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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만화들

On June 11, 2020

지속 가능성이 화두에 오르고 팬데믹 종식이 요원한 이 시대, 어두운 미래에 대한 상상은 만화에서 먼저 펼쳐졌다. 지금 창작자가 추천하는 디스토피아 만화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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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 스테이트> 시몬 스톨렌하그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그 자체로 클리셰다. 때문에 세계관의 디테일에만 공을 들여 작업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화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창작자에게 더 중요한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명감을 느끼는 주인공, 냉소적인 인간,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 평범한 사람, 사회부적응자…, 어떤 캐릭터를 넣어도 디스토피아 안에서는 ‘관심종자’처럼 보이는 장벽에 부딪히기에 더 까다롭다. 추천 작품은 시몬 스톨렌하그의 그래픽 노블 <일렉트릭 스테이트>다. 미국이 망했다. 뉴로캐스터 때문이다. 다들 뉴로캐스터를 머리에 쓰고 있는 걸 보면, 뇌파에 간섭하는 VR 기기 비슷한 것 같다. 이 세계엔 스마트폰도 없고, 음악을 듣는 사람도 없다. 모두 뉴로캐스터를 쓰고 있으니까. 주인공만 빼고 말이다. 주인공은 뉴로캐스터를 써본 적이 없는 10대 여성이다. 그렇기에 독자는 모든 게 뉴로캐스터 때문이라 추측하면서도 뉴로캐스터를 쓰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다. 화자는 시종일관 과거를 회상한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날 봐, 난 이런 과거를 가졌어, 그러니 내게 집중해!” 그의 서술은 이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되뇌고 있을 뿐이다. 무언가를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어머니가 왜 그랬는지. 학교에서 애들이 왜 그랬는지. 위탁 부모는 왜 그런 인간들이었는지. 뉴로캐스터를 쓰면 어떤지. 어쩌다 세계가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석촌호수에 나타난 1톤짜리 러버덕처럼 세계의 풍경에는 커다랗고, 석연치 않은 것들이 섞여 있다. 그것들은 이미 자연으로서 존재한다. 자연은 언제나 당연한 듯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그게 어째서 당연한지는 결코 알 수가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텅 비어버린 거리. 풍경은 삶에도 죽음에도 관심이 없다. 나는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본다. 내가 무엇을 포기했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디스토피아는 아무도 세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이해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일렉트릭 스테이트>의 화자는 희망 없는 세계에서 희망을 꿈꾸지 않은 채로, 세계를 끊임없이 묘사한다. 나는 그걸 끝까지 지켜보았다. WORDS 김승일(시인)

<도로헤도로> 하야시다 큐

21세기의 새로운 20년은 우리의 기대와 좀 다른 모습이다. ‘히키코모리’가 가장 바람직한 삶의 자세이니 말이다. 새로운 디스토피아를 향해 가는 지금,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보자.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신 마법의 저주가 있었다면? <도로헤도로>는 슬럼가 마을 ‘홀’과 그곳에 난입하는 마법사들이 뒤얽히는 사건을 그린다. 제목 그대로 진흙(泥, 도로)과 하수도 침전물(ヘドロ, 헤도로)이 뒤섞인 듯 축축하고 더럽고 알 수 없는 것이 혼재한 세계. 주민은 생화학 테러 같은 마법과 뒤얽힌 삶을 살아가야 한다. 끔찍한 상황인데도 <도로헤도로>의 정서는 유쾌하다. 이상하리만치 모두가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유유자적한 세계 속, 주인공 일행은 물론 위기에 빠진 조연 누구 하나 심각하지 않다. 죽은 이가 좀비로 되살아나는 ‘리빙 데드데이’는 경품 이벤트가 함께하는 가장 큰 축제인데, 세계를 관장하는 존재가 신이 아닌 악마이기 때문이다. <도로헤도로>의 악마는 무료함을 해소하기 위해 의도적인 바보 행세를 하고 기행을 일삼는다. 위기감이 결여된 악마적 삶의 태도가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의 보편적 생활 방식이다. 얼마 전, 자가 격리 중 거울 속 자신과 끝없이 건배하는 남자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농담과 냉소로 뒤얽힌 <도로헤도로> 속 악마는 “언제나 밝게 웃고 있어라”라고 말했다. 머지않은 디스토피아를 대비해 지금의 우리가 마음에 품어야 할 말일지도 모르겠다. WORDS 돈선필(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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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다크 피닉스 사가> 크리스 클레어몬트

