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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복 넘치는 희서

On June 19, 2018

인터뷰 이틀 전 최희서는 <박열>의 후미코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더 이상 놀랍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후미코로 9개의 상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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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자수 장식 검은색 드레스는 뎁 제품.

꽃 자수 장식 검은색 드레스는 뎁 제품.

 

“그분들을 위해 진짜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 이야기를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공연을 하면서 영화 <동주>에 캐스팅됐다. 힘든 시기였지만 그런 경험이 없었으면 이런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숨은 보석이 많다는 소리를 믿지 않았다. 언젠가는 고생한 대가가 찾아온다는 말처럼 터무니없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란 최저 시급을 넘지 않으니까. 하지만 최희서를 만나고 그런 생각이 무너졌다. 최희서는 열심히 연기했다. 20대 초반부터 연기에 매진했다. 다른 길을 고민하지 않았다. 방황도 연기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검증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긴 무명 시절을 자양분으로 삼았고, 주목받지 못하는 것에 좌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연극을 하며 연기에 대한 철학을 세웠다. 그 결과 지난 한 해 동안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을 많이 받은 여배우가 되었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연기를 하는 이유와 연기에 대한 뚜렷한 철학을 밝혔다. 그녀는 처음부터 보석이었고, 숨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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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랩 장식이 특징인 저지 드레스는 로우 클래식, 골드 귀고리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열>로 받은 상만 10개. 그동안 못 받은 상을 몰아 받은 것 같다.
개봉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계속 상을 받아서 이제는 민망할 정도다. <박열>은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로 좋은 선물이라 너무 감사하다. 상을 받을수록 어깨가 무거워진다.

최희서의 다른 캐릭터들도 비중에 관계 없이 매력적이었다. <옥자>의 통역사도 그렇다. 출연 비중은 적지만 기억에 남았다.
<옥자>의 최양은 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여야 했다. 봉준호 감독님은 <6시 내고향>의 리포터 와 ‘짠내’가 느껴지는 열심히 살아가는 인물을 원했다. 나름 재미있게 찍었다. 나는 사회생활을 잘하거나 붙임성 있는 성격이 아니다. 그래도 가끔 분위기를 띄우거나 선배님, 감독님, 연출님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다. 최양처럼 열정적이고, 가식적으로 행동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열심히 살았다.

사회생활 스킬은 배우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다. 그런 태도는 촬영 현장에서도 필요한가?
상대 배우와 호흡이 안 맞거나 감독과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안 맞는다고 마음을 닫으면 내가 손해다. 어떻게든 상대를 이해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연기는 리액션이다. 상대를 판단하면 연기할 때 악영향을 미친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가가야 한다.

거만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
선택한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 이야기와 캐릭터 위주로 시나리오를 본다. 내가 잘할 수 있는지, 감독님이 누군지는 나중 문제다.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대사와 인물의 이야기가 어떤 메시지를 담는지가 중요하다. 또 그 이야기가 동시대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인지, 주제도 중요하다.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가?
맞다. 동의하지 못하면 절대 연기 못할 것 같다. 지난번 촬영한 영화는 한 여자가 고시 공부를 하다 때려치우고 자신에게 남은 길을 찾아 방황하다 운동을 접하면서 인생이 바뀌는 이야기다. 본 적 없는 이야기였고, 보편적인 성공의 잣대로 살려다가 모든 것을 놓아버렸을 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20~30대 여자에게 좋은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그 책임감이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이겠지?
연기는 좋아서 시작했다. 무명으로 오래 지내다 보니 내 앞가림도 못하고,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연기를 좋아해도 사람들이 내 연기를 찾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즈음 자문하게 됐다. 연기가 좋아서 배우를 하는데, 내가 연기하는 이유로 충분할까? 내가 연기를 하면 타인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지 생각하게 됐다. 정말 연기가 좋으면 방에서 비디오 카메라 세워두고 혼자 해도 된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것은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일이지, 나 혼자 좋다고 할 수는 없다. 한 번은 추석에 공연을 했다. 배우와 제작진은 8명인데, 관객은 3명이었다. 터무니없이 적은 관객 수였다. 그분들을 위해 진짜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 이야기를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공연을 하면서 영화 <동주>에 캐스팅됐다. 힘든 시기였지만 그런 경험이 없었으면 이런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관객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연기하는 건가?
물론 관객에 대한 책임감도 있다. 연기는 2005년부터 시작했다. 다른 길로 새지 않고 연기만 했다. 지금은 내 스타일이나 예술성에 집중해야 한다. 30대 초반을 대표하는 여성 배우로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좋고 어떤 캐릭터를 보여주는 게 좋을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베이지 컬러 니트 슬리브리스 톱은 코스, 민트 컬러 샤 스커트는 손정완 컬렉션, 목걸이는 리타 모니카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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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시절 이야기를 해보자.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뒤처진다고 느낄 법도 하다. 경제적인 궁핍함도 있었을 것이고.
연극을 하다 보니 고정 아르바이트를 못했다. 3개월 이상 쉰 적 없이 연기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영어 회화 과외, 결혼식 하객 알바, 영어와 일어 통역 등 단기성 알바만 했다. 알바에 매달려야 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다. 부모님께서 나를 믿어줬다. 단편 영화 찍으면 일당으로 15만원에서 20만원 정도 번다. 그래서 친구들은 항상 내게 밥을 사줬다. 되게 슬픈 일이더라. 내 자신이 초라하기도 했다. 자괴감을 연기로 풀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연기할 때는 행복하기 때문에 그런 슬픔은 잊을 수 있었다.

