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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놓고 말해서

On June 15, 2020

하석진은 ‘척’하는 게 싫다. 착한 척하는 연기도 싫고, 멋진 척 인터뷰의 답변을 꾸며내는 것도 질색이다. 혼자 등뼈찜을 해서 나흘간 먹고, 표백제 쏟은 김에 빨래를 하고, 여전히 중고 거래를 하며, 술은 끊지 않고 쭉 들이켠다. ‘연예인 같지 않다’는 말을 듣는 이 배우가 시원시원하게 답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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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브리스 티셔츠는 코치 1941, 팬츠는 아크네 제품.

오늘 촬영은 즐겼나? 격식 있고 단정한 화보를 주로 보여줘서 이런 모습이 의외였다.
이게 내 실제 모습에 훨씬 가깝다. 편하게 재미있게 찍었다.

촬영 중인 드라마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서는 랠리 드라이버 역할을 맡았다고? 운전 잘하나?
실생활에선 제법 한다. 주차의 달인이라 ‘주달’이다. 차와 거의 한 몸이지. 공간 지각 능력이 높은 편인 것 같다. 하하.

이번에도 나쁜 남자인가? <당신의 하우스 헬퍼>를 빼면 대체로 까칠한 역할을 많이 했더라.
난 친절한 역할에 매력을 거의 못 느끼는 편이다. 주말드라마의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들 있지 않나? 훈훈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효도하고, 모두에게 친절한.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재미가 없다. 내가 그런 성격이 아니어서인지. 하하하. 내게 주어진 상황을 한 번 꼬고 응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인물이 연기하기 재미있는데, 대체로 나쁜 남자들이 그런 걸 살리기 좋다. 착한 척하는 건 아무래도 가식 같아서 재미가 없다.

최근 2년간 특별 출연을 제외하고는 작품이 없더라. 왜 이렇게 뜸했나?
2년 전 회사를 나오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이런저런 일들을 수습하고 새 회사를 만나는 과정에서 부침이 있었지. 당시엔 마음고생을 좀 했는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며 잘 버텼다. 부족한 점을 돌이켜보고 채우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거쳐 다시 작품을 시작하니 어떻던가?
책임감이 생겼다. 단순히 재미있게 찍기보단 한 작품 한 작품 족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아무래도 나이가 드니 삶의 무게가 더 느껴지더라.

10년 전 인터뷰에선 ‘나이 든 내 모습이 상상이 안 간다’고 했더라.
하하. 최근 2, 3년간 마음이 폭삭 늙은 것 같다. 이제 곧 마흔이다. 적어도 ‘아직도 저러고 사냐’는 말은 안 들어야 할 나이지. 주책맞은 짓도 좀 덜하고. 장가도 가고 싶다. 그전엔 나이 든 내 모습을 상상 못 했다면, 이제는 멋있는 45세, 50대는 어떤 사람일까 자주 상상한다.

그때와 지금, 변한 게 있나?
어릴 땐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살아왔는데 지금은 그게 맞는지 모르겠다. 내가 살아온 태도를 어느 부분은 유지하고, 어느 부분은 새로 배워야 하는지, 계속 열어둔 상태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고, 남들이 말만 안 했지 내게 싫은 점도 있을 테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쓴소리 좀 해달라고 한다. 날 욕해달라고. 뒤에서 말고 앞에서. 하하. 많은 사람에게 편한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람이 바뀌기 어렵다지만 나는 조금씩 변했다. 많이 유해졌지.

쾌남 같은 태도가 꼭 나쁜 건 아니잖아?
필요할 때는 누구보다 쾌남처럼 보일 수 있다.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시원시원하게 하되, 그러지 말아야 할 땐 안 그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한 거 같다.

