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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북단의 세 별들

지난가을, 스코틀랜드 북단의 두 지역을 여행했다. ‘바이킹의 섬’ 오크니 아일랜드와 ‘스카치위스키의 심장’ 스페이사이드. 단단히 벼르던 싱글 몰트위스키 증류소 투어를 하기 위해서다. 하일랜드 파크와 글렌로시스 그리고 맥캘란 증류소를 관통하는 이번 여정에서 나는 또 한 번 위스키의 신비를 목격했다.

UpdatedOn December 2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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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에 지어진 맥캘란 디스틸러리의 입구. 이 지역 농민이었던 알렉산더 리드가 설립했다. 맥칼란은 스페이사이드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증류기를 사용한다. 이것이 맥캘란의 풍부한 풍미와 과실 향, 무게감을 결정 짓는다.

하일랜드 파크 증류소가 있는 오크니 아일랜드. 약 5백 년 전에는 바이킹의 후손인 노르웨이 땅이었다.

하일랜드 파크 증류소가 있는 오크니 아일랜드. 약 5백 년 전에는 바이킹의 후손인 노르웨이 땅이었다.

하일랜드 파크 증류소가 있는 오크니 아일랜드. 약 5백 년 전에는 바이킹의 후손인 노르웨이 땅이었다.

바에서 일하는 동안 바텐더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뭘까? 당연히 이것이다. “칵테일 좀 추천해주시겠어요?”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다음으로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박성민 바텐더,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가나요?”

나는 바텐더다. 그런데 여행 좋아하는 바텐더다. 틈만 나면 술 여행을 다니며 곳곳에서 영감을 줍는다. 바텐더가 된 이래, 시간과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여행을 떠난다. 나에게 여행이란 책으로는 얻기 힘든 경험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지난 10월에는 스코틀랜드 북단에 다녀왔다. ‘바이킹의 섬’이라 불리는 오크니 아일랜드와 스카치위스키의 심장과도 같은 스페이사이드 지역을 여행했다.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지는 싱글 몰트위스키를 직접 목격하고 흠뻑 느끼기 위해서다. 스코틀랜드는 신비로운 땅이다. 오래된 역사와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은 이 땅에선 오래전부터 위스키를 만들어 마셨다.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된 위스키를 일컬어 스카치위스키라고 한다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거다. 스카치위스키는 또다시 스코틀랜드의 어느 지역에서 생산되느냐에 따라 특유의 캐릭터를 지닌다. 오크니 아일랜드와 스페이사이드도 마찬가지다. 모두 물과 보리, 효모로 주조되지만, 두 지역에서 나는 위스키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품는다.

이번 여행에선 오크니 아일랜드와 스페이사이드 지역 위스키의 특징을 가장 뚜렷하게 표현해내는 3곳의 증류소를 다녀왔다. 오크니 아일랜드의 하일랜드 파크(Highland Park), 스페이사이드의 글렌로시스(The Glenrothes), 마지막으로 스페이사이드의 맥캘란(macallan).

하일랜드 파크가 지닌 헤더 꿀 향은 이 지역의 지층에 헤더 꽃나무가 퇴적돼 형성된 피트(Peat)에서 온다.


헤더 꽃나무의 마법, 하일랜드 파크

서울에서 런던, 런던에서 애버딘, 애버딘에서 다시 비행기로 약 1시간을 더 비행한 끝에 오크니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오크니 아일랜드는 현재 스코틀랜드 영역이지만 약 5백 년 전까진 바이킹의 후손인 노르웨이 땅이었다. 여전히 곳곳에 바이킹의 정신이 살아 숨 쉰다. 섬 전체가 북해와 대서양의 정가운데에 위치하며, 자연적으로 생성된,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 ‘스카파’가 있다. 오크니 아일랜드는 미국 알래스카주 남부 도시 앵커리지와 위도가 같다. 북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으로 자연환경은 척박하다. 그런데 여기에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섞인다. 오묘한 지역이다. 그 덕에 겨울철 평균 기온이 5℃, 여름철 평균 기온은 15℃를 유지한다. 다만 바람이 강하게 불어 나무는 자라기 힘든 환경이다. 그리하여 이 섬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나무는 헤더라는 이름의 키 작은 꽃나무뿐이다. 스카치위스키의 종류와 풍미를 이야기할 때 ‘피트(Peat)’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이 키 작은 꽃나무인 ‘헤더’가 오랜 세월 퇴적되어 생성되는 것이 바로 피트. 석탄의 일종이다. 이 피트가 바로 하일랜드 파크의 ‘키맨’이다. 땅속에 퇴적된 피트가 하일랜드 파크를 다른 스카치위스키와 다르게, 만들어준다.

