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FEATURE MORE+

서울 아파트

서울 아파트 상상

자고 일어나면 값이 오르는 서울 아파트.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전세라도 괜찮지만 그마저도 사라진 지금. 서울 아파트는 계층 상승을 위한 동아줄 같은 걸까. 아파트를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밀려나고 추락하게 될까. 그런 것 말고. 고향이고 삶의 터전인데, 평생의 기억이 담긴 곳을 떠나야만 성공하는 걸까. 나에게 서울 아파트란 무엇인가. 서울 아파트에 적을 둔 다섯 사람이 답했다.

UpdatedOn September 02, 2020

3 / 10
/upload/arena/article/202008/thumb/45892-426064-sample.jpg

 

지금껏 아파트라는 곳에 살아본 햇수는 2년 조금 넘는다. 그것도 가장 최근 일이다. 지금 아파트에 살고 있다. 서울에서 아파트는 가장 대표적인 도시 주거 형태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과거 얘기부터 하자면, 부산에서 자랐다. 좁은 골목길이 얼기설기 있고 그 골목길에서 계단을 통해 다시 골목길로 들어가야 집 대문이 나오는 동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 그런 곳에 건축 허가가 났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도로도 없고 좁은 계단투성이지만 그 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들 사이에서도 문을 열고 집 안쪽으로 들어서면 부산 앞바다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지낸 집은 2개 층의 다가구 주택이었다. 요즘 도시에서 새로 지은 세련된 다가구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경사지 단독주택을 이리저리 억지로 쪼개고 쪼개 다섯 집을 만든 뒤 세를 준 것이다. 억지로 만든 공동주택이다 보니 프라이빗한 느낌보다는 더불어(?) 사는 느낌이 강했다. 박스 형태의 집이었으나 네모반듯한 것은 아니었다. 1층과 2층 진입 동선이 달랐으며 부산의 가파른 지형 위에 자리해 1층은 골목 계단을 통해 내려가야 진입할 수 있었고, 2층은 그 계단을 내려가기 전 골목에서 다섯 계단 정도를 올라야 대문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한 집이다. 집 안 계단 역할을 골목 계단이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너무 자연스럽게 또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그건 아마도 길 건너편 집도 그러했고 주변 집들이 내부 계단 없이 2층과 이어지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주택들을 쪼개서 많은 세입자를 받다 보니 골목길과 집의 경계가 그렇게 확실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집 현관문을 열면 마당이었고, 이웃이 지나는 것이 보였다. 앞집의 옥상이 보였으며, 여름에는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잠을 자기도 했다. 또 옥상에서는 여름에 텐트를 치고 동네 친구들과 캠핑을 즐기기도 했는데, 부산 밤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정말 기막힌 풍경이 펼쳐지는 잠자리였다. 전망만 따진다면 호텔 펜트하우스 정도는 됐을 것이다. 건축하며 집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해본다. 그때마다 어린 시절 그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며 이 집 저 집에서 보았던 풍경과 마당, 옥상의 공간이 떠올라 많은 건축적 영감을 얻곤 한다. 반면 서울 아파트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위로 오르면 오를수록 좋아진다. 그렇지 않으면 앞 동 거실 또는 주방 정도가 보이는 것 같다. 쾌적한 조망권을 누리려면 경제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조망을 포기한다면 조금 저렴하게 넓은 실내 공간을 가질 수 있다.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며 단독주택 의뢰를 많이 받는다. 단순히 비용으로 자신이 살 집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방의 개수나 면적으로 집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재밌는 것은 대부분의 클라이언트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아파트가 너무 답답하다 이야기를 하지만 단독주택을 의뢰하러 왔음에도 많은 부분 아파트화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내가 서울의 아파트에 살면서 느낀 것은 너무나 편리하다는 것이다. 안전하고 주차하기 편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물 한 방울 젖지 않고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입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와 산책로가 단지 안에 있어 산책과 운동도 할 수 있다. 울타리는 아주 견고해서 외부에선 쉽사리 아파트 단지에 들어오지 못하니 마음도 편하다. 집으로 통하는 길은 다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파트라는 집은 거대하고 많은 사람이 살지만 아주 개인적이고 비사회적인 구조를 갖는다.

