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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놀라게 하지 마요

진선규를 알던 사람은 영화 <범죄도시>의 ‘위성락’을 보고 그 낯선 얼굴에 놀랐다. 진선규를 모르던 사람은 청룡영화제 수상 소감을 보고 그 순박한 얼굴에 놀랐다. 진선규는 이렇게 자꾸만 우리를 놀라게 한다.

UpdatedOn January 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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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틀넥 스웨터·체크무늬 베스트·재킷·팬츠 모두 샌프란시스코 마켓, 운동화는 반스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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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규는 잘 웃는다. 그냥 입만 웃는 게 아니라 온 얼굴의 근육을 다 사용해서 활짝 웃는데, 그 모습을 조금만 지켜보면 알 수 있다. 그가 평생 이렇게 웃으며 살아왔다는 걸 말이다. 영화 <범죄도시> 관람 직후,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그에 대한 선입견을 가졌다. 진선규는 아마 이 역할을 맡기 전에도 4대 보험과 관련 없는 험악한 직업의 종사자를 주로 연기했을 것이고, 그에 걸맞게 성격도 좀 세지 않을까 하는. 그런데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던 진선규를 보고 나서 지난날의 오만한 편견을 반성했다. 너무나 순박한 얼굴로 엉엉 울면서 고향 친구들과 선후배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던 그는 내가 전혀 모르는 진선규였기 때문이다. 또 의외로 의사 등 전문직을 많이 연기한 ‘선한 이미지’의 배우라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범죄도시> 한 편으로 이렇게 단숨에 이름을 알리게 됐지만, 2017년 한 해 동안에만 <특별시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꾼> <범죄도시> <남한산성> 무려 다섯 편의 영화에 출연해온, 소처럼 열심히 활동해온 배우라는 것도. 사진 촬영을 통해 그간 운동으로 다져온 ‘코어’의 힘을 보여준 그는 자리에 앉아 온화하고 조분조분한 말씨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귀가 얇은 나로서는 그가 건강 보조제나 온수 매트를 권했다면 당장 결제를 하고도 남았을 만큼 목소리가 참 은혜로웠다. 이런 착한 남자가 영화 속에서 도끼를 휘두르고 혀를 깨물었으니 그의 친구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또 영화만 보고 ‘필시 중국에서 넘어온 배우 지망생일 것이다’ 여겼던 관객은 이번 수상 소감에 얼마나 놀랐을까? 너도 놀라고, 나도 놀랐으니 결과적으로 진선규는 대한민국 모두를 놀라게 한 셈이다.


“나도 악역을 잘하고 싶고, 잘할 수 있다 생각했는데 삭발을 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무섭고 잔인한 얼굴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나를 가리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로서는 큰 수확이었다.”

 

화제의 수상 이후로 어떻게 지내고 있나?
아직도 축하 메시지에 답변을 하고 있다. 가족, 친구들, 팬클럽 친구들 모두 개별적으로 만나 축하 자리를 갖다 보니 아직도 끝이 나질 않는다. 하하.

초면에 실례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다정하고 귀여운 사람 같다. 웃는 얼굴이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는데.
그냥 유쾌하게, 기분 좋게, 그게 내 삶의 모토다.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셔서 늘 웃고 살았다.

아직도 감사의 답장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사람들의 작은 인사 한마디도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인가 보다.
사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주는 게 처음이다. 나는 지난 40년 동안 도움만 받고 살았다. 어렸을 땐 부모님께, 대학 들어와서 자취를 할 때는 많은 친구들과 후배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한 번이라도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전하고 싶더라.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청룡영화제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된 건 우리가 몰랐던 진선규의 순박한 면을 발견해서다. 반면 자신은 ‘위성락’의 악랄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놀랐던 거 같은데?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도리어 영화를 보고 주변 사람들이 “선규 너한테 저런 모습이 있었어?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나도 악역을 잘하고 싶고, 잘할 수 있다 생각했는데 삭발을 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무섭고 잔인한 얼굴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나를 가리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로서는 큰 수확이었다.

이미 유명한 이야기지만, 〈범죄도시〉 오디션에서 처음에 탈락했었다고? 너무 긴장해서였나?
핑계를 대자면 그 당시 평창에서 <남한산성>을 찍고 <범죄도시> 오디션을 보기 위해 넘어와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추위와 잠과 싸우다 보니 준비가 부족했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점을 들켰던 거 같다. 그렇게 첫 번째 오디션을 망치고 나서는 나 스스로도 실망을 했다. 초심을 지키지 못한 것 같고, 생각이 많았다. 그런데 예전에 영화 <사냥>을 찍을 때 만났던 스태프들이 <범죄도시> 오디션을 다시 볼 수 있게 도와줬다. 강윤성 감독님에게 ‘진선규 연기 잘하는 배우니까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얘기했다더라고.

