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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이라 불리고, 케이푸드라 불리는 한국 문화가 세계를 주름잡는 시대다. 해외 진출을 했다고 하면 모두 돈방석에 앉은 것처럼 인식한다. 그러나 해외로 가는 인디 뮤직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자본의 뒷받침으로 시작하는 게 아닌, 막말로 ‘맨땅에 헤딩’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용기를 낸 아티스트들이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른바 ‘서울발 세계행 음악 열차’에 오른 네 팀을 만났다. 그들에게 응원이 필요한 때다.

UpdatedOn May 22, 2019

ADOY

ADOY

아도이는 원대한 꿈을 꾼다.
그래미 뮤직 어워드에서 아도이의 이름이 불리는 꿈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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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지(Zee), 오주환, 정다영, 박근창

(왼쪽부터) 지(Zee), 오주환, 정다영, 박근창

지(Zee) 신시사이저
아도이의 풋풋한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영어 가사를 쓴다.

오주환 기타/보컬
밴드의 프런트맨이자, 아도이의 대표 겸 매니저까지 역임하고 있다.

정다영 베이스
아도이의 홍일점. 공연장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기 멤버다.

박근창 드럼
아도이의 탄탄한 사운드를 뒷받침하는 듬직한 멤버.

 

 “내가 아는 한 ‘아도이가 제일 부자 밴드다’라고 말했다. 
 ‘그럴 거예요’라고 답했다.” 

 

한동안 계속 들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 탓도 있겠지만, 중년 나이에 마치 한창때의 청춘을 되돌아보기에 더할 나위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장의 EP <CATNIP> <LOVE>와 하나의 싱글 <YOUNG>까지 총 13개 트랙을 쉼 없이 들었다는 말이다. 맞다. 따끔거릴 정도로 피부에 와닿는 햇살의 기운, 청량하리만치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바람의 향기가 꿈꾸듯 전해지는 아도이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다. 아도이는 네 명의 청춘이 함께 펼치는, 그 시절 그때에 대한 향수이며, 어느 시절 어느 때에 대한 미래이다.

이들의 첫 EP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주변에서 “아도이 들어봤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앨범 커버가 꽤나 강렬했다. 해외의 주목할 만한 신스 팝 밴드가 등장했구나. 이런 생각으로 음악을 접했다. 한국 밴드라고 했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아도이’를 적어 넣었다. 세상에나. 스몰오와 이스턴 사이드킥으로 꽤나 하드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보컬과 기타의 오주환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프럼 디 에어포트 듀오의 지(Zee)도 멤버였다. 도나웨일과 트램폴린 멤버로 낯익은 베이스 정다영도 있었다. 오주환과 이스턴 사이드킥에서 함께 활동했던 드러머 박근창도 있다.

“현대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옥승철 작가가 저희 앨범 커버를 맡아줬어요”라고 오주환이 말했다. 아도이의 놀랍도록 싱그러운 재킷 아트워크에 대한 의문이 이내 풀린 셈이다. 옥승철은 아오키지(Aokizy)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아티스트다. 앞으로도 옥승철의 작화로 아도이의 아트워크가 진행될 거라 했다. “과거에 제가 기타 레슨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인연으로 현재까지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죠.” 오주환의 말이다. 현재 그의 작품들은 꽤나 비싼 값에 팔린다고 했다. 그럼 그와 이제는 힘들겠다고 물었다. “하하, 만날 때마다 매번 고기를 대접하고 있습니다”라며 너스레를 떤다.

