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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itique

PB 상품의 역습

4년 전 허니버터칩으로 발발한 PB 상품이 우리의 일상 곳곳을 역습하고 있다.

UpdatedOn October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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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하반기 뜨거운 감자였던 허니버터칩 대란이 국내 상품 소비 시장을 흔들었다. 대중은 가격과 상관없이 허니버터칩이 있는 곳이라면 대형마트, 편의점, 동네 슈퍼마켓, 중고나라 등 대상을 가릴 것 없이 열광했다. 이와 유사하게 패딩 재킷 하나에 또 한 번 전국이 들썩였다. 일명 ‘평창 굿즈’라 불리는 단순한 올림픽 기념상품들은 없어서 못 팔 지경에 이르렀고, 웃돈을 주면서까지 구매를 했다. 일부 팬덤 문화에서 시작된 ‘굿즈’는 상품을 구매하면서 소통과 공감, 유대감을 형성하는 특징이 있으며 오늘날 형성된 가치 소비를 대변한다.

이 몇몇 대란으로 유통 시장은 깨달음을 얻었다. 플랫폼에서 상품 차별화의 중요성과 함께 플랫폼과 콘텐츠 사이의 헤게모니가 점차 콘텐츠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유통업체들은 기존 브랜드의 상품들을 위탁 판매하는 것을 넘어 콘텐츠를 담아낼 수 있는 자체 개발 상품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일반 제조업체의 브랜드를 가리키는 NB 상품(National Brand)과 대조적으로 독자적으로 기획하고 생산해 자체 상표를 부착하고 판매하는 상품인 ‘Private Brand’, 즉 PB 상품의 역습이 시작됐다.

오래전부터 존재한 PB 상품은 현재 3세대로 분류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PB 상품이 발달한 곳은 영국과 일본, 미국이다. 1880년 유통업체로서 세계 최초로 PB를 개발한 곳은 영국 식품 유통업체 세인즈버리(Sainsbury)다. 이후 1920년대에 이르러 미국 체인 스토어들이 대형화하며 유통업체들의 판매력이 강해지자 이들은 대규모 제조업체에게 대항하였고,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PB 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일본 체인 스토어 또한 경기가 불황을 겪자 제조업체를 제어하는 대신 직접 생산하는 PB 상품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해왔다. 이렇게 유통업체가 저성장 위기에 봉착했을 때 강화했던 전략으로 운영된 것이 1세대다. 과거 유통업체에게 PB 상품은 NB 상품과 품질이 비슷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상품을 제공한다는 의미에 그쳤고, 제조사도 공장 생산 라인이 비어 있을 때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한 제품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이 와중에 영국의 테스코는 단순히 가격 경쟁력만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상품 차별화 관점으로 PB 전략을 추진했다. 테스코의 PB는 고급 파이니스트(Finest) 라인, 중급 스탠더드(Standard) 라인, 저가인 밸류(Value) 라인으로 구분해 소비자의 다양한 소비 패턴을 흡수하려 했다. 즉, 동일 상품 카테고리에 다양한 PB 상품을 선보였고 가격은 상품 카테고리의 성격에 따라 매우 큰 차이를 보였다. 이렇게 카테고리를 구분한 것이 2세대 PB 상품이다. 테스코는 점포 양극화 운영 방식으로 2004년까지 연평균 12.9%의 매출 성장률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10년 동안 시장점유율을 10.3% 끌어올리며 시장 2위에서 1위로 등극하였다.

PB 상품 강화가 유통업체에 유리한 점은 소비자의 가격 저항감을 낮춰주는 것이다. PB 상품은 가격과 상품 차별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PB 상품은 오늘날 양극화된 소비 성향에 유리한 입지에 서 있다. 통상 PB 상품은 저가로 시작하여 점차 프리미엄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이는 양극화 현상에 걸맞은 상품 포트폴리오를 유연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통업체에 경쟁력을 부여한다.

디자인, 예술, 음악, 문화 등 감도 높은 감각을 선보이고 있는 10 꼬르소 꼬모의 큰 매력 중 하나도 PB 상품이다. 화가 크리스 루스가 그려낸 고유의 감성이 공간, 포장재와 같은 아이덴티티 블렌딩을 넘어 PB 상품에도 입혀지니 더욱 많은 고객이 고가의 마지노선을 넘을 수 있었다. 그리고 10 꼬르소 꼬모 서울은 최근 10주년을 맞아 10개의 브랜드와 협업하여 더욱 특별한 PB 상품을 선보였다.

