성별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인칭대명사를 전부 ‘그’로 통일해서 쓰니 사람들이 등장인물들의 성별을 각각 추측하더라. 그 점에서 어떤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내가 가정한 성별과 사람들의 추측이 반대될 때, 나 스스로가 가지는 젠더 관념에 대해 되짚어보기에도 좋다.

김초엽 작가의 글에는 여성 서사와 유대가 또렷하다. ‘관내분실’에서는 모녀의 이야기가, ‘나의 우주 영웅’에서는 한 여성과 그를 롤모델로 삼는 여성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김  한국 문학의 전반적 흐름이지. 나는 논픽션과 달리 소설을 쓸 때는 오히려 자전적인 서사에서 거리를 두려고 하는 편이다. 여성 인물들을 많이 쓰는 이유는 내가 독자로서 모험하는 여성들, 이성애 규범에서 자유로운 여성들을 많이 보고 싶은 바람이 반영된 결과다.
 천  김초엽 작가의 작품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기술이 꿈꾸는 미래는 반드시 김초엽 작가가 꿈꾸는 소설의 방향처럼 나아가면 좋겠다.

황모과 작가에겐 이민자의 정체성이 두드러진다. 또한 미래의 기술로 잊힌 역사를 발굴하고 조명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SF는 미래뿐 아니라 과거에도 관심이 있을까?
 황  작가들이 항상 경험한 것만 쓰는 건 아니지만 당사자성이 어떤 지점에선 여전히 중요하고 유효하다. 이방인의 정체성과 빈민 정체성도 앞으로도 주요하게 가져갈 것이다.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나 ‘니시와세다역 B층’은 과거로 가지만, 그것은 발표 시점에 재해석된 새로운 과거라 생각한다. 과거가 역동적으로 바뀌는 거지. 과거사 그 자체보다 ‘진상 규명된 과거사’를 상상해본다는 측면에선 미래가 된 과거, 미래에 만나게 될 과거를 그렸다고 말하고 싶다. 과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러니 과거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는 조금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천선란 작가는 작품에서 동물과 인공지능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며 책날개의 자기소개에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고 썼다. 인간의 디스토피아가 동식물에겐 유토피아일까?
 천  인간과 동식물을 떨어트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디스토피아는 동식물의 디스토피아다. 우리의 기후위기가 우리에게만 위기가 아니듯이. 역으로 말하자면 동식물이 주류가 되어, 그들이 살기 편한 시대가 곧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뜻한다. 우리는 무엇보다 동식물의 유토피아를 꿈꿔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유토피아니까.
 황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에서 담담하게 묘사한 경주마 투데이는 정말 마음 아팠다. 내가 좁은 데 갇힌 기분이 들더라.

문학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SF, 좀비물 등 디스토피아 혹은 재난 상황을 그려낸 작품들만이 살아남았다. 코로나19, 기후와 환경문제로 인해 모두가 디스토피아를 점치는 시대이기 때문일까?
 심  일단 디스토피아가 구성하기가 더 쉽다. 유토피아는 갈등이 없는 세상인데, 서사의 원동력은 갈등이거든. 과거의 쥘 베른 같은 희망찬 SF 모험물이 요즘 잘 나오지 않는 건, 시대의 변화도 있겠지만 콘텐츠 작법 자체의 변화가 미친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너무 멀리 거슬러 올라갔나?
 황  어떤 작법의 변화 말인가?
 심  스낵 콘텐츠의 시대고 이전보다 빠르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와야 하니까. 시작부터 강렬한 갈등으로 독자를 빠르게 몰입시키는 게 현대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다. 낙원이 있어도 그 낙원이 망해야 이야기가 커진다. 디스토피아는 이미 망한 세상이니까 이야기가 잘 만들어지고.
 천  SF와 좀비 영화 마니아로서, 두 장르는 해외에서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단지 ‘한국 SF 영화’ ‘한국 좀비 영화’가 어색한 시기가 있었을 뿐. 시대의 영향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보다 한국 영화 산업이 커지며 만들어낼 수 있는 장르가 확장되었기 때문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  사실 난 요즘엔 재난물이나 디스토피아 장르를 잘 안 본다. 너무 현실 같아서 보기 힘들더라.

