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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그린 섹스

On February 21, 2007

머릿속에 맴돌던 환상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 환상은 더 이상 환상일 수 없다. 우리가 이루길 원했던, 그리고 결국은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버린 이야기. <br><br>[2007년 3월호]

 

 

친구에게 물었다. 그가 판타지라고 말한 섹스의 형태는 스리섬이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스리섬을 좋아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유행하는 안마시술소의 유형은 연애를 끝까지 책임질 파트너와 가면을 쓴 도우미가 한 명 더 들어와 삽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분위기를 ‘업’시키고 퇴장하는 찰나적 스리섬이다. 남자의 판타지를 정확히 알아챈 그들의 상술은 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내 친구가 말한 스리섬이었다. 그는 성매매로 하는 스리섬은 싫다고 했다. 그가 원한 건 현재의 여자친구와 과거 여자친구와 함께하는 2대 1 플레이였다. 도덕을 논하던 그는 남성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듣고 보니 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랫도리가 두둑해졌다.
하지만 이런 건 불가능하다. 난 지금까지 청순가련형의 순진무구한 여자들만 만났다. 이상하게 그랬다. 그녀들에게 섹스하자는 말을 꺼내기도 힘들 정도였는데, 어찌 그 두 명의 청순가련형의 날 떠난 여자친구와 현재의 여자친구를 모텔 방에 불러들여 즐길 수 있겠는가. 설령 이런 상황이 연출된다 해도, 난 자신이 없다. 두 명 다 공평하게 대할 수 없고, 누구한테 먼저 삽입을 해야 하는지, 누구한테 사정을 해야 하는지도 우유부단한 내겐 곤란한 일일 거다. 환상은 머리에 엔도르핀을 돌게 해야 한다. 상상하자마자 머리부터 아프다면, 그건 환상이 아니라 지독한 현실이다.
몇 년 전 일본에 갔을 때 독특한 느낌의 극장에 들른 적이 있다. 같이 간 선배를 따라나선 그곳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 공연이 진행될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공연이 시작된다는 알림과 함께 외국인 여자 한 명이 팬티만 입고 객석에 등장했다. 그녀는 극장에 앉아 있는 남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가슴을 만지게 했다. 가슴을 만지기 위해선 따뜻한 물수건으로 손을 닦는 게 필수였다. 좀 웃긴 것은, 예의 바른 일본인들은 얼굴만 한 외국 여자의 가슴을 두 손으로 꾹 쥐고 흔들지 않았다는 거다. 단지 살짝 손을 대고 뱅글뱅글 댄스를 추듯 원을 돌릴 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오진 않았다. 하지만 흑발의 외국 여인은 나이 많은 할아버지 틈새에서 20대 후반의 나를 지목했다. 쭈글쭈글한 노인들의 손이 싫어서였는지 몰라도, 난 본전 뽑겠다는 생각에 제대로 만져보겠다며 일어났다. 하지만 물수건으로 손을 닦고 나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꽉 잡아보겠다는 일념은 사라졌고 나도 일본 아저씨들과 다름없이 동그랗게 원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몇 명의 아가씨들이 등장했고 간택된 남자들은 가슴으로 원그리기를 반복했다. 내 주변에 노인들만 있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사실 그 극장에는 노인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마지막 엔딩을 준비하는 무대가 갑자기 분주해졌다. 한 남자가 무대 정중앙에 이불을 깔았다. 도대체 어떤 쇼를 진행하려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K-1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성으로 장내 사회자가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기본적인 일본어만 할 줄 알던 터라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지만, 잘 차려입은 젊은 남자들이 경쟁적으로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가위바위보를 했다. 아내의 친절한 손길이 느껴지는 화이트 셔츠를 입고 있던 30대 중반의 남자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일본 여자 한 명이 무대로 오더니 옷을 벗고 이불 위에 누웠다. 그 모습은 가히 충격이었다. 그들은 공개적인 섹스를 무대 정중앙에서 하려는 것이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섹스는 자극적이다. 사람들은 모두 그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정을 위해 걸린 시간은 3분을 넘기지 못했다. 박수를 받고 내려오는 남자의 모습은 그리 보기 좋지 않았지만, 집 안이 아닌 열린 장소에서 하는 섹스가 어떨까 하는 환상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그 생각은 밤만 되면 날 지배했다. 안 하던 몽정도 해버렸다. 이미지클럽에서 간호사복 입은 여자와 섹스하는 건 이미 섹스의 하층민들이나 즐기는 유희처럼 생각됐다. 사실 공개적으로 섹스를 할 순 없다.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처럼 가면을 쓰고 이루어지는, 비밀이 유지되는 섹스라면 상관없지만 그것 역시 내겐 현실이 될 수 없는 환상일 뿐이다.
