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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On October 11, 2019

불리지 않던 재료의 이름이 셰프의 손에서 수런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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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두메부추꽃 손종원
접시 위의 꽃은 대체로 장식이었다. 꽃에게 주어진 일이란 접시를 아름답게만 만드는 것. 꽃에게는 적재적소가 없었다. 라망 시크레의 헤드 셰프 손종원은 메추리 요리에 연한 보라색의 작은 꽃송이를 뿌린다. 두메부추꽃이다. 마트나 시장에서는 볼 수 없지만 지금이 제철이다. 라망 시크레의 접시 위에서 두메부추꽃은 꽃의 선을 넘는다. 두메부추꽃에선 부추 맛이 난다. 야금야금 씹으면 알싸하고 매운맛이 팍 터진다. 꽃들이 보통 그렇다. 바질 꽃에선 바질 맛이 강하게 난다. 작물 특유의 맛은 꽃에 응축되기 마련이다. 손종원은 두메부추꽃을 ‘마르쉐’ 장터에서 얻었다. 그는 한 달에 3번, 혜화, 합정, 상수에서 열리는 마르쉐에 번번이 간다. 제철에 나는 재료들, 시중에서 접하지 못한 새로운 재료를 탐색하기 위해서다. 작물들은 무궁무진해서, 눈 밝은 요리사는 그곳에서 재료뿐 아니라 자극과 영감도 얻는다. 손종원은 오랫동안 이 장터에서 만난 농부들과 직거래한 재료를 라망 시크레 주방에 들여 다뤄왔다. “‘농부가 된 사진가’라는 이름의 판매자가 있습니다. 마르쉐에서 오랫동안 직접 기르고 딴 작물을 팔아왔어요. 그 농부와 친해져서, 마르쉐에 갈 때마다 그가 직접 경작한 재료들을 자세히 살피고 구매합니다. 두메부추꽃도 마찬가지예요. 부추 맛이 나는 이 꽃을 맛보고는 부추 대신 써보기로 마음먹은 거죠.” 마늘 먹여 기른 의령산 메추리 주변에 두메부추꽃과 나뭇잎 모양으로 자른 단호박, 깻잎, 당근을 곁들이고 레몬 비니거 소스를 두른다. 가니시처럼 보이지만, 꽃부터 작은 장식까지 모두 저마다의 맛을 낸다.

라망 시크레
주소 서울시 중구 퇴계로 67
문의 02-317-4003

• Dish •

의령 메추리 - 가을의 시작
손종원 셰프가 찜닭을 생각하며 만든 메추리 요리. 가장 클래식한 프랑스 요리 중 하나인 메추리 요리를 완전히 비틀었다. 마늘을 먹여 기른 의령산 메추리 요리에 알싸한 부추 맛의 두메부추꽃, 단호박, 깻잎, 당근을 곁들인다. 소스에서는 생강과 고추 맛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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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갓 싹 권우중
갓은 흔한 풀이다. 갓김치는 동네 삼겹살집에만 가도 만난다. 갓으로 만드는 요리법 몇 가지쯤 머릿속에 떠올리는 일도 쉽다. 슥슥 버무려 겉절이로 만들고 김치를 담가 몇 달 묵혀 먹고 된장에 무치기도 하는 게 갓이다. 권숙수의 셰프 권우중은 이토록 비근한 작물인 갓의 싹에 눈을 돌렸다. 권우중은 갓 싹을 이번 가을의 저녁 상차림에 올릴 육회 요리에 한 획을 그을 재료로 쓴다. 권숙수는 두 곳에서 특수한 작물을 공급받는데, 갓 싹은 그중 하나인 준혁이네 농장에서 얻는다. 권우중이 원하는 맛과 식감의 갓 싹을 수확하기 위해 6개월 전부터 수차례 테스트를 거쳤다. 권우중과 준혁이네 농장이 협업으로 완성한 재료인 셈이다. 전국에서 나는 진귀한 제철 재료도 이 식탁, 저 식탁에 다 오르면 흔한 것이 된다. 가을엔 전어와 대하가 제철인 것을 누가 모를까. 남이 다 하는 건 하기 싫은 권우중은 아직 덜 알려졌거나, 흔히 사용되지 않는 재료를 다뤄왔다. 지난여름에는 일반 토마토보다 당도가 높고 젤리 같은 식감의 젤리 토마토를 접시 위에 올렸다. 이번에는 갓 싹이다. 갓을 파종한 뒤 물을 흠뻑 주고 1주일이 지나면 떡잎이 난다. 2주쯤 되면 떡잎은 퇴화하고 본잎이 나는데, 제법 자라기 전에 수확한다. 말 그대로 싹이다. 알맞은 크기일 때 수확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요일을 정해두고 농장에 갔다. “달지 않게, 전통적인 맛으로 완성하는 육회 요리입니다. 어울리는 향신채로 무엇이 좋을지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완벽하게 어울리는 갓 싹을 손에 넣기까지도 수개월이 걸렸죠.” 권우중은 백산도요의 권영배 작가가 하루에 두 점만 그려내는 소나무 그림의 접시에 육회를 내면서, 잘게 채 썬 송이버섯, 저온 참기름으로 만든 파우더, 직접 따서 담근 산초 장아찌에 갓 싹을 올린다.

