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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작가 일기 드라마 편

코로나 시대의 사랑

UpdatedOn May 07, 2020

3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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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형

민지형

드라마 작가
민지형 작가는 드라마 극본, 소설, 영화 시나리오를 종횡무진 질주하는 신인이다. 케이퍼물부터 로맨틱 코미디, 사극까지 못 다루는 분야가 없지만 특히 연애 이야기에 두각을 드러내는 그에게 ‘코로나 시대의 사랑’ 을 받아봤다. 초단편 분량임에도 쌓이는 서스펜스와 마지막의 블랙 유머에 입꼬리가 쓱 올라간다. 역시 어느 시대든 사랑은 녹록하지 않은 법이다.

1. 원룸 복도 / 밤
마스크를 끼고 양복을 입은 진현(30세, 남)이 20인치 캐리어를 끌고 좁은 복도를 걸어 문 앞에 선다. 707호.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2. 아침 인서트
자막 : 자가격리 첫날

3. 원룸 방 안 / 낮
다음 날 아침. 6평 남짓 되는 원룸, 벽에 붙은 침대에 대자로 뻗어서 자고 있는 진현. ‘8시 30분.’ 알람이 울리자… 손을 쭉 뻗어서 끄고 천천히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Cut to)
컴퓨터 앞에 앉은 진현, 한쪽에는 엑셀 프로그램을 켜놓고, 그 뒤에는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를 켜놓고, 그 옆에 메신저를 띄워두었다.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며 메신저로 친구 승준과 수다 떤다.
진현 와 자택근무 개꿀.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잠. 그리고 지금 드라마 띄워놓고 일함.
ㅋㅋㅋ 너 이거 봄?
승준 그 짓 며칠만 더 해봐라,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아, 너 그 영화는 봤어?
진현 어 그 영화 개봉했음?
승준 이번에 영화관 개봉 못 해서 바로 스트리밍으로 왔잖아. 여기서 확인해봐. (링크)
진현 아 대박….

씩 웃으며 딸깍, 마우스 클릭하는 진현.

4. 원룸 방 안 / 낮
자막 : 자가격리 삼 일째

좁은 부엌에 서서 밀키트로 요리하는 진현.

(Cut to)
완성된 부대찌개를 식탁에 차려놓고 한 입 떠먹는데… 맛이 없는 듯 표정이 일그러진다. 입맛을 쩝쩝 다시다가 대충 입에 쓸어 넣는다.

5. 원룸 방 안 / 낮
자막 : 자가격리 일주일째

전기포트에 물 끓는 소리가 들리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진현.
컵에 걸어둔 드립백 커피에 천천히 붓는데… 커피가 내려가는 일 분 일 초가 지루하다.

(Cut to)
진현이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시다가 입맛을 다시며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해본다. 오후 2시.

진현 (혀를 쯧 차며) 시간 진짜 드럽게 안 가네….

지루한 표정으로 커튼을 살짝 걷어 밖을 내다보는 진현.
손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이, 딱 붙어 있는 바로 옆 건물의 창문이 보이고, 안쪽에 처진 얇은 핑크색 커튼 안쪽으로 머리 긴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진현, 잠시 건너편을 쳐다보는데.
귀여운 샴고양이 한 마리가 창틀 위로 깡총 뛰어오른다. 고양이와 아이 콘택트하다가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메신저를 켜고 홀린 듯 타이핑하는 진현.

진현 야, 대박 사건. 우리 앞집에 여자 사나봐. 고양이가 엄청 귀여워.
승준 여자가 귀엽다고?
진현 고양이 인마. 여자 얼굴은 못 봤음.
승준 오! 야 나 인터넷에서 이거 봤어. 요새 전 세계 사람들 다 집에 있잖아. 너도 한번 해봐.

이윽고 승준이 몇 장의 사진을 전송해준다. 클릭해서 확인하는 진현.
첫 번째 사진 : 뉴욕.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 건물의 창틀에 고양이가 앉아 있고.
두 번째 사진 : 다음 날. 맞은편 창문에 영어로 ‘고양이 이름이 뭐예요?’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다.
세 번째 사진 : 그다음 날, 고양이가 있던 집의 창문에 영어로 ‘월터예요’라고 쓴 종이가 또 붙는다.
네 번째 사진 : 맞은편 창문에 영어로 ‘고양이가 참 잘생겼네요’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다.

승준 아날로그 썸 두근거리지 않음?
진현 뭐 어쩌라고 여기가 뉴욕이냐?
승준 뉴욕에서만 하란 법 있냐? 미친 척하고 해봐. 혹시 알아? 그 여자도 우리처럼 자가격리 중이라 엄청 심심할 수도 있잖아.

진현 에이 미친 놈….

