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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itique

연애하는 텔레비전

UpdatedOn August 24, 2020

연애는 늘 팔리는 소재다. 고릿적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부터 <하트시그널>에 이르기까지 청춘 남녀가 사랑의 작대기를 날리는 수많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보며, 슬그머니 의구심이 들었다. 사람들은 왜 남의 연애에 열광하나? 누가 누구와 어울리고 누구는 아깝다는 잣대의 기준은 뭔가?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도 아닌데, 왜 시청자는 연애 리얼리티를 볼 때 결혼정보회사 주선자 내지는 우생학자가 된 것처럼 엄정해질까? 이리저리 훈수를 두는 건 도대체 왜 재미있는 걸까? <아무튼, 예능>의 저자 복길이 오랜 세월 한국 ‘짝짓기’ 예능을 관찰해온 기억을 떠올리며 그 답을 파고들었다.

사적인 낭만을 요란스레 연출하고 그 모습이 낯간지럽다며 소리 지르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클리셰 콘텐츠가 되었다. TV 예능에서 로맨스가 등장한 건 아주 오래된 일이다. <X맨 일요일이 좋다>의 김종국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윤은혜의 귀를 가리며 “당연하지”라고 했던 순간이나,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에서 온주완이 무릎을 꿇은 채 임재범의 ‘고해‘를 부른 순간은 어떤 상징이 되어버렸을 정도니까. 어린 시절에 본 그 장면들은 참 요상한 기대를 품게 했다. 사랑은 저런 유치한 순간을 경험하는 일일까?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

2000년대 초반부터 소위 ‘짝짓기 예능‘이라 불리는 방송들은 늘 인기를 끌었다. 남성 연예인과 비방송인 여성의 만남으로 새로움을 내세운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과 <애정만세>, 강호동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연예인 미팅 프로그램 <천생연분>은 비, 성시경, 이성진, 임성언, 전혜빈, 유민 등 많은 스타를 탄생시켰다. 돌이켜보면 ‘커플이 되기 위해 댄스 신고식이나 단어 퀴즈 게임 같은 것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엔 리얼리티가 대세인 시절이 아니었고, 어쨌든 이것은 예능이니 서로 ’썸‘을 타는 걸 보여주면서도 알차게 웃겨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으리라고 짐작해본다.

2000년대 중반에 가장 화제가 되던 방송 중 하나는 <아찔한 소개팅>이었다. 종영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한국에서 가장 미친 예능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이 프로그램을 맨 먼저 말할 것이다. 매회 대체 어떤 기준으로 정했는지 알 수 없는 킹카 혹은 퀸카가, 마찬가지로 어떤 비극적인 이유로 이곳에 나오게 된 건지 알 수 없는 도전자 대여섯 명과 돌아가며 데이트를 한다. 상대를 만나자마자 그가 신고 있는 신발이 구질구질해 보여서 탈락시키고, 몸에 털이 많은지 알아보기 위해 제모실을 데이트 코스로 선택하고, 자신에게 말대꾸했다는 이유로 강남역 한복판에서 사이렌을 울려 수치스럽게 돌려보내는 이 미친 프로그램은 젊은 남녀의 실험적인 연애 리얼리티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방송이었음에도 인기를 끌었다.

전원 마을에 동수의 남자 여자들을 모아 서로의 이름 대신 ‘여자1호’ ‘남자2호’로 부르게 했던 <짝>은 노총각 노처녀 특집, 돌싱 특집, 모태솔로 특집 등 사회 실험에 가까운 포맷을 히트시키며 방송의 인기를 넘어 다양한 패러디를 낳는 등, 일종의 현상을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짝>의 종영 이후, 관찰 예능으로 트렌드가 옮겨가고, <나 혼자 산다> 같은 1인 생활 리얼리티가 인기를 끌며 연애 예능은 전성기를 누리고 멸종한 공룡처럼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2017년, 변화된 방송 환경에 적응해 진화를 선택한 존재처럼 <하트시그널>이 등장했다. 허무한 연애에 목을 매기보다 나 혼자 즐겁게 사는 법을 익히는 방향으로 방송 경향이 변한 지 오래인데 연애 리얼리티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많이 의심했지만 <하트시그널>은 세 번의 시즌을 거듭할 만큼 화제를 모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데이팅 앱,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유튜버 등 모두 ‘인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세계에서 그들이 열망하는 키워드를 압축해놓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어떻게 소외될 수 있단 말인가? 직접 만나기보다 SNS를 통해 먼저 간접적으로 교감하는 요즘 방식에 맞게 <하트시그널>은 ‘짝짓기‘를 노골적으로 앞세우지 않고 느슨하고 흐릿한 단서를 주고받으며 출연자에게 서로 ‘썸‘을 타게 만들었고, 판정단이라 불리는 스튜디오 패널들에게는 그들을 또렷하게 관찰하고 해설하는 임무를 맡겼다.

<하트시그널> 이후 비슷한 포맷으로 제작된 <러브캐처> <썸바디> <연애의 맛> 역시 비슷한 형태였다. 연출자는 출연자 하나하나에게 풋풋한 서사를 부여했다. 뽀샤시한 화면 필터에 감미로운 배경음악이 흐르는 만화 같은 데이트 속엔 불친절한 택시 기사도, 맛없는 음식도, 분위기를 망치는 어떤 요소도 없다. 아름답게 세팅된 상황에서 출연자들은 “나는 네가 좋아… 너는 어때?” 하는 제스처를 답답하게 교환했다. 나는 도대체 쟤네는 서로에 대해 언제나 되어야 제대로 알게 되는 거냐며 애를 태웠고, 만나자마자 일단 키스부터 하고 시작하는 넷플릭스의 연애 리얼리티 <투 핫>을 보던 동생은 그런 걸 대체 왜 보고 있느냐고 화를 냈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연애 리얼리티가 방송되었지만 시청자의 반응은 늘 변함이 없었다. 연애란 가장 입에 올리기 좋은 가십이라서일까? 시청자는 방송 출연자들의 ‘스펙’ ‘급’ ‘레벨’ ‘클래스’를 평가했고 짝이 된 출연자들의 줄을 세우며 누가 누구에게 더 아까운지 견주어보는 것에 열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출연자들은 지나친 관심과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고, 검증되지 않은 출연자의 문제적 과거 또한 사실로 드러나며 부정적인 여론이 더욱 확산됐다.

그래서 근 20년간 여러 연애 프로그램들을 시청해오며 내가 낸 답은, 짝을 짓는 것이 목적인 쇼가 시청자에게 남기는 것은 결국 연애와 관계에 대한 팁이나 청춘의 아기자기한 낭만보다는 한 사람을 쉽게 나누고 줄 세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연애 리얼리티를 현실과 분리해서 소비할 수 있는 걸까? <아찔한 소개팅>에서 정한 상대를 평가하는 속물적인 기준이 아직도 유효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하트시그널> 출연자의 SNS에 달리고 있는 숱한 댓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두 사람 사이의 사적인 감정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가공되어 배포되었을 때, 우리는 가상과 현실의 거리를 어떻게 가늠하고, 어느 선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걸까? 그 답을 시청자도, TV도 아직까지 찾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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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예지
WORDS 복길(<아무튼, 예능> 저자)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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