SF 작가만큼 미래에 대한 상상을 펼치는 직업인은 없을 것이다. 혹자는 코로나19와 기후 변화로 우리가 인류의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는 비관론을 펼치는 와중,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얼마 전 2045년 한국 과학 기술 미래에 대해 무척 낙관적인 전망을 발표했다. 미래를 어떻게 예상하나? 거칠게 말하자면 디스토피아 쪽인가 유토피아 쪽인가?
 천  그게 낙관적인 전망일까? 나는 비관적이기 때문에 그런 기술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관적인 전망을 내다볼 수 없다면 그 누구도 친환경 소재를, 기후 조절 기술을 개발하려고 하지 않겠지. 우리는 이미 너무도 선명한 디스토피아를 보고 있다. 그 모든 기술이 가능해진다면 우리가 저지른 과오를 조금이나마 수습하는 것이지, 유토피아가 건설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  헐. 방금 천선란 작가의 말씀이 너무 좋다. 나는 유토피아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데, 그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반대쪽으로 강한 관성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인 듯하다.
 김  나는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지금 기술에 대해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고 의견을 내는지가 중요하다. 과학 기술이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하나의 기술도 굉장히 다면적이기 때문이다. 기술 자체의 특성만 보는 게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여성과 기술을 생각해보면, 세탁기와 피임약이 여성해방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난 여기에 대해서 최소한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입장이다. 기술과 사회의 관계는 굉장히 복잡하고, 그 복잡성을 최대한 다각도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황  정보나 기술 향유의 양극화를 생각하면, 내가 생각하는 미래는 디스토피아 쪽인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디스토피아 서사를 통해 저지선을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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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선란 
미래를 향해 빠르게 달리는 SF 속에서 느린 달리기를 하는 작가 천선란은 언제나 약자와 소수자의 얼굴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꾸며, 환경과 생태계를 염려한다.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고 2019년 9월 첫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를 출판했다.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천 개의 파랑>으로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2020년 단편집 <어떤 물질의 사랑>을 출간했다.

새로운 시대의 작가들이 등장하며 순문학과 장르 문학을 나누려는 시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은 영화나 음악에서도 비슷하게 감지되고 있는 변화다. 왜일까?
 김  독자들은 장르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구분 안 하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작품이면 뭐든 찾아 읽거든. 그런데 문단에서 선을 안 긋는가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내가 SF 작가인데도 문단에 굉장히 쉽게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사실 내 첫 작품집 중 순문학 지면에 실린 작품은 하나밖에 없다. 두 번째 작품집으로 묶을 소설들도 문예지에 실린 글이 그렇게 많지 않다.
 천  에세이 <SF, 이 좋은 걸 이제야 알았다니>를 보니, 장르는 바구니가 아니고 카테고리라더라. 장르라는 바구니에 소설이 담기는 게 아니라, 소설에 장르라는 카테고리가 달리는 것이라는. 그 인식이 점차 넓어지는 것 같다.
 심  나는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비등단 작가라 이런 이야기엔 어리둥절해진다. 흔히 말하는 문단 문학을 취미로 읽고 전혀 다른 일을 하다가 갑자기 장르 문학으로 데뷔해서, 문단과 장르를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문단의 생태도 모른다.
 황  영화로 보면, 단편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가들이 상업 영화에 데뷔할 수도 있고, 아이폰으로 촬영해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 감독이 상업 영화를 찍는 것처럼 입문 방식이 다양해졌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장르나 만약 주류라고 부르거나 불리면서, 기존의 방식이나 특정 권위만을 우선하거나 특권화하면 구조 안에서 편협성 때문에 콘텐츠에도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겠지.

