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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을 거머쥔 생존의 제왕, 넷플릭스

가학성 논란을 일으킨 <365일>은 넷플릭스 흥행으로 이어졌다. 디즈니 플러스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려는 전략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익숙하지 않나? 흥행을 위해 영화 밖 이슈까지 끌어모았던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연상시킨다. 넷플릭스는 논란성 짙은 영화부터 블록버스터, 예술 영화 등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며 몸집 불리기에 한창이다. 할리우드 아래 있는 지구촌을 거머쥐기 위한 넷플릭스의 움직임으로 읽힌다. 넷플릭스는 코로나19로 인해 영화 개봉이 불투명해지며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할리우드를 대체할 수 있을까?

UpdatedOn October 03, 2020

언택트 시대는 소소한 일상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산업 역시 변화시켰다. 지난 7월 10일, 나스닥 시장에서 OTT의 강자 넷플릭스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황제 디즈니를 뛰어넘는 사건이 발생했다.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2천4백13억 달러로 디즈니의 시가총액 2천1백56억 달러를 앞섰으며, 넷플릭스의 급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였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누구나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넷플릭스 가입자 수는 자연스럽게 확대되었고 전 세계 유료 회원 수 2억 명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다. 반면 전 세계 영화 매출액의 약 3분의 1을 책임지고 있던 디즈니는 극장 개봉이 원활하지 않자 디즈니 플러스로 활로를 찾았다. 9월 4일 <뮬란>을 스트리밍으로 공개하면서 반등을 꾀한 디즈니는 단숨에 유료 회원 수 1억 명을 넘어섰다. 디즈니와 넷플릭스의 용쟁호투는 이제 서막이 열렸을 뿐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원동력은 변함없이 콘텐츠다.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가 <규칙 없음(No Rules Rules)>에서 이야기하듯 통제와 규정이 아니라 자유를 강조한 믿음의 경영이 화제가 되었지만, 여전히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던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작자로 변신한 과정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발 빠르게 변화에 대처하면서 자체 콘텐츠 제작에 집중했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다. 드라마를 비롯해 장편 영화, 다큐멘터리, 스탠드업 코미디 쇼, 어린이 쇼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제작했다. 일찍이 비디오, DVD 대여업부터 시작한 이들은 속도와 물량 공세(다다익선!)의 중요함을 뼛속까지 새기고 있었다. 모든 인종, 계층의 취향과 욕망을 만족시킨다는 전략으로 처음부터 해외로 눈을 돌려 모든 장벽을 파괴하는 블록버스터의 화신이 된 것. 전 세계에서 동시에, 극장 개봉 뉴스 대신 넷플릭스 뉴스를 보면서 카우치에서 핫한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과연 넷플릭스는 언제까지 성장하고 생존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넷플릭스가 화제의 콘텐츠를 계속 만들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봉준호 감독이 <옥자>(2017)를 넷플릭스 자본으로 만든 것처럼 전 세계 영화 관련 크리에이터들은 넷플릭스를 꽤 선호한다. 기존의 영화제작사와 달리 창작의 제약이 크지 않으며, 극장 성공이라는 흥행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포머:최후의 기사>(2017)의 흥행 실패로 심기일전이 필요한 마이클 베이 감독이 <6 언더그라운드>(2019)를, 마블 영화를 테마파크라고 비판했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아이리시맨>(2019)을 넷플릭스에서 연출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메이저 스튜디오가 감독에게 충분한 재량권이나 거액의 제작비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로 극장 개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더욱이 올해 할리우드 텐트폴 영화들의 개봉이 계속 밀리면서 내년 라인업이 복잡해지자 탄탄대로인 넷플릭스 스트리밍이 더욱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할리우드 밖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이 굳이 할리우드로 입성하지 않고 로컬에서 만들어도 기회를 얻는 것이 매력이다.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전 세계에서 화제를 모은 폴란드 영화 <365일>과 멕시코 드라마 <검은 욕망>이다. 