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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섹스가 변하니…

섹스는 그냥 그대로 한자리에 멈춰 서지 않는다. `연애`, `동거`, `결혼`이라는 관계 변화로 인해 변화무쌍하게 변한다는 말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충분히 만족시킨 한 남자가 변화의 과정을 흐림 없이 보고 한다. 그의 역정이 끌린다면, 연애 관계를 청산하고 동거를 하든 결혼을 하시라.<bR><br>[2007년 5월호]

UpdatedOn April 23, 2007

Words 김명철(가명) Illustration 장재훈 Editor 성범수

아직 신혼 딱지를 떼고 싶지 않은 우리는 결혼 2년 차다. 하지만 만난 지 어언 11년 된 제법 오래된 커플이다. 철없던 연애 시절, 몇 차례 헤어짐과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 금실 좋은 부부, 운명을 함께하는 가족 공동체로 살고 있다. 사랑만은 날것 그대로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강산이 변할 만큼 길고 유구한 역사를 함께하는 동안, 애정과는 무관하게 변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호칭이라든가, 각자 만들어온 생활 습관, 잠버릇, 입맛… 혼자가 아닌 둘이 됨으로써 감수해야 하는 그 어떤 변화들 말이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좌충우돌 7년 동안의 ‘연애기’와 2년간의 ‘동거’를 거쳐 마침내 ‘결혼’에 이르기까지, 의도한 바는 없지만 섹스 주기나 체위, 스타일, 느낌 등 많은 부분 변화를 거쳐왔다.
처음 만나 자타가 공인하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지만, 우등생 진도는 거기까지. 우리의 첫 번째 섹스는 사귄 지 꼭 1백일째 되던 날 이뤄졌다. 바라만 봐도 배부르고, 손만 잡아도 저릿저릿하던 시절은 석 달로 족했다. 아니, 너무 힘들어 솔직히 견디기 어려웠다. 욕구 불만에 쌓인 내 머릿속은 온통 섹스로 가득 찼고 어떻게 해서든 첫 테이프를 끊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마음만 맞으면 만나자마자 모텔로 직행하는 커플도 많다는데, 그에 비하면 우리는 더뎌도 좀 많이 더뎠다. 태생적으로 ‘본능 억제 기제나 매너 준수 DNA’를 타고났든지, 가정교육을 너무 쫀쫀하게 잘 받은 탓인지 모르지만, 손을 잡는 데만 꼬박 한 달, 섹스를 하는 데는 그 보다 세 배가 넘는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진한 키스와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자 서둘러 그녀를 모텔로 이끌었다. 그러나 성탄절이 임박한 연말 시즌이었기에, 빈 방을 찾는다는 것은 적진 깊숙이 처박힌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것보다 어려운 상황. 흉악범을 검거하려는 열혈 형사마냥 일대의 모든 숙박 업소를 이 잡 듯 뒤지며 탐문 수사하길 몇 시간, 하느님이 보우하사 꾀죄죄한 방 하나를 구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쪽팔림’과 피로 탓에 이미 전의는 상실한 지 오래였고,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암담한 시추에이션이 벌어졌다. “많이 피곤했지? 먼저 씻을래?” 분위기가 생명인 첫날밤, 오랜 침묵 끝에 입을 뗐지만 고작 한다는 얘기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녀의 기분을 회복 불가능 상태로 몰아가고 말았다. 도축장에 끌려온 송아지처럼 눈을 껌뻑거리던 그녀의 대답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 “우리 이러는 거 잘못된 거 같아… 나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야….”
섹스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녀의 속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가 원할 때 너무 쉽게 응해주면 주도권을 빼앗긴다거나, 진정으로 사귈 마음이 있는 남자와는 되도록 오래 만난 뒤 섹스를 해야 한다든지 하는, 여자들 사이의 시답잖은 불문율 같은 게 그녀를 흔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렵게 구한 모텔 침대에 걸터앉아 그게 무슨 어이없는 대사란 말인가. 갖은 회유와 설득 끝에 결국 첫 번째 섹스에 돌입할 수 있었지만,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과 마음이 고분고분 명령에 따를 리 없었다. 게임 시작 불과 10분…, 끓는 물로 다이빙한 개구리처럼 부르르 떨며 나는 곧 사정하고 말았다. 그토록 허무한 결말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그날 이후 귀엽고 순진하던 그때의 에피소드는 우리의 섹스를 더욱 매끄럽게 만드는, 꺼내고 또 꺼내보는 유쾌한 추억이 됐다. 권태감을 느끼기 전, 연애 초기부터 이어지는 몇 년간의 섹스는 밑 빠진 항아리처럼 채워도 채워도 비워지는 허기를 동반한다. 어딘가 조심스럽고, 너무 못하거나 너무 잘해서도 안 될 것 같은 그런 마음. 혹시나 변태로 오해할까봐 ‘뒤로 엎드려봐’ 소리 한 번 제대로 꺼내지 못한 채 몇 개월간 정상 체위만 고집한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고, 매뉴얼처럼 내가 먼저 시그널을 보내야만 마지못해 그녀가 응했으며, 콘돔을 꼭 사용해야 하고, 섹스가 끝난 뒤에는 부끄러워하며 수건으로 몸을 가린 뒤 욕실로 향하고… 무지한 채 의욕만 앞세웠을 뿐 간이 덜 밴 생선구이처럼 왠지 심심한 교감이었다. 하지만 조금 싱겁더라도 그땐 왜 그리 바삭바삭 맛있었을까. 아마도 그건 둘 사이의 적당한 긴장과 설렘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거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섹스에도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연애기의 섹스가 남자인 내가 주도했다면 동거 후에는 그녀가 좀 더 대담하고 리버럴해졌다고나 할까. ‘그 징그러운 걸 어떻게 입에 넣느냐’며 한사코 과민 반응을 보이던 펠라치오에 대해서도 관대해지는가 하면, 생리 주기 전후로 적극적인 의사 표시를 시작한 것이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필요 없이, 매일매일 함께 눈 뜨고, 식사하고, 같이 잠을 잔다는 건 한시도 떨어지기 싫었던 우리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연애 시절에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웠던 모닝 섹스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동거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짜증스러운 자명종의 알람 소리가 아닌, 부드러운 애무와 사랑스러운 손끝의 터치로 잠에서 깬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되는 이른 시간의 섹스는 경험해보지 않은 연인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흥분을 자아낸다.
