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INTERVIEW MORE+

글 잘 쓰는 의사

본업은 응급실 의사. 취미는 글쓰기. 그런데 두 권의 저서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잘났는데, 진중하기까지 하다. 이름은 남궁인이다.

UpdatedOn September 27, 2017

 

어제 만난 환자 중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
운수회사를 다니며 종일 운전하는 분이 왔다. 오래전부터 간염이 있었는데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가 배가 불러오고 기운이 없어 온 거다. 검사를 해보니 암이 머리까지 전이된 급성 악화로 살 날이 머지않은 상태였다. 부양해줄 가족은 별거 중인 아내와 사촌 누나뿐이라 했다. 검사비가 1백만원이 나왔는데 때마침 사촌 누나가 왔지만 그걸 못 내더라. 돈이 없어서. 별거하는 아내도 마찬가지였고. 환자도 돈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치료받을 형편이 아니라고만 하고. 결국 가장 싸고 의료보험이 잘된 병원으로 죽을 날을 기다리러 갔다. 돈이 뭐길래 평생 운전하며 살았는데, 남은 것도 없었다. 죽기 직전까지 생계를 유지할 돈이나 있는 걸까? 가족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1백만원조차 못 내고. 한번 당직 설 때마다 이렇게 뇌리에 남는 환자가 4, 5명은 된다.

두 권의 저서 곳곳에 응급실로 이송되기 전 환자의 사고 현장이나 고통받는 상황을 묘사했다. 이런 묘사가 가능하려면 작가가 환자와 동일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모든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며 얘기를 들으면 사회적으로 어떤 상황에 처했고 어떤 경위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알 수 있다. 다만, 나는 예전부터 문청 기질이 있어서 나 자신의 불행이나 불운,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집중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이런 기질 덕에 환자를 볼 때도 그들의 불행에 이해하려고 하는 편이다. 글 쓸 때는 그 사람의 상황, 말이나 행동 하나까지 보다 가까이서 상상하고 헤아리려고 한다.

쓸 때마다 끔찍하고 처참한 상상을 한다는 건데, 괜찮나?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 같다.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지독한 하루>에 방충망에서 떨어진 남매의 사연이 있다. 한 명은 죽고 다른 한 명은 다리가 부러지지만 산다. 글 쓸 때는 내가 그 환자의 입장이 돼서 묘사를 해야 한다. 그 입장이 되려고 1주일 이상 계속 생각한다. 어떤 느낌으로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몰입하다 보면 버스 타고 가다가 복받쳐 울곤 한다. 남매의 엄마 대사를 쓰면서는 단어 하나를 적을 때마다 울었다. ‘우리 집의 모든 창을 발라버리고 평생 살 거다. 내 자식이 방충망에서 떨어져서 죽었는데, 그딴 창 같은 거 나는 안 보고 살 거다.’ 대략 이런 문장이었다. 생각해내기까지 상당히 힘들지만,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만약은 없다>의 ‘죽음에 관하여’ 말미에선 생명과 죽음에 대한 담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의 실존까지 건드린다. 이런 지점이 남궁인 글의 색깔인 것 같다.
그 부분을 쓰고 나서 좀 놀랐다.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담도암 말기 환자가 자의로 집에 돌아갔는데 고통이 심해져 병원으로 오다 차량 충돌 사고를 냈다. 상대는 죽었고 담도암 말기 환자는 살았다. 처음에는 분했다. 내가 보낸 환자가 사람을 죽인 거니까. 근데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서 그 환자를 돌려보내지 않을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직접 집에 간다고 선택한 거다. 당신은 사람을 죽일 거니까 병원에 가둬야겠다고 할 수 없다. 죽음 앞에 있는 자를 탓하기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말미에 ‘생명과 우연’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도의적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범위의 우연’ ‘생명이 얼기설기 위태롭게 얽힌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적었다. 때문에 ‘죽음에 관해 쉽게 왈가불가하는 것은 미친 짓’이고. ‘그 처참한 시체만을 눈앞에서 볼 뿐 아무것도 언급해서는’ 안 된다고. ‘죽음이 자신에게 올 때까지도’ 라고 적은 거다.