이제는 친구들에게 밥 좀 사고 있나?
연말부터 지금까지 돈 꽤나 썼다. <박열> 제작진에게 한턱 냈고, 밥 사주던 친구들에게도 많이 썼다.

이야기의 메시지를 고민한다. 직접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을 것 같다. 제작에 대한 욕심은 없나?
제시카 차스테인이 여성 스파이 영화를 만든다는데, 그런 모습에 자극받는다. 이준익 감독님이 내게 우리나라 최고 여배우들이 나오는 시나리오 써보라고 하셨다. 관심은 있지만 연기자로서 이루고 싶은 게 더 많아서 제작은 먼 미래라고 생각한다.

젊은 배우가 제작에 참여하거나 투자하는 것을 거만하게 보는 시선도 있다.
내 또래 배우가 제작에 관여하거나 시나리오를 쓴 경우는 보기 드물다. 연출자와 방식은 다르지만 배우 또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토리텔러다. 이준익 감독님은 현장에서 스크린에 시나리오를 띄워놓고 스태프와 배우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함께 보면서 의견을 공유한다. 모든 제작진이 함께 이해하고, 검토하며 제작하는 방식이다. 완전한 공동 작업인 것이지. <동주>와 <박열> 촬영 때는 대본을 조금 수정했고, 일본어 번역도 했다. 대사를 덧붙이고 싶다고 하면 감독님이 좋아하셨다. 지금 촬영 중인 <미스트리스>의 한지승 감독님도 배우가 아이디어 내는 것을 좋아한다.

긴 무명 기간에 맞는 길을 택한 것인지, 스스로를 의심한 적은 없었나?
있었다. <킹콩을 들다> 촬영 때는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내가 연기를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다. 원하는 대로 안 됐다. 그럴 때 많이 무너졌고, 내 재능을 의심했다. 배우는 자신감이 없으면 카메라에서 티가 난다. 연기할 때 캐릭터에 자신감과 편안함을 느껴야 하는데 자신감을 잃으니 소극적으로 연기하게 되더라. 그때 배우로서 위기를 느꼈다. 부족함은 작품마다 체감한다. 더 잘해야 하는데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다. 집중 못하는 것은 누굴 탓할 수 없다. 내 문제다.

힘들 땐 비타민이 좋더라.
하하. 홍삼도 먹고, 영양제 엄청 먹고, 링거도 맞는다. 그런데 드라마는 또 다르더라. 너무 쫓기면서 촬영하다 보니 현장에 여유로운 사람이 없다. 모든 사람이 같은 기운을 공유하는 것 같다. 여유를 가지려 해도 현장이 쫓기는 상황이라 어느새 급해진다. 대부분의 드라마 현장이 그렇다고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연기를 잘해나가는 배우들을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미스트리스>의 베드신이 화제였다. 노출 연기가 어렵지 않았나?
당연히 힘들었다. 하지만 스토리 전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장면이었다. 베드신을 내 입맞에 맞게 요구한 것은 없다. 드라마에서는 아무리 19금이어도 기준이 명확하다. 노출은 속옷 정도, 성행위 바운딩도 두 번 이상은 안 된다. 신음 소리도 금지고. 엄격하다. 베드신이 그렇게 이슈가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연기한 한정원이라는 캐릭터에게 베드신은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다. 아이를 만들기 위한 부부관계이기 때문이다. 이 신을 제대로 못 찍으면 후반부에서 내가 느끼는 죄책감을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각오가 되어 있었다. 촬영할 때는 힘든데, 힘들다고 못하면 내 손해다. 오기로 찍었다.
 