주류 문단에서 시혜를 베풀 듯 SF 문학를 인정하는 태도가 싫지는 않은가?
 김  작가와 평론가들에게서는 그런 태도를 거의 못 느끼는데, 간혹 그런 어조로 기사를 쓰시는 기자 분들이 눈에 띄기는 한다. 그래도 문단의 젊은 세대 작가와 평론가는 우리와 똑같이 장르 매체를 소비하고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 많지는 않다. 문단에서 다양한 소설들을 다룬다면 좋은 일이지만, 어쨌든 SF가 독자적인 장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의 SF 소설은 젊다. 1990년생 작가들이 많기도 하지만, 단지 물리적인 나이를 뜻하는 건 아니다. 여느 예술 분야에 견주어볼 때 빛나는 신인들이 더욱 빠르게 등장하는 까닭이 뭘까?
 김  온라인 매체와 친연성이 있고, 단편을 쓰기 좋은 장르여서 그런 게 아닐까? 온라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기 쉽다는 뜻이다. 웹소설 같은 경우도 진입 장벽이 낮고 신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SF는 기존의 문학상 데뷔 루트 외에도 웹에서 먼저 인기를 끈 작가들이 많은 편이다.
 천  동의한다. 쓸 수 있는 곳이 많다. 나만 해도 브릿G에서 연재를 시작했으니까!
 김  천선란 작가와 심너울 작가 두 분 다 출간 전부터 웹에서 입소문을 끌었지.
 심  황모과 작가도 브릿G에 먼저 쓴 것으로 안다. 단편을 공개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는 것이 크다. 하지만 한국 SF는 넓은 세대가 조화롭게 빛나는 영역임을 강조하고 싶다. 난 듀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자랐고,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곽재식 작가 덕이다. 이를테면 듀나 작가가 1990년대에 쓴 소설은 지금 봐도 엄청 세련되고 현대적이다. 한국에서 SF 장이 크지 않았을 때도 위대한 작가들이 꾸준히 활동해서 젊은 작가들이 계속 배출되는 것 같다.
 김  아작, 허블 등 좋은 SF 전문 출판사들의 활약도 한몫했다.
 황  나는 데뷔가 늦은 신인인데, 요즘 주위에 빛나는 글을 쓰는 직장인 작가들도 많더라.

1994년생 심너울 작가의 소설 제목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는 마치 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새로운 SF 문학이 기존과 다르게 추구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황  책 제목만으로 세상의 모든 꼰대들을 긴장시키는 작가!
 심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라고 해놓고 추하게 늙는 주인공의 이야기라. 하하. 기성세대를 넘어서보겠다는 말은 감히 못 하겠고, 소설뿐 아니라 서사를 만드는 일에 여러 방면으로 참여해보고 싶다. 옛날에 없던 이야기의 방식에 흥미가 많다. 인디 게임 스크립트를 써보고 싶기도 하고, 형식적으로 이야기를 변주하는 방식을 찾아보고 싶기도 하다.
 천  나도 스토리를 풀어나갈 수 있는 일이라면 다 좋다. 웹툰 각본이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각본 일을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
 심  공동 창작에도 관심이 많다. 난 이야기를 꼭 혼자서 이끌어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과 협업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거든. 천선란 작가도 여기에 관심이 많을 거다.
 천  맞다. 미국의 드라마 제작 형식이 굉장히 부럽다. 여러 명의 작가들이 커다란 에피소드를 쥐어짜내는. 그래서 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언젠가는 공동 창작을 꿈꾸고 있다.
 심  소설도 굳이 혼자서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난 스토리 프로덕션 안전가옥과 함께 자주 일하는데, PD님이 스토리 제작 과정에 적극 참여하며 내게 고통과 영감을 동시에 주신다. 그 덕에 훨씬 더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었다. 굉장히 인기를 끈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은 부부가 공동 창작한 작품인데, 경의를 품게 되더라. 공동 작업을 해보고 싶다.
 황  문체 통일 문제, 스토리 기여도 및 주도권, 인세 배분 문제를 해결해야겠네. 프로세스에 AI가 개입해야 할지도! 하하. 사실 만화나 다른 장르에서는 공동 창작이 자주 시도되어왔는데, 아마도 배분할 파이가 너무 적어서 국내 소설에선 시도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을 것 같다. 독자들이 책을 많이 사주셔서 판이 커지면 이런 시도도 가능해질 거다.
 김  난 문학을 조금 가볍게, 마음 편하게 대하고 싶다.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중요한 뭔가가 있다, 이런 마음으로 쓰고 싶지 않거든. 나는 소설도 그냥 많은 이야기 매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레나> 10월호 특집은 화성 생활이다. 항공우주연구원 등 전문기관의 자문을 바탕으로 화성에서의 스마트시티를 구현했다. 작가님들이 생각하는 미래의 화성 생활은 어떨 것 같나?
 김  음… 황폐할 것 같다. 나는 최대한 마지막에 가보겠다.
 심  저중력 상태에서 점프해보고 싶다. 삶에서 최초로 아무 보조 도구 없이 턱걸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중력 상태의 이야기는 영화 <그래비티>가 너무 잘 표현했는데, 저중력을 훌륭하게 그린 작품도 보고 싶어진다.
 김  배명훈 작가의 <첫숨>을 추천한다.
 심  오!
 황  지구 환경과 전혀 다른 조건이라 스포츠가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천  난 그저 미래의 화성을 볼 수 있을 만큼 지구가 건재했으면 좋겠다. 화성을 지구처럼 만들고, 지구는 화성처럼 되어간다는 게 씁쓸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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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모과 
일본에 거주하며 이방인의 정체성을 체득한 작가 황모과는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시점에서 복원하는 특색 있는 SF 소설을 쓴다. 난민과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깊다. 일본의 만화 스튜디오에서 제작 스태프로 일하며 생활고에 시달리다 생계를 위해 전직, IT 기업의 AI 부서에서 IoT 제품의 기획 운영을 담당했다. <모멘트 아케이드>로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전에서 중단편 대상을 수상했고, 동명의 수상집이 출간되었다. 2020년 6월 단편소설집 <밤의 얼굴들>을 출간했다.

