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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 SOKCHO PLACE

속초 뉴 웨이브

On July 12, 2018 0

그 여름, 속초에서 젊고 푸른 파동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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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칠성조선소

최윤성 대표는 바빠 보였다. 칠성조선소(@chilsungboatyard)의 문턱을 넘는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하고 이야길 나눴다.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지냈어요, 여기 내 친구를 소개할게요, 다음 음악 페스티벌 때 이곳에서 공연하고 싶대요. 얼마 전 칠성조선소에서는 음악 축제가 열렸다. ‘제1회 칠성조선소 뮤직 페스티벌’. 씽씽밴드, 새소년, 파라솔, 김목인, 강산에를 비롯해 일본의 밴드 유어 쏭 이즈 굿(Your Song Is Good), 에머슨 기타무라(Emerson Kitamura) 등이 라인업이었으니, 놀 줄 아는 젊은이들이 곳곳에서 모여들었다. 칠성조선소는 1952년에 지어졌다. 한국전쟁 때 속초로 피란을 온 할아버지가 조선소를 짓고, 아버지가 대를 이은 조선소가 그 아버지의 아들에게까지 전해졌다. 칠성조선소 대표 최윤성은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해외에서 유학한 뒤 속초로 돌아왔다. 정부가 목선 대신 강화 플라스틱(FRP) 배의 제조를 지원하면서 속초의 조선업이 쇠퇴한 후였다. “2013년에 아내 백은정과 함께 속초로 돌아왔어요. 선박 브랜드인 와이크래프트보츠를 시작했죠. 레저용 카누, 카약을 만들어 선보였어요.” 창고에 전시된 붉은 카누에 앉은 먼지를 매끈하게 닦아내며 최윤성 대표가 말했다. 그가 만들었다는 카누는 마치 페라리의 붉은 클래식 카처럼 보였다. “한국에서 시장성이 희박한 레저용 선박 사업을 수입이 한푼도 없는 상황에서 이어가기는 쉽지 않았어요.” 최윤성이 지금 속초에서 가장 뜨거운 카페가 된 ‘칠성조선소 살롱’을 오픈한 이유다. 카페 공간은 칠성조선소가 조선업을 하던 시절, 최윤성의 가족이 살던 주거 공간이었다. 이 집을 리모델링해 커피를 팔기로 한 것이다. 외벽의 벗겨진 페인트, 노출된 잿빛 콘크리트, 낡은 바닥과 나무 문 등을 모두 그대로 두고 내부만 조금 다듬었다. 조선소이자 아버지의 작업실이었던 건물은 ‘칠성조선소 뮤지엄’으로 새 단장했다. 마찬가지로 60년 세월이 묻은 건물의 곳곳을 그대로 살려뒀다. 칠성조선소 살롱은 흥했다. 이제는 젊은 여행자들이 속초 여행에서 반드시 들르는 코스가 됐다. 언젠가 세계 해양업계 미래를 선도하고자 했던 조선소는 지금 어린아이, 젊은 크리에이터, 놀기 좋아하는 어른, 호젓한 시간을 찾아 속초에 온 여행자 모두를 위한 놀이터로 변모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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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와이에이티