히어로 만화에서 영웅은 대체로 멋지고 뛰어나며 부러움을 살 만한 사람들로 그려진다. 그런데 엑스맨 시리즈는 다르다. 엑스맨에서는 초능력이 없는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 초능력을 가진 등장인물이 문제의 발단이다. 다른 히어로 이야기들이 디스토피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영웅의 활약을 다룬다면, 엑스맨에서는 초능력자들 그 자체가 바로 디스토피아다. <엑스맨: 다크 피닉스 사가>는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단행본 중 1963년 시작된 엑스맨 시리즈의 첫 모습에 비교적 가까이 다가간 책이다. 1979년에 시작된 다크 피닉스에 얽힌 이야기를 모아둔 책이라 실사 영화가 유행한 2000년대 이후의 책들과는 다르다. 책에 글자가 더 많고 촘촘하며, 요즘 만화들과는 연출 방식, 그림의 선과 색을 쓰는 방식도 다르다. 이야기의 재미도 앞서 있다. 소수 상류층의 비밀 모임 이야기를 발단으로, 그들의 음모가 세상을 지배한다. 한동안 한국 영화에서 빈번히 등장한 설정을 이미 40년 전 만화에서 선보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만화는 버려진 무리가 세상을 향해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대신에 초능력자의 무시무시한 분노를 보여주며, 지구 밖 외계인 함대로, 초신성을 폭파해 문명을 말살시키는 이야기로 거침없이 내달린다. 선과 악의 이분법을 넘어 원자와 우주의 세계를 연다. 자유로운 이야기 속에서 만화는 도대체 무엇이 불행의 진짜 원인인지 묻는다. 남들보다 더 뛰어난 초능력이 어떻게 디스토피아 이야기의 배경이 될 수밖에 없는지, 통제하려는 자들과 통제당하는 자들이 어떻게 편을 만들고 무리 지어 공격하는지, 분노와 공포 사이에서 얼마나 쉽게 선과 악이 얼굴을 바꾸는지, 답 없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균 수명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고, 교육 수준과 국민소득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사회임은 틀림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상이 멸망해가고 있고, 모든 것이 절망적이라고 부르짖는 이야기를 찾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엑스맨: 다크피닉스 사가>는 그 한 꺼풀 안쪽을 미리 들춰보게 하는 만화다. WORDS 곽재식(SF 소설가, 공학박사)

<미래 세시기 바이오 묵시록> 모로호시 다이지로

어렸을 적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플라이>를 보고 한참을 시달렸다. 인간이 파리와 혼종이 되어가는 신체 변형의 이미지에 두려워 몸을 떨었던 기억이 난다. 이미지가 그로테스크해서만은 아니었다. 시각보다는 개념이 침범당했달까. 인간성의 경계가 일그러지는 데서 오는 역한 거부 반응이었다. 그게 내가 처음 본 바이오펑크였다. <바이오 묵시록>은 바이오전쟁이 터지고 반세기가 흐른 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SF 연작 단편집이다. 첫 에피소드는 닭양배추, 참치호박 같은 채소를 재배하는 농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유전자 혼종이 일상화된 미래에도 농부가 신경 써야 할 일은 잡초 제거다. “어라 잡초잖아”라는 말풍선을 따라 그림 칸을 본 나는 ‘어라 이 만화 이상하다’란 생각을 했다. 잡초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자행된 바이오테러 끝에 인간의 유전자가 다른 생물에게 흘러가버린 미래 세계. 이 세계의 닭은 모두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인간 유전자가 섞인 품종이 더 크고 맛있기 때문이다. 기괴한 뉴 노멀의 세계가 안겨주는 전복감은 아찔하다. 모든 사람의 몸 안에 이종의 유전자가 존재하며, 언제 발현될지 모른다. 바이오펑크만큼 인간의 경계를 시험하는 장르는 없다. 사이버펑크 장르가 던지는 섬뜩함이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라는 정체성을 해킹했을지 모른다는 존재론적 공포라면, 바이오펑크는 유전자를 해킹하는 생물학적 공포다. 무분별한 유전자 실험으로 오염된 자연이 언젠가 인류를 바이오해킹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지금의 실험들 속에서도 거대한 바이오수프가 부글거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그저 유머와 냉소로 새로운 생태계를 그려낸다. 이 기묘한 우화를 추천한다. WORDS 홍석재(영화감독)