혼잣말을 내뱉었다가 잠시 생각해보다가… 혼자 피식 웃는 진현.

6. 원룸 방 안 / 밤
컴퓨터 앞에서 헤드셋을 끼고 게임을 하는 진현. 키보드와 마우스를 번갈아 잡으며 집중하는 듯하더니, 한 판이 끝나자 별 재미없다는 듯 꺼버린다.

(Cut to)
침대에 누운 진현. 잠이 안 오는 듯 몸을 요리조리 돌리다가 휴대폰을 들고 인스타그램 앱을 한 번 열어보는데, 스크롤을 내리자마자 메시지가 뜬다.

새 콘텐츠를 모두 확인했습니다. 최근 사흘 동안 새롭게 올라온 게시물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진현 (몸을 뒤틀며) 아우우우우.

휴대폰을 이불 위로 홱 내던지는 진현.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책장에서 A4 종이를 꺼내 사인펜으로 뭔가 쓰기 시작한다.

7. 원룸 건물 인서트 / 낮
다음 날 아침.
자막 : 자가격리 팔 일째

해가 뜨고, 진현의 방 창문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고양이 이름이 뭐예요?’

8. 원룸 방 안 / 낮
어제보다 훨씬 생기 있는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는 진현.
활기차게 컴퓨터를 두드리며 일에 집중하는 척 자세를 몇 번 바꾸더니.
결국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살짝 걷어서 맞은편 집을 쳐다본다. 그러나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창문…. 고양이만 창가에 앉아 있다.
실망하는 표정의 진현.
컴퓨터 앞에 앉아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려 친구 승준에게 메시지를 쓰다가….
진현 야 아날로그 썸은 무슨, 아무 반응도 없다 쪽팔려.
문득 다 지우고 메신저를 끈다. 창가로 다가가 자신이 붙인 종이를 떼는 진현.

9. 원룸 방 안 / 밤
침대에 옆으로 누운 진현. 유튜브에서 ‘10분 안에 꿀잠 자는 수면 유도 음악’을 귀에 꽂고 있다가 도저히 잠이 안 오는 듯 홱, 일어난다.
다시 A4 용지를 꺼내서 뭔가 쓰는 진현.

10. 원룸 건물 인서트 / 낮
다음 날 아침.
자막 : 자가격리 구 일째

해가 뜨고, 진현의 방 창문에 새로운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고양이랑 자꾸 눈이 마주치는데 이름이 궁금해서요.’

그러나 여전히 맞은편 집 창문에는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고.

11. 원룸 건물 인서트 / 낮
다음 날 아침.
자막 : 자가격리 십 일째

진현의 방 창문에 새롭게 붙어 있는 종이. ‘저 정말 이상한 사람 아닌데….’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 컷 컷…. 매일 진현의 창문에 붙은 메시지가 바뀌는데.
그러나 여전히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고요한 맞은편 집의 창문.

자막 : 자가격리 십사 일째

‘저… 밖을 아예 안 보시는 건지, 보셨으면 봤다고라도 알려주시면 안 돼요? 진짜 너무 궁금해서 그래요.’

12. 원룸 방 안 / 낮
오후 5시. 그러나 여전히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맞은편 창문.
괴로운 듯 머리를 쥐어뜯는 진현.

13. 원룸 방 안 / 낮
다음 날 아침.
자막 : 자가격리 끝, 출근 첫날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는 진현. 샤워를 하고 나와서 오랜만에 정장을 갖춰 입고 거울 앞에서 한참 매무새를 가다듬다가 문득 생각난 듯 창밖을 내다보는데….
진현의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맞은편 창문에 드디어 붙은 메시지.
‘형, 이상한 사람 아닌 거 아는데 저 남자예요.’

14. 지하철, 낮
출근길. 마스크를 껴서 눈밖에 보이지 않지만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휴대폰 자판을 다다다다 두들기는 진현.

진현 야, 대박 우리 집 맞은편에 살던 사람 남자였어 시바 쪽팔려. 다신 그쪽 쳐다도 안 본다 진짜….

승준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 미친 놈.

15. 맞은편 원룸 건물 인서트 / 낮
그런데 그 시각, 진현의 집 맞은편 창가에 또 깡총 뛰어오른 샴고양이.
고양이를 쫓아온 주인의 얼굴이 커튼 사이로 살짝 드러나는데, 머리를 묶은 여자다.
조심스럽게, 두려운 듯 진현의 창문을 한 번 건네보더니, 아무런 메시지도 붙어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안심한 듯 커튼을 치고 창문을 닫는다.

(끝)

Quarantine Diary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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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GUEST EDITOR 정소진
EDITOR 조진혁, 이예지, 김성지

202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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