소확행. 무라카미 하루키가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썼던 이 말이 문득 생각났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된 속옷을 볼 때 인간이 느끼는 작고 확실한 행복 말이다. 와이에이티(@youarethirsty)는 설악산 동쪽 자락에 위치한다. 윤을 내지 않은 새카만 벽돌 외벽의 단층 건물인데, 단정하게 깎은 잔디와 소년의 키만 한 낮은 꽃나무가 있는 정원과 어울린 모습이 소담하다. “와이에이티(YAT)는 ‘You Are Thirsty’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에요. ‘사람들은 카페에 왜 갈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해 이름을 찾다가 불현듯 ‘목마르니까 가지’라는 답에 이르렀죠. 영어로 문장을 써보고 다시 그 약자를 꼽아보니, 위트가 생기더라고요. 그 느낌이 좋아서 별 고민 없이 이름으로 택했어요.” 이제 문을 연 지 2개월이 된 와이에이티에는 요즘의 날 선 감각들이 무심하게 흐른다. 프랭크 오션의 음악, ‘032c’의 포스터, 제프 월의 사진, 암스테르담이거나 베를린이거나 LA에서 건너온 서적들까지. 지금껏 속초에 없던, 정교하게 다듬어진 감각적인 공간이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서울에서 VMD로 일했던 대표 김민지가 공간을 설계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 지역의 고즈넉한 풍경을 와이에이티 안으로 끌어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김민지는 자신이 좋아하는 감각들로 꽉 채운 이 공간에 정방형의 투명한 창을 크게 내고 속초 풍경을 들여왔다. 창가 자리에 앉으니, 마치 무성한 나무와 풀들 사이에 앉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가 우리 집이었어요. 중학생 때부터요. 속초 시내 아파트에 살다가 ‘내 공간’을 갖고 꾸리고 싶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가족 모두 이 한적한 곳으로 이사와 집을 짓고 살았죠. 학교에서도 멀고 통학할 수 있는 버스도 1대뿐이어서 그땐 무척 싫어했어요.(웃음)” 대학 진학과 동시에 독립하여 서울로 생활 터를 옮겨서도 그녀는 한 달에 서너 번은 이 집에 왔다. “주말이면 속초 집으로 와서 멍하니 앉아 있곤 했어요. 창밖으로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를 촘촘하게 느끼면서요. 이곳에서 모두 내려놓고 즐기던 여유에서 삶의 동력을 얻은 것 같아요.” 김민지는 설악산 자락의 이 자리에서 사계절을 만끽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안다. 그녀는 맛있는 커피, 고즈넉하고 모던한 멋, 조용한 분위기까지, 이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공식을 찾아 와이에이티를 완성했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도 입력하지 않고, 설악산 주변을 맴돌다 우연히 찾게 되길. 그러면 더욱 행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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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크래프트 루트

크래프트 루트(@craftroot)는 속초시 노학동에 있다. “속초 사람에게 노학동은 강릉 가는 길, 딱 그 정도예요. 멀고 외졌죠.” 그래도 맥주 양조 산업을 하기에는 이만한 공간이 없다. 양조에 필요한 물류를 트럭째 싣고 내릴 수 있는 넓은 주차장, 재료와 자재를 가득 저장하고 거대한 양조 시설을 설치하기에 충분한 약 529㎡(160평)의 지하실과 지상 층까지. 게다가 맥주 양조는 굴뚝 없는 제조업이다. 산과 바다, 호수의 도시이자 관광업이 발달한 속초에 잘 어울리는 산업인 것이다. 속초 최초의 크래프트 브루어리인 크래프트 루트는 이곳에서 속초 IPA, 동명항 페일 에일, 대포항 스타우트 등 지역색을 드러내는 이름을 붙여 맥주를 생산한다. 크래프트 루트 브루잉 컴퍼니의 대표이자 건축가이기도 한 김정현은 속초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서울로 거주지를 옮겼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속초의 관광 산업에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 속초로 돌아와 관광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은 김정현의 오랜 꿈이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어서 이런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했어요. 속초가 너무 바다, 산에 의존해 단편적인 관광 산업만 추구한다고요.” 크래프트 루트는 서울 익선동에 위치한 펍 크래프트 루와 형제다. “펍으로 1차 소비자를 만나는 사업부터 하면서 시장의 흐름을 읽고 양조 사업이 가능할지 판단한 후 양조장을 열었어요.” 크래프트 루트를 시작하던 당시 김정현은 10배치, 무게로 따지면 10톤에 달하는 맥주를 버렸다.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 수준이 이 정도까지 올라왔다는 걸 증명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예요. 10배치의 맥주를 버린 이유이고요. 팔 수 있는 맥주였지만, 가장 좋은 걸 만들고 싶었으니까. 얼마 전에도 3배치를 버렸어요.” 외진 곳이지만, 속초 시청에서 차로 15분이면 닿는다. 창밖으로는 설악산 자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저 멀리 울산바위도 보인다. 설악산 등반을 즐기는 중장년층만 지나다니던 이 길목은 젊은 ‘맥덕’들이 반드시 들르는 속초의 맥주 스폿이 됐다. 김정현은 말했다. “이곳에 맥주 사업을 끌고 온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젊은 속초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요즘은 교육과 투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속초 사람들을 대상으로 맥주 양조 교육을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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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문우당 서림