각설하고 강렬한 아트워크와 함께 아도이의 트랙들은 흘러나올 때마다 청자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이 말인즉, 아도이는 이제 한국에서 꽤 잘나가는 밴드가 되었다는 의미다. 사실 멤버들에 비해 고령(?)인 오주환은 이스턴 사이드킥을 관두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음악을 더 할 것인지 말 것인지도 그런 고민의 하나였다. 일렉트로닉 음악 작법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현재의 멤버인 지를 만났다. 그가 오주환의 스승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나이를 초월한 사제 관계에서 흥미로운 음악을 함께하는 동료로 발전했다. 아도이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던 셈. 어떤 음악을 할지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오주환에게 아도이는 인생의 마지막 밴드로 설정되어 있었다. “많이 고민하던 시기에 배운 게 도둑질이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했어요.” 지금 그는 “좋은 선택이었다”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사실 잘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인디’라는 수식어를 간직한 아티스트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일 때가 많다. 에디터는 ‘먹고살 만한가?’라는 질문을 아티스트들에게 대놓고 묻는 별난, 때로는 냉정한 인간이기도 하다. “그 어느 때보다 좋습니다”라는 멤버 전원의 이구동성이 들린다. 아도이가 상당한 인지도를 구축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 대답이 그리 쉽게 도출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일종의 반전이다. 그렇다면 전원 전업 뮤지션인지 되물었다. 현재 정다영이 회사에 다니곤 있지만 조만간 관둘 거라고 했다. 모두 전업으로 음악을 하는 셈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먹먹함이 솟구쳐 올랐다. 좋아하는 음악을 해서 먹고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 이내 내 눈가는 촉촉해졌다. 아니 울컥했다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내가 아는 한 “아도이가 제일 부자 밴드다”라고 말했다. “그럴 거예요”라고 답했다. 세상 어떤 소식보다 반가운 아도이 멤버들의 답변이었다.

이렇게 국내 기반을 다진 아도이는 꾸준히 해외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정규 1집 앨범을 낼 계획이라고 했다. 그리고 10월과 11월 사이에는 아시아 8개국 투어를 준비하고 있단다. 다른 밴드처럼 유럽으로 바로 가지 않느냐고 반문해보았다. “아시아 지역에서 단단해진 후, 미국과 유럽을 두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도이는 자신들만의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하려 하고 있는 거다. 무작정 투어를 진행할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이루어야 할 원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그래미 시상식에서 수상하는 것”이다. 동시에 클럽 투어 수준이 아닌 단독 공연으로 미국 투어를 하는 밴드가 되는 게 목표라고 한다. 현재 해외 진출 수준은 단발성이라고 판단했기에, 올 하반기 아시아 투어를 시작으로 점차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 종국에는 미국 전역을 순회하는 것까지 계획하고 있다.

혹자는 이런 아도이의 꿈을 헛된 것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멤버들은 자신들의 가능성을 충분히 가늠하고 있는 듯했다. 이 목표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냐?”는 질문에 오주환은 “2년?”이라 말한다. 아마 될 거라고 한다. 이 말은 목표가 실현되도록 끊임없이 몸부림치겠다는 결의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당장 오는 7월 6일에는 아도이가 약 1천5백 석 이상 규모의 무대에서 단독 공연까지 계획하고 있다. 물론 5백 석 정도의 공연장에서 그들은 단독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단독 공연을 시작으로, 아도이는 풀렝스 앨범을 내고, 단단히 무장한 채 아시아 투어를 떠난다. 그리고 자신들의 꿈이 가득한 미국의 문을 힘차게 두드릴 예정이다. ‘Grace’의 신선함과 ‘Wonder’의 완숙함을 동시에 지니고 아도이의 사운드는 이제 세계로 나아간다.

IDIOTAPE

IDIOTAPE

이디오테잎은 그 어떤 록보다 더 로킹하다.
이 사운드를 무기로 이디오테잎은 전 세계 뮤직 페스티벌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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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디구루, 디알, 제제

(왼쪽부터) 디구루, 디알, 제제

디구루 신시사이저
디제이로서도 현재 왕성한 활동 중이다. 하지만 그는 이디오테잎이다.

디알 신시사이저
이디오테잎은 물론 국악 일렉트로닉 프로젝트 ‘무토’에서도 활동 중이다.

제제 드럼
헤비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디알의 드럼은 이디오테잎의 라이브를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어낸다.