 

“설득당하는 시나리오에 흥미가 생긴다. 여자 경찰 이야기일 수도 있다.” 


노란색 드레스는 손정완 컬렉션, 귀고리는 엠주, 뱅글은 리타 모니카 제품.

노란색 드레스는 손정완 컬렉션, 귀고리는 엠주, 뱅글은 리타 모니카 제품.

노란색 드레스는 손정완 컬렉션, 귀고리는 엠주, 뱅글은 리타 모니카 제품.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설득당하는 시나리오에 흥미가 생긴다. 여자 경찰 이야기일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나 또한 공감 가는 이야기에서 연기하고 싶은데, 뭘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좋은 엄마이자 배우자로 살고 싶은 마음은 명확하다. <미스트리스>에서 (한)가인 언니와 함께 출연 중인데, 가인 언니가 아이를 낳고 삶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졌다고 하더라. 새로운 종류의 행복을 얻었다고 했다. 그런 소리를 옆에서 들으니까 결혼해서 아이 낳고 싶은 생각이 든다.

설득당한 건가?
제대로 당했다. 옆에서 본 가인 언니는 너무 행복해 보인다. 배우의 길도 좋지만,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애를 낳는 것도 꼭 해야겠다. 아내이자 엄마가 되는 것은 30대 여성에게 가장 큰 변화가 아닌가 싶다.

지금 주목하는 이야기나 이슈가 있다면 무엇인가?
만일 3개월 동안 시나리오를 집필한다면 좋은 소재들이 있다. 하나는 한 사람과 지역의 연관성에 대한 것이다. 나는 어려서 이사를 많이 다녔다. 다른 나라에서 살기도 했다. 모르는 언어로 못 알아들으면서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힘든 날들이 많았다. 그때 느낀 이방인의 마음이 남아 있다. 서울에 돌아오면 친구들은 사라졌고, 놀이터도 없으니 고향이랄 게 없었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삶을 개척해나가고, 그럼에도 내가 여기 속해 있어도 되나? 소속감에 불신을 갖게 되는 디스 오리엔테이션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다. 두 번째는 모성애다. 어머니와 되게 친하다. 엄마가 부재한 아이 혹은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등 모녀 관계에도 관심이 많다.

대학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EBS에서 방영된 기록도 있다.
언론홍보영상학과 전공이다. 영상 제작 실습 과정이 있는데, 다양한 파트를 경험한다. 졸업 작품 중 하나가 다큐멘터리 제작이었다. 지하철에 관한 2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EBS에서 방영된 것 같다. 그것도 공동 작업이었다. 20대 중반에는 재미있는 작업을 많이 했다. 실험 영화도 만들었고. 20대 초반에는 연극만 했는데, 영상 관련 수업을 들어서 영상에 대해 이론적으로도 많이 이해하게 됐다. 내가 직접 찍고, 단편 영화에 출연하면서 찍히기도 했다. 졸업하고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갔다. 그때 내 자신에 대해 고민했고, 나는 어떤 연기자로 살 것인지 질문을 했었다.

백상예술대상에서 수상 소감으로 80세까지 연기한다고 했다. 이제 서른둘이니까. 어떤 연기자로 살 것 인지 고민할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렇다. 감사해야 할 삶인 것 같다. <박열> 이후 지난 1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내게 있었던 일은 꿈만 같다.
 

인터뷰 이틀 전 최희서는 <박열>의 후미코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더 이상 놀랍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후미코로 9개의 상을 탔다.

Credit Info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박정민
STYLIST
신경미
HAIR
정은구(김활란뮤제네프)
MAKE-UP
송은경(김활란뮤제네프)
STYLING ASSISTANT
양도원

2018년 06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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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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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경(김활란뮤제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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