<철콘 근크리트> 마츠모토 타이요

미래를 떠올릴 때 한 번도 유토피아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떤 식으로든 디스토피아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차피 미래는 그런 세상이 될 텐데, 그 안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혹은 그런 세상에서도 지켜졌으면 하는 건 뭘까? 그런 생각으로 글을 쓴다. <철콘 근크리트>의 시로는 열 살, 쿠로는 시로보다 몇 살 위다. 쿠로가 시로를 지키는 것 같지만, 실은 열까지밖에 세지 못하는 시로가 쿠로를 지탱한다. 아이가 주인공인 만화답게 귀여운 소제목들로 이어지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그들이 사는 근미래의 동네, 타카라쵸는 ‘수없이 생겨나는 그림자를 무시하고 자기들 편할 곳만 밝히는 곳으로’ 변해간다. ‘자기들’은 힘을 가진 나쁜 어른들이다. 쿠로는 어른이 싫다. 어떻게든 시로만은 지키고 싶지만, 쿠로가 할 줄 아는 건 싸움밖에 없다. 쿠로는 시로를 지키기 위해 날것의 폭력에 노출된다. 그럼에도 이 만화는 디스토피아의 미래에서도 꼭 남아 있었으면 하는 것들, 지켰으면 하는 것들을 담아낸다. 폭주하지만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각하는 미성년, 지쳐 포기한 듯하지만 결국엔 할 일을 하는 성인들, 그리고 철근 콘크리트로 둘러싼 세계에서도 자라나는 사과나무 등이 그렇다.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디스토피아가 될 거야, 막연한 짐작만 있을 뿐. 하지만 그 세계에서도 사람이 살거다. 어른도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철콘 근크리트>는 두 세대의 충돌을 소재로 하는 듯하지만, 어울릴 수 없을 듯한 그들의 조화에 대해서, 그 조화가 당연하지 않을 테지만, 당연했으면 하는 바람을 절묘하게 표현해낸다. WORDS 김영탁(영화감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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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버린 올드맨 로건> 마크 밀러

슈퍼히어로가 너무 많은 시대다. 우리 사회에 정의로운 영웅이 많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슈퍼히어로 영화나 작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두라는 속담은 달리 말해 숲이 생기면 나무가 보이지 않게 된다는 뜻인데, 슈퍼히어로도 딱 그 짝이다. 너무 많아서 뭘 봐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권하고 싶은 작품은 마블 코믹스의 <울버린 올드맨 로건>이다. 이 작품은 마블 코믹스의 영웅들이 모두 죽어버렸거나 타락하고 미국은 황무지로 변해버린 디스토피아 사회에서, 영웅의 이름 울버린을 버리고서 로건이라고 만 불리게 된 사나이가 옛 친구 호크아이와 함께 몰락한 미국을 일주하며 과거를 회고하는 내용이다. 미쳐버린 세계를 가로지르는 로건과 호크아이의 여정은 마블 코믹스에서 가능한 최악의 악몽이다. 이 시간선에서 레드스컬은 어벤저스의 무기를 전리품 삼아 전시하는 독재자가 되었고, 헐크는 군벌 중 하나로서 친족을 무기 삼아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문명은 쇠퇴했고 온갖 괴물들이 도시를 점령한 상태다. 마블 코믹스의 애독자가 그간 사랑해온 것들을 무너뜨리고 부정하는 것들을 추대했다는 점에서 매우 모범적인 디스토피아라, 창작자로서는 공부마저 된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영웅이 절실한, 영웅이란 무엇인가 다시 고민해야만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앞서의 속담을 다시 빌리자면 <울버린 올드맨 로건>은 숲을 불태워서 감춰졌던 나무를 찾아내는 이야기인 셈이다. 이렇게 충격적인 전개이기에 작품의 결론은 더더욱 빛을 발한다. <울버린 올드맨 로건>의 결말을 텍스트로 설명하면 혹자들은 식상하다며 조롱할지도 모르겠다. 어둡고 타락한 세상일수록 더 밝게 타오르는 영웅이라니. 그러나 로건, 아니, 울버린이 마지막에 내리는 선택이 주는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눈앞의 사리사욕에 미혹된 인간들이 불러일으킨 환경오염과 전염병 그리고 분쟁의 디스토피아로 돌진하는 최근 세계 정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결국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올바른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용기만이 우리를 구원하며, 우리는 이 단순한 교훈조차 이러한 재앙 속에서 배우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WORDS 홍지운(SF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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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의 나라> 이치가와 하루코