 

 “사실 해외 시장은 1~2년 만에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지 않아요. 
 뮤직 비즈니스가 흥미로운 건, 쌓인 경험만큼 
 한 단계씩 성장한다는 점이에요.” 

 

국내 대형 록 페스티벌이 천하를 군림하던 시절, ‘록이라 치부될 수 없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세상 그 어떤 록 밴드보다 관객을 로킹하게 만들었던 밴드’. 이디오테잎에 대한 개인적 단상은 이랬다. 사실 이디오테잎은 첫 데뷔 앨범 <11111101>이 발매되던 2011년 이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은 밴드였다. 클럽 신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DJ 디구루(DGURU), 인지도 높은 프로듀서 제제(ZEZE), 펑크 밴드 슈가도넛과 모던 록 밴드 뷰렛 등에서 파워 드럼으로 잘 알려졌던 디알(DR)이 해외에서나 존재할 법했던 라이브형 일렉트로닉 밴드를 결성했다는 것 자체가 화제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이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제임스 머피의 LCD 사운드 시스템을 능가하는 음악이 한국에서 나왔다는 판단이었다. 이디오테잎은 자신들의 EP <0805>에서부터 그 가능성을 충분히 피력했다.

각종 국내 뮤직 페스티벌에서 그들은 단숨에 헤드라이너급 무대에 섰다. 그리고 이디오테잎은 한국 일렉트로닉 밴드의 새로운 역사를 썼고, 현재도 기술하고 있는 중이다. DJ 디구루와는 평소에도 친분이 있는 관계였다. 그가 라이브가 가능한 일렉트로닉 밴드를 만든다고 했을 때, ‘오, 이거 대박인데?’라는 생각이 번뜩였다. 그러던 그가 2008년 즈음 밴드를 꾸렸고, 2009년 EP 앨범을 발매했다. 이디오테잎의 무대에는 실제 드럼 사운드가 심장을 때렸고, 거대한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들이 기존 록 밴드를 능가하는 로킹 사운드를 생산해냈다. 그러니까 컴퓨터를 통해 믹스된 전자음의 파장이 아닌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리얼 사운드로 관객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렇게 이디오테잎은 울부짖는 보컬 없이도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밴드로 완전히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실로 오랜만에 이디오테잎을 만났다. 무대가 아닌 멤버 개개인과 오롯이 담소를 나눈 경우가 오랜만이라는 말이다. 그들이 해외 페스티벌에 자주 초청되고 있고, 활발하게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는 걸 디구루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차였다. 언젠가 그가 이야기했었다. “영국 리버풀에서 퓨전 페스티벌이 열려요. 과거 전쟁 당시 비행기 격납고 등이 있는 공간에서 개최되는 페스티벌인데 정말 분위기가 죽여줘요.” 또 이런 이야기도 떠올랐다. “유럽의 와이너리가 있는 작은 마을에서 열린, 페스티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지역 축제 같은 곳도 가봤어요. 마을 촌장 격인 어른이 개최하는 행사인데 외부에서도 관객이 많이 오고, 참가 팀에게는 거대한 와인이 증정되기도 해서 정말 기억에 남아요”라는 등등의 회고록. 이 기억을 떠올리며 국내 아티스트의 해외 진출 사례의 첫 번째로 이디오테잎을 선정한 것이다.

2017년 세 번째 앨범 <Dystopian>을 발매했으니 신곡 소식은 꽤 잠잠했던 차였다. 근황을 물었다. “새로운 싱글 작업 중이에요. 올해는 여러 차례 싱글을 내려 해요.” 오랜 침묵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정규 앨범이 나올 때가 되었다는 질문에, “때가 됐으니 정규 앨범을 내자. 이런 말은 꽤 고리타분하지 않나요?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해보자는 의미에서 싱글이 더 나을 것도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럼 올 한 해 동안 몇 개의 싱글을 낼 거냐는 질문에, “조심해서 말해야겠네요”란다. 옆에 있는 가족과 같은 매니저 최학송을 바라보며 너스레를 떤다. “두세 곡(?) 정도?”라 말하면서.

