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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류 장성규

On January 17, 2018

장성규는 알수록 참 신기하고 새롭다. 정석을 걷어차고, 자꾸 길이 아닌 것 같은 길을 개척한다. 요즘 아나운서 최초의 크리에이터, 1인 미디어로 활약 중인 그에게 격변하는 미디어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들었다. 아이디어와 ‘광기’가 넘치는 그는 21세기 새로운 방송인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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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즈투스 코트는 라르디니 by 신세계 인터내셔널, 터틀넥 니트는 시스템 옴므, 울 팬츠는 코스, 안경은 키블리 제품.

하운즈투스 코트는 라르디니 by 신세계 인터내셔널, 터틀넥 니트는 시스템 옴므, 울 팬츠는 코스, 안경은 키블리 제품.


“줄임말이나 은어를 워낙 많이 쓰니까, 사실 정상적인 아나운서의 언행은 아니다. 그런데 이 비정상을 이상하게 보는 게 아니라 즐겁고 재밌게, 긍정적으로 봐주는 분위기가 참 고맙다. 지금 나는 이게 정답이란 생각으로 과감하게 지르고 있다. 분위기 봐서 사람들이 식상하게 느낀다면 바로 태세 전환을 할 거다.”


장성규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일단 빵빵한 와이파이와 화면 넓은 스마트폰이 필수다. 먼저 가장 쉽게는 그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보면 된다. ‘관종(관심종자)’을 표방하는 그는 자기 이름을 수시로 검색하고 기사의 댓글을 점검하는데, 악플을 캡처해서 대댓글을 다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간혹 이름을 틀리거나 팩트 체크를 안 하고 올리는 인터넷 기사도 캡처해 직접 교열을 하기도 한다. 비와이 노래에 맞춰 연출한 뮤직비디오나 뉴스 진행 시절 편집본 등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수준급 영상도 있다. 또 유튜브에서 ‘아는 형님 장성규’ 등으로 검색하면 ‘장티처’로 다양한 분장을 하고서 아나운서가 내뱉기 힘든 ‘드립’을 하는 그를 만날 수도 있다. 뭐 정 더 파고들고 싶으면 7년 전쯤 MBC에서 방송한 아나운서 서바이벌 프로그램 〈신입사원〉 속 취업 준비생 장성규의 패기와 ‘똘 끼’를 찾아보면 된다.

한마디로, 장성규는 요즘 시대의 미디어 생태계에 최적화된 새로운 유형의 방송인이라는 얘기다. 그는 SNS를 어떻게 활용하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브랜드화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웃기는 예능인도 많고, 웃기는 아나운서도 많지만 장성규처럼 디지털 미디어를 기반으로 웃기는 아나운서는 처음이다. ‘아나운서 최초의 크리에이터’라는 표현이 절대 과장이 아닌 셈이다. 최고보다 최초를 추구한다는 그는 오늘도 참된 ‘관종’으로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다. 〈아는 형님〉의 게스트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 JTBC 손 사장님께 충성을 맹세하는 사진 등. 수천 개의 댓글과 ‘좋아요’가 그의 위상을 보여준다. 지금 21세기 새로운 방송인을 꿈꾸고 있다면, 스마트폰을 들어 장성규를 바라보라.

 

왜 인스타그램 팔로잉을 안 해주나?
원래는 1백여 명까지 ‘맞팔’했다. 알다시피 내가 관심받고 싶어 하는 ‘관종’인데, 나를 좋아해주는 모든 사람을 다 팔로잉하려면 끝도 없겠더라고. 그래서 아예 아무도 팔로잉하지 않으면 모두와 맞팔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냥 있어 보이려고 사람들에게 GD 콘셉트라고 말하고 다닌다. 하지만 GD가 나를 팔로잉한다면 맞팔해줄 의향은 있다. 하하하.

‘SNS로 매력을 재발견한 스타’ 2위로 뽑혔다. 1위가 유아인이고 3위가 설리였는데, 어떻게 하면 인스타그램을 잘할 수 있나?
고민이 많다. 계속 관심받을 수 있는 포스팅을 하려다 보니 욕심이 과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필터링이 제대로 안 될 때도 있고. 이러다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한다. 그래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일단 술을 마신 상태에서 뭔가를 올리지 않기로 했다. 근데, 사실 어제 취중에 손석희 사장님과 찍은 사진을 하나 올렸다. 내용이 건전해서 지우진 않았다. ‘사장님 얼굴에 먹칠하지 말자’라고 쓰고 해시태그로 #이미#이미자라고 썼지.(웃음)

왜 그렇게 본인 기사의 댓글을 열심히 읽나?
내가 워낙 눈치를 많이 보는 스타일이다. 사람들 반응에 굉장히 예민하고, 선플보다는 악플이 더 신경 쓰인다. 한때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싶었다. 그리고 나도 모든 사람들을 좋아하고 싶다. 그런 욕심의 결과인 것 같다.

악플을 캡처해서 그림판 등으로 대댓글 다는 게 재밌긴 하다. 솔직해 보이고.

