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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와 허구 사이, 오토픽션의 윤리란?

김봉곤 작가가 실존 인물들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 페이스북 메시지를 그대로 자신의 소설에 쓴 것으로 밝혀져, 해당 인물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작가는 젊은 작가상을 반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안이한 초기 대처에 문단 위기론까지 등장했고, 그의 작품은 문학이 아니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김봉곤 작가가 퀴어로서 당사자성을 지닌 오토픽션을 쓴다는 것은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로, 그 자체로 문학적 성취로 여겼으며, 기꺼이 읽었다. 그것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 어떤 윤리를 저버렸는지 우리는 놓쳤던 걸까? 한편, 타인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만으로 예술이 아닐 수 있을까? 홍상수의 영화는 술자리에서 들은 인상적인 말을 대사로 그대로 쓰는 걸로 유명하고, W. G. 제발트를 비롯한 작가들은 타인의 삶을 소설처럼 쓴다. 예술에 삶을 끌어오는 문제에 대해 엄밀히 들여다볼 기회가 필요했다. 예술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어떤 윤리로 넘나들어야 하는 걸까?

UpdatedOn September 25, 2020


지난 7월, 김봉곤 작가의 소설집 <그런 생활>과 <여름, 스피드>에 등장한 일부 내용이 실제 인물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이거나 실제 인물이 보낸 페이스북 메시지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문제가 된 것은 작가가 해당 내용을 소설 재료로 사용하는 데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거나 충분히 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의 없이, 혹은 정확한 동의 없이 사용된 대화 내용과 페이스북 메시지는 주변 사람이라면 당사자를 추론할 수 있을 만큼 특정되었다는 피해자의 주장이다. 그들을 모르는 독자들이 보기에도 문제가 된 내용은 지극히 사적이어서 그로 인해 당사자가 받았을 고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론은 작가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작가는 해명하고 사과하고 인정했으며 해당 출판사는 책을 절판하고 독자가 원할 경우 환불 조치했다.

사태는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정된 사태와 달리 그의 작품에 부여됐던 의미와 그의 작품을 읽으며 의미를 발견했던 독자들의 경험은 고스란히 남아 재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독자는 작가가 쓴 것만을 읽는 존재가 아니다. 작가가 쓰려고 한 것을 읽고 그럼에도 쓰지 못한 것까지 읽는다는 점에서 독자는 작가는 물론이고 작품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따라서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롯된 불미스러운 선택이 작품의 완결성을 훼손하는 것과 별개로 그의 작품과 관련해 생성된 담론과 독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좀 더 신중한 질문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 나는 7월 한 달 동안 여러 혼란을 야기한 오토픽션의 의미를 되짚어볼 것이다. 어쩌면 김봉곤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의 소설을 읽은 독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며, 사태가 진정된 그 자리에서 사유가 멈추는 것을 원하지 않는 우리의 이야기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오토픽션은 한마디로 자전 소설을 뜻한다. Auto(자전)와 Fiction(소설)을 결합한 말이니 오토픽션을 자전 소설로 칭하는 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흔히 자전 소설이라고 부르는 작품과 ‘오토픽션’이라 부르는 작품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자전 소설이 작가의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둔 허구적 이야기라면 오토픽션은 ‘자전’ 형식으로 쓴 ‘소설’인 동시에 ‘소설’의 외피를 두른 ‘자전’이다. 자전 소설이 ‘자전 < 소설’ 의 관계로 정립된다면, 오토픽션은 자전과 소설 사이에 부등호를 넣을 수 없다. 오히려 어느 쪽으로도 집중되지 않게 함으로써 독자를, 나아가 현실을 교란하는 것이 오토픽션의 목적이기도 하다. 부등호가 결정되지 않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여러 장치를 사용한다. 김봉곤의 경우에는 독자가 작가 본인이라 여길 수 있는 여러 정황, 이를테면 그의 직업이라든가 반려동물, 혹은 그가 사는 동네에 대한 정보를 통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연애가 작가의 그것으로 생각되게끔 유도한다. 이때 작가는 기꺼이 자기 폭로를 감행한다. 자기 폭로는 오토픽션의 방법론이 된다. 작품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작가의 실제적인 삶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이러한 반응이 의도된 반응일 거라고도 파악한다. 실제적인 동시에 허구라는 생각이 뒤따르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실제적인 것이란 무엇인지 질문하게 되고 현실에서 억압된 실제와 마주하게 된다.

픽션의 사실성과 사실의 허구성은 예술의 오랜 주제다.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이별 후 서로의 기억을 삭제한 연인이 다시 만나 두 번째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에 대한 낭만적 서사가 아니다. 그가 연출한 또 다른 드라마 <키딩>은 30년 동안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피클 아저씨가 아들의 죽음 이후 피클이라는 캐릭터와 현실의 자신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내용이다. 슬픔에 빠진 아버지이자 남편인 동시에 카메라 앞에서 언제나 밝고 즐거운 피클 아저씨가 공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지옥이다. 그러나 이 역시 교착 상태에 빠진 정체성 서사가 아니다. 나는 이 작품들이 이야기라는 예술, 즉 사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픽션의 본질에 대한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주인공의 사라진 기억이 돌아오게 된 이유는 주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까지 그들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 건 아니며, 우리는 언제나 자신과 더불어 타인과의 관계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데에서 연유한다. 현실은 사실과 허구로 뒤섞여 있다. 둘은 언제나 뒤섞이고자 한다. 원치 않는 기억을 삭제한 곳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없듯, 슬픔에 압도된 현실은 밝고 명랑한 허구적 존재에 개입하려 한다. 허구는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 없고 현실은 허구로 대피할 수 없다. 두 세계는 언제나 동시에 존재한다. 완벽하게 분할되어 있다고 믿고 있을 때조차 그것은 연결되어 있다. 소설은 일기가 아니지만 소설은 일기를 포함한다. 일기는 소설이 아니지만 소설적이지 않은 일기는 없다.

한국에서는 드물게 커밍아웃한 소설가인 김봉곤은 성소수자의 사랑을 집중적으로 쓴다. 김봉곤의 소설에 등장하는 감정들은 여느 연애 상태에서나 느낄 수 있는 흔하고 평범한 감정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은 현실 세계에서 억압받는 감정이 소설의 세계에서는 어떤 힘의 작용도 받지 않도록 내버려둠으로써 가능해진 평범함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힘은 그의 소설에 없거나 있어도 별로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허구적이다. 그러나 이 비현실적인 공간은 작가가 삽입한 각종 ‘자전적’ 요소들, 그의 자기 폭로적 글쓰기로 인해 사실성을 획득한다. 독자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너진 세계 안에서 선입견이나 편견, 이른바 생각의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며 퀴어의 연애를 체험한다. 자신의 삶을 폭로하는 것은 예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타인과의 관계로 이루어진 ‘나’의 삶을 폭로하는 데에는 언제나 타인의 삶이 폭로될 수 있는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남긴 유명한 말처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이 문장에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조건이 생략되어 있다. 나는 오직 나만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봉곤의 오토소설은 자신을 폭로하고 파괴하는 형식을 통해 자신을 지킨다는 점에서 억압된 현실에 맞서는 예술성에 도전했다. 그러나 오직 자신만을 파괴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예술은 고통스러운 현실이 되어버렸다. 피해자에게도, 작가 자신에게도, 무엇보다 그의 소설을 읽으며 무중력 상태를 경험한 독자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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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예지
WORDS 박혜진(문학평론가)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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