애초 이 기획 기사에서 이디오테잎을 불러들인 건 그들이 그 누구보다 일찌감치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렸고, 또 여전히 왕성한 투어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멤버들의 기억 속 이디오테잎의 첫 해외 공연은 2011년 3월, 토론토에서 개최된 캐네디언 뮤직 위크(CMW)였다. 그 무대에 대한 소회를 말해달라고 했다. “한마디로 조졌죠. 가뜩이나 정신없이 무대에 올랐는데 공연 중반쯤 디알의 드럼 베이스가 찢어졌어요. 이래저래 공연을 마치긴 했지만 망했죠. 하하. 하지만 그 덕에 디알은 ‘몬스터 드러머’라는 별명으로 해외 매체에 소개되었고, 또 총 5백 팀의 출연진 가운데 베스트 퍼포머 15팀 중 하나로도 뽑혔어요.” 그렇게 2011년부터 2014년까지는 해외 페스티벌 등에서 출연 요청이 꽤 왔고, 이디오테잎은 해외에서 각광받는 밴드가 됐다.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밴드 자체의 노력은 2014년경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때 우리 사비를 털어서라도 가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비자를 받지 못해 무산됐죠. 사비까지 털어서 나가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그러던 차, 그해 겨울 현재까지 함께하고 있는 해외 에이전시를 만났어요.”

이후 이디오테잎은 2016년부터 활발하게 유럽 투어를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이디오테잎은 클럽 투어보다는 페스티벌 투어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들의 해외 투어가 수익을 창출하는지 궁금했다. “해외 투어는 좌석 수보다는 횟수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한 번 나가서 얼마나 많은 공연을 하고 오느냐가 중요하죠. 사실 콘텐츠진흥원 등의 지원 없이 흑자를 낼 수 있는 국내 밴드는 거의 없을 거예요. 가장 큰 시장을 확보한 밴드 혁오조차도 공연 횟수를 늘리지 않으면 쉽지 않으니까요.” 다시 한번 매니저 최학송을 빤히 쳐다본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가성비 좋은 편이네? 그렇죠 매니저님?”이라며 분위기를 띄운다. “처음에는 저희도 손해 보는 투어가 있었을 거예요. 점차 그렇게 경험을 쌓으면서, 에이전트도 적자 공연은 거절하자라는 쪽으로 이야기했고, 저희는 현재처럼 페스티벌 위주의 투어를 하고 있어요.”

결성부터 지금까지 이디오테잎은 산울림의 ‘가지 마오’, 조용필의 ‘단발머리’ 등의 4개 트랙을 수록한 <RE>를 제외하고는 보컬이 없는 트랙들로 앨범을 채워왔다. 연주곡 위주의 앨범을 계속할 건지 궁금했다.“계속 고민은 하고 있어요. <RE>에서 시도는 해본 셈인데, 우리는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주변에서는 조금 산만한 듯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죠. 호흡이 흐트러지는 느낌이 난다고 하더군요. 이건 언제나 우리가 풀어내야 할 숙제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는 또 이디오테잎이 해외 무대에서 왕성히 활동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이에 대해 과거에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의 총괄 디렉터가 “개인적으로 너희는 한국어를 쓰지 않으니 더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며 가사 없는 게 소통 면에서 더 효율성이 좋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해외 진출을 좀 더 일찍 추진한 선배로서 현재 나가고 있고, 나가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제일 중요한 건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앞서 농담처럼 ‘파이팅!’이라고 말했지만, 길게 생각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사실 해외 시장은 1~2년 만에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지 않아요. 뮤직 비즈니스가 흥미로운 건, 쌓인 경험만큼 한 단계씩 성장한다는 점이에요. 저희의 현재 에이전트도 2011년부터 우리를 계속 지켜보다가 이때쯤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저희에게 접촉했다고 했거든요. 그러니 금방 지치지 말고 힘겹지만 꾸준하게 밀어붙이는 게 중요해요.” 의미심장한 조언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의 이디오테잎도 데뷔 후 오랜 세월 좋은 음악으로 시장을 두드린 결과이니 말이다. 현재 이디오테잎은 4월 중순 네델란드와 벨기에에서 밴드 세이수미와 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그리고 7월에 개최될 영국, 에스토니아, 헝가리의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이디오테잎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JAMBINAI

