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INTERVIEW MORE+

내 마음 갈 곳

최백호가 앨범을 냈다. <불혹>. 미혹되지 않는 나이. 올해는 그가 노래한 지 40주년 되는 해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던 시절을 지나, 노래 하나로 운명이 뒤바뀐 시절도 지나, 그는 이제야 진지한 마음으로 노래 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UpdatedOn May 31, 2017

3 / 10
/upload/arena/article/201705/thumb/34635-231563-sample.jpg

 

 

 

“40주년 기념 앨범이며 공연도 사실은 제 뜻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앨범 내길 잘한 것 같아요. 앨범에 대한 반응도 지금까지 얻은 걸로 족해요. 
딱 이만큼 좋아요. 더 이상은 그냥 팔자고요. 
내가 차 사려고 모은 돈을 이 앨범에 다 썼어요. 
앨범 장사는 이제 본전 뽑기 힘든, 무조건 적자 나는 장사지만, 차는 못 샀지만, 나는 만족해요.”

 

얼마 전 서울에서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을 하셨죠. 매진되었다면서요.
기획해준 회사에서도 서울 공연은 무조건 적자일 거라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잘됐어요. 젊은 관객이 꽤 보여서 그런가. 이전과는 분위기가 달랐어요. 그래도 내 마음대로 옛날식으로 하기는 했지. 5월 6일부터는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몇 개 도시를 돌아요. 이번 앨범 내고 공연한다고, 최근에 인터뷰를 참 많이 했어요. 너무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같은 얘길 계속하시게 되죠.
그래서 안 하려고 해요. 그런데 〈아레나〉는 매번 서점에 비치된 걸 공짜로 읽기 때문에… 하하. 서점에 가면 자동차를 좋아해서 자동차 잡지도 많이 봅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자동차 생활>이라는 잡지에 몇 년간 시승기를 썼어요. 젊은 시절에는 카레이서를 하고 싶었거든요.
화가와 영화감독도 꿈꾸셨잖아요. 꿈이 많은 청년이셨네요.
사람은 계속 꿈을 꿔야 늙지 않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 〈불혹〉을 준비하면서는 목의 컨디션이 상당히 좋은 상태셨다고요.
굉장히 좋았어요. 데뷔 이래 지금이 최고예요. 몸 상태는 별 차이가 없는데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서울 공연 때도, 예전에는 힘들었던 비 플랫까지 올라갔어요. 그래서 지금 싱글 녹음을 계속해요. 일흔 넘으면 자연히 목이 안 좋아질 테니까. 곡은 이미 써놓은 게 좀 있으니까 곡 작업은 매일 해요. 아침 6시쯤 일어나거든요. 그때부터 2시간 정도. 가사도 쓰고 멜로디도 만들고, 가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요.
그때가 선생님에게는 가장 활기 넘치는 시간인가요?
아내가 늘 말해요. “새벽에는 청년으로 태어난다”고요. 하하. 원래 잠이 별로 없어요. 매일 4시간쯤 잡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앨범 〈불혹〉의 프로듀싱을 에코브릿지가 했어요. 에코브릿지가 작곡한 ‘바다 끝’은 ‘부산에 가면’의 연작 같기도 하고요. ‘부산에 가면’을 함께 작업한 기억이 좋았던 것이 이유일까요?
원래는 이 앨범을 다른 기획사와 만들기로 했어요. 그 기획사 프로듀서랑 작업하는데 잘 안 맞았죠. 친분이 있는 사이였기에 그냥 빨리 접자고 했어요. 에코브릿지의 곡 ‘바다 끝’은 어찌됐든 이번 앨범에 넣으려 했어요. 그래서 에코브릿지에게 프로듀싱을 부탁했죠. 때마침 그가 회사를 따로 차렸더라고요.
​근래에는 젊은 후배들과 협업을 계속 해오셨는데요. 젊은 뮤지션에게는 선생님의 깊이 있는 감성이나 목소리가 필요했던 것일 텐데, 그런 작업이 선생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나는 기초를 다지면서 음악을 해온 사람이 아니에요. 비어 있는 부분이 많죠. 젊은 친구들과 함께한 작업이 여러 가지로 공부가 됐어요. 협업을 웬만큼 했으니, 아마 당분간은 그런 제안을 못 받을 거예요. 그렇게 습득한 것을 바탕으로 이제 제 노래를 달리 해봐야죠. 이제는 뭔가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새것을 받아들이는 일에 거리낌이 없으시네요.
다른 면으로는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인데요, 세상 일에나 음악에나 여러 부분에서 진보적인 마인드를 가진 것 같아요. 재능 있는 친구들과 함께할 때 느끼는 기쁨이 커요. 아이유는 리듬감이 굉장히 좋아요. 비트 있는 노래가 아니어도, 자신이 타야 할 리듬을 본능적으로 잡아내요. 저에게는 없는 면이거든요. 가수의 재능은 타고나는 거예요. 노력으로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죠.
다른 사람이 가진 재능을 옆에서 보는 일을 즐기시나요?
그러면서 제 한계를 깨닫거든요. 한계를 아니까, 아주 냉정하게 나를 판단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내 노래가 기대돼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게 없었거든요. 아무거나 막 했어요. 무슨 노래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요.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근래에 깨달은 부분이에요. 한 4~5년 사이에요.
가수 중에는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은 곡에 대해 불호를 표하는 경우도 있죠. 선생님에게 ‘낭만에 대하여’는 어떤 노래인가요?
복권 맞은 거죠. 제 삶은 ‘낭만에 대하여’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요. 그 노래 때문에 지금까지 일을 할 수 있잖아요. 9년째 방송하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공연도, 어쩌면 이 인터뷰까지도. ‘낭만에 대하여’가 아니었으면 이미 잊힌 가수가 되었을 거예요.