하일랜드 파크 증류소는 1798년, 스코틀랜드 최북단에 설립됐다. 이곳에서 하일랜드 파크는 오크니섬 특유의 강렬한 피트 향과 소금 맛, 따뜻하고 긴 여운, 헤더 꽃의 꿀처럼 달콤한 풍미가 부드럽게 느껴지는 위스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피트 덕에 완성되는 헤더 꿀의 노트는 하일랜드 파크의 트레이드마크다. 스코틀랜드의 피트는 나무, 이끼, 풀 등 여러 가지 식물들이 퇴적되어 생성된다. 하지만 오크니 아일랜드의 특별한 자연환경은 헤더가 더욱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으로 작용하였고, 이 지역에서 헤더는 4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퇴적되어 피트가 되었다.

하일랜드 파크의 헤더 꿀 노트는 시간과 자연이 선사한 선물과도 같다. 하일랜드 파크는 아일라섬의 아일레이 위스키와 곧잘 비교된다. 두 지역의 위스키가 모두 섬에서 생산되며 피트 향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일랜드 파크의 피트 향은 아일레이 위스키의 그것과 명백히 구별된다. 일단 하일랜드 파크는 아일라섬의 위스키에 비해 덜 스모키하다. 그렇기에 스모키한 위스키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이나, 강한 스모크 향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잘 맞는다. 위스키를 잘 마시지 못하는 애인을 바에 데려갔을 때도 추천할 만하다. 그럴 땐 바텐더에게 하일랜드 파크를 베이스로 한 하일랜드 쿨러를 주문하라. 헤더 꿀의 향과 가벼운 스모키 향이 어우러진 위스키 쿨러를 아마 그녀도 좋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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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사이드의 글렌로시스 디스틸러리.

스페이사이드의 글렌로시스 디스틸러리.

맥캘란 증류소의 전시실에 놓인 1950년대의 맥캘란. 맥캘란이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때는 바로 1950년대다.

맥캘란 증류소의 전시실에 놓인 1950년대의 맥캘란. 맥캘란이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때는 바로 1950년대다.

맥캘란 증류소의 전시실에 놓인 1950년대의 맥캘란. 맥캘란이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때는 바로 1950년대다.

시음은 위스키 증류소 투어의 꽃. 방문자 센터의 책임자 마거릿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맥캘란을 시음했다.

시음은 위스키 증류소 투어의 꽃. 방문자 센터의 책임자 마거릿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맥캘란을 시음했다.

시음은 위스키 증류소 투어의 꽃. 방문자 센터의 책임자 마거릿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맥캘란을 시음했다.

스페이사이드의 온화함, 글렌로시스

오크니 아일랜드의 하일랜드 파크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고 다시 애버딘으로 돌아왔다. 버스로 약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두 번째 증류소는 글렌로시스다. 글렌로시스는 스페이사이드의 로시스(Rothes) 마을 부근에 자리한다. 이름난 블렌디드 위스키, 커티 삭(Cutty Sark)과 페이머스 그라우스(Famous Grouse)의 블렌딩에 사용되는 원액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아마 글렌로시스는 위스키를 어느 정도 즐겨 마시고, 조금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조금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글렌로시스는 1878년 제임스 스튜어트 컴퍼니(James Stuart & Co.)가 설립해 1879년부터 위스키를 생산한 이래 지금까지 쉼 없이 운영되어온 유서 깊은 증류소다. 글렌로시스 증류소가 위치한 스페이사이드 지역은 스카치위스키의 심장으로 불린다. 스코틀랜드 내 싱글 몰트위스키 증류소 1백여 개 중 40여 개 스페이사이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싱글 몰트위스키 글렌리벳과 글렌피딕도 포함된다.

스페이사이드는 온화한 기후를 띤다. 스페이강에는 깨끗한 물이 풍부하게 흐른다. 기후와 스페이강이 스페이사이드 지역의 위스키를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이 스페이사이드 지역 위스키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위스키가 바로 글렌로시스다. 글렌로시스는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여느 향수처럼 화려한 풍미와 말린 과일의 달콤함, 버터의 맛, 강하고 스파이시한 끝 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글렌로시스는 디저트와 잘 어울리는 위스키다.

맥캘란 증류소 투어는 지루할 틈이 없다. 각종 자료들로 빼곡한 위스키 박물관 같다. 맥캘란의 중심이 되는 각기 다른 캐스크 위스키도 접할 수 있다.