스태프들이 연기를 정말 잘하는 배우인데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거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지?
맞다. 그래서 이후에 진짜 운 좋게 다른 역할로 오디션을 다시 봤다. 정신 차리고 준비를 열심히 해갔다. 일주일 있다가 연락이 왔다. ‘위성락’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고.

울지 않았나?
그때는 울지 않았다. 대신 너무 기뻤다. ‘원래 준비하던 대로 오디션에 임했어야지, 성규야. 초심 잃지 말자.’ 이렇게 나 자신을 다잡았다.

자칫하면 평범한 머리의 위성락을 만날 뻔했다고?
의상을 피팅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민을 했다. 삭발하자는 이야기는 전부터 나왔는데 괜히 머리 긴 상태에서 연기로 변신을 꾀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고집이 있었다. 그런데 뭔가 계속 애매하게 착한 느낌이 남아 있어 마지막 순간에 삭발을 결정했다. 진짜 신의 한 수였다.

그래서 당분간은 삭발을 유지할 생각인가?
지금 촬영하는 〈사바하〉에서 이 머리 스타일 그대로 등장한다. 그런데 전혀 다른 이미지를 연기할 수 있어서 재미있다. 그리고 <킹덤>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에도 아주 짧게 출연할 예정이다.

지난달 만난 윤계상에게 〈범죄도시2〉가 나온다면 또 출연하겠느냐 물었더니 단호하게 거절하더라. ‘장첸’의 의견에 동의하나?
우리 셋 다 너무나도 짜릿하게 연기를 했기 때문에 미련은 없다. 그런데 정말 다시 기획을 한다면 ‘프리퀄’에는 도전해보고 싶다. 우리 셋이 어떻게 만나서 어떤 연유로 창원으로 들어가게 됐는지에 관한 이야기라면 해보고 싶다. 하지만 감독님이 나 같은 배우들을 일으켜 세워줄 만한 새로운 역할을 많이 만들어주셨으면 하는 게 더 솔직한 바람이다.

사실 진선규에 대한 편견이 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어렸을 때부터 연기파 배우였을 것’이라는 거다. 일례로, 경남 진해에서 체육 교사를 꿈꾸다 한예종 연기과를 한 번에 붙었다고?
어린 시절 기억은 시골집에서 삼남매끼리 놀면서 일 나간 부모님을 기다린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운동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소질이 있다. 그래서 ‘체육 교사가 돼야지’ 했다. 고3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친구를 따라 진해의 작은 극단에 놀러 가게 됐다. 형, 누나들이 무대 위에서 너무 재밌게 노는데 그 모습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아마 내가 유년 시절에 느껴보지 못한 소속감 같은 거였을 텐데, 그 지점에 확 끌려들어갔다. 짧은 시간에 매료돼서 그때부터 극단에서 청소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도우며 지냈다. 연극영화과에 들어가려고 한 달 정도 독백 두 개를 연습해 시험을 봤는데 우연치 않게 3차까지 붙었다. 원래 연기의 ‘연’자도 몰랐다.

한 달 만에 연기에 득도한 거 아니고?
전혀 아니다. 그냥 무대가 재미있고 좋았다. 열정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 공간에서 이런 걸 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간절했다. 당시 내로라하는 예고에서 연기 공부 많이 해온 친구들과 시험을 봐야 했는데, 그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나중에 나를 뽑아준 교수님과 면담할 때 “너는 뭔지 모르지만 되게 순수해 보였다.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었는데 그냥 너무 즐거워 보이더라”는 말씀을 하시더라.

 

 

터틀넥 스웨터·코듀로이 재킷 모두 샌프란시스코 마켓 제품.

 

“나도 모르게 입술이 부르트는 걸 보니까 원래 내 신체 리듬을 벗어나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거 같다. 나는 원래 그냥 내일 할 연기 준비하고 소박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참 많이 바빠졌다. 근데 또 지금이 너무 좋으니까. 하하. 이렇게 바쁜 것도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안다. 다시 또 제자리로 돌아가겠지.”