그 노래가 가진 힘이 대단해요.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이요.
생각해봤어요. 제 생각에는 그 이후에도 중년의 마음에 다가갈 노래가 별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그때가, 그 시대 중년이 굉장히 의기소침한 시기였거든요. 주어진 일상을 그저 묵묵히 살아내는 게 전부인 시절에, 딱 그 나이의 사람이 낭만을, 추억을 노래하는 곡이 나온 거예요. 이걸 깨닫고 난 뒤에는 목표가 생겼어요. ‘낭만에 대하여’ 같은,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릴 노래를 하나 만들자.
‘낭만에 대하여’를 넘어서는 게 선생님의 목표인가요?
맞아요. 근데 못 넘어설 것 같아요. 그 곡은 신과 같은 존재예요. 모든 걸 다 가져다줬어요. 지금 제가 가진 전부가 그 곡에서 왔어요. 그 노랠 부르기 전에는 상당히 어려웠어요. 미국에서 돌아와 5년 정도 술집에서 노래하며 보냈죠. 아주 지난한 시간이었어요.
올해가 4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지만, 가수로서 선생님은 지금 완전히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고 계신 것 같아요.
기분이 새로워요. 제가 미국에서 2년을 살았거든요. 그런데 그 2년의 시간이 꽤 좋은 공부가 됐어요. 그 무렵 깨달은 게 있어요. 제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이요. 그때 제가 40대 초반이었는데, 여전히 20대의 인생과 감성에 대해 노래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러면 안 돼요. 이번 앨범 준비할 때 에코브릿지가 저에게 준 곡 중에 사랑 노래가 있었어요. “내가 7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무슨 사랑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하면서 고사했어요. 가수는 나이에 맞는 노래를 해야 해요. 마흔에는 마흔의 노래를 불러야 하죠.
선생님에게는 그 노래가 바로 ‘낭만에 대하여’였던 것이고요.
그렇죠. 제가 한국에서 첫 앨범을 낸 게 ‘애비’라는 트로트 곡이었어요. 그때부터 그 나이대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죠.
그 시절 수많은 가수들이 사랑 타령을 한 것에 비하면, 선생님은 그저 삶에 관해서 더 많이 노래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쟈’라는 사랑 노래가 있기는 해요. 그런데 그 노래에도 노골적인 표현은 전무해요.
노래가 굳이 어떤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런 걸 안 좋아하는 편이에요. 실제로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때도, 노골적이지 않은 사랑 노래나 아니면 삶에 대한 것들을 좋아해요. 아예 진지한 사랑 노래는 좋아하죠. 윤시내의 ‘열애’ 좋아해요.
청년 시절, 상 받고 히트하고 그런 일엔 뜻이 없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그럼 그 시절 가수 생활의 중심에는 뭐가 있었나요?
첫 노래를 내고 돈을 조금 벌었는데 그 시절에는 술이나 마시면서 그냥 돈을 다 썼어요. 돈이 생기니까 그게 좋았어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즐긴 것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았죠. 아마 그때 저에게 다른 뭔가가 있었으면, 다른 일을 했을 거예요.
재능으로 얻은 일이 아니라고 여기신 거네요.
그렇죠. 저는 노래로 치면, 사실 재능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별로 의미가 없었어요. 그러다 정신 차리니까 인기가 떨어졌고, ‘낭만에 대하여’를 부르면서는 한 20년, 운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냈죠. 근데 조금 먹고살 만해지니까 정신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내 음악을 찬찬히 만들고 정리했죠. ‘낭만에 대하여’ 이후로 진지해졌어요. 일말의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제 뭔가를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요. 욕심이 없어졌고, 여유가 생겼죠.
결국 노래가 선생님의 운명이었나 봐요.
그래도 참 오래 했죠. 길게 했어요. 청년 시절에는 그냥 노래만 하고 다니는 가수였거든요. 이제야 음악인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음악에 굉장히 진지해졌어요. 그리고 뭔가를 하나 만들고 싶어요. 최백호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어요. 이제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음악 하는 사람들을, 저보다 힘들게 음악 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고요.
40년을 노래하셨는데, 저는 어쩐지 지금 시작하는 가수와, 앞으로 40년은 더 노래할 가수와 마주 앉은 기분입니다.
하하. 그런가요? 40주년 기념 앨범이며 공연도 사실은 제 뜻이 아니었어요. 40주년이 뭐라고. 그런데 주변에서 자꾸 뭘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한편에서는 40년이나 했으면 그만하지 뭘 또 하냐고, 딱 그만두고 쉬라고 하고. 사실 후자를 듣고는 좀 끌렸어요. 그래도 앨범 내길 잘한 것 같아요. 앨범에 대한 반응도 지금까지 얻은 걸로 족해요. 딱 이만큼 좋아요. 더 이상은 그냥 팔자고요. 내가 차 사려고 모은 돈을 이 앨범에 다 썼어요. 앨범 장사는 이제 본전 뽑기 힘든, 무조건 적자 나는 장사지만, 차는 못 샀지만, 나는 만족해요.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김선익
ASSISTANT 김윤희

