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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연기 사랑

On April 29, 2020

질문을 받으면, 김정현은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다. 말하고자 하는 뜻에 정확하게 다가가기 위한 정적. 꽃이 한 잎 한 잎 떨어지듯 섬세하게 고른 말. 그가 망설이지 않은 유일한 답은 “연기는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줘요”라는 말이었다. 연기를 향한 그의 사랑은 정확하고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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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베트멍 by 무이, 팬츠 준지 제품.

오늘 촬영은 어땠나?
요즘 밖에 못 나가니 꽃구경을 못했는데 덕분에 실내에서 벚꽃놀이 했다. 너무 좋았다.

데뷔작인 영화 <초인>에서 10대 체조 선수를 연기할 때 성근 풋사과 같던 얼굴이 생생한데, <사랑의 불시착>에선 아주 능구렁이가 다 됐더라. 인기 많아진 것 실감하나?
하하. 요즘 도통 밖에 못 나가니 잘 모르겠다. 사실 난 별로 안 바뀌었다. 주변 환경이나 상황이 바뀐 거지. 그때는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회사와 일하게 됐고, 팬들도 생기고 관심과 사랑도 받는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다. 마음은 여전히 <초인> 때와 같다.

연기할 땐 재기 차듯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던데, 오늘 만나보니 조용하고 신중한 것 같다.
낯을 가리고 말이 없는 편이다. 대화할 때도 수다스럽지 않다. 오히려 침묵이 편한 사이가 가까운 관계이며, 그게 배려와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고민도 생각도 많아 줄이려고 노력하는데 그것마저 내향적인 성격인 거 같다.

답을 하기 전에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정리를 좀 한다. 나오는 대로 말해도 될 정도로 말솜씨가 좋지 않아서.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려 노력한다. 너무 많은 부연 설명을 하면 오히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서 벗어나기도 하더라. 내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고민한다.

장고하나?
단박에 정답을 내거나 결정을 내리진 못한다. 예전엔 고민을 너무 많이 했다. 그런데 백이면 백,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진 않더라. 내가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구나 싶었다. 일단 하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고민하자. 요즘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건 밖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 
내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거다.”

 

스스로에게 질문할 때가 있나?
종종.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왜 연기를 하는 건지. 연기는 무엇이고, 사는 건 무엇이고, 관계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쓸데없는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삶에 영향을 주는 질문은 오래 곱씹는다.

김정현이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이던가?
음…, 내가 원하는 건 밖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더라. 내가 원하는 건 내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거다. 상대방에게서 나를 채우려 하면 채워지지 않는 것처럼. 영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는 사랑을 절박하게 원하지만, 그토록 희생해서 얻은 사랑이 과연 본인 안에서 싹트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랑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 아닐까?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모를 때가 있다. 사랑, 돈, 명예 쟁취하려고 들면, 잡았을 때 막상 내가 원하던 게 아닐 때가 있는 거다. 짐 캐리는 말했다. “여러분이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가지고 싶은 걸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때가 되면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될 테니까.” 태어나는 일도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스스로 원해서 살고 있는 삶인데도 내 삶이 아닌 것 같은 순간이 있잖아. 이렇게 인터뷰하고 화보를 찍는 생활을 부러워하고 갈망할 때가 있었지만, 막상 다른 갈증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무언가를 바라고 바라지만, 그게 날 충족시켜주지는 못하더라. 내면을 채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누군가도 사랑하고 인정할 수 있다.

어떤 게 김정현의 내면을 채워주나?
내가 배우라는 일을 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내 삶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와 아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는 내 연기를 보고 그 인물을 해석하며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다. 내 연기가 그에게 닿아서 내게로 다시 피드백이 온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공유하는 삶이 나라는 사람을 가치 있게 해준다. 내 삶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 관계 속에서 나는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예전에 ‘연기는 일종의 대화법’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누구와의 대화일까? 상대 배역? 관객? 자기 자신?
전부 다. 작품 속에서 연기라는 대화법으로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다. 그래서 난 연기를 한다.

연기는 김정현을 어떤 사람으로 만드나?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오늘 이렇게 즉답이 돌아온 질문은 처음이다.
하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게끔 만들어주는 거 같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다 보면,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답이 되기도 하고, 오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답이 되기도 하더라.

부산에서 자랐다고?
용호동. 포항에서도 지냈다. 어디서든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았다. 바다를 보면서 나는 왜 살지, 죽음은 뭘까,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겨울 바다의 매력이 있다. 스산함, 웅장함, 후련함 같은. 어릴 땐 그게 특별한 경험이란 걸 모르고 자랐는데, 서울 와보고 나서야 알았다.

고등학생 때 ‘나르시스’라는 연극부를 만들었다던데?
신설 고등학교를 다녔다. 연기를 꿈꾸는 선배들과 모여 연극부를 만들었다. 이름은 여럿이서 나르시시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모두의 찬성으로 정했다. 내 의견은 아니다. 하하. 직접 극본을 써서 연극을 올리기도 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7시간 정도 앉아서, 처음으로 오래도록 글을 썼다. 지금 보면 되게 창피할 것 같다.