가학성 문제로 퇴출 비판까지 쏟아진 에로 영화 <365일>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처럼 선정적인 에로티시즘을 볼거리로 내세운다. 부부의 불륜 스릴러 <검은 욕망> 역시 아내의 외도를 스릴러의 추진력으로 활용한다. 이런 작품에 대한 비판이나 논란은 지구촌이 하나의 무대인 OTT 플랫폼에선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도움이 될 뿐이다. 쉽게 속편이 제작되는 토대를 마련해준다. 기존 영화 산업에서도 로맨스, 스릴러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낸 영화감독, 배우 등이 할리우드로 진출했던 것을 고려하면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넷플릭스가 이런 장르의 이점(저비용, 고효율)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넷플릭스는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시리즈에 내로라하는 거물들을 영입함으로써 탄탄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의 라이언 머피는 호러 드라마 <래치드>를 9월 18일에 공개하고, <그레이 아나토미>의 제작자 숀다 라임스는 <브리저튼> 시리즈를 제작 중이며, <왕좌의 게임>의 크리에이터 데이비드 베니오프와 D.B. 와이스와도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전 세계적으로 넷플릭스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본 영화는 <365일>이다. 이외에 강세를 보인 작품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의 액션 영화다. 크리스 헴스워스 주연의 <익스트랙션>, 샤를리스 테론 주연의 <올드 가드>, 조셉 고든 레빗 주연의 <프로젝트 파워> 등이다. 코로나19로 할리우드 대작들이 개봉을 못 하는 시기에 일종의 대체재였다. <키싱 부스> 시리즈 같은 하이틴 연애물이나 9월 둘째 주에 정상을 차지한 코믹 호러 <사탄의 베이비 시터: 킬러 퀸>처럼 10대가 선호할 만한 장르 영화도 있다. 드라마 시리즈는 SF 어드벤처 <엄브렐러 아카데미>, 범죄물 <종이의 집>, 판타지 <루시퍼> 등처럼 기존 시리즈들이 작년에 이어 지속적으로 인기였다. 또한 여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 여성 서사 중심의 이야기들도 있다. 힐러리 스왱크의 SF 드라마 <어웨이>가 주목받았으며, 호러 드라마 <래치드>에선 세라 폴슨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에 등장하는 정신병원 간호사 밀드레드 래치드를 맡아 화제다. 영화는 밀리 바비 브라운의 <에놀라 홈즈>, 릴리 제임스의 <레베카>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365일>이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일으켰지만, 젠더 이슈 등 다양성을 추구하는 작품이 넷플릭스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는 것이다. 찰리 코프먼의 <이제 그만 끝낼까 해>처럼 시네아스트의 예술 영화도 선보이는 걸 보면 말 그대로 각양각색이다. 국내 영화로는 유아인 주연의 좀비물 <#살아있다>가 9월 9일에 공개되면서 인기를 모았다. 화려한 자체 제작 포트폴리오에 로컬 영화들을 더함으로써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넷플릭스에 중독된 팬들 사이에선 벌써 볼 게 없다는 투정이 흘러나오지만, 지구촌을 장악한 넷플릭스의 위상이 쉽게 흔들릴 리는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그들에게 욕망의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경쟁력 있는 양질의 콘텐츠를 독점할 수 있는 상황 덕분에 넷플릭스는 디즈니를 비롯해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위에 군림하는 제왕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할리우드 역사는 2020년부터 새로운 장으로 다시 쓰일 것이다. 어쩌면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아니라, 넷플릭스의 역사로 재편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흥행 외에도 권위의 상징이 필요하다. 즉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영화가 무대에 올라 왕관을 쓰는 것이다. 2019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3개 부문 수상에 머물렀다(<그린 북>에 작품상을 빼앗겼다). 더욱이 올해 시상식에선 <아이리시맨>이 무관(10개 부문 노미네이트), <결혼 이야기>가 1개(여우주연상) 수상으로 끝나면서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넷플릭스에 대한 견제가 여전하지만, 올해처럼 미국의 극장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상황에선 넷플릭스의 힘과 공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과연 넷플릭스의 세상이 도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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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EDITOR 정소진
WORDS 전종혁(영화 칼럼니스트)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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