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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게 아냐

On March 13, 2020

가수, 방송인, 인터뷰어, 팟캐스트 진행자, ‘1가정 1에릭남’까지 수행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에릭남. 그에게 만인의 호감을 사는 비결, 인터뷰 잘하는 법,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 다 때려치우고 싶었던 순간, 편견, 가장 못 견디게 싫어하는 것까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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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님 재킷·셔츠·데님 팬츠·액세서리는 모두 디올 맨, 안경줄은 뷰 제품.

에릭남처럼 반듯한 사람의 이면엔 뭐가 있을지 궁금했는데, 오늘 보니 장난기가 많다.
방송에서 잘 포장됐다. 하하하. 난 특이하고 새로운 걸 고집하는 사람이다. 그게 더 재미있으니까.

북미 투어를 시작했다. 일정이 살인적이다.
미친 것 같다. 그런 와중에 티켓이 솔드아웃돼서 더 큰 공연장으로 옮겨 티켓 판매를 하는 게 감사하지. 한국 솔로 아티스트가 이렇게 투어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까.

어떤 노래를 부를 때 반응이 제일 뜨겁나?
‘솔직히’라는 곡. 함성이 제일 커진다.

에릭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 같다. ‘착한 게 아니야, 날 위한 거야’라는 가사가 박힌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발표한 노래다. 난 한국 가요계가 내게 기대하는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가 실린 앨범은 하고 싶었던 음악, 솔직한 가사로 채웠다.

모두 에릭남을 착하다고만 하니 그걸 비틀고 싶었나?
맞다. 좋게 봐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노래가 제약을 받는 건 다른 문제다. 똑같은 걸 하면 편하겠지. 하지만 난 편하면 불편해진다. 한 이미지에 고착되고 싶지 않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라는 감정을 일으키는 것들을 하고 싶다.

지난해 말, 영어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스타 오디션-위대한 탄생> 때부터 ‘백인 팝 같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아예 자기 색깔로 보여준 게 멋지더라.
어우, 진짜 노력 많이 했다. 몇 년 동안 회사와 부딪치고 설득해낸 결과다. 회사에선 계속 발라드를 하길 원했다. 하지만 회사와의 계약은 언젠가 끝나고, 내 인생은 계속된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투어를 하고, 영어 싱글 앨범을 내고, 해외 뮤지션과 협업을 최대한 많이 했다. 작년에 결산해보니 이젠 해외 매출이 한국과 차이가 안 나더라. 그 사실로 설득해서 “그러면 합시다”라고 밀어붙였다.

드디어 자기 옷을 입은 거네.
맞다, 드디어. 하고 싶은 걸 하게 돼서 너무 좋은데, 불안하기도 했다. 케이팝 퍼포먼스형 아이돌이 아닌 솔로 아티스트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말이다. 솔로는 선례도 거의 없으니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난 케이팝 팬뿐 아니라 팝 시장에서 넘어오는 사람들도 원하니까. 어떻게 해외시장을 뚫을지가 요즘 고민이다.

꼭 묻고 싶은 게 있다. 에릭남은 만인의 호감을 산다.
하하하. 어느 정도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냥, 모두에게 똑같이 잘하려 한다. 그리고 절대 사람을 판단하려 들지 않는다. 누군가를 함부로 말하는 게 싫다.

매너 좋고 친절한 건 흉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고 편견 없이 존중하는 것은 흉내 낼 수 없는 마음이다. 최근엔 소수자성을 존중하는 흐름이지만, 에릭남은 오래전부터 그걸 해왔다. “간디, 홍석천을 비하하는 개그를 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낸다든지.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를 지닌 사람들과 자라며 자연스레 체득한 거다. 대학교 1학년 때 리더십하우스 프로그램에 뽑혀 다양한 인종,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 20명이 함께 산 적이 있다. 그때 많은 걸 배웠다. 단지 그런 이슈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많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문제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더욱 짚고 가야 하는 거겠지.

