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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포츠카의 탄생

On June 28, 2018 0

람보르기니 최초의 SUV 우루스는 슈퍼카가 아니다. 슈퍼스포츠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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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더라 불러도 손색없다. 에어 서스펜션은 긴밀하게 노면 상태를 체크하고 최적의 세팅을 제공한다.

오프로더라 불러도 손색없다. 에어 서스펜션은 긴밀하게 노면 상태를 체크하고 최적의 세팅을 제공한다.


자동차 모델명을 구분할 나이가 되면 ‘슈퍼카’라는 단어도 알게 된다. 날카롭게 생겼거나, 지붕이 열리거나, 심지어 색깔이 빨간색이기만 해도 사람들은 “슈퍼카다!” 하고 말하곤 한다. 남들보다 자동차를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그런 건 슈퍼카가 아냐” 하면서 선을 긋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자신의 호불호를 절대적인 잣대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최고속도가 시속 몇 킬로미터라거나 하는 특징들은 슈퍼카를 쉽게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일 뿐 절대적인 구분법은 아니다.

‘슈퍼카’는 ‘슈퍼스포츠카’의 약자다. ‘슈퍼스포츠(Supersports)’란 ‘스포츠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이라고 해석하면 좋다. 순수하게 달리기 위해 태어난 차로, 차체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오직 스포츠성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문이 위로 열리는 것은 차체 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거나, 무게중심을 가능한 한 가운데 놓기 위해서 2인승 구조에 트렁크까지 생략해가면서 엔진을 차체 중앙으로 옮기는 것, 운전자의 편안한 자세보다 앞바퀴의 배치 각도를 중시해서 삐딱하게 앉을 수밖에 없는 것 등은 슈퍼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그러나 이런 차들은 자동차에 흔히 요구하는 것들을 희생한 덕분에 이차원(異次元)의 달리기 성능을 갖춘다.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싣거나 안락하게 이동하는 것 대신 극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있게 마련이다. 달리는 즐거움에 집 한 채 가격을 지불한다고 해도 건강한 몸과 온전한 신체를 포기하는 대신 마약으로 순간의 즐거움을 얻는다거나 대화도 안 통하고 성격도 안 맞지만 침대에서 끝내주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보다는 훨씬 건설적이다. 슈퍼스포츠카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달리는 것은 섹스보다 훨씬 즐겁다. 횟수 제한도 없고 원한다면 하루 종일 즐길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런 궁극의 달리기 성능은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오일 쇼크와 경제 위기를 몇 번 겪은 지금까지 살아남은 슈퍼카 브랜드들은 영화배우로 따지면 오스카를 몇 개씩 타고 이혼과 스캔들을 겪은 후에도 여전히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배우들이나 마찬가지다. 새롭게 등장한 람보르기니 우루스는 그런 영화배우가 드라마에도 나오고 유튜브도 찍고 페이스북 라이브도 하는 셈이다. 욕심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갑자기 그런 맘을 먹은 것이다. 분명 람보르기니 경영진은 포르쉐 카이엔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다. 포르쉐 최초의 SUV 카이엔은 망해가던 스포츠카 회사를 세계에서 가장 현금 많은 자동차 회사로 만들었다. 카이엔의 성공은 많은 자동차 회사에게 자극을 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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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조종석 같은 실내. 시동 버튼, 모드 변환 스위치 모두 전투기스럽다.

전투기 조종석 같은 실내. 시동 버튼, 모드 변환 스위치 모두 전투기스럽다.

  • 전투기 조종석 같은 실내. 시동 버튼, 모드 변환 스위치 모두 전투기스럽다.전투기 조종석 같은 실내. 시동 버튼, 모드 변환 스위치 모두 전투기스럽다.
  • 그릴과 범퍼에서 아티스트의 손길이 느껴진다.그릴과 범퍼에서 아티스트의 손길이 느껴진다.
  • 람보르기니 최초의 8기통 트윈터보 엔진.람보르기니 최초의 8기통 트윈터보 엔진.
  • 날카로운 리어스포일러.날카로운 리어스포일러.