 

지금은 대학로에서 너무나 유명한 극단 ‘공연 배달 서비스 간다’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 마음 맞는 친구들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 또 궁금증이 생겼다. 내가 짐작하기에 진선규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공연 만들면서도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것 같다. 그런데 굳이 드라마와 영화 오디션을 계속 본 이유는 뭔가?
처음엔 ‘알바’의 개념이었다. 잠깐 나가서 조금 고생하면 우리가 극단에서 한 달에 버는 돈, 두 달에 버는 돈을 한 번에 벌 수 있으니까. 처음에 그렇게 해서 드라마 〈로드 넘버원〉 오디션을 본 거다. 단역 오디션이었는데 감독님이 일곱 번이나 나를 불렀다. 7차 오디션이 끝나고 두 역할 중 하나를 해보겠느냐고 제안하셨다. 하나는 박병은 배우가 맡았던 소대장 역할이고, 남은 하나가 내가 연기한 이병 ‘고만용’ 역할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거지. 드라마를 찍으면서 많은 사람들 만나고 보니까 굳이 매체를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만 고집하는 것도 우물 안 개구리 아닌가 싶어서 감독님이 불러주시면 오디션도 보고 그렇게 지냈다.

당시엔 공연도 계속 병행하지 않았나?
그랬지. 공연은 나와 떼려야 뗄 수 없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드라마나 영화를 찍고 와서 왠지 모를 자괴감에 극단 사람들에게 연기 피드백을 얻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왜, 밖에서 고생하고 집에 가서 엄마한테 ‘엄마 얘네들이 나한테 이랬다?’ 하는 칭얼거림 있지 않나. 그러다 보니 드라마나 영화에서 승부를 좀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3년 정도 연극을 최대한 줄이고 드라마나 영화 오디션을 열심히 봐서 한 회 차 배역이라도 따냈다. 그런데 너무나도 빨리 좋은 결과가 온 거다.

또 한 가지 편견은 아마도 ‘4대 보험이 적용된 직업을 연기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란 점이다. 왠지 계속해서 ‘위성락’ 같은 험악한 직업을 가진 인물을 연기했을 것 같은데.
아니다. 의외로 의사를 많이 연기했다. 내 목소리와 말투가 “금방 좋아지실 거예요”라고 하면 신뢰감이 확 든다고 해야 하나? 뭐 그런 덕을 좀 본 것 같다. 하하. 사극에서는 우직하고 충직한 인물을 연기했고. 맡은 직업은 꽤 다양했다. 대신 이름은 많이 없었다. 의사 1, 김과장, 뭐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전에 〈화차〉 촬영할 때 변영주 감독님께 “감독님, 저 이거 그냥 ‘사무장’ 역할인데 ‘진선규 사무장’으로 해주시면 안 돼요?”라고 말씀드린 적 있다. 나중에 보니 영화 크레디트에 ‘진선규 사무장’이라고 올라가더라. 1회 차의 짧은 역할이었는데도 이름을 갖고 싶다는 내 바람을 들어주신 것에 감사했다.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바쁜 요즘이다. 이런 생활 리듬에 익숙해졌나?
적응이 잘 안 된다. 지금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 인터뷰도 많아지고 여기저기 얼굴 비출 일도 있어서 피곤할 줄 알았는데 만나서 이렇게 축하받고 좋은 얘기 듣고 하니까 생각보다 힘들진 않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입술이 부르트는 걸 보니까 원래 내 신체 리듬을 벗어나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거 같다. 나는 원래 그냥 내일 할 연기 준비하고 소박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참 많이 바빠졌다. 근데 또 지금이 너무 좋으니까. 하하. 이렇게 바쁜 것도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안다. 다시 또 제자리로 돌아가겠지.

덕분에 부인 ‘박보경’도 유명해졌다. 대학로에 가면 박보경 배우를 만날 수 있나?
첫째 아이를 갖고 나서 연기를 쉬다가, 둘째 아이 낳기 전에 우리 극단에서 올린 〈유도소년〉과 〈나와 할아버지〉라는 작품을 잠깐 했다. 연기를 잊어버리지 않게 작은 역할이라도 공연을 해보고 싶다더라고. 그러고 나서 다시 둘째를 키우고 있다. 안 그래도 올해부터는 기회가 닿는 대로 공연을 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 박보경을 보면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거 알게 될 거다.

참, ‘우리 선규가 코가 낮아서 일이 잘 안 풀리는 거 같다’며 ‘코 성형 계모임’을 만들었던 경남 진해의 친구들은 잘 지내나? 곗돈은 어떻게 됐나?
이 코로 남우조연상까지 탔으니까 이제 성형은 못 한다. 그냥 낮은 코로 쭉 연기해야 될 것 같다. 계모임은 그냥 없던 걸로 하려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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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서동현
PHOTOGRAPHY 김윤식
STYLIST 민현지
MAKE-UP 이현정

201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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