JAMBINAI

잠비나이는 한국 밴드 음악의 뉴웨이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의 것에 입힌 고유한 사운드는 완전한 융합을 통해 다시금 서양을 들썩이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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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병구, 김보미, 이일우, 심은용, 최재혁

(왼쪽부터) 병구, 김보미, 이일우, 심은용, 최재혁

병구 베이스
밴드의 막내이자 거문고와의 조화를 잘 이루어내는 연주를 들려준다.

김보미 해금
잠비나이에서 들려주는 해금은 우리가 알고 있는 틀을 완전히 부순다. 동시에 김보미는 노래도 한다.

이일우 기타, 피리, 태평소
이일우는 밴드의 프런트맨이다. 국악을 전공하면서 동시에 록 밴드를 하기도 했던 이력을 지녔다.

심은용 거문고
포스트 록에 거문고가 이렇게 조화될 수 있을까? 이게 다 심은용의 연주 덕분이다.

최재혁 드럼
한국 모던 록의 태동을 알렸던 델리 스파이스의 드러머였다. 록 밴드를 거쳐 지금은 잠비나이의 리듬 파트를 책임지고 있다.

 

 “굳이 우리를 규정하라고 한다면 
 잠비나이는 퓨전 국악을 하지 않는 팀이며, 
 무엇을 하지 않는 팀이 맞을 것 같다.” 

 

<아레나>의 이번 기사에 등장하는 네 밴드. 그중 잠비나이는 가장 생소한 팀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아도이가 신스 팝 계열의 음악을, 이디오테잎이 그나마 익숙한 일렉트로닉 록을, 세이수미가 모던 록 장르를 들려주는 것에 반해, 잠비나이는 익스페리멘털 뮤직 계열의 포스트 록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잠비나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국내와는 완전히 상반된다. 에디터는 뮤직 아티스트를 검색할 때 웹사이트 ‘올뮤직닷컴(www.allmusic.com)’을 많이 의존하는 편이다. 앞의 세 팀이 이곳에서 ‘인터내셔널’ 정도 또는 잘 검색되지 않는 것에 반해 잠비나이는 명확한 바이오그래피가 정리되어 있는 국내 밴드다.

사실 잠비나이의 음악은 완전한 대중성을 확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분명히 록 사운드를 표방하지만 우리에게조차 익숙하지 않은 해금, 거문고, 피리 등 한국 전통악기가 밴드 사운드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대체 잠비나이가 어떤 밴드이기에 이리 독자에게 다가가려 애쓰냐고 반문한다면 에디터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일단 들어보고 이야기하자”고. 그만큼 잠비나이의 음악은 새롭다. 아니 이 새로움은 전통적 익숙함의 새로운 파격에서 도출된다는 게 더 명확할 것 같다. 그들의 2010년 EP <잠비나이>, 2012년 1집 <Difference(차연)>, 2016년의 2집 <A Hermitage(은서)>를 먼저 들어보길 권한다. 그럼 왜 이 지면에서 거품 물고 잠비나이를 논하는지 동의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올뮤직닷컴은 잠비나이의 장르를 ‘한국 전통악기가 곁들여진 포스트 록’이라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멤버들은 “한국에서는 우리를 퓨전 국악이라고 부른다. 또 해외에서는 필진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큰 장르를 중심으로 포스트 록인데 전통악기를 사용하는 팀, 또는 둠 메탈에 그런 시도를 하는 팀으로 소개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잠비나이 스스로 자신들의 음악을 공식화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결성 자체가 뭘 해보자는 것보다는 퓨전 국악, 국악으로 하는 팝송 또는 클래식 등을 하지 말자라는 데 있었다. 굳이 우리를 규정하라고 한다면 잠비나이는 퓨전 국악을 하지 않는 팀이며, 무엇을 하지 않는 팀이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사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국악원 동기인 이일우, 김보미, 심은용은 잠비나이를 시작하면서 이와 같은 해외의 놀라운 반응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해외 공연에 대해서는 “가능할 거라곤 생각했죠. 국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의 경우 이런저런 문화 행사의 일환으로 해외 공연을 하니까요” 정도로만 생각했다고. 현재처럼 이토록 치열하고 가열차게 해외 무대에 설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해보고 싶었고, 주변에서도 이 음악에 대해 싫어하거나 아예 무관심한 분위기였다고. 그런데 거의 10년이 지난 이들에 대한 반응은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국악계에서 ‘뻘짓한다’는 반응이 나올 거라고도 예상했어요. 처음부터 이런 반응에는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하자는 결의가 있었죠. 지금도 같은 생각이에요. 더욱이 그런 욕을 먹었을 때 우리 스스로는 잘하고 있음을 확신하기도 했어요.”