유명을 달리한 패션 디자이너 퀴튀리에 아제딘 알라이아의 마지막 협업이 된 로고 티셔츠를 시작으로, 더블렛 특유의 자유로운 자수를 더한 PB 에코 백, 그리고 이들과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맺어온 컨버스, 포르나세티와 더불어 99퍼센트이즈, 비앙카 샹동, 아스티에 드 빌라트, 젠틀몬스터, 베어브릭 등의 브랜드로 구성되었다. 이토록 뜨거운 브랜드들과 함께 출시한 PB 상품들은 10 꼬르소 꼬모의 폭넓은 관점을 부각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제 PB 전략은 단순한 논리를 넘어 PB 상품의 품질과 가치가 시장 경쟁력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NB 상품보다 가격이 높은 PB 상품이 등장하고 있으며 프리미엄 제품도 나오고 있다. 최근 일본, 영국,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런 요소가 시장에서 정착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 PB 상품을 고가품의 명성을 이용해 중급품을 판매하는 트레이딩 다운(Tradiong down)으로 여겼으나, 지금은 하나의 브랜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처럼 PB 상품은 가격이 저렴한 상품을 찾던 ‘대안’에서 또 하나의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1995년에 탄생한 코스트코의 자사 브랜드 컬크랜드는 신선 채소, 냉동 피자, 아이스크림을 비롯한 식품부터 화장지, 물티슈 등 생필품, 비타민, 청바지, 침대보 등 할인점에서 다루는 거의 모든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컬크랜드는 코스트코 전사 매출액의 23%를 차지하고 있으며 브랜드 가치는 약 7조3천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코스트코 브랜드 가치가 10조5천억원으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PB 상품인 컬크랜드는 코스트코 사업의 핵심임을 방증한다. 컬크랜드 브랜드가 코스트코의 강력한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합리적 소비 패턴에 최적인 상품을 추구한 데 있다. 이를 통해 컬크랜드는 고객의 신뢰를 이끌어내었고 합리적 소비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컬크랜드 브랜드는 최고급 상품이 아니지만, 어느 상품을 고르더라도 평균 이상의 품질과 저렴한 가격을 보장한다.

국내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인 곳은 이마트다. 일찌감치 이마트는 1997년부터 이플러스라는 저렴한 PL(Private Label)이 있었다. 대형마트의 편리한 이점에서 유통 절차와 마케팅을 줄여 소비자가를 낮추었지만, 오히려 대부분 소비자가 저렴한 가격을 의심했기에 이마트는 이러한 소비자의 선입견을 깨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2012년 하반기부터 이마트의 PB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자 했지만 순탄치 않았다. 난항을 겪던 이마트는 자신들과 협업해 상품을 만드는 제조사들을 찾아보며 답을 찾기 시작했다.

이플러스 때부터 이마트에 국수 면발을 납품했던 풍국면은 알고 보니 1933년 대구에서 시작해 제일제당을 비롯한 유명 식품 브랜드에 납품하던 기업으로 80년 이상 숙련된 장인이 계속 국수를 만들고 있었다. 꿀은 양봉꾼들이 국내에서 가장 먼저 아카시아가 피는 제주도에 내려가 채밀한 천연 벌꿀이었고, 우유와 된장과 같은 식품들도 지역 곳곳에 숨은 장인들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당시 이 프로젝트를 맡았던 신세계그룹 브랜드 전략팀은 브랜드에 가려 미처 보지 못했던 생산자와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를 기점으로 이마트는 PB 상품의 구분을 달리하고, 각각의 상품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피코크는 1970~80년대 신세계백화점에서 판매하던 자체 브랜드 의류 상품으로 ‘피코크 와이셔츠’가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신세계백화점에서 사라졌던 피코크는 2013년 이마트에서 식품 브랜드로 부활했다. 가정 간편식 상품 HMR(Home Meal Replacement)을 내놓은 것이다. 맛의 품질과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인기를 얻으며 1백20여 개 상품은 동일 제품군 매출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승승장구 중이다. 또한 가장 최근에 시작된 노브랜드는 마니아층이 있을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형성하고 있다. 콘텐츠를 통한 PB 전략으로 유통 시장의 헤게모니를 선점한 것이다.

‘유통’은 결국 ‘부동산 사업’과 구조가 유사하다. 유동인구 또는 트래픽을 만들어내거나 선점하여 고객을 유입하고 수익을 발생시키는 구조다. 그리고 땅값에 비례하여 외지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역시 비슷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3세대로 진화한 PB 상품의 규제 없는 성장이 되레 중소기업을 고사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로 두부, 고추장 사업 등에 뛰어들었던 대기업은 관련 사업을 축소하거나 아예 철수했지만 편의점과 대형마트는 PB 상품이라는 이유로 이 같은 제재에서 자유로운 몸이 됐다.

물론 구조의 이면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아마존이 약 1백 개가 넘는 레이블 브랜드들과 PB 상품들로 미국 온라인 시장을 조용히 잠식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PB 상품은 시장 규제를 교묘히 피한 ‘꼼수’로 변이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PB 상품들은 수없이 생기지만 또 수없이 사라지고 있다. 이젠 단순히 저렴해서 PB 상품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명분이 있고, 당위성을 가지고, 이야기가 담긴 것만이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렇게 PB 상품은 성장통을 겪으며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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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서동현
WORDS 김한규(르시뜨피존 대표)
ILLUSTRATOR HeyHoney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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