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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itique

마스터피스로 시작해 마스터베이션으로 끝난

UpdatedOn August 21, 2020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1(이하 <라오어 1>)>은 뛰어난 연출, 섬세한 그래픽 등 모든 게임적 요소가 깊은 몰입감을 선사하여 호평 받았다. 이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의 주체 역할에 충실하도록 만들었다. 반면 파트 2의 등장은 예술과 게임 정체성을 놓고 대립을 형성했다. 주어진 선택지에 따라 달라지는 스토리에 흥미를 느껴온 이용자들은 파트 2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려 게임의 정체성을 잃은 것. 개연성은 부족하고 캐릭터를 의도적으로 죽이도록 이용자에게 가스라이팅까지 서슴지 않는다. 팬들을 기만하는 <라오어>의 예술적 시도와 진정한 예술적 게임에 대해 짚어본다.

예술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이하 <라오어 2>)>는 변화의 조짐을 읽어내지 못했다. 창작자와 평론가들의 죄는 무지다. 그들이 꿈꿨던 예술-하기가 이미 낡고 병들어 폐기 처분된 것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정식 출시 전, <라오어 2>에 평론가들은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매겼다. 게임의 한계를 넘어선, 예술의 영역에 도달했다는 수식어를 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혹자는 콘솔 사상 최고의 게임이라고 평했다. 괴리는 분명했다. 이용자는 혹평과 불매로 이들의 오만을 응징했다. 이용자를 배반한 게임이라는 분노가 호평을 대체했다. 이 사태를 둘러싼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라오어 1>이 왜 성공했는지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라오어 2>는 <라오어 1>를 부정하는 가롯 유다다. <라오어 1>은 딸을 잃은 중년 남성 조엘이 좀비 떼에 맞서 어린 소녀 ‘조엘’을 지켜내기 위한 여정을 담은 게임이다. 중년 남성이 소녀를 지켜 유사 가족을 만든다는 클리셰 범벅의 서사는 특별할 게 없었다. 휴 잭맨이 출연한 2017년작 <로건>이 이야기의 완결성으로 보면 더 낫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은 그간 게임은 물론 여타 SF 장르에서 우려내고 또 우려냈던 사골이다. 낡은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게임적 장치, 기술이다. 게임은 그래픽과 음향, 시점과 조작을 통해 수용자와 이야기 간의 거리감을 0에 가깝게 만든다.

다른 장르와 비교하면 게임 특유의 몰입감은 도드라진다. 소설 독자는 언제까지나 이야기의 바깥에 위치한 외부인일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연인이 살해당해도 독자는 범인을 제지할 수 없다. 선택지는 없다. 참혹한 이야기일 줄 알면서도 다음 장을 넘겨야 한다. 시각적 예술의 극치라는 영화도 결국 스크린과 관객석이라는 장벽을 넘어설 수 없다. 스크린이 아무리 커져도 주인공이 감독과 제작자의 손에 매달린 꼭두각시 운명임을 관객의 머릿속에서 지우기 어렵다.

게임은 다르다. 이야기의 바깥이 아닌 정중앙에 플레이어를 내던진다. 주인공과 수용자의 자아가 일체화된다. 프랑스 사회학자 로제 카유아의 표현에 빗대자면 게임의 특장점은 다른 인격으로 가장하는 ‘미미크리’, 혼란과 아찔함의 ‘일링크스’에서 온다. 게임 내 수많은 오브제와의 인터랙션을 통해 이용자는 이야기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나의 선택에 따라 실패와 성공이 결정된다. <라오어 1>은 게임의 강점을 극대화해 성공했다. 조엘과 엘리가 좀비를 뚫고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이용자들이 느낀 거대한 성취감은 이것이 그들이 실제로 쟁취해낸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1편의 팬들은 엘리와 조엘의 이야기를 읽거나 시청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곧 엘리이자 조엘이었다. 섬세한 묘사와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연출로 너티독은 독자를 객체가 아닌 서사의 주체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라오어 2>는 예술이 되기 위해 게임을 버렸다.

역전의 용사 조엘은 개연성 없는 죽음에 머리가 뭉개진다. 게임은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엘리를 의도적으로 모욕한다. 전편의 순수함은 없고 연인과의 정사에 취해 경계도 제대로 서지 못하는 선택장애 멍청이로 묘사한다. 플레이어에게 조엘을 죽인 살인자가 돼보라고 명령한다. 사실 그에게도 명분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의라는 듯 이야기가 흘러간다. 살인자의 시점에서 엘리를 공격해야 하는 장면에 다다르면 컨트롤러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놓게 된다. 2편에서 플레이어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작가가 조종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선택지는 없다. 엘리를 두들겨 패야만 클리어에 도달할 수 있다. 몰입은 깨졌다. 전투가 아니라 내(플레이어)가 나(엘리)를 공격해야 하는 자해다.

이야기는 애착의 대상, 우상을 파괴함으로써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라고 등을 떠민다. 선형적 서사 구조, 서사에 녹아들지 못하는 교조주의적 메시지, 전편의 안티테제가 되길 자처하는 작가의 오만. 이용자는 순간 깨닫는다. ‘갓겜’ 라오어가 헌책방 구석에서 먼지에 싸여 굴러다닐 3류 판타지 소설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디렉터는 이용자가 느낀 분노와 허망함이 의도한 것이라고 밝혔다. 왜 본인들이 사랑받았는지 깨닫지 못하고 ‘게임 캐릭터일 뿐’이라며 이용자의 지적 수준에 의문을 품는 모습은 분노를 넘어 허탈하기까지 하다. 소설가랍시고 플레이트 좀 쳐봤다고 독자와 관객을 가르치려 들던 예술쟁이 선배들의 과오를 반복하고 있다.

발터 베냐민은 과학과 기술이 예술의 본질을 변화시킬 거라고 예견했다. 유물론에 따르면 물질적 토대가 바뀌면 상부 구조인 예술 역시 변화한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 게임이 그렇다. 원작의 고유한 가치, 오라(Aura)는 물론 창작자와 평단의 일방적 가치 부여는 허락되지 않는다. 60년 전 롤랑 바르트가 말한 대로 저자가 죽은 자리에 독자가 자리 잡았다. 지식 권력의 우위는 사라졌다. 게임 플레이어는 PC에 저마다의 갤러리를 갖고 있다.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은 현대의 루브르 박물관이며, 인벤, 루리웹 등 각종 커뮤니티는 게이머들의 파리 리뷰다. 모두가 값싸게 원작을 소유하고 직접 감상하는 시대, 예술가들의 펜대는 민중(게이머)의 죽창 앞에 무력하다.

과거의 잣대를 가져와 게임을 예술로 명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헛되다. 식자가 후세에 예술로 포섭한 수많은 대중문화는 본래 재미를 바라는 원초적인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기술의 어원인 ‘테크네’는 본래 예술과 구분되지 않았다. 능숙하게 바라는 결과를 얻어내는 능력에서부터 예술이 시작됐다.

요즘 게임도 그렇다. 참신성이나 천재성이라는 예술의 가치는 중세가 덮어씌운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메디치가나 교황이 설 자리는 없다. 재밌게 잘 만들어 입에서 ‘쥑이네’ 소리가 나오면 그게 바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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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EDITOR 정소진
WORDS 신진섭(게임 칼럼니스트)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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