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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등병, 군대 병장을 추억하다

어느 날 갑자기 군대에 가고 싶어졌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생각하면 여전히 나의 사회 계급은 이등병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왕년엔 나도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 시절이 있었다. 피가 끓는 청춘을 보낸 그 시절의 마지막 6개월 병장 시절 말이다. 제대한 지 7년, 과연 내가 복무했던 수도방위 사령부 헌병단은 어떻게 변했을까? <br><br>[2007년 3월호]

UpdatedOn February 21, 2007

Editor 김현태 Photography 정재환, 박원태 Assistant 김창규

얼마 전 정부는 병사들의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입대를 앞둔 청년들이 어떻게든 입대 날짜를 늦추려 한다는 뉴스도 들려왔다. 놀라운 건, 군에 대한 관심이 입대를 앞둔 남자나 그 가족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친구 중 한 놈이 말했다. “군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준다면서? 완전히 방위랑 똑같네. 나도 요즘 군대 갔으면 정말 살 만했겠다.” 모두들 그의 의견에 동의하며 각자 주워들은 요즘 군대에 대한 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요즘은 병장과 이등병이 서로 경례를 한다는 둥, 이등병들도 침상에서 발 뻗고 TV를 본다는 둥 확인되지 않은 유비통신은 어느새 신빙성을 얻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그 말들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지만 군대는 군대 아니겠는가.
정말 친구들의 말처럼 지금 군대는 편하디편한 합숙 훈련소일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런 ‘당나라부대’에 어떻게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맡길 수 있을까? 얼큰했던 취기가 싹 사라지면서 당장 군대에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기자로서의 탐사 정신이 샘솟았다. 그것도 이왕이면 내가 전역한 부대로 말이다.
7년 만에 다시 찾은 수도방위 사령부 헌병단은 예전 그대로였다. 수도방위 사령부는 과천과 사당 사이에 위치해 있다. 헌병단은 사령부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부대다. 겉모습만 보면 고등학교 교정과 비슷해 매우 평화로워 보인다. 게다가 아무리 연륜이 쌓인 학교도 겉모습만 보면 그 연대를 쉽게 파악할 수 없듯이 헌병단 건물도 외관은 번듯했다. 하지만 내부 시설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지금 짓고 있는 신막사에 비하면 시설 면에서 열세인 건 부인할 수 없다. 사령부 주둔지에 근무하는 헌병단은 보통 3개월마다 검문소와 주둔지를 왔다갔다 하는데, 내가 헌병단에 들어간 날은 마침 검문소에 들어갔다 나온 인원들이 복귀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때였다. 당연히 부대 전체가 어수선하고 부산했다. 그래서 요즘 일과 시간은 모든 교육 훈련을 중지하고 부대 정비로 돌리고 있었다. 사실 부대 정비 기간까지 모든 게 7년 전과 같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검문소에서 복귀한 인원들만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군대란 곳은 생각보다 행사가 참 많다. 그날도 검문소에서 복귀한 인원을 대상으로 한 ‘체력왕 선발대회’가 있었다. 연병장에 모인 2백여 명의 병사들은 제각기 자신의 체력을 뽐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후배들과 몸을 풀고 싶어진 나도 웃옷을 벗고 그 대열에 합류했다. 최신 시설을 갖춘 피트니스 센터에서 몸을 단련하는 내 기록은 겨우 40개 언저리. 윗몸일으키기 우승자의 횟수는 무려 4백60여 개. 듣는 이의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이 놀라운 수치는 바로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포상휴가증에서 나온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포상휴가는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최고의 당근이다. 운동을 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우리 일행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군에 있던 시절만 해도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조리병 한 명이 나와 조금씩 퍼주곤 했다. 예를 들어, 닭강정 같은 인기 메뉴는 3조각 먹으면 운수대통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모든 게 자유 배식이었다. 그날도 10대 인기 메뉴 중 하나인 오징어튀김이 나왔지만,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또 일명 ‘○국’이라 불리는 맛없는 국은 사라졌다.
