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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론의 함정

UpdatedOn June 19, 2020

혈액형, 별자리, 사주팔자에 이어 MBTI론이다.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네 가지 알파벳을 조합해 자신을 규정하고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잘 설명하는지, 나라는 사람을 꼭 맞추는지, 어떤 유형끼리 맞고 맞지 않는지에 대해 열을 올린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또 자신을 유형화하길 즐긴다. 자신이 A라고 규정하고 A의 특질이 자신을 대변하는 데 안도감 비슷한 것을 느끼고, 누군가를 B라고 규정하고 그가 얼마나 전형적인 B인지에 대해 말하는 게 하나의 유희가 됐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사람이라고 똑 잘라 재단할 수 있을까? 어쩌면 바넘 효과는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왜 유형화를 즐길까? 

MBTI는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e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1910년대에 미국의 아마추어 심리학자 캐서린 브릭스가 처음 개발을 시작했다. 평소 일가친척의 특성을 감지하고 구분하는 데 관심이 많던 그녀는 도서관에서 유명인의 전기나 자서전을 참고하며 다양한 인간들을 분류할 기준을 자신만의 표로 만들었다. 칼 구스타프 융의 성격 이론을 받아들여 더 정교하게 보완했고, 딸인 이사벨 마이어스가 합류했다. 그녀는 전미 추리소설 작품상을 받기도 한 미스터리 소설가로 역시 인간 심리의 세밀한 묘사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둘 다 심리학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기존의 심리학계에서 만들어내기 어려운 독특한 분류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MBTI가 완성된 건 제2차 세계대전 말인 1944년이었는데, 전후 사회 재편 과정에서 사람의 개성이나 적성을 분류하고자 하는 수요와 이 검사의 고유성이 맞아떨어져서 학계, 특히 교육학 분야의 주목을 받고 대중적인 검사 도구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MBTI는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심리 검사 중 하나다.

그렇다면 과연 MBTI는 사실을 보여주는 검사일까? 혹자는 MBTI가 주는 만족감이 바넘 효과 때문이라고 말한다. “당신은 겉보기와는 달리 내면이 섬세합니다”라는 말처럼 얼핏 보기엔 특별하고 구체적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는 얘기다. MBTI에 대한 다른 비판은 과학적 근거의 부족이다. 개발자도 심리학 수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고, 그들이 참고한 이론이 정신분석학계에서도 특히 직관과 통찰에 의존한 융의 이론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통계적으로도 문제를 제기한다. MBTI의 결과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바뀐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 검사에 열광하는 걸까? 간단히 말하자면, 분류 그 자체 때문이다.

구별하고 분류하기는 우리 마음이 무언가를 파악하는 가장 기초적인 프레임이다. 인간의 뇌는 살아 움직이는 누군가를 만나면 일단 그가 사람인지 짐승인지를 구별한다. 사람으로 판별되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따진다. 그다음은 나이다. 여기까지는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다. 이들은 모두 생존과 번식이 걸린 핵심 질문이기 때문이다. 모든 분류가 과장은 아니다. 맛있는 과일을 분류하는 능력, 독 있는 버섯을 감별해내는 능력, 건강한 가축을 골라내는 능력같이 유용하고 현실적인 분류가 더 많다. 우리는 분류 능력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병원에서 의사들은 미세한 증세의 차이를 바탕으로 환자의 병증을 분류한다. ‘진단’이라 부르는 이 분류의 결과는 환자의 생사를 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이런 분류가 지나친 경향이 있다. 혈액형에 따른 분류, 별자리와 사주를 포함한 생년이나 생월에 따른 분류, 출생 순위에 따른 분류들 말이다. 이는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지각 심리학 분야에서 마하 밴드 효과로 잘 알려진 현상이 있다. 짙은 회색과 그보다 밝은 회색 면을 바로 옆에 붙여놓으면 그 두 면의 경계선 주변에 그러데이션이 느껴지는 현상이다. 짙은 회색 면과 바로 접한 옅은 회색 면은 좀 더 밝게 느껴지고, 반대쪽 면은 더 어둡게 느껴진다. 어디서 배우거나 살아가면서 훈련한 결과가 아니다. 애초에 우리의 눈과 뇌가 그렇게 인식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대상의 윤곽을 실제보다 더 뚜렷하게 만들어내는 생물학적 비결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분류의 틀도 마찬가지다. 분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어떤 차이는 좀 더 키우고, 다른 차이는 평평하게 만든다. 낮과 밤이라는 분류를 생각해보라. 명백히 낮인 시간대도 있고, 명백히 밤인 시간대도 있다. 하지만 그 중간에는 낮도 밤도 아닌 애매한 시간대가 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든 낮 혹은 밤으로 나눈다. 이 세상 모든 남자를 모아놓으면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이들을 여자 그룹과 비교하자면 갑자기 남자들 간의 차이는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고, 여자와 남자 간의 차이가 훨씬 커 보인다.

비슷한 일이 인종, 연령, 지역 같은 분류에서도 나타난다. 29세와 30세 간의 차이는 30세와 31세 간의 차이와 동일하다. 하지만 20대와 30대라는 분류 기준 앞에서는 전자의 차이가 훨씬 커지고, 후자는 작아진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늘 비교된다. 비슷한 연령대, 비슷한 학력의 학생들이지만, 어째서인지 고려대 학생들은 막걸리를 더 좋아하는 것 같고, 연세대 학생들은 맥주를 더 많이 마셔야 할 것만 같다. 요컨대 우리는 분류 기준에 따라서 아주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기도 하고, 그만큼 눈에 보이는 명백한 차이를 무시하기도 한다. 분류의 마하 밴드 효과다. MBTI도 그런 분류의 하나다. 이 검사에서 드러난 차이는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으며, 유형 간의 공통점 역시 과장되어 있다. 같은 유형 안의 사람들도 다 다르고, 유형이 다른 사람들 간에 더 비슷한 점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TI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지능 검사나 적성 검사는 우열을 가른다. 심지어 혈액형조차 A형이 다른 혈액형보다 더 우월한 것으로 묘사한다(혈액형 성격론의 기원을 이해하면 그 이유도 이해가 되리라). 하지만 MBTI는 다르다. 어떤 유형도 다른 유형보다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 각자의 개성과 장단점이 있을 뿐이다. 이 검사로 여러 번 강의한 사람으로서 MBTI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자면, MBTI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MBTI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사람을 나누려 들 것이며, 그럴 바에는 MBTI로 나누는 것이 그나마 낫기 때문이다. MBTI의 장점을 살리는 방법은 이 결과에 기초해 차별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것이 브릭스 여사와 마이어스 여사가 이 검사를 만든 애초의 취지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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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예지
WORDS 장근영(심리학자)

202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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