톰 홀랜드에게 “영어 잘하시네요, 어디서 배우셨나요?”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전 미국인이에요. 서프라이즈!”라며 넘기는 게 보통이 아니었다.
하하. 그도 진짜로 몰라서 악의 없이 물어본 거다. 그 친구는 어렸고, 데뷔작이었고, 모든 게 처음이었으니 밉게 볼 수 없다. 생중계 중이니 위트 있게 넘기는 게 맞았고.

그래도 최근엔 많이 조심하는 분위기다.
많이 나아졌지. 나도 ‘이런 말 해도 될까’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됐다. 그런데 최근엔 그런 생각이 들더라. 누구든 실수할 수 있다. 미국에선 ‘캔슬 컬처’라고 하는데, 실수한 누군가를 삭제한다는 뜻이다. 한 번 잘못하면 그냥 끝인 문화다. 그런데 난 그들에게 그게 왜 잘못됐는지 알려줄 기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걸 지적하는 것 이상으로, 그 이후의 설명과 에듀케이션, 대화가 너무나 중요하다고 느낀다.

10대 내내 백인이 대다수인 사립학교에 다녔다. 소수자가 되는 경험을 하며 체화한 걸까?
맞다. 중·고등학교 때는 백인만 있는 학교를 다녔고 정말 힘들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지점이 많았지.

 

“모두에게 똑같이 잘하려 한다.
그리고 절대 사람을 판단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학교 부대표까지 맡으며 ‘인싸’가 된 건가? 그 후에도 좋은 대학에 진학해 번듯한 회사에 취업하며 그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지 않나?
난 쿨키드는 아니었다. 공부도 오케스트라도 동아리도, 모든 걸 열심히 했다. 그리고 인기 없는 아이들하고도 잘 지내려 했다. 왜냐하면 나도 실은 아웃사이더니까. 하하. 선생님들과 친해진 덕도 봤고. 대학에 가니 신입생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학생회, 신문사도 하고, 1학년 중 유일하게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에도 뽑혔다. 야망이 넘쳤다. 부모님은 영어도 못하는데 낯선 땅에서 우리를 키웠고 뿌리내렸다. 그보다 더 큰 동기 부여가 있을까.

이민 2세대에 삼형제 중 장남이니 독립심도 컸겠지.
하하. 생존을 위해서였다. 다른 애들보다 부족한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에 필요한 준비물 목록을 받았는데 아무리 봐도 ‘Thong’이란 단어를 모르겠는 거다. 보통 ‘끈 팬티’를 뜻하는데 그런 게 있을 리 없고, 가져오라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 알고 보니 그게 ‘조리’를 뜻하는 거였다. 학부모들이 학교에 방문해 동생의 선생님과 면담하는 날엔 늘 통역을 했다. 어른들 사이 나 혼자 애였다. 형이니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도 강했다.

그곳에서 일군 모든 걸 포기하고 한국에 온 까닭은 뭔가?
인생을 살면서 기회가 몇 번 온다. 회사 다닐 수 있는 기회는 평생 있겠지만, 가수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일지도 몰랐다. 얼마 전, 내가 다니던 회사인 딜로이트의 이사님에게서 메일이 왔더라. “우릴 버리고 간 특이한 케이스는 너밖에 없어. 하지만 그건 너무나 잘한 선택이었어”라고.

한국에선 새로운 시작이었다. 보스턴에서 어린 에릭남이 ‘Thong’을 몰라 곤경에 빠진 것처럼, 모든 게 낯설었을 거다.
그랬다. 미국에서는 동양인이니까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한국에서는 교포니까 다르다고 여겼다. 그걸 악용하려는 사람도 많았다. 힘들어서 상담을 받고 싶었는데, 당시 소속사에선 그런 곳에 다닌다는 소문이 나면 끝이라고 했다. 한국에선 이제야 정신건강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미국에선 테라피스트와 상담하는 게 일상이다. 성공한 친구들도 “제가 이렇게 잘돼도 될까요”라고 심리 상담을 받는다. 여기선 그런 말조차 못하게 하니 이해가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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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트 셔츠는 프라다, 재킷은 벨루티, 쇼츠는 골든구스, 선글라스는 퍼블릭 비컨, 링은 존 하디 제품.