<보석의 나라>는 인간화한 보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로, 아름답고 섬세한 캐릭터 조형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즐거이 볼 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한 가지 경고를 달아두지 않을 수 없으니, 어느 인물에게도 정을 붙이지는 않기를. 누구를 좋아하든 심각한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괴로운 이야기니까. 인간이 사라진 이후, 새로이 등장한 보석 인간은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모두 청소년의 외형과 정신을 갖고 있으며, 성장하는 일도 없이, 늙거나 죽는 일도 없이 영원히 살아간다. 그러나 위험은 존재한다. 월인들이 이따금 보석 인간을 습격해 보석을 회수해가는 것이다. 이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성장 없는 세계의 미래이자 은유 그 자체다. 이야기의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건 보석 인간 포스포필라이트로, 매우 순수한 성격이기에 외로운 보석인 신샤를 돕겠다는 일념으로 다방면에서 사고를 친다. 그리고 이 타자를 향한 욕망이 이야기를 파국으로 이끌어나간다. 포스포필라이트는 이 과정에서 점차 자신의 몸(보석)을 잃고, 다른 보석을 합금하며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 타자를 향한 욕망이 어떻게 자신을 해치는지, 그리고 그것이 주변을 어떻게 파괴하고 변화시키는지, 만화는 매우 무표정한 얼굴로, 그러나 아주 아름답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고통의 과정이 마냥 나쁜 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성장하지도 않고, 타인과 진정한 의미에서 교류 또한 하지 못하는 보석들 사이에서, 포스포필라이트만이 타인을 위해 변화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연재분까지는 그 모습이 파괴적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이 파괴야말로 이미 죽어버린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까? 위험과 파괴를 감수하고 타자에게 손을 뻗어야만, 미래가 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시인으로서 이 전망 없는 세계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으나, 여전히 뚜렷한 답을 내리지는 못하겠다. 그렇기에 만화의 결말이 궁금하다. 포스포필라이트의 변화는 세계를 어떻게 바꿀까.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어떤 파괴를, 어떤 고통을, 어떤 변화를 상상해야만 할까. 당신 또한 그것이 궁금하다면 이 만화를 추천한다. WORDS 황인찬(시인)

<노말 시티> 강경옥

만화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자마자 강경옥의 SF 만화 <노말 시티>를 떠올렸다. <노말 시티>는 유전자 조작 실험, 출생지와 신분에 따른 차별, 구성원에 대한 통제와 강력한 감시체제 등 디스토피아적 설정을 거의 모두 담고 있으며,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어떤 안도감을 느꼈는데, 그것은 분명 작품이 큰 스케일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섬세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초능력자 마르스의 불안은 대단히 구체적이다. 소설로도 이 불안을 써낼 수 있지만, 강경옥 작가가 만화로 그려준 것에 나는 지금까지도 독자로서 무한히 감사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10대에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만화 단행본으로 출간된 덕분이리라. 10대 시절 나는 마르스가 자신의 몸에 대해 갖는 ‘불편’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한편 창작자로서 디스토피아 창작물은 파괴적 욕망의 분출이나 정당화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도 강력한 초능력자인 마르스와 그 친구들은 많은 것을 부순다. 그럼에도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조차, 가장 통쾌한 장면에서조차, 마르스는 자신의 능력을 전부 발휘하지 않는다. 단지 나는 그의 힘보다 외로움에 위로받았고, 마르스의 친구와 동료들을 보며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줄 수 있는 안정감을 찾았다. 동시에 어떤 정의의 구현을 통쾌해했고, 어떤 슬픔에 좌절했다. 이 세계에도 존재하는 디스토피아적인 차별의 결을 다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품을 만난 후부터 창작자로서의 방향을 고민하는 지금까지 여러 번 다시 읽었다. 그리고 매번, 이 작품이 존재하는 한, 이런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창작자가 있는 한, 아직 우리 세계는 디스토피아가 아니리라는 기묘한 희망을 얻는다. WORDS 정소연(SF 소설가, 변호사)

지속 가능성이 화두에 오르고 팬데믹 종식이 요원한 이 시대, 어두운 미래에 대한 상상은 만화에서 먼저 펼쳐졌다. 지금 창작자가 추천하는 디스토피아 만화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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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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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
ASSISTANT
김인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