모든 의사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다.
‘어쩔 수 없었네. 이런 일도 있네’ 하고 넘길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한 거다. ‘이 죽음은 무엇인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답은 없더라. 어쨌든 내 환자 한 명이 죽었고 또 한 명이 죽었다. 시공이 일그러지는 느낌이었다. 본래 그렇게까지 격하게 쓰지 않는 편이라 써놓고 좀 놀랐다.

 

“글 쓸 때는 내가 그 환자의 입장이 돼서 묘사를 해야 한다. 그 입장이 되려고 1주일 이상 계속 생각한다. 어떤 느낌으로 어떤 말을 할 것인가. 그렇게 몰입하다 보면 버스 타고 가다 울거나 길 가다 복받쳐 울곤 한다.”


인간다움에 대한 강인하고 묵직한 온기를 가지는 이유는 뭘까? 보통 의사가 다 그런가?
보통 의사들은 감각이 무뎌지고 어느 지점에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당연할 수도 있다. 환자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의사는 훌륭한 의사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사망 선언을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이 보기에 의사가 이성이 아닌 감정에 휘둘려 판단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면 어떨 것 같나? 가족 입장에서 의사는 더 이상 의사가 아닌 거다. 환자는 상황에 맞는 의학적 지식만을 적용하며 이성적으로 대하는 게 옳다. 모두를 위한 일이다. 다만, 나는 퇴근 후 인상 깊었던 환자에 대해 잊지 않고 상기하는 습관이 있다. 그 환자가 나에게 남긴 말로 형용하기 힘든 사유나 감정, 감각 등을 작가적 자아로서 면밀히 되짚어 본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작가로서 욕심도 많네?
당연하다. 내가 쓴 글에 애정이 있다. 글 쓰는 사람이 자기 글에 애정이 있으면 남들한테 보이고 싶은 욕심도 있는 거다. 등단 과정을 거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내 글을 알릴 수단은 SNS와 미디어 뿐이다. 어쨌든 글을 더 알릴 수 있는 계기라 생각해서 내 성향과 맞지 않지만 열심히 했다. 촬영 있으면 촬영도 하고 독자 만남 있으면 준비해서 나가고. 요청이 있으면 보여주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스스로 튀는 성격은 아니지만, 글에 대한 욕심으로 그런 일을 계속해온 거다.

얼마 전 신작 <지독한 하루>를 출간했다. 전작 <만약은 없다>와는 어떻게 다른가?
<만약은 없다>는 우울함 때문에 죽고자 한 적 있는 의사가 환자를 보면서 그들의 아픔에 깊이 동조하고 동시에 개인적인 사유나 감정 등을 함께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의사가 쓴 책이야 많지만 이런 방식은 확실히 드물다.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작가도 있네?’ 싶었을 거다. 그리고 첫 책 출간 이후 다른 방향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더 생기더라. <만약은 없다>를 통해 남궁인의 자아와 글, 캐릭터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알렸으니, 이번엔 외부적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싶었다. 그래서 <지독한 하루>에서는 소방공무원, 의료진 폭력이나 아동학대 내지는 끔찍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담았다.

<만약은 없다>에서는 응급실 이야기와 나를 함께 담았다면, <지독한 하루>에서는 현실 그 자체에 초점을 둔 거네?
현실의 얘기를 더 적확하게 하고 싶었다. 제목이 <지독한 하루>다. 읽다 보면 이런 힘겨운 사람이 있구나, 싶을 거다. 궁극적으로 이런 지독한 사회, 힘겨운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다른 장르도 도전할 생각이 있나?
2~3개월 내로 독서 에세이를 낼 예정이다. 말랑말랑한 글도 곧잘 쓰는 편이라 비교적 가벼운 책도 따로 내볼 예정이다. 또 장편 소설로 아예 픽션의 세계로 가볼까도 생각 중이다. 내가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주인공이 처절한 사유를 한다든지, 처절한 일을 계속 겪는다든지. 나를 닮은 소설일 거다.