난 여자친구를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나갔다. 카섹스는 내게 더 이상 판타지는 아니었다. 몇 년 전까지는 판타지 리스트에 있었지만, 경험하고 나니 별로였다. 그냥 뒤처리도 귀찮고 불편하기만 했던 섹스였으니까. 인적이 드문 곳으로 그녀를 이끌고 간 건 순전히 열린 공간에서의 섹스라는 내 환상을 만족시키기 위한 거였다. 난 내 기분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그녀를 애무하는 데 더 열을 올렸다. 내가 부탁하면 언제나 뒤로 엉덩이를 빼고 손사래를 치던 그녀였지만, 한번 흥분하면 대부분 내 소원을 들어주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젖었다는 걸 확인한 후 그녀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물론 설득의 시간은 짧지 않았지만, 각설하겠다. 우리는 옷을 다시 차려입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잡초들이 무성한 곳으로 들어갔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 팬츠를 내리고 그녀의 입으로 성기를 가져갔다. 3분 정도의 오럴섹스가 이루어지고 난 그녀를 돌려 세우고 바지를 내렸다. 허리를 굽히고 삽입할 찰나, 멀리서 남자로 보이는 실루엣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놀란 우리는 차로 몸을 피했다. 카메라폰이 없던 때라 그래도 다행이었다. 난 급하게 알피엠이 레드존을 찍을 때까지 가속페달을 밟으며 극한까지 달아났다. 마무리를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누군가가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기분은 리비도를 증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흥분됐던 기분은 지금 생각해도 생생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끝을 보지 못한 탓인지 공개적 섹스의 환상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청량리가 성행할 땐, 물레방아라든지 강강술래, 그리고 성기로 담배 피우는 쇼들이 고교를 막 졸업한 남자들에겐 꼭 보고야 말겠다는 환상으로 작용했다. 대학 졸업 때가 되면, 선배들에게 듣던 북창동 스타일이 또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여러 명이 둘러서 음악이 끝날 때까지 오럴섹스를 해주는 장면은 포르노에서 항상 봤던 난교의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난교 포르노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같은 환상도 자극적이지 않겠나. 하지만 경험해보면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다.
공개적인 섹스를 하는 것도 환상성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남의 섹스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도 자극제가 될 수 있다. 훔쳐보기인 피핑(Peeping)이 엄연히 존재하는 건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멀고도 먼 친구가 한 얘기라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순 없지만, 두 쌍의 남녀가 혼숙을 했다고 한다. 스와핑을 애초부터 원하지 않았던 그들은 조금 더 자극적인 섹스를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한 커플이 먼저 섹스를 시작했다. 다른 한 커플은 그 둘의 모습을 끝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섹스가 끝나면, 지금껏 보고만 있던 커플이 섹스를 시작했다. 식은 몸을 다시 달구기 위해 이미 섹스를 끝낸 커플은 새로운 커플의 섹스를 지켜본다. 그런 식으로 반복된 그들의 섹스는 각자 다섯 번의 섹스를 하고 끝냈다고 한다. 서로의 섹스를 보며 식었던 몸이 달아오른 거다. 하지만 내 여자의 몸을 다른 남자에게 보여준다는 건 아직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나보다 그 친구의 성기가 더 크고 힘도 좋고 여러 체위를 구사한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작용했다. 환상은 환상으로 남겨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가끔은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섹스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게 남자들이다. 하지만 판타지는 어쩌면 환상으로 남겨두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현실이 되었을 때 우리는 더한 것을 찾아 헤맨다. 일본의 포르노가 역겨운 이유는 끝을 모르는 지나친 창의력 때문이다. 환상은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환상만 보고 산다면, 당신은 정신이상자일 가능성이 높다. 난 공개적 섹스를 포기했다. 그냥 정상적인 인간으로 체위만 바꿔가며 살아갈 생각이다. 그래도 내 머릿속의 섹스 그림은 계속 그릴 계획이지만.

머릿속에 맴돌던 환상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 환상은 더 이상 환상일 수 없다. 우리가 이루길 원했던, 그리고 결국은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버린 이야기. <br><br>[2007년 3월호]

Credit Info

WORDS
김상욱(프리랜서 카피라이터)
PHOTOGRAPHY
게티이미지
Editor
성범수

2016년 04월호

이달의 목차
WORDS
김상욱(프리랜서 카피라이터)
PHOTOGRAPHY
게티이미지
Editor
성범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