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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하지 않는 가게

On March 27, 2018 0

느리고 무던하게, 본질을 지키는 작은 가게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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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E 01  파운드 오브제

파운드 오브제는 예민한 수집가의 거실 같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둔 2개 공간으로 이루어지는데, 한쪽에는 ‘파운드 오브제’, 다른 한쪽에는 ‘F/O’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벽과 천장이 모두 노란빛으로 물든 공간, 파운드 오브제의 중심을 잡아주는 건 천장까지 닿을 듯 높은 목재 선반이다. 여기에 대표 배용희가 세심히 고르고 모아온, 그를 사로잡은 물건들이 놓였다. 배용희가 개인적으로 수집해온 아름다운 물건들을 선보인 것이 이 가게의 시작이다.

파운드 오브제의 선반 한 칸에는 하나의 물건, 혹은 한 디자이너가 만든 오브제들만이 자리한다. 그 넉넉한 여백 덕에 물건 하나하나의 형태와 본연의 색이 온전하고 선명하게 보인다. 덴마크의 천재 유리공예가 페르 뤼트컨(Per Lütken)이 만든 볼록한 하트 모양 유리 오브제 ‘미뉴엣(Menuet)’, 도예가 에릭 런던이 빚은 화병,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대표하는 티모 사르파네바가 1957년 디자인하고 이딸라가 1968년까지 제조하다 단종된 유리병(티모 사르파네바의 사인이 하단부에 있다). 모두 과거에 소량 생산 방식으로 제작되거나 작가의 손으로 직접 만든, 아름답고 간결하며, 쓰임새가 분명한 일상의 물건들이다. 선반 위를 찬찬히 훑어보기만 해도 가치 있는 물건에 대한 뚜렷한 미학이 읽힌다. 배용희 대표가 정갈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많은 물건들이 소비되고 있지 않나요? 물건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죠. 그중 대다수가 기계로 찍어 대량으로 만들고, 곧잘 버려질 물건들이고요. 물건에 애착을 갖기 힘들 수밖에 없어요.”

파운드 오브제는 ‘소비하기 위한’ 물건이 아닌, 삶 속에서 미적 요소로서 충족감을 줄 수 있는 물건들을 다룬다. 일상에 예술적 가치를 불어넣을 오브제를 소개하는 라이프스타일 숍이다. “파운드 오브제에서 다시 발견된 물건들이 누군가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또 다른 공간인 F/O는 파운드 오브제를 줄인 이름이다. 여기에선 파운드 오브제보다 가격이 낮은 제품들을 소개한다. 최근에는 3백 년 역사를 지닌 교토의 공예 브랜드, 코초사이 코스가의 바구니를 입고했다. 파운드 오브제에는 쉽게 만들어진 물건이 없다. 유행에 현혹되어 구매할 만한 물건도 없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 아름다움이 바래지 않고 삶과 공간에 잘 스며들 만한 물건들만 섬세하게 고르고 모아, 곱게 둔다. “수많은 물건이 존재하고 이를 판매하는 가게도 굉장히 많지만, 물건들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아요. 파운드 오브제는 개개인에게 좋은 물건, 아름다운 물건, 의미 있는 물건을 함께 모색하면서 삶을 고민하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요.” 파운드 오브제에선 물건을 구매하면 디자이너, 제작 연도 등을 손글씨로 적어 동봉해준다. 그렇게 구매자가 물건에 특별한 애착을 느낄 수 있게 돕는다.

주소 인천시 연수구 송도과학로16번길 33-2 트리플스트리트 B동 공방거리 102호, 103호, 109호
문의 032-310-9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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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E 02  수토메 아포테케리

수토메 아포테케리는 향기를 파는 브랜드다. “천연 향료의 사용 면에선 세계 최고 수준일 거예요.” 대표 홍윤경의 확신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수토메 아포테케리 제품에는 인공의 화학적 원료가 쓰이지 않는다. 수작업으로 만드는 유기농, 테라피 등급의 천연 향료만 재료로 사용한다. 해외에서 극소량 직접 들여오거나 전문가를 통해 고른 최고급 에센셜 오일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조향하여 제조한다.

