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FASHION MORE+

페르소나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형이상학적 가면극.

UpdatedOn August 14, 2019

/upload/arena/article/201908/thumb/42547-380878-sample.jpg
/upload/arena/article/201908/thumb/42547-381066-sample.jpg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세계관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의 상상은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 훨씬 고차원적인 영역까지 뻗어 있다. 그래서 매번 구찌의 새 컬렉션은 디자인, 소재, 실루엣에 대한 단순한 설명보다는 미켈레의 세계관,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복잡다단한 이론에 대한 해석에서부터 시작된다. 매 시즌 그가 어떤 매개체를 통해 스토리를 풀어낼지가 관건인데, 궁극적인 결론은 한 가지로 압축된다. 그의 세계관 안에서 자아는 대체로 관습적인 규율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스스로 창조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 이번 시즌엔 페르소나(Persona)를 통해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배우의 얼굴을 가리면서, 관중에게 배역의 얼굴을 나타내는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인 페르소나는 사람(Person)이라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편견 안에서 가면은 본래의 얼굴을 가리는 은폐의 도구, 진실을 숨기는 용도로서 부정적으로 인식된다고 한다면, 미켈레의 생각은 다르다. 스스로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 가면은 자신에 대해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와 반대로 감추고 싶은 이미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강력한 필터가 되어,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 모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거다. 언제나처럼 장황한 스토리를 시작으로, 2019 F/W 시즌,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연출한 초현실주의 가면극이 막을 열었다.

3 / 10
/upload/arena/article/201908/thumb/42547-381090-sample.jpg

 

우린 번지르르한 방콕 도심의 고풍스러운 저택, 넓은 정원 한편의 온실로 초대되었다. 기이한 가면을 쓴 구찌의 마네킹들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은 왠지 은밀해 보이기까지 하고. 남녀 컬렉션이 섞여 있었지만, 미켈레에게 성의 경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1940년대 풍의 클래식한 테일러링이 눈에 띄었다. 피크트 라펠이 넓게 펼쳐진 재킷에, 발목을 바짝 조인 조거 팬츠를. 마켓 백 소재 같기도 하고, 얇은 천막 같은 소재의 오버사이즈 반소매 셔츠는 두툼하게 타이를 맨 긴소매 셔츠와 레이어링하고, 통이 넓은 팬츠 혹은 스커트와 스트리트풍으로 뒤섞었다.

남자의 룩에 크로셰 레이스 장식 셔츠, 풍성한 레이스로 이뤄진 엘레강스한 블라우스 등등 지극히 여성스러운 소재들이 뒤엉켜 있었지만, 미켈레의 구찌 안에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무엇보다 기괴한 액세서리들이 시선을 압도했다. 그들의 가면이나 두툼한 초커엔 한 뼘 길이만 한 스파이크가 공격적으로 뻗어 있기도 하고, 진짜 귀 모양 장신구로 실제 귀를 완벽히 덮어 새로운 귀가 되거나, 재킷 라펠 양쪽에 브로치로 활용해 제3의 귀처럼 장식하기도 했다.

그러다 온실을 나서니 갑자기 현실이었다. 공기가 확연히 달랐다. 투명한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현실과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고차원적 세계가 공존했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최태경

2019년 08월호

MOST POPULAR

  • 1
    사운드의 진화, 뱅앤올룹슨
  • 2
    MORNING WAVE
  • 3
    뒷자리에서
  • 4
    발리로 떠나는 이유
  • 5
    배리 X 조슈아

RELATED STORIES

  • FASHION

    MORNING WAVE

    따스하고 부드러운 햇살이 깃든 배리의 아침.

  • FASHION

    PETRICHOR RELIEVED HIM

    조슈아가 배리와 만나 딛고 선 스코틀랜드의 초원. 바람은 속삭이고 코끝에는 흙 내음이 스치던 하루의 기록.

  • FASHION

    Homeric Elegance

    소설과 희곡을 넘나드는 소재의 여정으로 이끈 에트로 액트(Etro Act) 컬렉션.

  • FASHION

    끝의 시작

    마티유 블라지는 끝에서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을 발견했다. 강인하고 단단한 마음을 토대로 한 보테가 베네타의 우아한 회복에 관하여.

  • FASHION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안디아모’ 캔버스 백

    여름 날의 휴양지를 그리게 하다.

MORE FROM ARENA

  • INTERVIEW

    미완의 시완 미리보기

  • AGENDA

    본격 겨울 놀이

    혹한을 이기는 가장 쿨한 방법? 온몸을 던져 즐기는 거다. 겨울의 고수들에게 추천하는 엉뚱하고 짜릿한 스포츠 다섯.

  • INTERVIEW

    편집가의 시선 #챕터원, 하이츠 스토어

    시류를 떠나 자신만의 함량 높은 취향이 완성된 사람에게 트렌드를 물으면 어떤 답변이 돌아올까? 찾아가서 다짜고짜 물었다. 네 팀은 모두 예측할 수 없는 유행의 흐름과 취향을 견고하게 다지는 일의 가치에 대해 말했다.

  • INTERVIEW

    반 보 앞으로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전 세계 젠지와 밀레니얼에게 케이팝은 어떤 의미일까. 새로움의 대명사일까. 케이팝이라는 글로벌 현상은 어떻게 유지되고,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케이팝 산업을 이끌어가는 엔터테인먼트 대표, 작곡가, 비주얼 디렉터, 안무가, 보컬 트레이너, 홍보팀장을 만났다. 그들에게 케이팝의 현재와 미래, 팬들이 원하는 것을 물었다. 케이팝 산업을 통해 2020년대의 트렌드를 살펴본다.

  • ARTICLE

    CLOSE TO YOU

    서늘한 계절을 위한 11가지 소재.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