오늘 대담에 참여한 작가의 작품 중 근미래에 일어날 법한 세계를 그렸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있나?
 김  인공지능 기수의 이야기를 그려낸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 당장 10년 뒤의 일일 것 같다. 기술에 의해 소외되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등장하는데, 현실에서 일어나는 디지털 소외와 선명하게 겹쳤다.
 천  심너울 작가의 <한 터럭만이라도>. 인공육의 시대가 당연하게 도래하고,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들어가 인공육조차 세포를 제공하는 동물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정말 재미있고 마음에 든다. 빨리 이런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심  황모과 작가의 <증강 콩깍지>. 우리 인지의 기본이 되는 지각 자체에 도전하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서 좋다. 이미 우리가 보는 것을 결코 믿을 수 없는 세상이라서 더 공감이 된다. 마침 나도 그 단편이 실린 앤솔로지에 ‘대리자들’로 참가했는데, 배우가 자기 얼굴만 빌려주면 AI가 대신 연기하는 소설이다. 나는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걸 그 어느 때보다 믿을 수 없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고, 이 현상이 심화될 거라 확신한다.
 황  기술보다는 정서적인 면에서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안나가 슬렌포비아를 향해 품는 감정이 곧 우리가 갖게 될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며 이전에 익숙했던 것들이 ‘먼 우주’가 된다는 면에서 동시대에도 겪는 향수다. 추돌 시험용 더미가 직장을 잃는 이야기인 천선란 작가의 ‘마지막 드라이브’에도 지금 시대의 인간들이 공감할 수 있을 거다. 아울러 심너울 작가의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를 보면, 성욕을 통제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남성 중성화 이슈를 사회적 의제로 논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진지하다. 하하하.

최근 관심을 갖는 과학 기술이나 분야가 있나?
 천  인공육과 대체육. 단지 동물권을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대체육이 인간 문명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김  트랜스휴머니즘. 비판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기술이 장애를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 솔루션인 듯 말하는 것(의학적으로 치료하거나, 사지마비인에게 외골격을 달거나 하는 등)을 테크노 에이블리즘이라고 한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기술중심-장애차별주의 정도. 김원영 변호사와 장애와 기술에 관한 논픽션을 쓰는 중이다.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증강해서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애를 지닌 개인에게도 접근 가능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으로 나아갈 수 없을까 하는 맥락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황  코로나19로 인한 해외 이동 제한 때문에 국제적인 감각을 대체하는 속지적인 인식이 강화될 것 같은데, 근미래 배경인 SF를 쓸 때는 앞으로도 계속 신경 쓰게 될 것 같다. 난민 이슈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
 심  인공지능을 주시하고 있다. 최근엔 GPT-3이라는 자연어 처리 모델이 개발됐는데, 이게 코드를 대신 짜주는 게 너무 충격적이더라. 프로그래밍 일을 1년 정도 한 적이 있었는데, 코딩 자체는 대체되기 힘들 거라 생각했거든. 자연어 처리 능력 자체도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훌륭했다. 제법 그럴싸한 말을 한다. 갈수록 횡설수설하긴 하는데 그래도 사람이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길게 횡설수설하기도 쉽지 않거든.
 황  AI와 글쓰기를 경쟁해야 하는 시대네!