누군가 말하길, 아나운서 중 최고의 언어 파괴자라고 하더라. 하하. 세종대왕께서 살아 계셨다면 격노했을 거라고. 줄임말이나 은어를 워낙 많이 쓰니까, 사실 정상적인 아나운서의 언행은 아니다. 그런데 이 비정상을 이상하게 보는 게 아니라 즐겁고 재밌게, 긍정적으로 봐주는 분위기가 참 고맙다. 지금 나는 이게 정답이란 생각으로 과감하게 지르고 있다. 분위기 봐서 사람들이 식상하게 느낀다면 바로 태세 전환을 할 거다.

JTBC 초창기 때 방송된 〈김국진의 현장 박치기〉란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근엄한 표정으로 성인용품점 잠입 취재를 갔던 게 기억에 남기도 하고. 사실 예능을 하는 아나운서는 꽤 있다. 〈김국진의 현장 박치기〉처럼 시사와 예능을 합친 하이브리드 아나운서로 거듭날 생각은 없나?
앞으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 프로그램이 내가 입사 2년 차에 했던 거다.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5년까지는 내 고집을 앞세우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 회사가 나에게 이런저런 가능성을 제안해주면 잘 따르자는 생각이었다. 이제 7년 차가 됐고, 내 생각으로 만든 영상 콘텐츠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지금, <김국진의 현장 박치기>에 대한 갈증이 있다. 채널 플랫폼 환경이 지금 같지 않았던 터라,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김국진의 현장 박치기〉 같은 프로그램을 다시 한다면 더 좋은 반응을 얻지 않을까 싶다. 그 방송 첫 녹화 때 내가 너무 오버해서 재녹화를 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나중엔 적응을 잘해서 5분 분량이 10분으로 늘어나고 급기야 당시 MC였던 국진이 형과 공동 진행을 했었다. 얼마 전에 국진이 형과 방송을 했는데 “성규가 몇 년 사이에 많이 성장했다”는 칭찬을 해주시더라. 언젠가는 국진이 형과 ‘서수남, 하청일’ 콤비처럼 더블 엠시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하하.

그렇지만 얼마간 또 잘 풀리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
맞다. 〈김국진의 현장 박치기〉 이후 〈신화방송〉까지 한창 예능 프로그램을 잘하다 어느 순간부터 2~3년 정도 예능이 끊긴 시기가 있었다. 주변에서 ‘조바심 가질 것 없다. 너무 빨리 왔으니까 잠깐 쉬어가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자기 계발을 하라’고 조언해줬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 말이 머리론 이해가 가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더라. 그래서 그냥 힘들게 지내다가 자연스레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이미 내 생각보다 잘되어 있더라고. 2~3년 동안 힘들다는 생각만 하느라 초심을 잊고 있었는데, 다시 보이더라.

 

“나는 짠돌이다. 친구들, 후배들에게 시원하게 뭘 사주는 편도 아니고 부모님도 ‘우리 성규는 참 알뜰해’ 하실 정도다. 어려서부터 내 꿈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관심받길 좋아하는 사람인 걸 인정하기까지 용기가 필요했는데, ‘관종’임을 받아들이고 나니까 조금씩 보이더라. 나는 좋은 일을 하면 누가 알아주고 칭찬해주길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이.”

 

 

셔츠와 코트는 모두 라르디니 by 신세계인터내셔널, 모직 팬츠는 코스, 스니커즈는 컨버스, 안경은 키블리 제품.

 

“원래 우유부단하고 잘 휘둘리는 타입인데도 그런 말들이 나를 흔들진 못했다. 나조차 신기할 정도로 그냥 밀고 나갔다.”


〈신화방송〉은 지금 봐도 너무 웃기다. 재밌게 진행을 잘했는데 왜 갑자기 제안이 끊긴 걸까?
나도 그게 궁금해서 여기저기 여쭤보고 다녔다. 내가 부족한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내 문제는 뭘까? PD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다녔다. 내 능력을 떠나 트렌드의 변화, 방송 제작 환경 등의 변화 때문일 거라는 짐작만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전적으로 내 문제라고 생각하고 예능을 더 공부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연습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회사원이니까, 예능은 아니더라도 뭔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었을 텐데?
소소하게 교양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다. 그러다 손 사장님이 나를 아침 뉴스 앵커로 발탁해주셨다.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인은 ‘그래, 이제야 성규가 자리를 잡는구나’ 하면서 엄청 기뻐하셨다. 나 역시 ‘예능은 꿈일 뿐, 이게 나의 길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완전히 받아들이려고 하는 찰나에, 〈아는 형님〉 출연 제의가 온 거다.

