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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성은 이겨야 한다

한국 격투기 팬들에게는 오랜만의 빅 경기다. 10월 18일 정찬성과 오르테가의 경기가 확정됐다. 둘의 경기는 몇 번이나 불발에 그쳤고, 오르테가의 박재범 폭행 사건 등 이슈를 모은 바 있다. 미국을 대표하며 상승세인 오르테가와 UFC의 흥행 보장 카드인 정찬성의 매치는 세계적인 기대를 모은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정찬성이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이유를 짚는다.

UpdatedOn October 01, 2020

“네가 제이 박(Jay Park)이야?” 박재범은 무심코 “응”이라는 대답을 하며 질문자를 돌아봤다. 날아든 것은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훨씬 크고 두꺼운 손바닥. 그렇게 박재범은 UFC 페더급 톱 컨텐더, 브라이언 오르테가의 따귀를 맞았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일행 정찬성은 머리끝까지 화가 난 채로 오르테가를 찾아 나섰지만, 가해자는 이미 보안요원에 의해 쫓겨나 그 이상의 마찰은 일어나지 않았다. 2020년 3월, UFC 248이 열리는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 관중석에서 일어난 일이다.

2020년 10월 18일 예정된 브라이언 오르테가와 한국 대표 UFC 파이터 정찬성의 대결이 한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한국 사람이면 제발 정찬성 응원합시다’라고 할 것까지도 없이 대부분 한국 격투기 팬이라면 자연스럽게 정찬성의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

이쯤에서 새삼 고찰해봐야 할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바로 정찬성이 이번 시합을 승리로 장식해야 하는 이유다.

정찬성이 이겨야 하는 이유? 시합에 임하는 선수가 굳이 이겨야 할 이유를 꼽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2000년대 이종격투기 및 종합격투기가 유행하고 나서도 격투 분야는 오랜 기간 한국에서 마이너 취미 가운데 하나였으며, 열악하기 그지없는 격투 인프라 속에서 팬들은 물론 선수까지 온갖 인내를 곱씹으며 빛 볼 날을 기다려왔다.

마침내 인프라의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 국내에서만 수 개의 격투 단체가 존재하고, 주짓수 등 일반인이 격투 관련 취미를 갖는 것이 그리 이상한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한국인 UFC 파이터도 다수 배출된 요즘, 한국 국적의 선수가 UFC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감는다는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그야말로 오래 기다려온 한국 격투기계에 이보다 멋진 선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성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선수가 ‘코리안 좀비’ 정찬성이다. 한국인 최초 UFC 타이틀전 기록이 있는 정찬성은 내친김에 벨트까지 쟁취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챔피언 조제 알도의 공격에 경기 초반 탈골이라는 불상사가 일어나 제 능력을 다 펼치지 못하고 패배의 쓴잔을 맛봐야 했다.

세월이 흘러 다시금 톱 컨텐더로 챔피언 벨트를 눈앞에 둔 상황, 브라이언 오르테가를 꺾는다면 사실상 챔피언 타이틀 매치가 보장된다. 정찬성이 이겨야 하는 이유는 이것만으로 차고 넘친다. 한국 선수 최초 UFC 챔피언 타이틀, 나아가 동아시아- 동양인 남성 최초의 챔피언 타이틀을 정찬성이 거머쥐게 될 가능성이 훨씬 커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우리가 ‘정찬성이 이겨야 하는 이유’를 오늘 굳이 고찰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재범 폭행 사건을 미리 서술해놓은 이유가 다 있는 법이다.

애초에 이들의 대결은 작년 12월, 역사적인 한국의 두 번째 UFC 메인 이벤트를 장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회 직전 오르테가의 십자인대 부상으로 성사되지 못했으며, 시합 취소 위기 끝에 가까스로 프랭키 에드가가 정찬성의 시합을 수락, 성황리에 부산 대회를 마치게 되었다.

시합 직전까지 오르테가와 정찬성의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 기자회견장에서 오르테가가 취한 손 하트를 아직도 많은 팬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 보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정찬성은 모르는 사람 눈에는 흡사 ‘정분난 사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문제는 오르테가가 매치를 이탈하고 부산 대회가 마무리된 시점. 외국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찬성의 통역을 맡은 박재범이 오르테가의 부상은 꾀병이었고, 질 것이 두려워 도망간 것이라는 식의 멘트를 한 것이다.

마케팅을 의식한 정찬성의 과감한 언사를 통역한 것이었으나, 선수를 비롯한 많은 관계자는 박재범이 중간에서 발언을 왜곡했거나 정찬성을 부추겼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당장 전 챔피언 마이클 비스핑부터 오르테가의 스승 헤너 그레이시까지 수많은 인사가 정찬성이 아닌 박재범을 향해 상당한 비난의 언사를 보내왔다. 아무래도 정찬성이 과거 도발적인 멘트를 날린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이미지도 모난 데 없이 점잖았기에 엉뚱한 곳에 불이 튄 감이 있다.

특히 격분한 것은 저격 대상이 된 브라이언 오르테가, 인터뷰 직후부터 SNS로 분노를 표출했는데, 역시 그 대상은 정찬성이 아닌 박재범이었다. 그것이 급기야 상기한 UFC 248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에서의 따귀 사건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따귀 사건 직후에는 아무래도 법적 분쟁을 의식해서인지 대외적으로 사과하고 박재범과 정찬성 측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말이다. 막상 시합이 가까워져 ‘나는 정당했다’ ‘감정을 담아 싸울 것이다’라고 말하는 오르테가의 모습을 보면 승부가 가려질 때까지 사건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정찬성 역시 브라이언 오르테가를 향한 불쾌한 감정을 인터뷰와 SNS 등지에서 자주 표출해왔다.

결론적으로 두 선수의 거친 신경전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 전초전에서 처음 보이는 정찬성의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태도에 세계 격투기 팬들은 흥미진진해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번 시합에 승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자신이 경기 외적으로도 팬의 시선을 끌 수 있고 이를 대회 흥행으로 연결, 승리함으로써 그만한 실력을 갖춘 빅 카드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 정찬성이 이겨야 하는 거시적인 이유는 앞서 서술했으나, 정찬성 선수 개인의 상품 가치와 커리어 측면에서 보자면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향후 타이틀을 향한 여정으로 봐도 결코 나쁜 현상은 아니다. 챔피언 역시 여러 도전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이왕이면 매치 주목도를 확 끌어올릴 수 있는(PPV를 많이 팔 수 있는) 도전자를 선호하기 마련. 챔피언 볼카노프스키 역시 다른 경쟁자를 놔두고 정찬성 측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19라는 글로벌 팬데믹 사태로 경기 직전까지 단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첫걸음이었던 에디 차 코치와 스파링 파트너의 무사 입국이 이루어졌지만, 대회 직전 코로나19 감염으로 무더기 취소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만큼 시합 당일까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고 마침내 브라이언 오르테가를 꺾어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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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WORDS 성우창(격투기 칼럼니스트)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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