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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차를 끌던 날

On May 05, 2020

처음 아버지 차를 운전하던 날을 기억한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는 지겹도록 익숙한 차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 처음 아버지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봤던 것도 같다. 자동차 기자들이 아버지 차로 운전을 시작했던 날을 복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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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도스 1997

크레도스 1997

왜 달리지 못하는 거야

우리 아버지는 운전을 잘한다. 이게 얼마나 모호한 말인지 알지만, 정말 잘한다. 25년 전 빙판과도 같은 오르막길에서 앞차 몇 대가 미끄러져도 , 가족을 태운 아버지 차는 쓸려 내려오는 차를 요리조리 피하며 막힘없이 올랐다. 급할 때는 적당히 매너 있게 차들 사이를 안전하게 달리던 아버지의 핸들링은 지금 떠올려도 놀라울 정도다. 현재는 몇 차례 사업을 말아먹고 ‘뭐 먹고 살까’ 고민하던 중, 자신의 재능 중 돈으로 교환 가능한 직업으로 택시 기사를 선택했을 만큼 타고난 드라이버다.

아버지의 뛰어난 운전 실력을 보고 자란 탓에 운전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쭉 뻗은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것보다, 듬성듬성 차들이 있는 도심을 내달리는 꿈. “아부지, 저 운전 연습 좀 하게 차 좀 빌려주시렵니까?” 열아홉 살, 운전면허증을 받자마자 아버지께 말했다. 그때 아버지의 차는 1997년식 크레도스였다. 1990년대엔 ‘중형 세단 3대장’으로 꼽힐 만큼 친숙한 차였지만, 내가 면허를 딴 해가 2010년이었고, 총 주행 거리가 240,000km였으니까…, ‘똥차’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출시 당시 TV 광고 카피가 ‘핸들링이 절묘하다’였는데, 돌아보면 아버지의 운전 스타일과 꽤 잘 어울렸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시동을 켜고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데만 30분 걸렸다. 나의 아버지는 3분이면 나간다. 나와 크레도스의 안위보다는 남의 차에 부딪히기라도 할까, 노심초사하느라 그랬다. 머릿속은 아우토반도 거뜬히 달리는데, 현실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는 것도 겁났다. 일단 세웠다. 비상등을 켜고 한참 고민했다. 여기까지군. 당장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고, 동승석에 옮겨 앉아 아버지의 탄력적인 코너링과 부드러운 브레이크 힘 조절, 그리고 그 어렵다는 ‘한 방 주차’까지 완료되는 과정을 겪었다. 10년 전 이 차의 광고처럼 핸들링이 절묘했다. 그때 스티어링 휠을 잡은 아버지는 말이 없었고, 아버지가 더 듬직하고 커 보였다. 1997년 크레도스 광고에서는 ‘물 위도 달리는 차’라고 선언했는데, 그러려면 운전자도 꽤 중요한 게 아닐까. 그렇게 나의 첫 드라이브는 아주 허망하게 끝났다.
WORDS 양보연(<데이즈드앤커퓨즈드>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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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1982

포니, 1982

부드럽게 더 부드럽게

아득한 장면이다. 우리 집 첫 차, 포니에 앉아 ‘부릉부릉’했던 기억. 운전대를 돌릴 힘도 없고 페달에 발도 안 닿았지만, 마냥 좋았다. 중학생이 되면서 페달에 슬쩍 발이 닿기 시작했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진짜 운전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것을 유심히 봤다가, 밤에 차에 앉아 그대로 흉내냈다. 아버지가 앉았던 운전석에서 시트를 세 칸 앞으로 당기면 몸에 딱 맞는 내 차가 된 것 같았다. 시동을 걸진 않았다. 이때도 ‘부릉부릉’하며 입으로만 연거푸 질주했다. 운전면허증을 따면서 아버지의 운전석에 자주 앉았다. 아버지가 앉았던 시트에 그대로 앉으면 내 몸에도 딱 맞았다.

그렇게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고, 클러치에서 발을 떼는데, 아버지처럼 부드럽게 ‘부으응~’이 안 됐다. 시트가 문제였다. 뒤로 한 칸 미뤘더니 아버지처럼 부드럽게 나갔다. 동반석에 앉은 아버지가 무척 편안해 보였다. 뒷좌석에 앉은 어머니도 창밖을 바라봤다. 아들을 너무 믿는 아버지, 아들에게 얼른 기대고픈 어머니를 모시고 그대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낯설었지만 익숙하게 운전대를 달랬다. 아버지는 계속 ‘부드럽게, 부드럽게~’ 하셨다.

동반석에 앉아 ‘부드럽게, 부드럽게’ 하셨던 아버지는 현재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이미 10년 전에 반짝거리는 SM5 한 대를 남겨놓고 저쪽 세상으로 떠나셨다. 이리저리 여행 다니시려고 장만했던 갈대 빛깔 SM5는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하고 주인을 잃었다. 아버지가 떠난 그 차의 문을 열었다. 너무 좁은 시트에 몸을 구겨 넣으며 숨이 거칠어지더니, 6,000km도 달리지 못한 적산 거리계를 보자 눈물이 터졌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WORDS 장진택(<미디어오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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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렌저, 1992