밴드 활동도 하지 않나?
직장인 아마추어 밴드 ‘줄라이’에서 신시사이저를 맡고 있다. 6세 때부터 피아노를 쳐서 클래식은 웬만한 건 다 친다. 라흐마니노프나 쇼팽을 좋아한다. 혼자 치다 보니까 밴드도 해보고 싶어서 8년 전 밴드에 들어갔다. 그때 재즈 피아노도 배웠고. 이것도 일종의 취미 생활이다. 글도 처음에는 취미였다. 내가 의욕만 있으면 열심히 하는 편이다.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GUEST EDITOR 김민수
PHOTOGRAPHY 오태진
HAIR & MAKE-UP 채현석

2017년 09월호

MOST POPULAR

  • 1
    내 눈을 위하여
  • 2
    불가리 워치의 대담함
  • 3
    틱톡이 바꾼 세상? 세상을 담은 틱톡
  • 4
    빅톤 '촤장신즈' 승우와 병찬의 크리스마스에 생긴 일!
  • 5
    HELLO TIKTOK

RELATED STORIES

  • INTERVIEW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 'K-댄스의 중심에서' 미리보기

    춤으로 세상을 이끈다. 과장이 아니다. 안무가들이 창작한 안무를 보고 배우는 아티스트 집단인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의 유튜브 구독자는 2천만 명이 넘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댄스 레이블이다. 최근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 (여자)아이들과 손잡고 K/DA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금 ‘롤’에 접속하면 그들의 춤을 볼 수 있다. K/DA 프로젝트에 참여한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의 안무가들을 만났다.

  • INTERVIEW

    김소연 ‘3막 시작’ 미리보기

    배우 김소연의 뇌쇄적인 매력. <펜트하우스>의 천서진에게 이런 매력이?!

  • INTERVIEW

    펜타곤 후이 'LONG LONG NIGHT ALONE' 미리보기

    펜타곤 후이와 겨울 밤거리를 걷다. 입대 전 첫 솔로 화보와 인터뷰 공개.

  • INTERVIEW

    AB6IX 이대휘 'SPACE ODDITY' 미리보기

    AB6IX 이대휘, 경계를 넘어서는 패션 화보와 인터뷰 공개

  • INTERVIEW

    '은빈은 알고 있다' 박은빈 미리보기

    박은빈, 책임감은 더 단단해졌다.

MORE FROM ARENA

  • LIFE

    클래식의 계절

    가을에 듣는 클래식, 보는 클래식, 읽는 클래식.

  • WATCH

    주목해야 할 새로운 시계

    지금 주목해야 할 새로운 얼굴 6.

  • FEATURE

    지옥에서 누가 살아남을까?

    전 세계에 전염병이 퍼지고, 시위가 발생해도 공은 굴러간다. 안 열릴 것만 같았던 챔피언스리그가 시작된다. 32강 조 추첨은 마무리됐고, 죽음의 조가 두 개나 나왔다. 그중 가장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H조에는 황희찬의 소속팀 RB 라이프치히가 속해 있어 국내 팬들의 관심이 쏠린다. 또 다른 죽음의 구렁텅이인 D조도 흥미로운 대진이다. H조와 D조에서 살아남을 팀은 누구인가.

  • FEATURE

    애플 아케이드가 빠진 함정 셋

    작년 이맘때쯤 구독형 게임 서비스의 시대가 도래했다. 타노스급의 거대한 등장이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잊힌 추억처럼 초라하게 남았다. 죽어가는 게임 OTT 시장을 심폐 소생하기 위해 SKT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선보이기로 했다. 이 서비스는 허물어진 경쟁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을까? 구독형 게임 서비스를 분석하고 허점을 짚어본다.

  • CAR

    8기통 엔진의 미학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V8 터보 엔진을 탑재한 F8 트리뷰토를 타고 서킷을 달렸다.

FAMILY SITE
닫기 오늘 하루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