다 때려치우고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지 않았나?
많았지. 몇 년간 일하고 돈도 받지 못했다. 저기선 돈을 댄다고 하는데, 나는 인생을 대고 있다. 돌아가려 한 순간 어떻게 해서든 끝을 보고 가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여기서도 에릭남이 있을 자리를 찾았네.
열심히 했고, 하늘이 도왔다고밖에. 왜인 것 같나?

호감을 사는 능력 덕도 있지 않을까? 당신의 인터뷰 영상에 이런 댓글이 있더라. “에릭은 인터뷰이보다 인터뷰어에 대한 댓글이 더 많이 달리는 유일한 사람일 거야”라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여나?
언어나 배경은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우리 모두가 사람이다. 그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 “너는 연예인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연예인이라고 다를 게 있겠나. 그래서 “에릭이면 편하게 해줄 거야”라고 맡겨주시는 것 같다.

인터뷰를 잘한다는 건 어떤 걸까?
서로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인터뷰. 인터뷰도 운동 같아서 안 하면 녹슨다. 그래서 팟캐스트 <I Think You’re Dope>도 하는 거다. 다양한 사람과 부딪치는 건 내겐 늘 의미 있는 일이다. 인터뷰이가 되면 말을 더 많이, 솔직하게 한다. 얼마나 많이 준비해왔고, 궁금해하는지 아니까.

실제 대화에서는 말하는 편인가, 듣는 편인가?
많이 듣는다.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대학생 때부터 그랬다. 사실 너무 많아서 피곤할 정도로⋯. 하하. 하지만 정서적으로 힘든 친구들도 많아서, 나 아니면 누가 들어주나 싶어 한 명 한 명 경청한다.

그럼 에릭남은 누구에게 털어놓나? 모두가 찾는 사람이 정작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은 소수인 경우가 많잖아.
하하. 모두에게 솔직하지만 다 털어놓는 건 가족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이 연애에 별 욕심이 없는 경우가 많던데.
맞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하다. 연애하면 그 시간을 쪼개야 하니 안 좋게 끝나더라. 지금은 주변에 있는 사람을 지키는 게 먼저다.

어떤 사람에게 흥미를 느끼는가?
자기 일을 진짜 열심히 하는 사람. 대충 하고 대충 사는 건 쉽고 흔하다. 난 불편한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게 좋다.

그럼 정말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처음부터 좀 수상한데 싶다가 몇 번 만나면 역시나, 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을 이용하려는 사람, 사람을 위아래로 나눠서 대하는 사람을 못 견딘다. 최악이다. 특이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워낙 많이 봐서 크게 놀랄 일이 거의 없는데, 딱 하나 있다면, 사람을 너무 밉게 대하는 거다. 진짜 어후, 어떻게 그렇게 하지?

편견 없는 에릭남도 편견이 있나?
있겠지. 사람이니까 없을 순 없겠지. 아마 안타깝게도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어 있는 편견일 거다. 나조차 인식 못한. 어떤 것이든 인식하면, 고치려고 노력할 거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피곤하게 산다고 하진 않나?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난 그런 사람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으면 됐다. 내가 사는 내 인생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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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셔츠·링은 모두 지방시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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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무늬 재킷·티셔츠·팬츠 모두 골든구스, 빨간색 니트는 인스턴트펑크, 네크리스·브로치는 모두 크롬하츠,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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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셔츠·팬츠·벨트·네크리스·브레이슬릿·오른손 엄지의 링은 모두 디올 맨, 나머지 링은 존 하디,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가수, 방송인, 인터뷰어, 팟캐스트 진행자, ‘1가정 1에릭남’까지 수행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에릭남. 그에게 만인의 호감을 사는 비결, 인터뷰 잘하는 법,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 다 때려치우고 싶었던 순간, 편견, 가장 못 견디게 싫어하는 것까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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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EDITOR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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