AI가 SF 소설가라는 직업도 대체할 수 있을까?
 황  빠른 시일 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본다. 작년까지 AI 부서에서 음성으로 가전을 조작하는 IoT 기기기획 운영 일을 했다. 이때의 업무를 경험하며 느낀 문제의식이 <모멘트 아케이드>를 집필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현장에선 인공지능 서비스가 초기 단계다. 정돈 안 된 로우 데이터를 볼 때나, 에러를 수작업으로 한 땀 한 땀 수정하는 일을 하는데 ‘이거, AI 뒤치닥거리를 하고 있다니 인간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 웹소설의 패턴화 경향을 보면, 대량으로 학습시키면 AI가 쓰겠다 싶더라.
 심  나는 부정적이다. 그 정도로 강력한 인공지능이 나오면 분명히 첨예한 이권 다툼이 생길 텐데, 소설은 그 정도로 자본이 큰 분야가 아니라 직업을 빼앗길 일은 없을 것 같다.
 천  소설보다 시나리오를 빼앗길 것 같은데.
 심  미국에서 무인 배달 사업이 있는데, 로봇이 배달을 해주거든. 그런데 자율주행이 아니라 사실 이민자들이 몇 달러씩 받고 로봇 여러 개를 원격 조종하는 거였다. 인공지능보다 사람이 더 싼 시대가 이미 온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가가 인공지능에게 소설 쓰기를 빼앗길 것 같진 않은데, 빼앗긴다면, 뭐,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야 하나. 나는 인공지능 주인님과 싸워서 내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않는다. 물론 유튜버랑 싸워서 이길 가능성도 전무하다.

차기작에선 어떤 상상력을 펼칠 건가?
 김  장편은 ‘구 끝의 온실’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간 전에 곧 선공개될 예정이다. 식물과 종말이 주요 소재로, 버려진 도시에서 갑작스럽게 증식하기 시작한 기이한 식물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생화학 전공 지식을 드디어 조금 써먹었다.
 황  출판사와 논의 중인 경장편이 있다. 할머니가 모험을 하는, SF와 판타지가 섞인 장르 융합적인 이야기다.
 천  구픽에서 앤솔로지로 출간할 SF 단편소설을 쓰는 중이다. ‘책’과 ‘서점’이 주제인 앤솔로지인데, 나는 책-현실-또 다른 세계를 중심에 두고, 각자의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들이 그 밖의 세계를 욕망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심  난 특이점 이후의 인공지능을 다룬 연작 장편을 쓰고 있다. 인공지능은 특이점이 오면 스스로를 발달한다. 그다음부터는 인간의 흔적이 없으니 인공지능이 아니라 초지능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특이점 이후의 세상에서 사람들이 초지능에 모든 걸 맡기고 고통 없이 편안히 살아가는데, 반기를 든 사람이 있다. ‘고통 속에서 사람이 아낄 수 있는 유산이 나온다’는 철학을 가진 그가 우주선을 만들어 천 개의 수정란을 넣는다. 20년 후 사람들이 깨어나 나름대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괴로운 경험을 겪을 때 ‘고통 속에서 사람이 아낄 수 있는 유산이 나온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는 그것이 반복되는 테마인 듯하다.

그러고 보니 이름들이 모두 특색 있고 미래적이다.
 심  본명이다. 에고 서치할 때 편리하다.
 김  원래 김풀잎이 될 뻔했는데, 풀잎 할머니보단 초엽 할머니가 더 어감이 좋다는 이유로 초엽으로 정했다. 나의 노후까지 생각해주신 부모님 덕이다.
 황  황모 과장의 준말이다. 직업인의 정서가 반영됐다. 처음에 본명을 사용했는데 흔한 이름이라 웹에 공개했을 때 작가명이 잘 각인되지 않는 것 같아 바꿨다.
 천  본명이 흔해서 작가가 된다면 특별한 이름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가족들 이름을 하나씩 따왔다. SF 작가 같은 이름이라 많이들 말한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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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예지
PHOTOGRAPHY 게티이미지뱅크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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