 

위스키계의 롤스로이스, 맥캘란

한때 영국의 국무총리였던 고든 브라운은 이런 말을 남겼다. “맥캘란이야말로 모든 싱글 몰트위스키의 절대적 평가 기준.” 맥캘란은 오랜 기간 타협하지 않는 품질로 위스키 업계에서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싱글 몰트위스키다. 또 맥캘란은 수없이 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레코드 메이커’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위스키도 맥캘란의 것. 맥캘란 1946 라리끄는 46만 달러(원화 기준 5억원 상당)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리고 있다. 맥캘란은 블렌디드 위스키가 점령한 한국 위스키 시장에 가장 먼저 싱글 몰트위스키의 파워를 보여준 브랜드다. 나 역시 바에서 손님에게 가장 많이 소개하는 브랜드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이번 스코틀랜드 북단 증류소 투어에서 내게는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목적지였다. 맥캘란 증류소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굉장한 크기로 그 위용을 자랑하는 위스키 숙성 창고가 보였다. 맥캘란 증류소 전체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방대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다 둘러보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맥캘란 증류소 전체의 규모는 약 3백90에이커(약 48만 평). 맥캘란은 정신적 고향이자 초석이 되는 여섯 가지를 식스 필라(Six Pillar)라 부른다. 맥캘란 증류소는 식스 필라 중 첫 번째 요소, 이스터 엘키스 하우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스터 엘키스 하우스는 1700년에 지어졌다. 제조 시설 외에도 90에이커(약 11만 평)의 보리밭, 증류에 사용되는 다섯 개의 수원지, 낚시터와 하일랜드 소를 키우는 농장 등이 모두 증류소 부지 안에 있다. 스페이사이드의 자연 경관과 하나인 듯 조화를 이루는 맥캘란 증류소의 풍광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비지터 센터 매니저인 마거릿의 환대를 받으며 맥캘란 증류소 투어를 시작했다. 맥캘란의 트레이드마크이며 두 번째 식스 필라인 증류기로 향했다. 증류기는 증류소의 규모와는 사뭇 다르게 작았다. 3천9백 리터에 불과했다. 마거릿은 설명했다. “이 작은 증류기는 위스키의 농축에 도움을 주어 풍부하고 부드러운 원액을 탄생시킵니다. 달콤하면서도 과일 향을 지닌 위스키를 만들어내죠.” 이 작은 증류기는 스코틀랜드의 화폐인 스코티시 파운드 뒷면에도 그려져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액은 세 번째 식스 필라인 파이니스트 컷(Finest Cut) 과정을 통해 최고의 원액만 선별되고, 네 번째 식스 필라인 맥캘란 오크통에 담긴다. 숙성 단계에 접어드는 것이다. 숙성. 위스키의 풍미와 맛을 80% 이상 결정하는 것이 바로 숙성 과정이다. 그만큼 위스키 제조에서 오크통은 엄청난 역할을 하는데, 맥캘란은 버번 캐스크를 1% 사용하고, 나머지는 스페인의 헤레즈에서 제조하고 선별한 최상의 오크통을 쓴다. 정성 들여 빚은 위스키는 오크통에 숙성되면서 자연스럽게 색상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것을 맥캘란은 다섯 번째 필라로 삼는다. ‘내추럴 컬러’라고 부른다. 숙성 창고로 옮겨진 원액은 깊은 잠에 든다. 시간과 공기, 오크 나무와 함께 호흡하며 세월을 보낸다. 그렇게 깊고 유려한 풍미와 맛이 무르익는다. 숙성이 완료된 맥캘란은 천재 위스키 메이커라 불리는 밥 달가노(Bob Dalgarno)와 이언 모리슨(Ian Morrison)의 예리한 눈과 손길을 거쳐 병에 담긴다. 맥캘란 12년 한 병은 50~60가지 원액을 치밀하게 블렌딩해 완성된다. 밥 달가노와 이언 모리슨이 하루에 시향하는 원액만 수백 가지란다. 위스키 메이커의 능력을 새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듯 최고의 원액이 어우러져 완성된 한 병의 맥캘란이 바로 마지막 여섯 번째 식스 필라, 피어리스 스피릿(The Peerless Spirit)이다.

내가 일하는 바, 르 챔버에는 대체로 2백여 가지 이상의 위스키가 있다. 나에겐 매일 너무도 쉽게 접하는 위스키가 이토록 복잡하고 섬세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 새삼 위스키 한 병, 한 병이 모두 신비롭다. 가을날의, 스코틀랜드 북단 싱글 몰트위스키 증류소 투어를 하며 나는 위스키 한 잔이 품은 시간과 자연 그리고 장인들의 위대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위스키가 어떻게 이토록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가을도 지나 이제는 겨울이 깊어간다. 싸늘해진 코끝과 입술을 데워주는, 뱃속은 물론 마음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위스키 한 잔과 함께 이 겨울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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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경진
WORDS 박성민(‘르 챔버’ 바텐더)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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