엄격한 성분 검사를 거치는 것은 물론, 원료를 재배하는 지역과 생산 과정, 경로까지도 정교하게 관리한다. 홍윤경은 이 과정을 두고 “결벽증에 가까운 작업”이라 말했다. 그에게 이 사업은 좋은 향기를 만들어 파는 일이 아니다. 자연을 최소한으로 이용해 사람에게 이로운 작용을 일으키는 작업이다. “저는 간소하고 자연스러우며 본질적인 삶을 추구해요. 자연을 귀하게 여기고, 자연에서 가르침을 얻고, 최소한의 자연을 빌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제안하려 해왔어요.” 그는 찬찬한 걸음으로, 능동적이고 독립적으로 브랜드를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 데 집중했다. 쇼룸은 폐쇄적으로 운영했고 거대한 자본으로 운영되는, 거창한 이름의 편집매장이 건넨 입점 제안은 거절했다. 빛 좋은 포장이 품질을 가리지 않고, 좋은 향료를 확보하는 일 외에는 비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수토메 아포테케리의 제품군은 간소한 편이다. ‘아로마테라피 리추얼 스프레이’ ‘아로마테라피 리추얼 캔들’이라 부르는 향수와 초 제품만 제조한다. 최소한의 천연 향료로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내야 하니, 다품종 대량 생산은 불가능하다. 향수에 해당하는 아로마테라피 리추얼 스프레이는 사유의 즐거움을 주제로 만든 아카데미 컬렉션,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에스테티카 컬렉션, 오페라와 영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아날로곤 컬렉션으로 구성된다. 몸 혹은 섬유에 뿌리거나, 룸 프레그런스로 쓸 수 있다. “수토메 아포테케리의 제품을 조향하는 데 쓰는 에센셜 오일 한 방울에는 자연의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어 있어요. 자연의 생명력을 온전히 담는 것이 우리의 지향점이죠.”

천연 향료이기에 원료가 재배된 계절의 바람, 습도, 온도 등 날씨에 따라 미세하게 다른 향이 완성된다. 같은 이름의 제품도 제각각 다른 뉘앙스를 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숙성되면서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변모하는 것 역시 수토메 아포테케리 제품의 매력이다. 모든 향을 천천히 즐겨보면서, 가장 와 닿은 향기 하나를 구매했다. 재료, 블렌딩한 날짜만 간단히 표기된 라벨에는 ‘간결함(Simplicity)’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아카데미 컬렉션 중 하나다. 라벤더, 이름 모를 약초, 마른 나뭇가지 내음이 어우러져 온몸의 신경을 이완시켰다. 잘 알던 라벤더 향이 낯설고도 감각적으로 다가왔다. 홍윤경이 말했다. “저는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아로마테라피를 공부했어요. 그 방법론에 기초해 향기를 만들죠. 수토메 아포테케리의 향기가 사유 활동을 자극하는 도구가 된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포은로67 2층
웹사이트 sutomeapotheca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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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E 03  리사르 커피 로스터스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남녀 3명이 좁은 바 테이블에 바짝 붙어 서서 에스프레소를 홀짝이고 있다. 리사르 커피 로스터스는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5시에 마감하는, 남달리 압축적인 영업시간으로 유명하다. 고객은 각자의 스타일대로 두 모금, 세 모금에 에스프레소를 털어 마시곤 홀연히 자리를 떴다. 리사르 커피 로스터스는 카페이면서, 커피 작업소이고 또 로스팅 공장이다. 커피 음료를 판매하지만 공간을 대부분 차지하는 것은 샌프란시스칸의 빈티지 로스터, 산마르코, 라마르조꼬의 빈티지 에스프레소 머신들과 출고를 기다리며 쌓여 있는 원두 더미다. 몇 가지 커피 음료 메뉴가 적힌 메뉴판이 있고, 좌석은 없다. 단 한 줄의 바 테이블뿐이다. 리사르 커피 로스터스는 작업 공간이 차지하는 비율을 지속적으로 바꿔왔다.

점차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자리가 협소해지는 쪽으로 변했다. 리사르 커피 로스터스에게 첫 번째는 늘 원두 품질을 향상시키고 유지하는 일이다. 기술력과 일관성을 위해 매일 원두 품질을 꼼꼼하게 기록하며 로스팅 수준을 균일하게 관리한다. 지난 7월, 리사르 커피 로스터스는 SNS 계정을 통해 회심의 공지를 띄웠다. “플랫 화이트는 7월 31일까지 판매하고 영구적으로 판매 종료합니다.” 이어 9월에는 카페라테의 서빙에 사용한 종이컵이 모두 소진되었다는 이유로 라테 판매를 ‘영구적으로’ 끝냈다. 지금 리사르 커피 로스터스의 메뉴판에는 에스프레소, 아포가토, 카페 피에노(카페 쇼콜라와 유사한 커피 음료)까지 에스프레소 기반의 메뉴 3가지뿐이다. 모두 도기 잔에만 낸다. ‘테이크아웃’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변화에 이의를 제기할 손님이 없지 않다.

헤드 바리스타이자 로스터인 이민섭은 말했다. “아메리카노가 없다는 이유로 돌아가시는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곤조’라 하기도 했을 거예요.” 아메리카노와 플랫 화이트는 리사르 커피 로스터스의 커피 음료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2가지였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지고, 매출이 한창 호조를 띠던 때에 이들은 가장 잘 팔리는 메뉴를 없앴다. 이유는 하나다. 조금 다른 커피로 향하는 길을 터주기 위해서다. “사실 커피의 깊고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은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거예요. 에스프레소는 그 어떤 커피 음료보다도 커피의 향과 맛이 오래 남습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다운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드물어요. 에스프레소에 대한 왜곡된 이해와 설명도 너무 많고요.”

