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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itique

거장들이 넷플릭스로 간 까닭은?

On January 28, 2020

거장의 작품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최근 마틴 스코시즈의 <아이리시맨>,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 마이클 베이 <6 언더그라운드>등 거장들의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잇따라 개봉하고 있다. 물론 이 영화들은 극장에서도 개봉된다. 오프라인 극장 개봉 이후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된다. 기존 영화사의 작품들도 이 과정을 밟는다. 다르지 않다. 그럼 왜일까. 왜 거장들이 기존 영화 제작사 대신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를 선택하는 걸까. 영화 산업의 지각변동을 살펴본다.

EDITOR 조진혁

오리지널 영화에 투자하는 넷플릭스

최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골든글로브 상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아카데미상 수상의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꿈같은 일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의 미국 시장 공략은 쉽지 않았다. 할리우드 진출로 화제가 된 <설국열차>는 평가가 꽤 좋았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미국 배급을 맡은 악명 높은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봉 감독을 ‘천재!’라고 치켜세우면서도 러닝타임을 20여 분 축소할 것을 요구하면서 논란이 있었다. 그 후 봉 감독은 넷플릭스의 자본으로 <옥자>를 연출했고,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가 전권을 주면서 영화를 자유롭게 만드는 기쁨을 누렸다. 창작자 입장에서 자신의 의도를 작품에 충실히 담을 수 있는 방법은 오히려 넷플릭스와의 작업이었다. 사실 기존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서는 편집권을 가진 제작자나 배급자의 영향력이 감독보다 크기 때문에 작품에 영향을 주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봉준호 감독이 미국을 무대로 활동하기에는 제약 조건이 많지만,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넷플릭스와는 궁합이 잘 맞았다. 이렇듯 <옥자>와 관련된 봉 감독의 일화만 봐도, 왜 감독들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업체 넷플릭스와 일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감독들이 넷플릭스를 선호하게 된 현상을 알려면 먼저 미국 영화 산업의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2019년, 전 세계를 장악한 할리우드 영화를 떠올려보자. <어벤져스: 엔드게임> <라이온 킹>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캡틴 마블> <토이 스토리 4> <조커> <알라딘> <겨울왕국2>등이다. 2018년에 이어 여전히 ‘디즈니표 영화들’이 초강세였다. 이 흥행작들의 특징을 쉽게 정리하면, 슈퍼히어로물, 디즈니표 애니메이션 혹은 디즈니의 실사 프로젝트 그리고 속편(스핀오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이런 영화들을 빼고 나면 할리우드 역시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제작된 영화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2019년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1억4천만 달러 이상 수익을 올린 미국 영화 중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제작된 영화는 조던 필 감독의 <어스>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정도다. 이는 지금의 할리우드가 텐트폴 영화나 프랜차이즈 영화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몇 년 동안 디즈니 영화나 슈퍼히어로물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면서 할리우드에서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영화를 제작하는 환경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들처럼 대세를 따르지 않거나 히어로물을 만들고 싶지 않은 제작자나 감독이라면, 다른 소재로 많은 제작비를 들여 영화를 제작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마블 영화를 ‘테마 파크’라고 혹평한 것은 시대착오적 발언이 아니라 최근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한 것에 가깝다. 시쳇말로 꼰대의 권위주의가 아니라 할리우드의 미래를 걱정하는 의미 있는 우려라 할 수 있다. 올해 아카데미상 수상이 유력한 스코시즈의 <아이리시맨>은 제작비를 약 1억6천만 달러 들였고, 러닝타임이 무려 209분이나 된다. <좋은 친구들>(1990) 이후 30년 만에 이런 멋진 범죄 드라마를 다시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극장 흥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제작비를 70대 후반의 스코시즈에게 걸면서 도박하는 제작사는 할리우드에도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넷플릭스가 스코시즈와 <아이리시맨>을 제작한 것은 영화적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일이다. 이미 2019년 아카데미 상에서 넷플릭스가 제작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3개 부문 수상)되어 화제가 되었고, 올해 골든글로브 상이나 아카데미 상 역시 넷플릭스가 제작한 <아이리시맨>,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등의 수상이 유력해지면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의 위상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물론 이런 약진은 다양한 장르 영화나 예술 영화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1억5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액션 영화 <6 언더그라운드>가 지난 12월 13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많은 이들이 베이가 <나쁜 녀석들: 포에버>로 돌아오기를 기대했지만,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2017)로 몰락한 그의 선택은 새로운 영화였다. 즉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5편이나 만들면서 고인 물이 되어버린 감독, 베이의 재기를 위해선 안정적인 속편보다는 새로운 영화가 더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넷플릭스를 선택한 것은 윈윈 게임이다. 넷플릭스가 스코시즈와 함께한 길이 ‘아카데미 상’이라는 엄청난 명예를 위한 것이라면, 베이와 손을 잡은 것은 사이즈에 대한 콤플렉스를 해소할 수 있는 처방이었다. 빅 스케일, 블록버스터의 아이콘인 베이를 통해 넷플릭스에는 한계가 없음을 보여주기에 적합했다.

마이클 베이는 국내에서 <6 언더그라운드>를 홍보하며 극장에 못 가는 대신 “큰 TV를 사는 게 어떨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바타> 이후 입체 3D 영화의 돌풍으로 극장 환경이 우선시되었지만, 지금은 영화를 어디서 어떻게 즐기느냐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극장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경쟁 상대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보완 관계에 있으며, 이미 관객은 동시에 즐기는 중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 소비 환경의 변화(영화 제작과 유통의 통합)와 맞물려, 지금 영화 산업은 콘텐츠의 확보가 곧 생존으로 연결된다. 어느새 우리의 일상이 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는 ‘플랫폼 전쟁’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이 싸움이 안정화되면 다시 중요한 것은 여전히 콘텐츠일 수밖에 없다. 누가 어떤 오리지널 콘텐츠를 갖고 있느냐가 결국 시장의 승패를 좌지우지할 확률이 높다. 바꿔 이야기하면, 이런 흐름은 영화 창작자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는 측면에서 유리하다. 넷플릭스를 비롯해 다양한 OTT 회사로부터 투자받아 영화를 만드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영화 작업에서 창작의 자유가 주어지고 극장 흥행에 대한 부담을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면, 세상에 이를 거부할 감독은 아무도 없다. 오리지널 영화에 투자하는 넷플릭스와 같은 꿈을 꾸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WORDS 전종혁(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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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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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혁(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