한 번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로드뷰로 보다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예전 동네 로드뷰가 사라지지 않고 서비스되는 것이었다. 자연스레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게 되었다. 주택 밀도는 굉장히 높아졌고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동네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길은 비워지고 녹지도 훨씬 많이 늘었다. 선택된 대지에 도시락 쌓듯 집을 차곡차곡 올렸기에 땅의 활용도는 아마도 탁월하게 개선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길이었을 때보다 공원이 된 공용 마당은 쓰임이 줄었고, 동네에 거주하는 사람은 예전보다 늘었지만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마주하기는 힘들어졌다. 아파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안겨주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외부와 마주할 기회는 박탈해갔다.

도시락 같은 집에서의 풍경은 보이기는 하지만 만질 수는 없는 것이고, 들리기는 하나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비가 내리는 것, 바람이 부는 것을 집에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그건 유년 시절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마당을 나가면, 창문을 열면 자연을 만지고 느낄 수 있었다. 그 향수 때문이리라.

인구가 줄어든 미래, 서울에 비워진 도시의 아파트를 그려본다. 비워진 아파트는 많아졌고 공간의 여유는 늘어났다. 꽉 차 있던 옆집이 우리 집 마당이 되고, 정원이 되고, 때로는 상가가 되기도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복도식 아파트는 또 하나의 길이 되고 여러 갈래 새롭게 만들어진 동선이 아래위로 겹치면서 골목길로 변한다. 어떤 아파트는 시장으로 변하고 또 다른 아파트는 공원으로, 도시 농장으로 변한다. 장벽 같던 도시의 아파트들은 어느새 여기저기 다른 색채를 띤다. 사람들을 통해 비워지고 덧입고 변화한다.

마주 선 다른 동의 아파트 곳곳에 나무가 뻗어 나와 있고 사람들은 예전엔 누군가가 살고 있었던 그 공간을 테라스로, 외부 공간으로 휴식처로 쓴다. 멀리 캠핑장에 가지 않아도 텐트를 칠 수 있으며 층간 소음은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아니다. 아이들은 골목으로 변한 아파트 복도를 뛰어다니고 103동 1301호에서 별을 바라본다. 어른들은 3층 302호에서 필라테스를 하며 5층 502호 탁구장에서는 탁구를 친다. 103동의 사람들이 정말 한 동네 사람들로 마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외부인의 출입을 막던 담장과 경계는 허물어지고 자연스러운 길이 형성된다. 입주민을 위해 만든 공용 시설과 정원은 이제 동네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원이 되고 마을 어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쉼터가 된다. 동네를 이어주던 예전 길들이 다시 생겨나고 비워진 주차 공간은 함께 쓸 수 있는 동네 주차장으로 변한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아파트를 재태크 수단이나 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가는 무대이자 진정한 집의 모습이 서울의 아파트에 새겨진다.

우리는 언제쯤 풍성한 삶이 가득 찬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낭만 가득한 서울의 아파트는 과연 미래에 만날 수 있을까. 지금 서울의 아파트가 청년에게는 경험할 수 없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라면 미래엔 획일적인 아파트의 공간 변화를 통해 새로운 삶의 판타지가 그곳에서 피어나길 기대해본다.

WORDS&ILLUSTRATION 고영성 (포머티브건축사사무소 소장)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조진혁

2020년 09월호

MOST POPULAR

  • 1
    <펜트하우스> 최예빈
  • 2
    UDT 포트레이트
  • 3
    'BE POWERFUL' <강철부대> 김민준, 김상욱, 육준서, 정종현 화보 미리보기
  • 4
    이준혁의 확신
  • 5
    봉준호의 신작

RELATED STORIES

  • FEATURE

    MUSIC VIDEO NEW WAVE / 정누리 감독

    피드보다 스토리, 한 컷의 이미지보다 몇 초라도 움직이는 GIF 파일이 유효해진 시대. 어느 때보다 영상의 힘이 커진 지금, 뮤직비디오의 지형도도 변화하는 중이다. VR 아티스트, 뮤지션, 영화감독, 시트콤 작가 등 겸업은 기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각양각색의 개성을 펼치는 MZ세대 뮤직비디오 감독 5인과 그들의 작품으로 읽는 뮤직비디오 뉴 웨이브.

