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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쓰셨어

손때 묻은 카메라, 색 바랜 잡지. 아버지가 쓰던 물건에서 아버지의 젊은 날이 발견된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낡고 귀한 물건만 모았다.

UpdatedOn May 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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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박재용
Magazine
<커머셜포토>

 

사진을 업으로 정한 게 언제였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사진에 관한 몇몇 편린이 기억에 새겨졌을 뿐이다. 197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광고 관련 일을 하셨다. 아버지는 일을 시작할 때부터 든든한 우군으로 삼았던 무기가 있다. <커머셜포토>다. <커머셜포토>에는 당시의 다양한 사진들이 실려 있었다. 정확히는 상업 사진 트렌드를 소개하는 잡지였다. 아버지가 곁에 두었던 책이라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서는 그림책 삼아 놀기도 했다. 이후 <커머셜포토>는 상업 사진가의 길로 나를 인도해준 길잡이가 되었다. 지금도 가끔 펼쳐 보곤 한다. 세월이 지난 책이지만 여전히 그 속에는 놀라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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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류용현
Camcorder
소니 핸디캠 하이파이8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얼리어답터였다. 아버지는 지금보다 더 젊고 잘생겼던 시절, 새로운 전자제품이 나오면 직접 써보는 남자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8mm 캠코더가 유행했다. 손안에 착 감기는 작은 캠코더였는데, 아버지는 그걸로는 부족하셨는지 커다란 캠코더를 사오셨다. 일본에서 직접 꼼꼼히 따져보고 구매한 제품이다. 지금 보면 PD들이 쓸 법한 전문가용 장비인데, 아버지는 이 캠코더로 우리 가족을 촬영하셨다. 순전히 취미용이었다. 자식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자 하는 아버지의 의지가 담긴 캠코더다. 8mm 테이프에 담긴 영상을 지금 다시 보는 건 쉽지 않다. 캠코더와 TV를 케이블로 연결하고 틀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번거로워 잘 보게 되진 않는다. 최근에야 촬영을 위해 캠코더를 꺼냈을 때 테이프를 재생했다. 영상 안에는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영상이 아버지의 시선이라고 깨달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버지는 나를 저렇게 바라보셨구나. 낯설고 익숙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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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성지
Watch
오메가 워치 & 론진

 

1990년 10월 27일.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 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식을 한 날이다. 그리고 이 시계는 부모님 사랑의 증표. 두 분은 20대 초반 풋풋한 나이에 만나 7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하셨다. 이 시계를 서로의 팔목에 채우며. 1년 후 내가 태어났고 9년 후 동생이 태어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치러내셨다. 30년의 세월은 부모님에게 주름을 주었고 반짝이던 금시계에는 녹이 많이 슬었다. 올해는 부모님의 결혼 30주년이다. 이제는 내가 웃음꽃 피우실 수 있게 보답할 차례다. 우선 결혼기념일 선물로 녹슨 예물 시계부터 반짝이게 고쳐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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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박수민
Camera
올림푸스 펜 EE3

 

할아버지께서 사진관을 운영하셨다. 이 카메라는 과거에 사진관에서 대여용으로 사용한 물건이라는데, 그래서 집에 뒹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이 녀석의 피사체로 어머니를 자주 담으셨던 것 같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은 이혼했고, 어머니 사진은 대부분 사라졌다. 나도 이 녀석으로 내 여자친구들을 종종 찍었다. 굳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로 남기려던 기억들은 헤어지면서 역시 정리되었다. 이제 사진은 찍는 것보다 없애는 게 중요하다. 디지털은 어딘가에 남아 영원히 복제될 우려가 있지만, 아날로그는 찢고 태우는 순간 분명히 없어진다. 일상을 SNS에 전시하는 요즘, 중요한 건 정말로 무엇을 남길 것인가다. 한때 사랑했던 감정은 당신 영혼에 남을 테니, 부디 헤어진 이의 사진과 영상은 꼼꼼히 없애시라. 그것이 사랑한 사람에 대한 헤어짐의 예의다. 지금은 소멸의 의미를 되찾아야 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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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황인찬
Book
아우구스티누스 <참회록>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의 책장을 자주 기웃거렸다. 무엇인가 재미있는 책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어서였다. 하지만 초대 교회사를 전공한 아버지의 책 중에 어린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거의 없었다. 다만 그 가운데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이 눈에 띄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날에는 마니교를 믿었으나 이후 개종해 초기 교부철학을 정립한 뛰어난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참회록>은 그의 대표작이다. 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매우 이성적인 방식으로 드러내었는데, 어쩐지 그게 나는 좋았다. 나는 그 책을 내 책장으로 몰래 옮겨왔다. 직접 받은 것은 아니지만 부모의 책이란 그렇게 자식에게 넘어오는 법이다. 나는 결국 신앙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이 책이 나에게는 이상한 위안처럼 여겨지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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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모과
Vinyl
마크 이건 <A Touch of Light>

 

아버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받은 음반. 기타 연주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연습하던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유럽 출장을 다녀오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하신 음반이다. 막 음반을 모으기 시작할 무렵에 받았기에 신이 나서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는데 그 당시에 내가 좋아하던 음악과는 거리가 있어 곧바로 수납장에 꽂아놓은 기억이 난다. 그 후로 10여 년이 지난 지난해 수납장을 뒤적거리다가 이 음반을 다시 듣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과는 다르게 너무 좋아서 쉬고 싶은 날이면 종종 꺼내어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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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타임즈> 기자 김성환
Mobile Phone
삼성전자 애니콜 햅틱

 

2008년 12월 아버지는 휴대폰을 바꿨다. 당시 애니콜 햅틱은 무척 신선했다. 터치로 작동하는 폰이라니. 아버지는 임직원가로 큰 마음 먹고 완납하며 구입했다. 아버지가 이 휴대폰을 구입한 이후 집 안에는 격변의 세월이 닥쳤다. 그 기억이 각인돼 아버지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이 휴대폰을 보관하신다. 몇 가지 큰 사건이 기억난다. 아버지는 내 대학 합격 소식을 이 휴대폰으로 들었다. 대입에 계속 떨어지고 예비로 밀려나고, 집 안 분위기가 우울했는데 최종 합격 소식을 듣자 아버지는 무척 기뻐하셨다. 그리고 이 휴대폰으로 바꾼 뒤 아버지는 회사에서 부장으로 진급하셨다. 회사원에게 승진이야말로 가장 큰 이벤트다. 업무가 늘어난 만큼 야근도 늘었다. 아버지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인도에서 6개월간 장기 출장을 할 때에도 이 휴대폰과 함께였다. 아버지의 기쁨과 피로, 외로움이 담긴 애증의 휴대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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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GUEST EDITOR 정소진
PHOTOGRAPHY 최민영

202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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