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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 내한 공연의 의미

UpdatedOn January 31, 2020

12월 8일 마침내 U2의 내한 공연이 열렸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밴드라는 U2가 서울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한국이 U2 공연을 온전히 개최할 인프라를 갖췄다는 것과 시대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U2 음악을 소비하는 팬들이 있다는 것. 이번 공연은 ‘조슈아 트리 투어’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한국 팬에게는 <Joshua Tree>앨범이 갖는 의미도 각별하다. 대통령이 직접 프런트맨 보노를 만났을 만큼 음악 메시지도 현 시국에 특별한 의미로 여겨졌다. U2 내한 공연의 의미를 되짚는다.

EDITOR 조진혁

키워드로 보는 U2 내한 공연

2019년 12월 8일에 U2의 내한 공연이 열렸다. 내한 공연이 본격화된 2000년 이후 늘 언급되던 이름이 바로 U2와 마돈나였다. 주로 빈약한 콘서트 인프라를 자조하는 맥락으로 쓰였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한국의 록 음악 팬들은 매년 서울이 빠진 밴드의 아시아 투어 일정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일본에는 가는데 한국에 안 온다고?!) 하지만 2010년 무렵이 되자 국내에 올 것 같지 않던 레전드 음악가들이 한국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9년, 드디어 U2가 한국에 왔다. 내한 공연 최대 규모, 이제껏 본 적 없는 8K 초대형 스크린, 2017년에 51개 도시에서 열린 ‘조슈아 트리 투어’의 2019년 버전이자, 이 투어의 마지막 일정. 공연 전부터 여러 이슈를 만들던 U2는 공연 당일 한국 여성들의 역사를 존중하는 영상을 선보이고, 다음 날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만나 담소를 나누었다. 이제 U2가 왔으니 서울에서 온갖 레전드 음악가의 공연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이런 생각도 든다. 과연 그럴까? U2의 공연을 몇 개의 키워드로 한 번 되짚어보자.

사회적 의미. 이번 공연에서 가장 화제가 된 ‘울트라바이올렛’ 영상에는 ‘History’라는 단어가 ‘Herstory’로 바뀌면서 역사적인 여성 인물들이 등장했다. 한국의 경우 이태영, 나혜석, 김정숙, 해녀, 박경원, 서지현, 홍은아, 정경화, 이수정, 설리가 ‘우리 모두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주목했지만, 사실 환경과 여성주의가 동시대 이슈라는 점에서는 상식적이다. 오히려 내가 주목한 건 엔딩 곡인 ‘One’이 나올 때 보노가 “아일랜드에도 한국에도, 남과 북이 있다. 영어에서 가장 강력한 단어는 타협인데, 북에 있는 사람에게 평화와 기도, 사랑을 보낸다”고 한 대목이다. 그는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공통점을 찾으며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때 평화의 길을 찾을 것이다”라고도 했는데, 이 멘트는 ‘One’의 테마와 맞물려 큰 울림을 줬다. 새삼 최근 몇 년간 가장 드라마틱한 정치 이슈를 보여준 지역이 한반도라는 점을 상기시켰고, 공연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것도 의미심장했다. 이번 콘서트의 성사에 수익성보다 이런 맥락이 더 중요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나 U2에게 중요한 이벤트가 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U2는 조금 나이브한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 밴드의 사회참여적인 가치가 줄어들진 않는다.

시장 규모, 세계 음악 산업의 규모를 파악하는 데 가장 믿을 만한 자료는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의 리포트다. 2019년 상반기에 한국은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의 음악 시장으로 자리 잡았고, 한국 다음으로는 중국, 호주, 캐나다, 브라질이 있다. 그런데 순위보다 성장률이 중요하다. 2010년 이후 한국은 매년 한 계단씩 성장해 6위까지 올랐다. 중국 다음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으로, 글로벌 관점에서 남미와 아시아가 중요한 음악 시장으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아니 서울은 거점 도시로서 의미가 크다. 다만 U2 같은 스타디움 밴드는 최소 5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5만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은 상암월드컵경기장(6만 석)과 잠실올림픽주경기장(7만 석) 정도뿐이다. U2 공연이 열린 고척 돔은 스탠딩 2만 명 규모로, U2 입장에서 이번 공연은 사실상 수익성보다는 상징적인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지리적 위치. 스타디움 공연은 비틀스 이후 개발된 형식으로, 1년에 몇 번밖에 운영되지 않는 스포츠 구장의 수익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경기 시즌이 아닌 때에 대형 콘서트를 유치하는 것이 음악과 스포츠 업계의 상생 전략이 된 것이다. 그래서 공연이 열리는 도시의 지리적 위치도 중요하다. 물류, 유통에서 거점 도시가 중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육로로 연결된 미국과 유럽의 공연은 인근 지역 음악 팬을 모두 끌어모은다. 이들은 대륙 간 횡단 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거나 5~9시간 정도 운전해서 주 경계를 넘어 공연을 보러 온다. 유럽 투어에 파리나 베를린, 함부르크가 포함되고 미국 투어에 오스틴, 시카고, LA 등이 포함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은 인근 지역을 흡수할 만한 지리적 위치가 아니다. 지리적으로는 반도, 정치적으로는 분단 국가라서 섬과 같다. 일본에 비해 면적도 인구도 절반이다. 여러 가지로 불리한 입장이지만, 상징적인 면에서 가치가 있다. 수익보다 이슈라는 점에서 유리한 상황인 셈이다. 특히 U2는 2006년 이후 일본 공연도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13년 만에 일본에 갔을 뿐 아니라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와 한국에는 처음으로 들렀다. 여러모로 이번 투어의 도시는 U2 입장에서 예외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이렇게 보면 U2의 내한 공연은 단지 한국의 시장 규모가 커진 까닭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밴드’라는 입장에서 가능한 이벤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유료 관객 규모가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생각에도 부정적이다. 2만 명 정도의 관객이 모두 록 팬이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U2의 팬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U2의 최신 앨범 2017년의 <Songs of Experience>는 빌보드 1위를 차지했음에도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공연의 관객은 오히려 1987년 <Joshua Tree>앨범의 팬이라고 본다. U2 앨범에서 가장 성공한 앨범이니 자연스럽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의 록 음악 팬덤이 그만큼 세대적이고 단편적이면서 유동성이 높다는 방증이란 생각도 든다.

그럼 앞으로 대형 음악가들의 공연이 계속 열릴 수 있을까? 그렇다고 본다. 한시적이겠지만, 서울 공연이 여러 이슈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히 내가 관심 있는 건 내한 공연보다는 국내 음악가들의 공연 성과다. 시장의 지속 가능성은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WORDS 차우진(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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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WORDS 차우진(음악 칼럼니스트)

2020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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