2017년 05월호

MOST POPULAR

  • 1
    주식 탐험가 강방천
  • 2
    오색 빛 스키 스타일
  • 3
    엔터테인먼트는 가상 아이돌의 꿈을 꾸는가
  • 4
    서울에 온 페라리 로마
  • 5
    2억으로 주식을 샀다

RELATED STORIES

  • INTERVIEW

    주식 탐험가 강방천

    아이 거 걱정하지 마! 펀드의 왕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강방천 회장은 손사래 치며 말했다. 잘될 거라고, 딴 데 기웃거리지 말고 일상에서 인생을 함께할 위대한 기업을 발견하라고.

  • INTERVIEW

    제15회 에이어워즈

    언택트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한 제15회 에이어워즈의 우아한 순간들.

  • INTERVIEW

    디스트릭트의 파도

    강남 한복판을 전 세계가 주목하게 만든 거대한 파도 ‘웨이브’, 코로나19로 침체된 삼청동 갤러리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 ‘에이스트릭트’, 제주도를 미디어아트 성지로 만든 ‘아르떼뮤지엄’. 모두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제작사 디스트릭트의 공이다. 디스트릭트가 일군 도전과 성공을 이성호 대표와 이상진 부사장이 말한다.

  • INTERVIEW

    김은희의 서스펜스와 휴머니즘

    <킹덤>에서는 누구도 배고프지 않은 세상을, <시그널>에서는 누구도 억울하지 않은 세상을 바랐다. 치밀한 장르물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김은희 작가는 늘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그리며 이야기를 써왔다. 그런 이야기를 쓰는 힘에 대해 묻자 그는 답했다. “아직 그런 세상이 오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지금 한국에서 가장 독보적인 드라마 작가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 INTERVIEW

    김광현의 시작

    김광현은 선수로서 전부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든 그는 세인트루이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어려서부터 간직해온 꿈을 이루기 위해, 늦은 나이에도 도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그는 데뷔 첫해에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고 귀국했다. 2020년은 기회를 다지는 시기였다고 김광현은 말했다.

MORE FROM ARENA

  • FEATURE

    너에게 쓰는 편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크리스마스라고 다를 것 없다. 에디터들이 축복의 밤에 잃은 것과 얻은 것을 고백한다. 담담한 어조로 솔직하게.

  • TECH

    HOW COME?

    1월의 새로운 테크 제품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

  • LIFE

    난생 처음 만난 턱 여드름

    평생 고민한 적 없던 ‘턱 여드름’에 시달리게 된 에디터의 질문에 피부과 전문의가 조언을 더했다.

  • FEATURE

    일본 대중문화는 왜 낡은 미래가 되었나

    일본의 것이 가장 힙하고 새로웠던 시절이 있었다. 1998년 한국에 일본 문화가 개방된 후 ‘일드’를 보며 일본어를 익히던 친구들이 있었고, 더 거슬러 가면 오스 야스지로를 비롯한 거장들이 걸출한 작품들로 영화제를 휩쓸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 대중문화는 왜 멈췄을까? 조악한 옷을 입은 아이돌들이 율동을 하는 가운데 K-팝 산업에서 공수받은 JYP의 ‘니쥬’가 최고 인기며, 간만에 대형 히트작의 공백을 메운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완성도는 초라하다. 한국인이 지금도 좋아하는 일본 대중문화는 레트로 시티팝, 셀화 애니메이션으로 대변되는 20세기 버블 경제 시대의 산물일 따름이며 과거의 영광은 재현되지 못한다. 그 시절 꽃피운 <세일러문>과 <도쿄 바빌론>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최신 리메이크작을 찾아본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지 이미지 한 장만으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대중문화는 왜 그리운 느낌 때문에 들춰보게 되는 낡은 미래가 되어버린 걸까?

  • FEATURE

    여행의 추억

    바다 건너 다른 나라로 가지 못하는 연말, <아레나> 에디터들이 지금 당장 다시 가고 싶은 장소를 한 곳씩 꼽았다. 마음에 깊게 남은 풍경과 마주친 사람들, 향토 음식과 사소한 물건까지 타지의 그리움을 한데 모아.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