당신에게 연기는 예술인가, 생업인가?
둘 다인데, 생업으로 생각한다고 절대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생업은 말 그대로 생업이다. 그 일로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이 대충 할 수는 없잖아. 처음 연기를 시작한 20대 친구들은 연기는 예술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 인물이 되어서 무대 위에서 죽고 싶다고. 신인 때는 그렇게 보이고 싶기 마련이다. 그 인터뷰를 누군가 읽어줬으면 하거든. 나도 처음엔 그런 말을 했다. 때론 쟤 만화를 너무 많이 봤나 싶게 말도 하고… 하하하. 야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업으로서 연기라는 노동을 대하는 것도 중요하더라. 산뜻하고 편안한 태도로 현장에서 즐길 줄 알고, 스태프와 잘 소통하고, 저 친구와 일하니까 좋더라는 후일담이 들려오는 배우가 되어야지. 같이하는 일이니까.

 

“저 친구와 일하니까 좋더라는 후일담이 들리는 배우가 돼야지.
같이하는 일이니까.”

 

스마트한 공대 남자 이미지가 지겹진 않나?
득을 많이 봤지만, 배우로서 제안받는 폭이 좁다고 느낄 때는 아무래도 그렇다. 내가 맡으면 나중에 똑똑하거나 엘리트 같은 인물로 설정이 추가되더라. 단순 무식하지만 열정이 있는 역할 같은 것도 해보고 싶은데 아쉽지.

<문제적 남자>에서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걸 보면 신기하더라. 실생활에서 문제 해결 방식은 어떤가?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가부터 생각한다. 그다음 원인을 살펴보고,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지. 최근에 다용도실에서 액상 표백제가 들어 있는 비닐팩이 찢어져 바닥이 흥건해진 적이 있다. 아찔한 순간이었지. 베개와 이불과 매트리스 커버, 흰 티셔츠, 운동복, 때가 찌든 흰 모자, 이런 걸로 표백제를 싹 닦아서 한 시간쯤 뒀다가 세탁기에 돌렸다. 한 번에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었지.

자취 7년 차라 살림 노하우가 좋은 것 같다.
색시만 있으면 된다. 하하하. 전엔 요리를 좋아해서 엄청 배우고 따라 했다. 뵈프 브루기뇽 같은 것도 만들었다. 요즘엔 1인 가구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게 시간 대비 효율성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잘 안 한다. 최근에 누가 돼지 등뼈를 줘서 등뼈찜을 했는데 나흘 정도 먹고 나니 하기가 싫어지더라. 하하. 청소, 빨래도 잘한다. 설거지는 귀찮긴 한데 뭐 가위바위보를 해서 담당자를 정하거나 식기세척기를 사도 되니까.

술은 잘하나?
좋아한다. 일을 열심히 하고 일찍 끝나는 날 마시는 소맥 한 잔이 너무 좋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했던 마음을 한 잔의 술로 쫙 풀어주는 거. 그런데 한번 먹으면 잘 멈추질 못한다. 감질나니까 그냥 쭉 들이켜거든. 소주 한 병 반 이상 마시면 그냥 오늘 취하는 날이다, 하고 마신다. 그런데 이젠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질 못하니, 마실 수 있는 양을 줄이지는 못하고 음주 빈도수를 줄인다. 그게 건강도 지갑도 지키는 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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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수트·벨트 모두 던힐, 티셔츠는 메종 마르지엘라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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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는 마르니 by 무이, 검은색 가죽 팬츠는 코치 1941 제품.

여럿이 떠들썩하게 마시는 게 좋나, 혼자 혹은 두셋이 차분하게 마시는 게 좋나?
아무래도 주변에 술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술자리에 부름도 잦은데, 최근엔 왁자지껄하게 마시는 걸 그다지 즐기진 않았다.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싫어할 것 같아서. 매일 술자리 나가서 카드 긁고 나오는 남자는 별로 아닌가? 하하. 그런 자리 가봤자 부질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술에 잠시 정신을 맡겼다가 들어오는 것뿐이니. 늦바람 들 일은 절대 없지. 차분하게 마시면 대화가 깊어질 수 있어서 좋다. 집에서 위스키 한 병 놓고 홀짝홀짝 마시다 잠들기도 한다.

