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FEATURE MORE+

The Critique

RB 라이프치히가 선두에 오른 비결

UpdatedOn February 27, 2020

창단 1백 년이 흔한 유럽 축구계에서 2009년 창단한 RB 라이프치히는 신생팀이나 마찬가지다. 1부 리그인 분데스리가에 승격한 것도 2016-17시즌이 처음이다. 승격 첫해에 준우승을 그다음 해에는 6위, 3위로 준수한 성적을 보였다. 호날두보다 어린 32세의 감독 율리안 나겔스만 체제로 시작한 이번 시즌에서 RB 라이프치히는 분데스리가 1위 자리를 고수하며 강팀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정통 강팀도 버티기 힘든 리그에서 RB 라이프치히와 32세의 젊은 감독은 어떻게 강팀이 되었을까.

EDITOR 조진혁

매력적이고 이상한 클럽

프로축구에서 돈은 성공으로 직결된다. 부자는 강하고, 강하면 부자다. 첼시, 맨체스터 시티, 파리 생제르맹은 ‘쩐의 전쟁’을 벌여 단번에 챔피언에 올랐다. 분데스리가의 RB 라이프치히도 기본적으로 같은 부류다. 자금력 위에 올라타 단기간에 5부에서 1부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스타 영입도 없고, 감독은 32세밖에 되지 않았으며 23세 이상 선수를 영입하지 않는다. 이상한 ‘자본주의’ 나라에서 온 라이프치히는 지금 분데스리가 1위를 질주 중이다.

RB 라이프치히의 주인은 에너지 드링크 회사 ‘레드불’이다. 시행착오 3년 끝에 2009년 공동창업자 디트리히 마테시츠 회장은 구 동독 도시 라이프치히 인근에 있는 5부 클럽 SSV 마르크란슈태트를 찾았다.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엄밀히 말해 인수가 아니라 5부 리그 회원사 자격 양도였다. 레드불은 클럽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갈아엎었다. 먼저 클럽명을 ‘Rasen Ballsport Leipzig’로 바꿨다. ‘RB 라이프치히’란 표기는 필연적으로 모기업 브랜드 ‘레드불(Red Bull)’을 연상시킨다. 거대 기업의 전폭적 지원 아래서 라이프치히는 7년 만에 분데스리가 승격에 성공했다.

하위 리그 기준으로 라이프치히는 압도적 부자였다. 하지만 쾌속 승격이 가능했던 요인에는 랄프 랑니크의 능력도 컸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체육학을 전공한 랑니크는 축구 지도자가 되어 3부 TSG 1899 호펜하임을 두 시즌 반 만에 분데스리가에 올려놓았다. 2012년 레드불의 마테시츠 회장은 당시 샬케 04 감독직에서 물러나 안식년을 보내던 랑니크를 ‘라이프치히 및 잘츠부르크 통합 단장’으로 영입했다.

랑니크 단장은 유럽 축구판 ‘머니볼’을 실천했다. 자기 발전 욕망이 극대화된 20대 초반 선수들을 집중 영입했다. 선진적 스포츠과학 기술을 활용해 선수단의 경기력을 극대화했다. 1980년대부터 함께 전술을 연구한 분석가 헬무트 그로스도 영입했다. 이탈리아 압박 전술의 대가 아리고 사키의 경기를 독일식으로 재해석한 두 사람의 전술은 요즘 팬들 사이에서 ‘게겐프레싱(역압박)’으로 불린다. 랑니크 단장은 <포포투> 인터뷰에서 “첫째, 최고의 득점 찬스는 볼을 빼앗은 뒤 10초 안에 찾아온다. 둘째, 볼을 차지하는 최고의 방법은 빼앗긴 뒤 8초 이내에 되찾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랑니크가 직접 감독을 맡은 2015-16시즌 RB 라이프히치는 2부 2위 자격으로 1부 승격에 성공했다. 독일 축구계는 신입생 RB 라이프치히를 혐오했다. RB 라이프치히는 축구 클럽보다 거대 기업이 소유한 ‘상품’으로 인식되었다. 유럽 축구 문화의 저변에 깔린 민중성이 철저히 결여되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증오 속에서 분데스리가 승격 시즌이 개막되었다. 랄프 하젠휘틀 감독과 젊은 선수들은 2라운드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1-0으로 꺾었다. 경기 종료 1분 전, 19세 올리버 버크의 패스를 20세 나비 케이타가 결승골로 연결했다. RB 라이프치히는 승격팀 개막 최다 연속 무패 신기록(13경기)을 작성했다. 다음 해 5월 최종 순위표에서 RB 라이프치히 위에 있는 팀은 바이에른 뮌헨밖에 없었다. 승격 시즌 리그 2위,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획득. 2019년 여름 라이프치히는 커다란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 율리안 나겔스만을 영입한 것이다. 랑니크 단장이 “이대로 발전하면 위르겐 클롭과 펩 과르디올라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라고 극찬했던 주인공이다. 나겔스만은 랑니크 단장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부상으로 일찍 축구를 포기한 후 대학에서 경영학과 스포츠과학을 전공했다. 2007-08시즌 아우구스부르크에서 상대 분석 담당자로서 토마스 투헬 당시 감독을 보좌했다. TSG 1899 호펜하임의 첫 풀타임 시즌에 나겔스만은 리그 4위로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했다. 스포츠과학 전공자답게 나겔스만 감독은 경기력 향상을 위해 첨단 장비를 활용했다. 훈련장에 카메라 4대를 설치했고, 그 화면을 한쪽에 들어선 40㎡ 크기의 대형 스크린에 뿌렸다.