그렇게 유년기를 보내고 서울에 오니 어떻던가?
온통 빌딩숲이었지. 되게 신기하고 새로웠다. 지금이야 그냥 내가 사는 동네지만.

부산 출신 중 이렇게 억양을 완벽히 고친 사람은 처음이다.
사투리가 연기할 때 무기가 되면 좋겠는데, 일상이 되어버리면 무기가 되지 않을 거 같았다. 그래서 엄청 노력했다. 연기를 더 잘하고 싶었던 거지.

스스로 욕망 덩어리라고 칭하더라. 어떤 욕망이 김정현을 움직이고 있길래?
열등감 같은 것에서 파생되는 게 아닐까.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현명한 행동은 어떤 것일까 매사에 고민하게 하는 것. 나를 굴러가게 하는 건 결국 그런 갈증인 것 같다. 이상주의자에 가깝다.

결핍이 있나?
있지. 친구와 함께 있을 때도, 상황이 좋을 때도 외로움은 항상 느꼈다. 예전엔 이 사실을 부정하려고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하기도 했는데, 최근엔 외로움을 인정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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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R13 by 무이, 가죽 톱·가죽 팬츠 모두 던힐, 슈즈 토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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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준지, 브이넥 이너 톱 릭 오웬스, 귀걸이 지방시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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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재킷 랄프 시몬스 by 무이, 팬츠 카미엘 포트젠스 B.V., 슈즈 보테가 베네타 제품.

베스트 재킷 랄프 시몬스 by 무이, 팬츠 카미엘 포트젠스 B.V., 슈즈 보테가 베네타 제품.

이상주의자가 스스로에게 가혹하잖아.
맞다. 지금은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하하.

문학소년이었을 것 같다. 좋아하는 책이 있나?
<테레즈 라캥>, 그리고 알베르 카뮈의 책. 20대 초·중반에 많이 봤다. 연기할 때 도움이 될 거란 생각으로 봤는데 생각하는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 것 같다. 제일 좋아하는 건 카뮈의 <이방인>이다.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느낀 적 있나?
때때로 그렇게 느낀다.

그런 건 타고난 성향인 걸까?
내가 살면서 만들어온 거겠지. 타고나고, 영원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너무 원해서 이렇게까지 해봤다, 하는 것 있나?
드라마 <질투의 화신>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감독님 앞에서 속옷만 입고 연기했다. 피지컬을 보여드리려고. 텀블링도 하고 그랬다. 하하.

연극에 대한 갈증도 있나?
물론. 연극은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큰 호흡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가고, 카메라가 없기 때문에 오로지 연기로만 보여줘야 한다. 연기의 뿌리는 연극에 있다. 기회가 되면 꼭 하고 싶다. <헤드윅> 같은 뮤지컬도 해보고 싶고.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도 <헤드윅>도 삶의 구렁에 빠졌지만 빛나는 사람들을 그린다.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나?
맞다. 비참해지는 순간엔 그런 작품에서 날 일으켜 세워주는 원동력을 얻는다.

또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어쩐지 초식 동물이 생각난다. 한 번 삼킨 걸 자꾸 되새김질하는.
하하하.

걷는 걸 좋아한다고?
한강 걷는 걸 좋아한다. 항상 강 근처에 살았거든. 걷다 보면 속에 가득 차 있던 것들이 비워진다. 기본에 충실해지는 것. 움직이는 것, 숨 쉬는 것, 한 발 한 발 내딛는 일에 집중하는 것. 그렇게 비워진 곳에 새로운 생각들을 담는다.

비워내는 게 좋나?
나는 사소한 것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편이다. 삶에서 어떤 지점에 큰 의미를 둔다거나, 대화 중 상대방의 말이나 제스처에서조차. 하지만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게 더 많더라.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비워낸 자리에 다른 의미가 생겨나기도 한다.

<아레나> 디지털팀과의 영상 촬영에서 “누군가를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자꾸 누군가를 판단하려 한다. 그러지 않는 이유가 있나?
영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서, 과연 누가 마츠코의 인생을 혐오스럽다고 할 수 있을까? 내 관점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쉽게 재단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되면, 내 인생도 더 자유로워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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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톱·가죽 팬츠 모두 던힐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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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브·셔츠·팬츠 모두 김서룡 옴므, 크라이셋 라운지 체어 에이쿤드 by 에이후스 제품.

질문을 받으면, 김정현은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다. 말하고자 하는 뜻에 정확하게 다가가기 위한 정적. 꽃이 한 잎 한 잎 떨어지듯 섬세하게 고른 말. 그가 망설이지 않은 유일한 답은 “연기는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줘요”라는 말이었다. 연기를 향한 그의 사랑은 정확하고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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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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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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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철(블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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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주(블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