권숙수
주소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80길 37
문의 02-542-6268

• Dish •

송이버섯과 한우 육회
한우의 꾸리살을 향이 강하지 않은 저온 참기름과 자염(바닷물을 가마솥에 끓이며 증류시켜 만든 소금)으로 버무린 육회에 잘게 채 썬 송이버섯, 저온 참기름으로 만든 파우더, 케일 파우더, 갓 싹을 곁들인다. 갓 싹의 희미한 향기와 단맛, 매운맛이 은근히 번지며 제법 날카로운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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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랍스터 액젓 신창호
서울의 한식은 확장 중이다. ‘코리안 컨템퍼러리 퀴진’이라는 경계도 흐릿해졌다. 주옥은 이 모호해진 이름을 꼭꼭 다진다. 장과 식초로 말이다. 주옥은 직접 담근 30여 가지 식초로 유명하다. 청담동 골목에서 소공동의 더 플라자 호텔로 자리를 옮긴 지금도 매일 다양한 식초를 스파클링 워터에 섞어 내며 코스의 문을 연다. 주옥의 셰프인 신창호는 자신을 “성실하고 빠릿빠릿하게 발품 잘 파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그는 신선한 재료를 구하고, 노련한 기술이 집약된 장과 식초로 주옥 스타일을 만드느라 사계절 내내 분주하다. 장모의 밭에서 기른 들깨를 짜 들기름을 만들고, 농장과 직접 거래해 작물을 구하고, 산지에서 바로 올린 수산물을 주방에 들이기 위해 전국을 뛴다. 신창호는 때로 지금의 재료를 전통 기술로 다루기도 한다. 지난해 주옥에서 처음 선보인 랍스터 액젓이 바로 그것이다. 랍스터 액젓은 주옥이 직접 만드는 재료다. 랍스터의 살을 발라내 요리를 완성하고 나면 머리와 내장 자투리 살 등의 부산물이 남는다. 이걸 모아서 소금과 함께 켜켜이 쌓아 상온에서 숙성시키면 랍스터 액젓이 된다. 이때 소금과 랍스터의 비율은 1대3 정도. “소금이 많이 들어가는 젓갈이라 그냥 먹으면 짠맛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음식에 간으로 사용하면 엄청난 감칠맛을 냅니다. 액젓을 담그는 데는 3개월이 꼬박 걸리고, 한 통의 액젓에는 랍스터 1백50여 마리의 부산물이 사용됩니다.” 신창호는 이 랍스터 액젓을 옥돔 요리의 소스로 낸다. 고등어와 한치를 훈연해 만든 소스에 랍스터 액젓을 더해 소스를 만들고, 바삭하게 구운 옥돔, 호박과 두부로 속을 채워 찐 배추, 파채에 곁들인다.

주옥
주소 서울시 중구 소공로 119 더 플라자 호텔 3층
문의 02-518-9393

• Dish •

랍스터 액젓으로 간을 한 훈연향의 한치 고등어 맑은 국과 바삭하게 비늘 살려 구운 제주 옥돔과 겨울 배추찜
가리비와 두부, 호박으로 속을 채워 돌돌 말아 찐 배추, 비늘에 물을 슬쩍 발라 고온에 튀기듯 구워낸 옥돔, 가늘게 썬 파채를 차곡차곡 쌓은 뒤 랍스터 액젓으로 만든 소스를 부어 먹는다. 랍스터 액젓이 바삭한 옥돔의 감칠맛을 살리고, 배추의 달콤한 맛을 끌어올린다.

불리지 않던 재료의 이름이 셰프의 손에서 수런거린다.

Credit Info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이수강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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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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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