그렌저, 1992

첫 경험이 남긴 것

이렇게 고백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의 ‘아빠 차 첫 경험’이 늦은 밤 차 키를 훔쳐 시도한 도둑 운전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솔직히 나의 아버지는 자상한 가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칭찬보단 질책을 많이 했고, 가족보다는 자신의 삶이 우선이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자정이 다 되어서야 들어오시는, 말이라도 붙이려고 하면 피곤하다는 듯 한숨부터 쉬는 아버지였다. 당연히 아들에게 운전 연수를 시켜줄 만큼 자상하지도 않았다. 용돈만 부족하지 않게 쥐어주면 되는 줄 아는 분이었으니까. 난 그런 아버지가 미웠다. 어쩌면 그래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도 채 안 된 꼬맹이가 그 밤에 어디 갈 곳이 있었겠나. 그냥 아버지가 가진 무언가를 하나 뺏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기억한다. 그 무뚝뚝하던 분이 막 출시된 현대 뉴 그랜저를 타고 와서 “아빠 차 바꿨다”고 말하며 웃던 때를. 그렇게 밝은 얼굴은 처음이었다. 차 키를 훔쳐 차 앞에 섰던 순간도 생생하다. 막상 들고 나오긴 했는데, 도무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시동을 걸고 차를 앞으로 뺐다가 다시 후진해봤다. 내려서 보니 손대기 전이랑 똑같았다. 이번엔 ‘ㄱ’자로 뺐다가 그대로 후진했다. 이번에도 감쪽같다. 이렇게만 다시 세우면 걸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감을 얻은 난 그렇게 차를 끌고 동네 친구 집으로 향했다.

“야 너 미쳤어?”라고 말하는 친구를 태우고 태연한 척 도로로 나섰다. 친구들과 자주 모이던 번화가로 가서 돌고 또 돌았다. 매일 걸어다니던 길을 고급 세단(당시에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차 같았다)을 몰고 지나니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어느새 운전대도 건방지게 한 손으로 잡게 됐다. 사고는 딱 그 순간 터졌다. 골목길에서 대형차를 피하다 전봇대에 범퍼를 긁은 거다. 초보 운전에게 뉴 그랜저가 쉬웠을 리 없다. 지금 타도 편치 않은 차니까. 다급해진 난 친구를 집에 내려주고 차를 원래 자리에 세웠다. 그리고 며칠간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불호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땐 그 정도 흠집은 눈치 채지 못할 수준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몇 년 뒤 내 차를 갖게 된 후에 그게 아님을 알게 됐다. 당시 난 아버지가 차 키 두는 자리를 바꾼 게 무슨 의미인지도 알지 못할 만큼 철이 없었다.

어느덧 나도 그때의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됐다. 커보니 아버지의 사랑을 알겠다는 흔한 ‘감성팔이’를 하려는 건 아니다. 아직 난 애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 당신도 당신 인생이 중요한 한 명의 사람이었을 테니까, 자식이 있다고 모두 자기 삶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이제 와서 보니 그가 그렇게 몰인정한 아버지는 아니었던 거 같다. 자식이 차를 훔쳐 타고 나간 사실을 모른 척할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나는 아버지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이젠 그가 밉지 않다. 그가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보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WORDS 류민(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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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1991

프라이드, 1991

아버지의 환한 표정

아직도 기억한다. 아버지가 기아 프라이드를 몰고 오셨다. 당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표정을 드러낸 채 기아 프라이드는 공식적인 우리 집 첫 자동차가 되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1990년대 초반 연식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새것 같은 중고라며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다. 윤기 나는 늑대 털 같은 먹색 프라이드가 반짝였다. 당시는 우리 집에 차가 생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상이 달라지던 시절이었다. 명절 때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빌려온 트럭 앞좌석에 네 식구가 끼어 앉아 시골에 갈 필요가 없었다. 각자 한 자리씩 번듯한 좌석을 차지할 수 있었으니까. 볼품없는 직물 시트 좌석이었지만 최고급 가죽 소파 부럽지 않았다. 아버지는 뿌듯해했고, 난 우리 집에도 차가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자동차에 관심 없던 1990년대 중반, 학창 시절 얘기다.

밀레니엄이 도래하고 군대에서 전역 후 운전면허증을 땄다. 그 이후로 우리 집 프라이드는 내가 주로 이용했다. 직접 운전하자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면허가 생기니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진 까닭이었다. 아버지의 프라이드는, 한마디로 오래된 깡통 자동차였다. 파워 스티어링 기능이 없어 주차할 때마다 팔 힘을 키웠고, 파워윈도 기능이 없어 창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인내심을 길렀다. 변속기는 수동이기에 언덕에서 출발할 때마다 식은땀도 꽤 흘렸다. 그럼에도 사실 뿌듯했다. 내가 주로 이용한 만큼 내 차나 다름없었으니까. 프라이드를 타고 대학교를 비롯해 전국을 누볐다. 기름 값을 아끼느라 이벤트처럼 가끔 몰고 나갔지만, 그럴 때마다 흐뭇했다. 프라이드를 타고 달리면서 아버지의 환한 표정이 자주 떠올랐다. 아버지가 처음 차를 사셨을 때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중고인데도, 옵션이 형편없었는데도 왜 즐거우셨는지. 나 역시 프라이드를 운전하면서, 단지 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했으니까. 아버지의 환한 표정은 나에게로 이어졌다. 아버지의 프라이드는, 결국 내가 끝까지 타고 폐차했다. 아버지의 첫 차이자 나의 첫 차는 그렇게 환한 표정으로 남았다. 지금도 가끔 중고 매물을 검색해보는 이유는 그때 그 표정 때문일까.
CONTRIBUTING EDITOR 김종훈

처음 아버지 차를 운전하던 날을 기억한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는 지겹도록 익숙한 차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 처음 아버지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봤던 것도 같다. 자동차 기자들이 아버지 차로 운전을 시작했던 날을 복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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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