잠비나이의 첫 해외 공연은 2013년 5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최된 월드 뮤직 페스티벌이었다. 그때의 감흥에 대해 멤버들은 “국악은 다른 음악 전공에 비해 해외 공연 기회가 많아요. 그래서 잠비나이의 공연도 가볍게 생각했죠. 일회성 이벤트 정도? 연속성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거죠. 반신반의하면서 갔는데 1집 타이틀 곡이었던 ‘커넥션(Connection)’을 연주할 때였어요. 사람들이 곡에 맞춰 박수를 치는 거예요. 꽤나 감동이었죠. 그리고 우리가 가져간 CD 50장이 순식간에 다 팔린 거예요. 마니아가 좀 생겨난다면 저희의 해외 투어가 지속될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라고.

그러니까 잠비나이는 이 공연을 시발점으로 꾸준하게 해외 투어 및 페스티벌 무대에 서고 있다. 약 6년에 걸친 잠비나이의 투어로 인해 해외 유명 에이전시와 공식 계약을 맺게 되었고, 오는 6월 오랜 시간 끝에 선보일 3집 앨범 <온다(ONDA)>를 전 세계 동시 발매할 예정이다. 2018년 말 발표한 싱글 <Square Wave>를 듣고 궁금한 게 생겼다. 다름 아닌 잠비나이 음악에 보컬을 입힐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물론 연주곡 위주의 팀이었기에 해외 시장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보컬을 입히니 잠비나이의 음악이 더 풍성해졌다. “새 앨범에는 보컬 트랙이 좀 많이 들어갔어요. 굳이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건 아니지만 조금 더 쉽게 들을 수 있는 보편성을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다고 전작들과 분위기가 확 달라지진 않았어요. 단지 전작들에서 보강해야겠다고 의도한 것들을 더한 것뿐이죠.”

신작 발표와 함께 잠비나이는 더욱 더 맹렬하게 해외 투어를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지금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시점에 잠비나이는 세계 최대 뮤직 페스티벌 중 하나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2019’ 무대에 오르고 있을 것이다. 과거 글래스턴베리 초청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잠비나이. 그들은 올해 한국 시장을 더 견고히 다지고, 지속적 해외 진출을 통해 널리 알려질 것이 분명하다. 참, 잠비나이의 음악은 음반으로 들었을 때와 공연장에서 만날 때의 감흥이 완전히 다르다. 만일 이들의 사운드를 귀로만 들었을 때 조금 난해하다고 생각된다면, 당장 공연장을 찾아가보길 바란다. 왜냐고? 극악무도의 헤비니스 음악들로 채워진 프랑스 헬페스트에 초청될 만큼 묵직하면서도 서정적인 사운드가 당신의 사지는 물론 오감마저 완전히 마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비나이는 현시점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밴드임에 틀림없다.