동거하기 이전에는 당당한 연인 사이면서도 언제 또 잘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모텔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허겁지겁 서로 탐닉하고 사정에 올인 하던 과정도 다소 꺼림칙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동거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옭아매던 억압과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밤을 새워도 상관없으며 누구의 방해도 용납하지 않는 오직 두 사람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 그건 정말 놀라운 발전이었다. 연인 사이보다는 좀 더 가깝고 부부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적당한 구속과 서로 결핍을 채워주는 관계적 포만감. 동거 커플의 섹스가 빚어내는 오르가슴은 확실히 다른 차원의 감동을 느끼게 했다.
동거의 또 다른 장점은 모든 면에서 여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긴 호흡으로 섹스의 완급을 조절할 수 있고, 쾌적하고 즐거운 시간을 위해 그녀와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마실 것, 음악을 준비할 수 있으며, 감정의 줄다리기나 불필요한 소모 없이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섹스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쫓기듯 샤워하고 옷을 챙겨 입은 후, 마치 도망치듯 모텔 문을 나설 때의 그 찝찝함에 비하면 서로 체온과 심장 소리를 느끼며 알몸으로 잠들 수 있다는 건 거의 축복에 가까웠다.
그 밖에도 단순히 “좋았어?” “변태, 짐승!” 차원이 아닌, 섹스 후의 리뷰가 보다 폭넓고 대담하게 이루어졌다. 속도가 너무 느렸다거나, 어느 부위를 어느 정도의 강도로 핥아줄 때가 좋았다거나, 어떤 체위로 시작해서 어떤 자세로 끝냈을 때가 더 자극적인지 등을 숨김없이 이야기함으로써 섹스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시도를 가능케 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연애 시절의 섹스가 같은 목표물을 바라보며 나란히 서서 총알을 발사하는 사격과 같은 성격이라면, 동거의 섹스는 기브 앤 테이크와 밸런스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테니스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은 동거의 장점을 고스란히 승계하면서 그 이상의 시너지가 창조되는 시점이다. 오랜 연애 기간과 동거를 경험했기에 특별한 자극이나 설렘이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그동안의 경험과 축적된 노하우에 힘입어 어설픈 성인 영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줄거리들이 만들어졌다. 결혼 후의 섹스가 동거 때와 다른 점을 굳이 꼽으라면 조금 더 산만하고 시끄러워졌다는 것이다. 괴성을 지르지는 않지만, 언젠가부터 행위 중 두 사람 모두 말이 제법 많아졌다. 신음과 탄성도 잦아지고, 상대를 자극하는 낯간지러운 대사, 어디서 배웠는지 스스로도 놀랄 따름인 ‘19금’의 멘트, 신체 부위를 적나라하게 가리키는 뻔뻔스러움…. 무엇보다 달라진 건, 섹스에 열중하면서도 간혹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이번 달 공과금이 많이 나왔으니 절약해야 한다는 둥, 적금 만기 되면 금리 높은 펀드로 갈아타자는 둥… 연애만 하던 시절에는 정말 상상도 못할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2세를 잉태 중인 요즘,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섹스를 경험하고 있다. 그 어떤 시기보다 조심스럽고 신경이 많이 쓰이지만 한편으론 경건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색다른 흥분이 감돈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부부만이 누릴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변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는 만큼 즐거운 게 섹스라고 했다. 아마추어 같던 연애 시절의 섹스에 비해, 동거 후의 섹스는 경기의 규칙과 즐거움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세미프로의 플레이와 비슷했고, 결혼 후 현재까지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세계적 스타처럼 기술적 향상을 이룩하며 보다 노련해졌다.
사랑하는 연인끼리의 섹스는 단순한 육체적 쾌락에 머무르기보다 오르가슴을 넘어서는 몇 단계 높은 차원의 ‘그 무엇’을 가져다준다. 궁극의 커뮤니케이션이랄까. 그건 연인 사이의 절대적인 합일과 교감을 가능케 하는 가장 완벽한 소통 방법 같다. 우리는 섹스로 사랑을 키웠으며, 섹스로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이를 출산하고 산후 조리를 끝내면 아내는 헬스클럽과 요가 센터를 찾아 몸과 마음을 단련하겠다고 벌써부터 벼르는 중이다. 그건 건강한 몸과 스스로 스타일을 되찾기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겠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자기야, 내년에는 꼭 많이 하자!”, “당연하지, 나도 운동 열심히 하고 기다릴게!” 다소 유치하지만 연애 초기의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는 내년을 몹시 고대하는 중이다.
올해 못한 섹스를 모두 만회하는 것은 물론 근사한 휴양지로 날아가 보다 자극적이고 화끈한 섹스를 나눠야지. 우리는 열정이 다하는 그날까지 욕정의 불꽃을 활활 태울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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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김명철(가명)
Illustration 장재훈
Editor 성범수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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