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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작가 일기 소설 편

응답하세요

UpdatedOn May 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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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

정용준

소설가
근원적인 불편함. 정용준의 소설을 읽으면 그 불편함을 마주하게 된다. 어디서? 내 심연에서. 세상과 단절된 나를 발견한다. 정용준의 첫 소설집 〈가나〉가 그랬다. 그는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는 능력으로 독자들을 저마다의 심연으로 이끌었다. ‘응답하세요’ 에서도 그 불편함이 드러난다. 첫 문장부터 ‘답답한 자’다. 하지만 전염병 시대임에도 세상은 흥미롭고, 희망과 온기가 남아 있다. 정용준의 글처럼.

답답한 자다. 그래서 얼마에 팔 거냐는 질문에 엉뚱한 소리만 해대고 있다. ‘기타 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보통 나무가 아니에요.’ 아, 뭔 소리야. 설명 말고 가격을 말해달라고. 이 자는 당근마켓 거래가 처음인 게 분명하다. 판매 내역이나 후기도 없고 매너 점수도 없다. 판매 방식이나 룰 같은 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넵. 알겠습니다. 좋은 거래하세요. 하고 무시하려고 했는데 기타 상태가 괜찮아 보인다.

전체적으로 마감이 훌륭하고 헤드 모양은 단순하면서도 품격이 느껴졌다. 헤드에 적힌 LDS라는 브랜드는 어떤 검색에도 걸리지 않았다. 중소기업에서 만들었거나 이름 없는 수제 기타 같은데… 그래서 더 궁금했다. 일반적으로 브랜드 없고 픽업 없는 기타는 3만~4만원 선에 거래된다. 기타를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이 집 정리를 하다 창고에서 누가 샀는지도 모르는 기타를 발견해 마켓에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기타는 딱 3만원짜리 소리를 내지만 가끔은 숨겨진 명기를 득템할 수도 있어서 집에만 처박혀 있는 요즘 몇 주째 싼 기타를 검색하는 중이었다. 판매자는 기타에 얽힌 추억을 말하는 중이다. 그런 사연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그렇군요, 그렇군요, 응해줬던 건 이 지루한 대화 끝에 ‘3만원입니다’라는 대답을 듣기 위함이다.

기타가… 혼자 조용히… 연주하기는 좋죠… 이 녀석 이름은… 코스모스입니다. 우주라는 뜻인데요… 새벽에 연주하고 있으면… 나만의 우주로 데려가주거든요… 그런 소중한 기타입니다.
네. 네. 그렇군요. 좋아 보이네요. 가격을 알려주세요.
그는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조바심이 났다. 다른 구매자와 대화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얼마를 받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에게 답장이 온 건 20분 뒤였다.
원하십니까?
원하냐고? 얼마인지 알아야 원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야. 아무래도 이자와는 빠르고 콤팩트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관심이 있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얼마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혹시… 괜찮으시면 기타 소리를 들어보시겠습니까?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했다. 그 정도로 궁금한 건 아니었다. 살 것도 아닌데 기타 소리만 들어보는 것은 이상하다. 전염병 때문에 다들 대면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거래가 성사됐을 때도 아파트 관리실에 맡기거나 문고리에 걸어놓는 게 매너인데 굳이 직접 만나야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만난다 해도 문제다. 기타가 별로면 별로라고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혹 소리가 괜찮고 기타가 마음에 쏙 들었다 한들 이자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제시할 수도 있다. 난 안 살 거고, 아니 못 살 거고, 괜히 헛걸음만 했다는 짜증으로 화가 나겠지. 아무튼 그자의 제안이 내키지 않았다.
나는 답했다.
좋습니다.

그의 집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집 주소를 알려줬지만 집에 들어가는 건 아니다 싶어 근처 공원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는 으음, 하고 말줄임표를 끝도 없이 찍어대다가 알겠다 했다. 자정을 30분 남겨둔 야심한 시간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듣보잡 기타 소리를 들어보겠다고 마스크를 쓰고 밤길을 걷는 마음은 이 소리 저 소리로 복잡했다. 후회의 목소리가 가장 컸고 어차피 돈 없어서 사지도 않을 기타를 무슨 대단한 전문가라도 되는 듯 기껏 기타 소리 하나 듣겠다고 밖에 나가냐는 비꼬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희미하게 귓가에 소곤거리는 소리가 있었다.
이상하게 그의 제안은 거절하기 힘든 묘한 힘이 있어. 일단 소리만 들어보고 가격 안 맞으면 인사하고 돌아서면 끝이야.
나는 콧날에 꼭 맞게 마스크를 조정한 뒤 공원 쪽으로 걸어갔다.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벤치에 왜소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까만 소프트 케이스를 병든 고양이마냥 안고 구부정하게 웅크리고 있는 남자에게서 애잔하고 쓸쓸한 기운이 느껴졌다. 바람이 불었고 커다란 벚나무에 매달린 벚꽃이 날렸다. 흩날리는 꽃이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처럼 느껴지는 걸까. 그는 철 지난 겨울 코트 옷깃을 여미고 몸을 움츠렸다. 나는 마스크를 쓴 채 그를 향해 고개를 숙여 알은체를 했고 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마스크를 벗고 대뜸 손을 내밀었다. 엉겁결에 남자의 손을 잡았다. 나무껍질처럼 딱딱했으나 신기하게도 온돌처럼 따뜻한 손이었다. 그는 케이스 지퍼를 조심스럽게 열어 기타를 꺼내 말없이 내게 건넸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나를 바라봤다.