슈퍼스포츠카 브랜드가 일상 용도의 차를 만든다는 데 거부감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카이엔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호사가들의 불평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람보르기니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 대상을 평소에도 함께할 수 있다는 데 만족할 것이고, 슈퍼카를 구입할 만한 경제력은 있지만 눈에 핏발을 세우며 달리는 데는 영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우루스의 등장은 희소식일 테니까. 그런 면에서 우루스는 ‘등장하기도 전에 성공을 보장받은 가장 비싼 차’로 자동차 역사에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디자인은 한눈에 람보르기니임을 알 수 있다. 지난 2016년 람보르기니 첸트로 스틸레(람보르기니 디자인 센터라는 뜻이다)의 수장으로 부임한 미차 보르게르트는 최근의 포르쉐 디자인을 완성한 사람이다. 많은 이들이 지금 침을 튀기며 극찬하는 디자인을 그는 수년 전에 이미 완성했고, 미련없이 슈투트가르트를 떠나 산타가타 볼로네제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마르첼로 간디니의 디자인을 보며 자동차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고 하는데, 그래서 과거의 람보르기니 디자인 DNA를 현대화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소비자가 따라오지 못할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대신, 과거의 명장이 남긴 요소를 재해석하면서 소비자와 함께 감탄하는 전략을 썼다. 사상 유례 없는 SUV지만 누가 봐도 람보르기니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프런트 디자인과 사이드뷰, 심지어 루프라인까지도 낯설지 않다. 폭스바겐 그룹의 예술과도 같은 프레스 기술은 그가 스케치한 날카로운 직선을 실제로 구현해낼 수 있게 했고, 칼로 벤 듯한 캐릭터 라인이 진한 콘트라스트를 연출한다.

전투기의 미사일 발사 버튼을 연상시키는 시동 버튼을 누르면 람보르기니 최초의 8기통 트윈터보 엔진이 눈을 뜬다. 당연히 강력하고 우렁찬 엔진 사운드가 울려 퍼지는데, 주변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 절묘하다. 시동 걸리는 소리는 우렁차지만, 스트라다(Strada, 거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모드에서는 전혀 시끄럽지 않다. 강력한 엔진의 존재감을 잊지만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움직인다. 이중 접합 유리창을 쓴 덕분에 실내 정숙도는 고급 세단 못잖다. 어른을 위한 차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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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스는 매일 타도 편안한 데일리 람보르기니다.

우루스는 매일 타도 편안한 데일리 람보르기니다.


비행기의 스로틀처럼 생긴 모드 변환 스위치 ‘탐부로’를 조작해서 스포츠 모드에 넣으면, 배기음은 분위기가 바뀐다. 액셀러레이터 조작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페달에서 발을 떼도 회전수를 유지하면서 다시 튀어나갈 준비를 한다. 650마력짜리 차라는 사실을 즉시 느낄 수 있다. 2톤이 넘는 차체는 불과 3.6초 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하는데, 모드 변환 스위치 모양만 비행기를 닮은 게 아니라 가속력도 이륙하는 비행기와 흡사하다. 레버를 한 번 더 당겨서 코르사(Corsa, 영어로는 Race) 모드로 전환하면 엔진이 미친 개 짖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극적으로 변화해서 분명 스피커 소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차에는 배기음을 조작하는 그 어떤 스피커도 들어 있지 않다. 코르사 모드에서는 마치 실내 공간과 엔진룸 사이의 격벽을 드러낸 것 같은 과격한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데, 엔진을 앞에 실은 SUV인데도 엔진의 존재감은 뒤에서 느낄 수 있다. 소비자가 람보르기니에게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세팅했다는 증거다.