나겔스만 감독은 RB 라이프치히 감독 부임 인터뷰에서 “RB 라이프치히와 나는 동일한 DNA를 지녔다. 이곳에 온 것은 논리적 판단이었다”라고 밝혔다. 나겔스만 감독과 RB 라이프치히는 11월 2일 레드불 아레나에서 마인츠를 8-0으로 갈가리 찢었다. 주전 스트라이커 티모 베르너는 3골 3도움으로 대폭발했다.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허우적대는 동안 RB 라이프치히는 리그 6연승을 달려 분데스리가 선두에 올라섰다. 올 시즌 RB 라이프치히는 랑니크식 압박에서 나겔스만식 공격 축구로 변신했다. 리그 17라운드 기준, RB 라이프치히는 리그 8경기 연속 3골 이상을 기록 중이다. 팀 득점에서 스타 군단 바이에른 뮌헨(46골)보다 2골 많다. 경기당 득점이 2.82골에 달한다. RB 라이프히치의 올리버 만츨라프 사장은 “율리안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 팀을 발전시키고 있다. 밀집 수비로 나오는 팀을 상대하는 해답을 찾았다. 지난 시즌 비기거나 패했을 법한 경기에서 올 시즌 우리는 승점을 더 많이 얻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공격 시 문전에 공격수가 3명 이상 들어감으로써 상대 수비 블록 전체를 박스 안으로 끌어당긴다. 세컨드볼이 흘러나오는 아크 부근에 생기는 공간에서 RB 라이프치히 미드필더들의 중거리포가 작렬한다. 올 시즌 최고 활약을 펼치는 마르셀 사비처는 “우리는 더 이상 거친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 극단적 전방 압박도 없다. 과거처럼 역습 위주가 아니라 점유하면서 경기를 푼다”라고 나겔스만 효과를 설명한다. 1부까지 치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라이프치히가 돈을 연료로 태웠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분데스리가와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2019년 2월 RB 라이프치히는 연 매출 2억1천7백80만 유로(한화 약 2천8백1억원)를 발표했다. 바이에른 뮌헨(7억5천40만 유로)의 29%에 불과하다. 승격 네 번째 시즌을 리그 선두로 보내는 올 시즌, 라이프치히는 ‘스몰 클럽’에 지나지 않다. 하지만 가장 자본주의적으로 탄생했다. 누구보다 든든한 물주와 함께 1부까지 올라왔다. 그랬더니 RB 라이프치히는 갑자기 골리앗을 상대하는 다윗 신세가 되었다. RB 라이프치히는 정말 이상한 클럽이다. 충분히 매력적이고.

WORDS 홍재민(축구 칼럼니스트)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조진혁
WORDS 홍재민(축구 칼럼니스트)

2020년 02월호

MOST POPULAR

  • 1
    슬기로운 시계 생활
  • 2
    MZ에 대한 진실과 오해
  • 3
    드라마 <빅마우스>로 복귀! 이종석, 화보 미리보기
  • 4
    NEW FORMALITY
  • 5
    스타트업? 이것만 조심해!

RELATED STORIES

  • FEATURE

    메타버스, 욕망의 CtrlC-CtrlV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회사가 될 것이라 선언했다. 모바일의 용도가 소셜 미디어에서 메타버스로 옮겨간다는 주장이다. 저커버그는 메타버스에 관한 소설을 읽은 중학생 때부터 메타버스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럼 메타버스는 환상적인 곳인가? 그렇다. 가상현실은 환상을 충족시킨다. 누구나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권력에 대한 환상이 충족되는 곳이다. 그럼 메타버스는 유토피아인가? 권력욕을 비롯한 현실 욕망이 복제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디스토피아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메타버스에선 익명으로 권력을 가진 사용자들이 어떤 해악을 저지를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기대, 아니 걱정된다.