기타 넥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얇은 편이었는데 손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였다. 헤드와 보디를 쓰다듬어봤다. 무광이었는데도 유광 처리한 것처럼 반들반들하고 단단했다. 나는 벤치에 앉아 기타를 품에 안고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치면 칠수록 당황스러웠다. 소리가 너무 좋았다. 30초 정도 기타를 만져보고 남자에게 기타를 건넸다.
남자는 기타를 받아 들지 않고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소리가 좋다고 했다. 정말 좋다고 했다. 남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마음에 드십니까?
소리가 좋기는 한데요. 얼마에 파실 생각인가요?
얼마… 받으면 될까요?
끝까지 의뭉스럽게 답을 안 하는 그가 답답했지만 나는 매너 있게 말했다.
글쎄요. 꽤 비싸게 주고 사야 할 것 같네요. 그런데 저한테는 과분한 느낌이 들어요. 돈이 없거든요 하고 솔직히 말하려다 말았다.
하지만 5만원 아니 10만원까지라면 사고 싶었다. 그만큼 좋았고 탐이 났다. 하지만 나는 지금 공식적으론 재택근무 중이고 실질적으론 회사에서 잘린 상황이라 소리 좋은 기타 따위에 돈을 쓸 형편이 못 된다. 전염병 때문에 매일매일 방에 갇혀 있어야 해서 이참에 옛날 추억 되살려 기타 한번 잡아보려 했는데… 순간 현타가 왔다. 이래서 내가 안 나오려고 한 거다. 결국 안 살 건데, 아니 못 살 건데, 야밤에 체조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뭔가. 나는 가까스로 매너 있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좋은 주인 만났으면 좋겠네요.
그가 답했다.
팔겠습니다.
하아… 그러니까. 얼.마.냐.고.요.
마침내 짜증을 내고 말았다. 그의 옆에 앉아 휴대폰으로 마켓의 화면을 보여주면서 하나하나 알려줬다. 일반적으로 판매자가 먼저 가격을 제시하는 거고 흥정을 하더라도 기준이 되는 가격을 알려줘야 하는 거다. 무료로 나눠주는 경우와 가격 제안을 하는 방법도 알려줬다. 설명한 김에 하고 싶은 말도 했다. 그렇게 설명이 길고 핵심을 벗어난 이야기를 하시면 사고 싶다가도 마음이 사라져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제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던 거군요. 선생님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어요.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한참 나를 보더니 휴대폰으로 뭔가를 했다. 그 순간 내 휴대폰에서 당근! 소리가 들리며 진동이 울렸다. 키워드로 ‘기타’를 걸어뒀는데 새 상품이 뜬 것이다. 확인해봤더니 판매자는 익숙했고 기타 역시 익숙했다. 게시물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원하시는 분께 무료 나눔합니다.’
빨리 원한다고 하세요.
나는 얼떨결에 채팅창에 원합니다 하고 썼다.
남자의 휴대폰에서 ‘당근’ 소리가 났다. 그는 재밌는지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 후로 당근! 당근! 당근! 연락이 계속 왔다. 무료로 준다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저요 저요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거래 완료 버튼을 누르고 기타를 내게 줬다.
이 기타는 중고가 아니에요. 헤드에 적힌 이니셜 LDS. 이동수. 제 이름입니다.
그는 어느 날 문득 어릴 때부터 꿈꿨던 수제 기타 장인이 되기로 결심했고 회사에 사표를 냈다고 했다. 그리고… 반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첫 기타를 만들었어요. 이게… 좋은지 안 좋은지 궁금하더군요. 첫 기타인 만큼 정당한 가격을… 받아 판매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직 제대로 된 공방이 없고 판매책도 없어서….
그런데 아무도 기타에 관한 설명은 들을 생각을 않고 얼마에 팔 거냐고 가격만 물어보고 대꾸를 안 해줬다고 했다. 나는 마음으로 찔렸으나 그랬군요, 말하면서 기타 장인의 말에 진지하게 대꾸를 해줬다. 그는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벤치에 남아 이제 내 것이 된 LDS 기타를 꺼내 찬찬히 살펴봤다. 다시 당근! 소리가 들렸다.
친절하고 매너가 좋아요. 응답이 빨라요.
나도 후기를 남겼다.
무료로 나눠주셨어요.
그리고 한마디 더 썼다.
기타 장인이 만들어서 그런지 정말 끝내줍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당근!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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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EDITOR 정소진
EDITOR 조진혁, 이예지, 김성지

202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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