SAY SUE ME

SAY SUE ME

오늘도 세이수미는 유럽의 어딘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40일간의 투어 일정 속에서 그들은 다시금 성장해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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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하재영, 최수미, 김창원, 김병규

(왼쪽부터) 하재영, 최수미, 김창원, 김병규

하재영 베이스
베이스를 맡고 있으며, 푸근한 외모로 밴드 내 유머를 담당하는 듯하다.

최수미 보컬/기타
밴드의 홍일점이자 프런트맨이다. 세이수미의 영어 가사는 그녀가 만든다.

김창원 드럼
베이스 하재영과 함께 세이수미의 리듬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김병규 기타
최수미와 함께 밴드를 태동시킨 원년 멤버다. 세이수미 모던 록 사운드의 원동력.

 

 “지금까지 해온 걸 하긴 하는데, 
 저희 스스로는 물론 듣는 이들이 조금씩 
 발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뭔가를 해야겠죠.” 

 

2014년 세이수미의 데뷔 앨범 <We’ve Sobered Up>이 발매되었다. 첫 트랙 ‘To Be Wise’를 플레이하자 오랜만에 들썩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세이수미의 사운드 속에는 1990년대에 동경하던 인디 록의 유산이 고스란히 내재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경쾌한 사운드에 가끔 어우러지는 노이즈, 청아한 듯하면서도 서정적 우울을 내포하고 있는 보컬.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 역시 그 유산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세이수미의 트랙들이 레트로 열풍에 편승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했던 과거 밴드들을 유산 삼아 오롯이 자신들의 색채를 풍기는, 그래서 반갑게 맞이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세이수미의 데뷔 앨범을 반복적으로 들었다. 순간 ‘세이수미가 한국 밴드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단순히 영어 가사로 만들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들의 음악은 전 세계 누가 들어도, 괜히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아도 무방한 요소들로 가득했기에 그런 느낌이 든 게 아닐까 싶었다.

당장 레이블 일렉트릭 뮤즈의 김민규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산 출신의 혼성 4인조 밴드라고 했다. 부산에서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고, 해외 투어를 열심히 다닌다는 전언이었다. 그리고 5년의 세월이 흘러 드디어 세이수미를 대면했다. 공연 무대가 아닌 인터뷰에서 만난 밴드 멤버들은 음악처럼 거침없기보다는 친숙한 경상도 사투리에 수줍음 가득한 청춘들이었다. 첫 만남이니 가장 궁금한 건, 프런트맨 최수미의 이름이 고스란히 들어간 밴드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서였다. “특별한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처음에 멤버들 이름 이니셜에 S와 M이 모두 들어 있었거든요. 그런 조합을 고민하던 찰나에 부산의 친한 외국인 친구가 ‘세이수미’가 어떻겠느냐고 했어요. 그냥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하하. 특히 보컬인 제가 힘들어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전 음악도 해본 적이 없고, 그냥 심심풀이 밴드였는데, 제 이름이 팀명에 들어가니 자신감도 생기더라고요.” 이렇게 네 명의 멤버가 구성되었고, 그들은 2018년 2집 앨범 <Where We Were Together>를 발표했다. 세이수미가 발표한 앨범은 엘튼 존이 진행하는 애플 비츠원(Apple Beats 1) 팟캐스트에서 언급되었고, 전 세계 인디 뮤직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웹진 <피치포크 (pitchfork.com)>에도 소개되었다. “사실 좀 놀라긴 했죠. <피치포크>의 별점이 그리 높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동경하던 매체에 언급된 것 자체가 신기했거든요.” 밴드의 수줍은 반응이다.