문우당 서림(@moonwoodang_bookshop)은 1984년에 문을 열었다. 글월 문(文), 벗 우(友), 집 당(當) 자를 써서 문우당이다. 이민호 대표가 35년 전, 약 16㎡(5평) 남짓한 공간으로 시작한 문우당은 점차 규모를 늘려 지금의 모습이 됐다. 2000년에 접어들며 집집마다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서점은 사양 사업이라 여겼던 시대에도 문우당은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옛날 동네 서점들은 모두 쇼윈도 쪽에 잡지 포스터를 붙였어요. 문우당도 처음엔 그랬는데, 언젠가 아버지가 그걸 다 떼어버리고 그 창가에 의자를 뒀대요. 책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제가 아주 어린 아기일 때의 일이죠. 아버지는 좀 다르게 하시는 걸 좋아했나 봐요. 전자 포스 시스템도 속초에서 가장 처음 도입하셨고, 손님들에게 문우당이라는 이름을 적은 종이로 책을 싸주시기도 했죠. ‘브랜딩’이라는 개념을 모르셨을 텐데 말이에요.” 문우당 서림의 디렉터 이해림이 말했다. 이해림은 문우당 서림에서 각종 기획과 디자인을 디렉팅 및 큐레이팅하고 있다. 설립자인 이민호 대표의 딸이다. 확고한 신념을 쥐고 고향으로 돌아온 다른 ‘리터너’들에 비하면 이해인은 ‘어쩌다 보니’ 속초에 돌아온 것에 가깝다.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고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아버지가 서점의 오래된 구석을 바꾸고 싶다며 도움을 청하셨어요. 조금씩 도와드리다 결국 두 팔 걷어붙였죠.” 문우당 서림은 이해인 디렉터의 진두지휘 아래 리뉴얼을 진행하며 멀끔한 새 옷을 입었다. 그는 문우당 서림의 새 로고도 디자인했다. “아버지의 서점은 단지 책만 파는 곳이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모이고 나누고 즐기고 머무는 사랑방에 가까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문, 우, 당. 이 글자 사이에 우리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해림은 문우당 서림에 ‘책과 사람이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었다. 그런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 서점 곳곳을 새로운 콘텐츠로 채웠다. 학생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글쓰기 수업, 시 낭송회와 음악회,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무료 한국어 수업 등 사랑방 역할을 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손님이 숨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은밀한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심야 책방과 북 플리마켓 등 속초에 없던 새로운 결의 문화적 활동들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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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  완벽한 날들