리사르 커피 로스터스의 슬로건은 ‘Better than Espresso’다. 에스프레소가 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담은 메시지다. 리사르 커피 로스터스는 이 주제를 선명하게 수행하고, 불필요한 요소를 서서히 제거해가는 중이다. 고집스러운 외골수를 자처하면서 말이다. “여러 종류의 커피를 잘 판매하는 카페들은 이미 많아요. 저희는 그중에 가장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하려는 거예요. 경험 측면에서 커피를 생각해요. 가장 익숙하지 않은 것, 대중적이지 않은 커피를 조금씩 선보이고 싶어요.” 바에 서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했다. 융단처럼 반짝이는 갈색 크레마 위로 시럽을 조르륵 따른 뒤 티스푼으로 다섯 번쯤 젓는다. 시럽을 반쯤만 녹이는 거다. 완전히 녹이지 않아야, 고소하고 쓰고 달고 신맛을 모두 느낄 수 있다. 응축된 커피의 녹진한 질감을 즐기면서 한 모금 마시고, 코로 숨을 내쉬니 잘 익은 커피 향이 향긋하게 온몸을 감싼다. 리사르 커피 로스터스의 기질을 빼닮은 맛이다.

주소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31길 9 1층
문의 070-7677-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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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E 04  보울 델리 앤 이터리

보울 델리 앤 이터리는 처음, 온라인으로만 운영되던 작은 델리 숍이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 좋은 치즈, 오일, 밀가루를 사용해 각종 소스와 절임, 생면 파스타 등을 만들어 팔았다. 풍미 좋은 바질, 질 좋은 잣을 절구에 빻아 만든 바질 페스토, 참깨와 유기농 병아리콩을 듬뿍 넣은 고소한 후무스, 오랜 시간 뭉근히 끓여 완성하는 라구 알라 볼로네제, 야무지게 속을 채운 뚤루즈 소시지 등으로 제법 인기를 얻었다. 모두 만들 때엔 손이 많이 가지만, 매일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간편 조리식’이었다. 보울 델리 앤 이터리의 간편 조리식만 있으면 간단한 요리만으로도 훌륭하고 건강한 한 끼를 준비할 수 있었다. “임신한 언니를 위해 토마토소스, 딥, 절임을 만들어 가져다주던 것이 시작이었어요. 시간이 없고 마음이 바쁘고 몸이 힘들 때, 보통 인스턴트 요리로 끼니를 해결하잖아요. 딱 인스턴트 음식을 조리하는 정도의 시간만 들이고도 몸에 좋은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보울 델리 앤 이터리의 주제였죠.”

종종 팝업 스토어를 열며 찬찬히 단골을 늘려가던 보울 델리 앤 이터리는 지난해 말, 성북동 혜화문 앞 인적 드문 골목에 조용히 문을 열고 점심과 저녁 식사를 내기 시작했다. 날이 맑은 낮이면 노란 햇볕이 오래도록 길게 쏟아지는 길 모퉁이 식당에서 이지민 대표는 지중해 식단을 기반으로 한 소박한 요리를 선보인다.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인 지중해 연안, 그곳에서 맛본 맛깔스럽고 푸근한 지중해식 가정식이 모티브다. 식당에는 2개의 테이블이 전부다. 바다를 닮은, 푸른빛의 커다란 테이블과 두 사람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 친밀한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인 작은 원탁뿐이다. 그러니 매일 만석이 된다 해도 하루에 두 차례, 두 테이블을 차려내고 나면 그날의 장사가 끝나는 셈이다.

부엌과 홀의 일은 모두 이지민 대표 혼자서 해낸다. “딱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의 욕심은 없어요. 그러다 보니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식당이 되었어요. 지금의 보울 델리 앤 이터리는 제가 상상했던, 바로 그런 식당이에요. 동네 주민이 친구들, 가족과 모여 앉아 보내는 넉넉하고 기분 좋은 식사 시간을 상상하며 열었거든요.” 보울 델리 앤 이터리에 놓인 2개의 테이블 위에는 좋은 식재료로 최소한의 조리를 거친 건강한 요리가 풍성하게 차려진다. 방금 끓인 뜨끈한 수프와 신선한 채소를 수북이 올린 샐러드 등으로 시작되는 식사는 정성을 켜켜이 쌓아 만든 요리들만으로 이루어진다. 지중해 연안, 어느 작은 도시에서 즐기는 한 끼 밥상처럼, 따뜻한 생기가 가득하다. 홀로 운영하기에 서비스 속도는 조금 느리지만,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그 역시 보울 델리 앤 이터리만의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점심 시간에는 세트 메뉴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저녁 시간에는 4가지 내외로 구성되는 코스 메뉴를 판다. 메뉴는 매일 바뀐다. 가격도 때마다 다르기에 인스타그램(@bowl.deli.eatery)의 메뉴 공지를 확인하고 방문하면 좋다.

주소 서울시 성북구 창경궁로35길 83
문의 02-742-5232

느리고 무던하게, 본질을 지키는 작은 가게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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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경진
PHOTOGRAPHY
이수강

2018년 03월호

이달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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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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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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