세이수미의 음악에 대해서는 서프 록과 모던 록이 결합된 장르라고들 한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고자 할 때 말이다. “솔직히 서프 록에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단지 우리가 부산 광안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니까 그런 수식어가 붙은 것 같아요. 멤버 모두 1990년대 미국 인디 팝과 록을 좋아해요. 굳이 저희의 장르를 분류하자면 인디 팝, 록 쪽 성향이 강하겠네요.” 그래서 밴드가 좋아하는 해외 밴드에 대해 물었다. “요 라 탱고, 페이브먼트 등을 아주 좋아해요”란다. 세이수미의 정규 앨범 두 장과 EP 앨범 등을 들어보면 그들의 음악적 지향점이 어디에 위치했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이들과 만난 건 2019년 펼쳐질 해외 투어의 대장정을 신고하는 3월 30일 ‘세이수미 월드투어 성공기원 출정식’의 리허설 무대 직전이었다. 공연을 위해 부산에서 상경한 멤버들과 대기실에서 만난 것. 그리고 곧장 그들은 일본 공연을 간다고 했다. 지금이면 아마 그들은 작년에 이은 40여 일간의 영국, 유럽 투어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사실 세이수미에게 2018년은 아주 각별한 한 해가 아닐 수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해외의 좋은 평가도 얻어냈고, 올해처럼 장기간의 해외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이다. “해외 무대라고 완전히 다르진 않아요. 최근 공연이 대만이었는데, 진짜 내가 음악을 하면서 여기서도 공연을 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아직 신기해요”라고 말한다.

사실 세이수미는 해외 투어 도중 불미스러운 사건을 당하기도 했다. 유럽 투어 도중 강도를 맞아 그들이 공연장에서 얻은 머천다이징 판매 수익분을 강탈당한 게 바로 그것. 멤버들과 소속사 대표는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큰돈은 아니지만, 인디 밴드로서 고된 투어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들에게는 엄청난 액수였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온라인 펀딩을 통해 세이수미는 이번 해외 투어를 위한 경비를 일정 부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이번 기사의 밴드들은 한결같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들은 그 금액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기에 더욱 그랬을 터다. 하지만 세이수미는 여전히 굳건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휴식이 있는 강행군이지만 이번 투어에 임하는 자세는 아주 결연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터에 세이수미 멤버들에게 ‘당신들은 전업 뮤지션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머뭇거리며 맞다고 했다. “사실 1집을 발매한 이후 직장 다니면서 주말이면 서울에 와서 공연을 했어요. 진짜 힘든데, 돈도 되지 않는데, 그래도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까 재미있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젊었으니까. 몸은 죽을 것 같은데 그 재미로 모든 게 감당이 되었어요. 조금 더 밴드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 모두 전업 뮤지션이 되었어요. 2집을 발표하면서 그렇게 결심한 거죠”라고 말하며 “아직은 금전적으로 힘든 것 빼곤 모든 게 다 좋아요”라고 답했다. 사실 세이수미 정도의 밴드가 해외 투어를 한다고 해서 큰 수익이 발생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투어가 펼쳐지는 클럽, 공연장, 페스티벌에서 출연 개런티를 받고 공연을 한다. 그 개런티는 대부분 이동 경비, 숙식비 등으로 소진된다. 그렇다면 밴드의 오롯한 수익은 앨범이나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에서 발생한다. 세이수미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을 두드리는 많은 밴드들의 사정이 그렇다. 그래서 이들에게 정부 및 기업 차원에서 행하는 지원 사업은 꽤나 소중하다. 밴드들의 비행기 티켓 경비라도 일정 부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세이수미는 쉴 틈 없이 자신들의 여정을 위해 박차를 가해왔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나아갈 행보가 기대되는 밴드임에 틀림없다. 밴드의 음악도 꾸준하게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음악을 만들어낼 때의 상황, 감정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거죠. 못하는 걸 억지로 할 수는 없으니까요. 앞으로도 크게 유별난 점은 없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해온 걸 하긴 하는데, 저희 스스로는 물론 듣는 이들이 조금씩 발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뭔가를 해야겠죠.” 이런 말처럼 세이수미는 현재 성장통을 겪고 있다. 음악이라는 꿈을 위해 현실적 아픔을 감내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세이수미의 해외 시장 진출은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정말 형편없는 시설의 클럽에서도 공연할 수밖에 없었던 2018년의 유럽 투어에 비해 2019년 오늘의 세이수미는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이런 세이수미에게 경배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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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주영
PHOTOGRAPHY 김선익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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