편집 서점과 게스트 하우스, 카페 공간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날들(@perfectdays_sokcho)에는 책을 매개로 한 만남과 쉼이 공존한다. 속초를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북 스테이’라 불리며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책방 겸 게스트 하우스로 꽤 알려졌다. ‘완벽한 날들’이라는 이름은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가 쓴 산문집 <완벽한 날들>에서 따왔다. ‘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메리 올리버가 <완벽한 날들>에 쓴 이 문장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방식의 대안적 삶에 관한 예찬과 철학이 담겨 있다. 이는 완벽한 날들이 지지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이곳을 꾸려가는 이는 속초가 고향인 최윤복과 그의 아내 하지민이다. 최윤복은 경기도의 한 NGO에서 인권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직장인이었다. 사람들이 경험과 지성, 삶을 나누는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꾼 최윤복은 더 늦기 전에 그 꿈을 실현하고자 속초로 돌아왔고, 아내와 함께 ‘완벽한 날들’을 열었다. “오픈 후 1년 동안은 북 콘서트, 그림책의 원화 전시회, 인디 가수들의 공연, 영화 상영회, 글쓰기 모임 등 해보고 싶은 걸 다 했어요.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숨 고를 시간이 필요했어요. 방향을 조금 바꾸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만든 모임은 지양하고, 지역 주민의 자발적인 모임에 초점을 맞추어야겠다고요. 가까운 주민들의 끈끈한 네트워크를 다져나가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서점에는 무겁고 진지한 책들부터 가벼운 에세이류의 베스트셀러까지 다양한 책을 진열했다. 큰 책방이 아니기에, 책을 고르고 진열하는 방식에 관해서는 계속 고민 중이지만 지금은 최윤복과 하지민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담은 인문 서적들과 여행자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중심으로 선보인다. “손님이 많지 않아 늘 운영을 걱정하고 있지만 우리의 존재를 고마워해주시는 분들, 이 공간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분들이 분명 있어요. ‘완벽한 날들’을 꾸려나가는 힘이죠.” 1인실, 2인실, 6인실로 구성된 게스트 하우스에는 TV 대신 빔 프로젝터를 두어 밤마다 영화를 즐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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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동아서점

포근한 빛으로 가득한 이 서점에서는 모두가 조용히 걸었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각자 책에 골몰한 듯했다. 이번 속초 여정에서 3곳의 서점을 만나기로 했다. 주변에선 속초의 서점을 이야기하려면 동아서점(@bookstoredonga)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동아서점은 1954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3대를 이어오며 운영 중이다. 지금은 약 397㎡(120평)에 달하는 면적이지만 초기에는 약 66㎡(20평) 규모로 시작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이 서점을 책임지게 된 김영건 매니저 역시 서울에서 공연 기획 일을 하다 속초로 돌아온 ‘리터너’다. 김영건이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서점이 보유한 모든 책을 비워내고 다시 채우는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점은 학습 참고서 위주로 영업하고 있었어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학습 참고서의 비율을 70%에서 30%로 줄이고, 단행본 비율은 30%에서 70%로 늘렸어요. 저는 불문학을 전공했고 책을 읽는 즐거움으로 살아왔어요. 학습 참고서를 팔면서 행복하기는 힘들 것 같더라고요. 정말 모든 책을 다 반품하고 0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학습 참고서의 비율이 전체 서가의 10%에 불과하다. 동아서점은 도매상으로부터 책을 배본받지 않는다. 도매상이 배본하는 책은 대개 온라인 집계 기준의 베스트셀러가 포함된다. 김영건은 이를 믿을 만한 지표로 여길 수 없어 국내의 모든 신간들 중 입고할 책을 직접 고른다. “일반적인 서가 분류법을 따르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어요. 조금씩 정비한 결과 지금은 동아서점이 지닌 책 중 99%가 ‘이유 있게 진열된 책’이라고 생각해요.” <눕기의 기술>이라는 책을 김영건은 ‘쓸데없이 고귀한 기술들의 목록’이라는 이름의 서가에 꽂아뒀다. 보통 서점들이 인문 교양 코너에 진열하는 책이다. 이 코너는 손님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서점에는 어떤 것을 경험하려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책을 만나는 경험의 맥락을 조금 더 다양화하고자 한 거죠.” 동아서점은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은 지양한다. 누구나 언제든 서점 문을 열고 책을 고르고 구매하는 일에 걸림돌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서점이 커뮤니티화되면 매 순간 서점 본연의 기능을 완전히 수행하기 어려워지니까. 김영건이 꿈꾸는 동아서점은 책을 고르는 재미가 있고, 몰랐던 책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종합 서점이다. “다만 출판사와의 협업 기획전이나 작가와의 대화 등은 진행합니다. 출판사와의 협업 기획전은 다양한 출판사의 결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2015년부터 꾸준히 하고 있어요. 지금은 매거진 B와 기획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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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속초에서 젊고 푸른 파동을 보았다.

Credit Info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김린용
ASSISTANT
김윤희, 김현욱

2018년 07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김린용
ASSISTANT
김윤희,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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