  • FEATURE

    삼삼해도 괜찮아

    마라샹궈보다는 비건 식단에 가깝다. 알싸하고 자극적인 맛은 없는 삼삼하고 건강한 비건 식단. <라켓 소년단>이 딱 그런 느낌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어 두통을 유발하고, 피 튀기는 전쟁을 치르고, 처참하고 잔인한 연출까지 마다않는 장르물들 사이 <라켓 소년단>이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고 있다. 땅끝마을 농촌 소년 소녀들의 성장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다소 싱거울 수 있는데 왜? 시청자들의 마음에 펌프질할 수 있었던 <라켓 소년단>의 매력을 알아봤다.

  • FEATURE

    급류 속으로 / 미르코베버

    높은 산, 거대한 바위, 그 사이를 파고드는 물길.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쏟아지는 강줄기. 급류다. 카약에 몸을 싣고 급류를 타는 카야커들을 만났다. 고층 아파트 높이의 폭포에서 추락하고, 급류에서 회전하며 묘기를 펼치기도 하는 이들. 그들이 급류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 FEATURE

    급류 속으로 / 토마스 락

    높은 산, 거대한 바위, 그 사이를 파고드는 물길.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쏟아지는 강줄기. 급류다. 카약에 몸을 싣고 급류를 타는 카야커들을 만났다. 고층 아파트 높이의 폭포에서 추락하고, 급류에서 회전하며 묘기를 펼치기도 하는 이들. 그들이 급류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 FEATURE

    MUSIC VIDEO NEW WAVE / 강민기 감독

    피드보다 스토리, 한 컷의 이미지보다 몇 초라도 움직이는 GIF 파일이 유효해진 시대. 어느 때보다 영상의 힘이 커진 지금, 뮤직비디오의 지형도도 변화하는 중이다. VR 아티스트, 뮤지션, 영화감독, 시트콤 작가 등 겸업은 기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각양각색의 개성을 펼치는 MZ세대 뮤직비디오 감독 5인과 그들의 작품으로 읽는 뮤직비디오 뉴 웨이브.

MORE FROM ARENA

  • FEATURE

    왕가위의 남자들

    빛이 바래고 꾸깃꾸깃 주름진 사진 같은 그 시절의 홍콩에는 왕가위 감독이 있었다. 그에게는 네 명의 남자가 있었고. ‘왕가위 신드롬’이 다시 시작된 2021년, 네 남자의 멋스러운 청춘도 다시 그려본다.

  • FEATURE

    오픈런 하느라

    5월 말 ‘프라다’가 제품 가격 인상을 선언했고, 곧바로 실시했다. 일요일 자정부터 인상한다고. 정확히 자정이 지나자 특정 인기 제품은 품절되었고, 가격은 인상됐다. 타 브랜드들의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곧 ‘샤넬’은 또 한번 인상하겠다고 했단다. 그럼 가방 하나가 1천만원을 호가하게 되려나? 그럼에도 품절 대란이다. 심지어 유튜버들은 ‘매장에서 가장 저렴한 제품 사기’ 같은 콘텐츠를 올리기도 한다. 하이엔드 브랜드 제품의 가격이 ‘넘사벽’ 수준이 되어도 곧바로 품절되고, 가장 저렴한 물건이라도 사고 본다. 꼭두새벽부터 백화점 앞에서 텐트 치고 밤을 샌다. ‘오픈런’이라고 하던데. 가격 인상에도 굴하지 않고 반차 쓰고 오픈런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들여다본다.

  • FEATURE

    ‘주식’하고 있나요?

    요즘 어느 자리에 가도 ‘주식’ 이야기가 빠지질 않는다. 올해 막 주식 시장에 뛰어든 ‘주린이’로서 틱톡으로 ‘금융’ 분야의 노하우를 전하는 ‘금융팔로미’에게 조언을 구했다.

  • FEATURE

    플라밍고를 쫓는 모험

    헤르난 바스는 모험 앞에 놓인 소년들을 그린다. 고독한 얼굴을 한 그들은 풍랑이 거칠게 이는 바다, 도로변의 모텔, 네시를 찾는 캠핑밴, 플라밍고가 가득한 늪지대 등 낯선 세계로 자신을 던진다. 쿠바 이민 2세대이자 퀴어 아티스트로서 알 수 없는 것과 소외된 것, 기이한 것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거침없이 그려내는 헤르난 바스. 사시사철 쨍쨍한 플로리다에 살지만 햇빛보다는 그림자에 더 호기심을 지닌 미스터리 애호가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 FILM

    티록과 함께하는 온앤오프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