배기음 외에도 뒤쪽에서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추가되는데, 처음에는 흡기음인가 싶었지만 엔진이 뒤에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소리가 나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는 눈앞으로 돌진해오는 코너들을 처리하느라 귀 기울일 정신이 없었다. 조작하는 데 바빠서가 아니라 그 코너들을 만끽하는 데 전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스티어링 휠과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성심성의껏 조작하면, 그에 걸맞은 주행을 보여준다. 빠른 SUV가 아니라, ‘공간과 영역을 넓힌 슈퍼스포츠카’라는 이야기다.

차에서 내린 후 소감을 묻는 엔지니어에게 뒤에서 나는 엔진의 존재감과 바람을 가르는 소리의 정체에 대해 물었더니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는 소리에 많은 신경을 썼답니다” 한다. 기자 정신을 발휘하는 것도 좋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더 이상 물어봤자 상세한 대답은 안 나온다. 이탤리언 슈퍼카는 엔지니어들이 머리를 사용해 만드는 게 아니라 예술가들이 가슴으로 만드는 차이기 때문이다. 독일 자본이 들어갔다고 해도 이 차는 어디까지나 볼로냐 지역의 뜨거운 피가 흐르는 엔지니어와 테스트 드라이버들이 갈고닦은 차다. 운전을 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트랙에서도 즐거웠지만, 람보르기니 우루스를 가장 우루스답게 탈 수 있는 곳은 역시 일반 도로다. 페루초 람보르기니는 애초에 페라리가 너무 레이싱카 흉내 내기에 급급함을 지적하며 자신의 이름을 건 스포츠카를 만들었다. 공공 도로에서의 우아한 승차감은 람보르기니 초창기부터 트레이드마크였고, 우루스가 그 전통을 훌륭하게 이어받았다. 운전이 즐거운 차지만, 원한다면 뒷자리에 앉아도 좋을 것이다. 레그룸은 충분하고 승차감도 좋다. 멀미가 나지도 않는다. 제대로 만든 5인승 차여서 아이들을 태워도 죄책감을 느낄 일이 없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배기 사운드를 즐기면서 도로 위를 달리는 기분, 100% 확률로 날아드는 시선을 즐기면서 전투기 조종석 같은 실내에 앉아 있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스포츠카건 스포츠 세단이건 도발해오면 확실하게 응징해줄 성능도 갖추고 있으니 무시하고 부드러운 승차감을 느껴도 좋다. 여차하면 흙먼지를 일으키며 산속으로 들어가버릴 수도 있다. 비포장도로에서 레인지로버를 만나도 씨익 웃으면서 액셀러레이터를 바닥에 비비면 된다. 프런트와 센터 디퍼렌셜, 액티브 토크 벡터링과 리어 디퍼렌셜을 일체화한 트랜스미션이 에어 서스펜션과 긴밀하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차체를 제어하고, 여차하면 10개의 피스톤을 가진 레이디얼 캘리퍼가 멈춰줄 테니까. 우루스는 아벤타도르나 우라칸처럼,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지 않는 람보르기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드라이빙 테크닉이자, 매일매일 탈 수 있는 람보르기니다. 당신이 만약 이 차를 살 수 있을 만큼 성공을 거두었다면 당신의 피와 땀의 일부를 여기에 쏟아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슈퍼스포츠카의 탄생을 실시간으로 목도하는 건, 아무에게나 허락된 게 아니니까.

람보르기니 우루스 

공공도로에서의 우아한 승차감은 람보르기니 초창기부터 트레이드마크였고, 우루스가 그 전통을 훌륭하게 이어받았다. 우루스는 아벤타도르나 우라칸처럼,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지 않는 람보르기니다. 여차하면 흙먼지를 일으키며 오프로드를 달리는 재능도 지녔다.

람보르기니 최초의 SUV 우루스는 슈퍼카가 아니다. 슈퍼스포츠카다.

Credit Info

WORDS
신동헌(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DITOR
조진혁

2018년 06월호

이달의 목차
WORDS
신동헌(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DITOR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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