하석진에게는 어떤 후회가 있나?
연기를 더 진지하게 빨리 시작했더라면, 가족을 더 살갑게 챙겼더라면, 지금은 떠나가버린 여자친구들에게 좀 더 잘했더라면, 그런 것들이지.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어떤 실수나 아픔은 잊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가벼운 건 반추하면서 멍청한 짓을 했네, 하고 털어내지만 깊은 상처가 남은 일들은 반추할수록 나를 좀먹더라. 왜냐하면 나이가 들수록 나 자신을 믿잖아. 나에겐 이런 일이 없을 거야, 내가 충분히 옳은 일을 한 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면 더 타격이 크더라고.

잘생겼고 똑똑하다. 무기 두 개를 타고난 셈인데.
그거 아나? 사실 보통 남자들은 자신이 어느 정도 생겼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냥 그 수준이다. 웬만한 남자들이 ‘나 정도면 어때, 나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니야?’ 하는 외모라는 거다. 게다가 남자고등학교 다니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는 전혀 객관화가 안 된다. 그냥 운동 잘하고 공부 잘하고 싸움 잘하는 게 최고다. 그런데 나는 운동이든 공부든 제일 잘하는 건 아니었고, 오히려 ‘찐따’였다. 좀 바보 같고 이상하고. 지금도 분명 그런 부분이 있고, 난 그런 모습을 좋아한다. 가깝게 지냈던 여성들도 그런 부분을 좋아하더라고.

요즘도 중고 거래 하나?
종종 한다. 최근엔 가습기 하나 샀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편인가?
‘석진이는 연예인 같지 않아’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연예인 같은 게 뭔가? 연예인 같아야 하는 건가? 그 의미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는데, 내 활동 반경 안에서는 신경 안 쓴다. 필라테스 스튜디오 갈 때 어떤 연예인은 언더아머까지 풀세팅한다던데, 난 대충 운동복 입고 가거든. 내가 자주 가는 장소, 활동 반경 안에서만큼은 자유롭고 싶다. 개띠라 그런가.

인스타그램을 보니 요즘엔 홈트레이닝 삼매경인 것 같던데?
운동을 하면 몸의 기분이 바뀐다. 잠을 푹 자고 먹을 것도 다 먹었는데 괜히 무기력할 때 있지 않나. 그럴 때 운동하며 땀을 흘리면 기분이 전환되거든. 희한하지. 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바뀐다는 것이. 순간의 컨디션을 몇 분 만에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 좋다. 근육이 생긴다거나 살이 빠진다거나 하는 건 따라오는 결과물일 뿐이다.

배우 안 했으면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회사에 출퇴근하고 있지 않을까? 대학 때 친구들처럼. 그들도 치열하게 산다. 오전 6시에 출근해 오후 3시에 아들 픽업하고 다시 회사 들어가기도 하더라. 지금으로서는 내가 사는 게 더 재미있는 것 같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회사에 다녔으면 이렇게 호텔 방에서 화보 찍는 경험은 못 했을 테니까. 하하.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즐기자. 나는 그런 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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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코트·슬리브리스 티셔츠·팬츠는 모두 드리스 반 노튼 by 분더샵, 갈색 샌들은 펜디, 선글라스는 마스카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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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재킷·흰색 브이넥 셔츠·베이지색 팬츠는 모두 질 샌더 제품.

하석진은 ‘척’하는 게 싫다. 착한 척하는 연기도 싫고, 멋진 척 인터뷰의 답변을 꾸며내는 것도 질색이다. 혼자 등뼈찜을 해서 나흘간 먹고, 표백제 쏟은 김에 빨래를 하고, 여전히 중고 거래를 하며, 술은 끊지 않고 쭉 들이켠다. ‘연예인 같지 않다’는 말을 듣는 이 배우가 시원시원하게 답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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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예지
PHOTOGRAHY
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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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남
HAIR
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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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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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메르디앙 호텔
ASSISTANT
김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