완전 운명이었네.
아침 뉴스 앵커가 〈프로듀스101〉의 장근석 분장을 해야 한다니. 게다가 〈아는 형님〉이 당시에만 해도 마니아틱한 프로그램이었다. 상황만 따지고 보면 굉장히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 같지만 나는 섭외 전화를 받자마자 쾌재를 불렀다. 아무것도 재지 않고 그냥 반사적으로 반응한 거다. 〈아는 형님〉 PD가 〈김국진의 현장 박치기〉를 같이 했던 최창수 형이다. 그 형이 나한테 맨 처음 〈김국진의 현장 박치기〉를 같이 하자고 전화한 순간이 아직 기억난다. “성규야, 이거 잠입 취재 프로그램이거든. 근데 너 아나운서인데 이런 거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혹시 키스방 갈 수 있겠니?”(웃음) 그때도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갈게요, 형. 저 다 할 수 있어요.” 그 순간이 몇 년 만에 재현된 느낌이었다.

〈아는 형님〉을 계기로 예능에 대한 사랑을 다시 깨닫고, 예능 길만 걷겠다는 결심을 한 거네?
장근석 분장을 한 ‘장대표’ 덕분에 실시간 검색어 1위도 찍고, 반응이 좋았다. 신나서 내 이름을 며칠 동안 검색하고 그랬다. 그런데 〈아는 형님〉을 매주 나갈 수 없어서 다음 단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침 뉴스 하기 전에 회사에서 디지털 콘텐츠를 같이 만들자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게 생각나더라고. 그래서 아침 뉴스 팀장, 아나운서 팀에게 얘기하고 마지막으로 손 사장님을 직접 찾아뵀다. 크리에이터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네가 원하는 거야?” 물으시더라고. 그렇다고 답했더니 “그럼 해봐라” 하셨다. 다다음주에 뉴스를 하차하고 ‘짱티비씨’ 채널을 만들었다.

그래도 아침 뉴스에 발을 계속 걸치고 있는 게 어땠을까?
병행을 굳이 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같았다. 내가 엄청 가볍게 까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뉴스를 전한다면 뭔가 혼란스럽지 않을까 싶었다. 기왕 할 거면 하나를 선택해서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하차를 했지. 주변에서는 열이면 열 다 반대했다. 친한 친구들조차 “성규야, 이건 잘못된 선택 같다”고 했다. 원래 우유부단하고 잘 휘둘리는 타입인데도 그런 말들이 나를 흔들진 못했다. 나조차 신기할 정도로 그냥 밀고 나갔다.

처음엔 좀 고달팠다고?
일주일에 한 번씩 라이브를 했는데 5명 들어오고 10명 들어오고 이러더라고. 하루 이틀 정도는 괜찮았는데 2~3개월 지속되니까 금방 지쳤다. 그때쯤엔 아침 뉴스 생각도 나더라. 하하. 주변에서 “그것 봐라, 내가 뭐랬니”라고 하니까 오기가 생겼다.

어떤 계기로 상황이 반등됐나?
라이브를 아예 접고 1~2분짜리 짧은 ‘짤’을 퀄리티 좋게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라이브 라는 포맷 자체가 나에겐 애매했다. 아프리카 BJ처럼 막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이도저도 아닐 바에는 느낌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자 생각했다. 내 인스타그램에 올린 비와이 뮤직비디오도 예전에 찍어서 ‘짱티비씨’에 올린 거였다. 지금 다시 올리면 반응이 어떨까? 했는데 폭발적이더라고. 과거 영상이 지금 뜨거운 반응을 얻으니까 EXID의 ‘위아래’가 역주행했을 때의 기분을 이해하게 됐다.(웃음)

마지막으로 선행 얘기를 좀 해볼까? 포항 지진 이재민에게 1천만원을 기부했다고?
나는 짠돌이다. 친구들, 후배들에게 시원하게 뭘 사주는 편도 아니고 부모님도 ‘우리 성규는 참 알뜰해’ 하실 정도다. 어려서부터 내 꿈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관심받길 좋아하는 사람인 걸 인정하기까지 용기가 필요했는데, ‘관종’임을 받아들이고 나니까 조금씩 보이더라. 나는 좋은 일을 하면 누가 알아주고 칭찬해주길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이. 요즘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아서 감사하던 차에 포항 지진 뉴스를 보고 계속 마음이 쓰였다. 마침 3년 만기된 적금 1천만원이 있었는데, 아내에게 말했더니 “결혼하고 제일 멋져 보인다”고 하더라. 그때 좀 감동받았다. 그리고 좋은 일도 하고 관심도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느꼈다.

참된 관종이다.
나는 기부하자마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인스타그램에 바로 올렸는데, 그걸 보고 주변에서도 기부 릴레이가 벌어졌다. 내가 기부하는 걸 보고 다만 얼마씩이라도 성금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엄청난 기쁨이다. 그래서 성금 포스팅에 이렇게 해시태그를 달았다. #모범관종.

장성규는 알수록 참 신기하고 새롭다. 정석을 걷어차고, 자꾸 길이 아닌 것 같은 길을 개척한다. 요즘 아나운서 최초의 크리에이터, 1인 미디어로 활약 중인 그에게 격변하는 미디어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들었다. 아이디어와 ‘광기’가 넘치는 그는 21세기 새로운 방송인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

Credit Info

EDITOR
서동현
PHOTOGRAPHY
오태진
STYLIST
이잎새
HAIR
재황(에이바이봄)
MAKE-UP
고미영(에이바이봄)

2018년 01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서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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