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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의 인기가 시들시들

UpdatedOn July 26, 2019

요즘 도로에 보이는 경차의 수가 예전만 못하다. 경차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기사도 없고, 경차를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매장도 드물다. 왜 경차의 인기가 시들해진 걸까? 도심에서 주행하기 좋은 작은 차체, 저렴한 가격과 유지비, 세제 혜택 등은 경차의 장점이다. 하지만 이 영역을 소형 하이브리드나 전기차가 대체하고 있어서일까? 외국에는 경차가 다양하다는데, 정작 경차를 들여오는 수입 브랜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에서 경차가 시들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EDITOR 조진혁

한물간 경차, 인기 회복은 불가능할까?

사야 할 이유가 사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많다면, 가격이 비싸든 품질이 열악하든 살 수밖에 없다. 경차가 인기 없는 이유는 굳이 살 필요가 없어서다. 단점을 모두 덮어버리는 매력적인 요소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비합리적이더라도 무리해서 꼭 사고야 만다.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예쁘든가, 연비가 아주 높든가, 운전 재미가 매우 뛰어나다든가 등등. 그런데 경차는 크기 말고는 달리 내세울 게 없다. 그나마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큰 장점이 아니다. 경차에 대해 판단하려면 우선 냉정해져야 한다. 막연하게 경차 보급이 늘어야 교통이며 주차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서다.

좁아터진 우리나라에서 작고 연비 높은 경차를 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경차가 장점이 많다고 얘기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경차도 엄연한 자동차다. 차 한 대분 자리는 차지한다. 경차 전용으로 주차 면을 좀 작게 그린다고 해도, 그로 인해 추가할 수 있는 주차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해도, 가뜩이나 주차 공간이 부족한데 경차밖에 둘 수 없는 공간을 만들면 너무 비효율적이다.

연비도 높지 않다. 우리나라 도로 풍토에 맞춰 달리려면 좀 밟아야 하는데, 그러면 연비는 더 나빠진다. 경차 소유자 사이에서는 중형차 연비와 다를 바 없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요즘 하이브리드나 전기 파워트레인을 얹은 차들은, 크기는 경차보다 훨씬 크면서 연비는 경차보다 높다. 차 값이야 차이가 나겠지만 연비를 1순위로 고려한다면 경차를 사지 않아도 된다. 가격이 싼 편도 아니다. 경차 구매자들이 실용성을 중시한다고 해도, 옵션 하나 없는 깡통차로 사고 싶겠는가. 높은 트림을 사고 싶은 욕구는 생기기 마련이다. 자동차는 ‘돈 좀 더 보태면 위급으로 갈 수 있는데…’ 법칙이 아주 잘 들어맞는다. 이것저것 원하는 요소 넣다 보면 소형차를 넘어 준중형차 가격을 향해 달려간다. 경차 사겠다는 마음을 구매 단계에서 일관되게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차가 작아서 타기 편한 이점은 좁은 골목길을 달리거나 주차할 때뿐이다. 차선을 꽉 채울 정도로 폭이 넓은 대형차를 타지 않는 이상, 일반 도로에서는 어떤 승용차를 타든 도로 폭은 비슷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경차는 큰 차가 옆에 지나가면 바람결에 휘청거리고, 고속도로에서 속도 좀 높이면 불안하기 그지없다. 경차 타고 다니면 무시당한다는 말은 하루이틀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큰 차 선호 현상이 심하고 차를 과시 수단으로 삼기 때문에 도로에 경차 무시 풍조가 만연하다. 작은 차의 이점을 누리기 위해 경차를 산다고 생각하지 않고 돈이 없어서 경차 탄다고 여긴다. 무시하는 마음을 도로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출하니, 경차 타는 사람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일상에서도 그렇다. 경차 타고 소개팅 나갔더니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더라는 경험담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경차의 단점을 적었으니 이제 좋은 점을 알아보자. 우선 구매 단계에서 세금이 좀 덜 든다. 경차의 절대 가격은 높지만 큰 차보다는 상대적으로 싸서 살 때 부담은 덜하다. 좁은 길을 달릴 때 지나다니기 수월하고 주차할 때 편하다. 자동차세나 수리비 등 유지비가 적게 든다. 이것 외에는 달리 좋은 점이 떠오르지 않는다. 장점을 더 파내봐야 경차의 가치 상승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다. 사지 말아야 할 이유 찾기가 훨씬 수월하다.

지금까지 설명한 경차의 장단점은 잘 알려진 내용이다. 요즘 경차가 안 팔리는 진짜 이유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갈구다. 개성을 추구하는 풍조가 심화하면서 사람들은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원한다. 경차는 새로운 부분이 없다. 국산 경차는 오랜 세월 두세 종류를 넘지 않았다. 세대교체를 한다고 해도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으니 질릴 대로 질려버렸다. 완전 신모델도 나오지 않고 수입차도 없어서 시장 자체가 단조롭기 그지없다. 진짜 경차다운 일본 경차는 아예 정식으로 수입하는 곳이 없다. 경차와 소형차 천국 유럽도 SUV가 인기를 끄는 등 취향은 변해가지만, 브랜드마다 여전히 경차를 내놓아서 종류가 상당하다. 유럽 경차가 국내에 들어오면 좋으련만, 수입차 업체들은 가격을 맞추기 힘들고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내세워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국산 경차를 사려던 사람들은, 경차보다 조금 비싸지만 신차가 줄줄이 나오는 소형 SUV로 눈을 돌린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고급화다. 대중차와 고급차 사이에는 심리적 장벽이 컸다. 경제적으로도 넘기 힘든 선이 존재한다. 그런데 동급에서 새로운 차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어갈 곳은 위급 또는 더 고급스러운 차밖에 없다. 국산차 타는 사람은 수입차로 넘어가고, 수입 대중차 타는 사람은 고급차로 갈아타는 현상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눈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대중차 브랜드도 시장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고급화에 치중한다. 그런데 경차는 아무리 고급화해봐야 거기서 거기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만드는 경차가 아닌 이상, 대중차인 국산 경차는 고급화에 한계가 있다. 경차를 고집할 이유가 없으니 더 좋고 새로운 차를 찾아 위급으로 넘어간다. 경차는 차를 처음 사는 사람에게 적절한데, 아예 첫 차 대상에서 제외한다. 입문용 차로서 가치가 예전보다 희미해졌다.

대인국에 소인들이 일부 끼어 산다고 해서 몸집이 작은 소인들이 편할까? 무시당하는 것은 둘째치고 밟히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소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살아야 편하다. 큰 차들이 대부분인 곳에 경차가 소수 껴봐야 경차만 불편하고 위험할 뿐이다. 경차 천국이라는 일본은 경차 비율이 40%다. 길거리에 경차가 많으니 도로 분위기도 경차에 맞출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10%가 되지 않는다. 대인국에 사는 소인처럼 불편할 수밖에 없다. 불편한 소수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 늘어나는데, 경차가 잘 팔리면 그게 더 이상하다.

WORDS 임유신(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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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WORDS 임유신(자동차 칼럼니스트)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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