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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사동에 산다

낡은 물건들을 싸들고 인사동에 정착한 지 벌써 1년. 나는 그동안 같은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았다. 왜 홍대 앞이 아닌 인사동이었냐고? 나의 답은 이렇다. <br><br>[2007년 5월호]

UpdatedOn May 02, 2007

Words 이석원(언니네 이발관 리더) Editor 이현상

나는 인터뷰를 하거나 촬영하는 것을 싫어한다. 타인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주의 깊게 관찰하는 편이지만, 정작 내 자신이 어떤 시선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이 나이가 되도록 여전히 불편하다. ‘살롱 드 언니네 이발관’을 인사동에 열면서, 앨범을 냈을 때보다 더 많은 취재와 인터뷰를 감당해야 했는데 기자와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왜 홍대 앞이 아닌 인사동에 가게를 차렸냐”는 것이었다. 음악을 시작한 곳도, 함께 음악 듣는 친구를 만나던 곳도, 심지어 아내를 만난 곳까지 홍대 앞이었으니 나와 친구들에게 홍대 앞 공간은 가게를 열기에 ‘당연한’ 지점이었으리라.
반면 인사동은 가게를 열면서 십 년 만에 다시 가본 곳일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라도 무슨 특별한 애정이나 사연이 있는 동네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가 홍대가 아닌 인사동에 터를 잡기로 결정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난 홍대 앞이라는 공간이 뿜어내는 그 상투성과 선입견이 싫었다. 홍대 앞에서 음악하던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곳에다 가게를 낼 것이고, 뮤지션이 주인이니까 라이브 무대가 펼쳐지는 ‘음악 카페’일 것이며, 홍대 특유의 튀는 개성과 이벤트가 가득할 것이라는 등의 그런 예상들 말이다. 하지만 가게를 하기로 결심한 뒤 자리를 찾고, 콘셉트와 비주얼에 대한 구상으로 고심을 거듭하던 끝에 내린 결론은 홍대 앞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십 년 전 홍대 앞은 그저 숨만 쉬어도 다른 곳과는 다른 뭔가가 있었다. 뭐랄까, 설렘이 있었고 흥분으로 충만했다. 무엇보다 젊었고, 살아 있었고, 창의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홍대 앞은 신촌 나이트클럽의 ‘삐끼’들까지 와서 호객을 할 정도로 상업화되었고, 모든 공간이 획일화되었으며, 많은 것이 과잉되었다.
너무 예쁘게 보이려 하고, 너무 트렌디하려 하고, 너무 개성 있어 보이려 하는 강박들. 그 ‘홍대스러우려’ 하는 몸부림들이 나에게는 허상으로 보였다.
물론 인사동이라고 해서 별반 다른 점은 없다. 난무하는 한정식 식당과 중국산 싸구려 기념품 말고 다른 곳과 다른 게 뭐가 있냐고 하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한다. 그런데도 이곳은 홍대 앞과 달리 여백이 남아 있었다. 트렌드라는 허위에 갇혀 허우적대지도 않았고 오히려 싸구려 상혼은 정겹기까지 했다.
그런 순진함은 홍대 앞에서는 맛보기 힘든 것이 아닌가.
나는 왜 홍대 앞이 아닌 인사동에 가게를 차렸나. 인사동이 좋았다기보다는, 홍대 앞이 탐탁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이유다. 그러나 어느 동네가 됐건 그곳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그 동네를 아끼는 사람에겐 언제나 슬픈 일이다. 나는 인사동에서 어울리지 않게 와인을 팔고 있지만 인사동이라는 동네를 규정하는 것이 동동주나 파전이 아니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갤러리에 들른 그림쟁이, 광화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글쟁이, 근처에 사무실이 있는 직장인들이 밤이면 여전히 숨어드는 한 이곳 인사동이 인사동답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다고 본다. 홍대 앞을 가득 메우던 아티스트와 그 향유자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진 걸까?
홍대 앞은 아직 소생의 기회가 남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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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이석원(언니네 이발관 리더)
Editor 이현상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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