  • FEATURE

    웃는 얼굴, 우상혁

    24년간 2m 34cm에 멈춰 있던 높이뛰기 한국 신기록이 올해 도쿄 올림픽에서 비로소 깨졌다. 우상혁이다. 1997년에 이진택 선수와 함께 얼어붙어 있던 그 기록을 1996년생 우상혁 선수가 부쉈다. 7월 1일에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우상혁은 자신 있었고, 그 자신감은 앞으로 달려나가며 그가 띤 미소에서 발견됐다. 한국 신기록이 깨지기까지의 과정, 우상혁이 도쿄 올림픽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를 돌아본다. 기대되는 우상혁에 대해 말해본다.

  • FEATURE

    BOTTOM TO THE STAR

    BTS의 빌보드 장기 집권 소식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당연한 사실로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팝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서, 그것도 63년간 탄탄하게 이어져온 빌보드 차트의 시스템을 허문 아시안 케이팝 스타 BTS의 퍼포먼스를 의심하는 축도 존재한다. 인기의 본질을 단순히 팬덤의 든든한 지원만으로 한정하기도 하며, 오히려 미국 시장에서 타 팝스타에 비해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간과한다. 하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에, 바닥부터 별의 자리로 오르기까지 요구된 긴 시간과 노력에 집중한다면, BTS의 성공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 FEATURE

    위버스, 경쟁을 거부하는 1인자의 힘

    위버스는 아티스트와 팬덤 간 소통의 장 역할을 하는데, 이 소통의 장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 BTS를 비롯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세븐틴, 그리고 하이브 소속이 아닌 매드몬스터나 최근에는 블랙핑크까지 품었다. 이외에 맥스, 뉴 호프 클럽 등 해외 아티스트까지도. 거대해지는 위버스는 단순히 입점 아티스트 수로만 승부하는 게 아닌,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는 위버스샵, 아티스트가 라이브를 선보이는 브이라이브 등 다양한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위버스의 몸집이 어디까지 불어날지. 또 몸집만큼 위대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위버스를 들여다본다.

  • FEATURE

    제임스 건의 도발적인 유머에 접속하기

    전작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지만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다르다. 제임스 건이 감독을 맡아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마블 영화 패러다임을 흔든 제임스 건은 오락 영화의 문법을 잘 이해하고 쓰는 감독 중 하나다. 영화에 꼭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면 웃기고 세련되게 담아내는 것도 그의 힘. 가장 큰 힘은 특유의 유머다. 등장인물이 많아도 웃음으로 꽁꽁 묶어 이야기가 새어나가는 걸 막는다. 제임스 건의 웃기는 기술을 파헤친다.

MORE FROM ARENA

  • FEATURE

    폴 형제의 불쾌한 도전

    제이크 폴과 로건 폴 형제는 격투계 이슈 메이커다. 본업은 유튜버다. 웃기는 영상으로 대형 유튜버가 된 폴 형제가 이번에는 복싱 선수에 도전했다. 그들은 이미 유튜브에서 슈퍼스타지만, 장기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명세를 이어가려면 새로운 캐릭터가 필요했다. 그리고 스포츠 선수만큼 적합한 것은 없어 보인다. 인기 유튜버 형제는 어떻게 복싱계와 종합격투기계를 뒤흔들 수 있었는지 그 히스토리를 짚는다.

  • FILM

    폭스바겐 x 박건우

  • REPORTS

    사진첩 - 노마

    휴대폰 사진첩에는 한 사람의 생활과 생각이 담기기 마련. 여기 6명의 유명인들이 <아레나>를 위해 자신들의 소박한 사진첩을 공개했다. 가식과 긴장을 걷어내니 그들의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났다.

  • INTERVIEW

    톰보이의 톰보이 오혁 미리보기

    오혁의 톰보이, 톰보이의 오혁 화보 공개. ‘오혁 스타일’ 화보란 이런 것. 오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11월호 커버 장식

  • AGENDA

    11th A-AWARDS

    <아레나 옴므 플러스> 창간과 함께 시작됐던 올해의 남자 시상식 ‘A-Awards’가 올해로 11회째를 맞이했다. 전대 수상자들에 맞먹는, 2016년을 찬란하게 보낸 7인을 꼽았다. ‘A-Awards’란 이름 아래 함께한 이들은 이 특별한 시상식의 권위가 해가 거듭될수록 수직 상승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존재들. 우리의 친우로서 함께해준 7인의 수상자들과 몽블랑 코리아에게 지면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한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