일주일치 메뉴가 모두 적혀 있는 식단표에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먹던 군대표 햄버거와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불고기 버거와 치즈 버거. 직접 맛을 보진 못했지만, 햄버거 하나만 봐도 많이 달라지긴 달라졌구나,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딱딱한 인스턴트 패티와 딸기잼 그리고 치즈 한 장으로 구성된 군대표 햄버거를 참 좋아했다. 하지만 병장이 되어서도 햄버거를 탐식하면 동료들 사이에서 완전히 군에 적응한 놈이라는 낙인이 찍히기에 햄버거를 먹는 행복한 시간에도 난 입으로는 “도대체 이런 햄버거를 어떻게 먹으라고 주는 거야?” 하면서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마침 내 옆을 지나가는 병장한테 요즘은 햄버거 잘 먹느냐고 물었다. 그는 차라리 PX를 가고 말지 햄버거를 어떻게 먹느냐고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아마 맥도널드 치즈 버거를 가져와도 군에서 소비되는 햄버거는 병장에겐 회피의 대상이 될 게 틀림없다. 병장이 되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군대의 것이라면 무조건 멀리해야 한다. 그들은 워낙 ‘짬’이 차서 그것들을 아주 지겨워해야 한다. 그게 병사들 사이의 규칙이다. 30년 전 군인들도 그리고 30년 후 군인들 사이에서도 그럴 게 틀림없다. 발길을 돌려 내가 말년을 보낸 3층 7내무실- 이제는 생활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에 가보았다. 역시 별다를 게 없었다. 이제 옛 주인은 떠나고 새 주인을 맞이하고 있는 관물대도 그대로였다. 운 좋게도 내무실 선임병과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니 그래, 요즘은 이등병도 누워서 TV를 보나?” 하고 묻자 병장은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이등병이었을 땐 참 고생했는데, 완전히 바뀌어서 이젠 “이병이 무섭다”며 탄식했다. 우스웠다.
그 말은 내 고참에게서도 들었고, 내가 최고참이 되었을 때도 내 입에서 나온 소리다.
물론 예전에 비해 달라진 것도 많다. 한눈에 살펴봐도 확실히 내무 생활이 편해졌다. 워낙 구타에 강경 대응해서인지 병사 간의 폭행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이등병들의 얼굴은 예전보다 훨씬 밝아졌고 복도를 다닐 때 7년 전처럼 뛰어다니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밥을 먹을 때 병장들보다 빨리 먹기 위해 밥과 반찬을 함께 입 안에 털어넣는 병사도 없었다. 내무실에 들어가자, 한 이등병이 웃으면서 병장에게 말 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그림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아무도 시비 거는 병사가 없다는 것이다. 또 내가 이등병일 때는 그 큰 헌병단 건물에 공중전화가 2대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병사 20명당 한 대의 전화가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복지가 좋아진 만큼 규율은 더 엄해졌다. 내가 군에 있을 땐 엄정화나 베이비복스 그리고 핑클이 웃고 있는 사진이 병사의 관물대란 관물대를 모조리 점령했다. 하지만 요즘 병사들의 관물대 안은 부모님 사진이나 가족 사진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김아중이나 아이비의 수영복 사진이 있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무참히 깨졌다. 아니, 요새 군인들은 모두 수도승이란 말인가? 알고 보니 예전보다 내무실 관리가 훨씬 엄격한 탓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그토록 재미있게 보던 <순풍 산부인과>를 근무 시간만 아니면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군인들은 주몽의 활약상을 오직 주말 재방송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우리 시절엔 병장이 되면 술 마실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 병장들은 군대에서 술을 마신다는 건 꿈도 못 꾼다면서 그 시절을 부러워했다. 이는 군대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군대는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예전에는 ‘빡센’ 내무 생활로 군기를 확립했다면 이제는 한층 전문화된 훈련과 체계적인 생활 관리로 전투력을 보전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예비역으로서 아쉬운 점도 있었다. 나는 자랑스러운 헌병 출신이다. 수방사 헌병은 군인들 중 가장 멋진 이들만 뽑히는 곳이다. 적어도 내겐 그런 자부심이 있었다. 순찰을 나가기 전 나는 쏟아지는 잠을 쫓아가면서 전투화를 돌리곤 - 전투화에 광을 낸다는 군대식 은어 - 했다. 그리고 옷을 다렸고, 화이바를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닦아댔다. 물론 위압적인 예전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병과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줄 장치는 필요해 보였다. 결론을 얘기하면, 요즘 군대는 우리가 걱정할 정도로 기강이 무너지진 않았다. 친구들이 말하는 개념 없는 군대는 적어도 수방사 헌병단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 발전에 맞춰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시설은 조금씩이나마 좋아지고 있었고, 내무 생활은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병사들 사이의 위계질서도 인정할 수 있는 선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물론 7년 전의 나처럼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뜨리던 대단한 권력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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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현태
Photography 정재환, 박원태
Assistant 김창규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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