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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작가 일기 에세이 편

고향에서 고향으로

UpdatedOn May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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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몬디

알베르토 몬디

방송인
코로나19 사태가 유럽으로 번지면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걱정됐다. 올해 초 알베르토는 오징어순대와 갈비찜으로 이탈리아에 한식 맛을 전파했다. TV에선 그의 가족과 친구들의 소탈한 모습이 그려졌다. 그들은 무사할까. 알베르토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달라진 일상에 적응해가는 축구광의 일상을 담담하게 전한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나는 축구 중독자였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휴대폰으로 축구 뉴스부터 확인했고, 일하면서도 시간이 나면 주요 경기 하이라이트, 기자회견, 선수 인터뷰, 경기 전략 분석 영상을 보며 축구 감독이 직업인 것처럼 굴었다. 머릿속이 온통 축구뿐이었다. 연초 계획으로 1년에 책을 몇 권 읽겠다고 다짐했지만 하루 종일 내가 접하는 텍스트의 99%는 축구 관련 데이터였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인해 이탈리아 세리에A와 전 세계 축구 리그가 중단되면서 신문을 봐도 축구 이야기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며칠 동안 습관적으로 축구 뉴스 앱을 계속 클릭하던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아마존으로 이탈리아어로 된 책을 구매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휴대폰이 아닌 종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일상생활의 혁명이 일어났다. 불경기로 인한 경제적인 손해, 재택근무, 무급휴가, 학교 및 어린이집 휴교, 아침부터 밤까지 끝없는 육아 등 질병과의 전쟁뿐만 아니라 전쟁 같은 현실 생활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코로나19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거나 고통을 겪는 사람들 앞에 우리 일상의 어려움과 걱정은 사소한 것일 테다. 아인슈타인의 “모든 어려움 가운데 기회가 있다”, 나폴리언 힐의 “기회는 종종 불행이나 일시적인 실패의 모습으로 찾아온다”라는 말처럼 이번 일을 계기로 의미 있는 변화도 있다.

예정된 촬영 스케줄이 취소되면서 유치원에 입학했어야 할 아들 레오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아들과 노는 걸 좋아하기에 유치원에 가지 않는 레오와 하루를 보내는 것이 힘들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행복했던 우리의 시간은 점점 힘겨운 싸움으로 변해갔다. 아이가 있는 부모들은 잘 알겠지만 아이와 공원이나 놀이터에 나가면 두세 시간이 마치 10분처럼 지나간다. 하지만 집에서 놀 때는 학창 시절 가장 싫어했고 졸렸던 수업 시간처럼 10분이 한 시간으로 느껴진다. 아이가 요새 꽂혀 있는 변신 자동차 로봇으로 하루 종일 똑같은 역할 놀이를 하다가 좀 더 창의적인 게임이나 놀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거실 중간 천장에 테니스공을 테이프로 고정하고 테니스나 야구 놀이를 했다. 택배 박스를 함께 색칠하고 자동차, 우주선이나 기차를 만들기도 했다. 색칠할 때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평소에 쓰지 않는 유성 매직펜, 마커 등을 주었더니 한 시간이나 넘게 집중을 했다. 또 많은 사람들처럼 아이와 함께 요리에도 도전했다. 이탈리아 뇨키 반죽을 하고, 빵도 만들었다. 더 건강하게 먹고, 요리하면서 레오와 놀 수 있는 일석이조의 귀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소소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을 2018년 JTBC의 <날보러와요> 방송에서 시작했던 유튜브 채널 〈레몬TV〉에 1년 만에 올려봤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꾸준히 주 2회 업데이트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이 위기가 나에게도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요즘 해외에서 코로나19에 대한 한국의 발 빠른 대처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의 상황이 심각한 가운데 많은 이탈리아 방송국과 라디오가 한국의 상황을 전해달라고 연락해온다. 그러다 한국 코로나 방역제도, 한국 의료제도, 한국 IT 기술, 한국 인터넷 환경 등 이탈리아 시청자에게 한국의 여러 모습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었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행운이라 느꼈다. 특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더 나은 나라를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모든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3분의 1을 보낸 한국이 이탈리아만큼 고향으로 느껴진다.

매일 똑같은 일상생활이 깨져 편하게 안주할 수 있는 컴포트존에서 벗어나면 처음에 힘들지만 결국엔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세상이 어둠 속에 있을 때 자기만의 조그만 빛을 모으면 세상을 다시 밝힐 수 있다. 코로나19로 희생된 분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우리 일상 속의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되새기며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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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EDITOR 정소진
EDITOR 조진혁, 이예지, 김성지

202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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