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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순간

단지 서 있었을 뿐이다. 이내 가득 찼다. 잉크 한 방울이 물색을 바꾸듯, 소리가 퍼져 전체를 울리듯. 고수는 그렇게 공간을 채웠다. 그는 요즘 뭘 하지 않아도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생각한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작품을 거친 고수가 말했다. 매번 떨린다고.

UpdatedOn March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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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데이션 니트는 벨루티, 무늬 셔츠는 알렉산더 맥퀸 by 분더샵, 줄무늬 와이드 팬츠는 드리스 반 노튼 by 분더샵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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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셔츠는 우영미 제품.

실크 셔츠는 우영미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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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오랜만에 차기작을 선보인 상황이 됐다. 꾸준히 작업했는데 대중은 모른다.
찍어놓고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 개봉하는 경험은 처음이다. 다 운명인 거 같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루시드 드림>은 후반 작업에 시간이 필요한 작품이다. 꿈속 장면이 많아서 CG가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늦어졌지만 난 꾸준히 연기를 계속해왔으니까. 그래도 오랜만에 영화 홍보 활동을 하려니 마음이 새롭다.

찍고 바로 홍보하면 느낌을 살릴 수 있는데 공백이 있어서 낯설진 않나? 그때 기억도 되살려야 하잖나.
그 시간은 어디 가지 않으니까. 촬영 당시의 감정은 그대로다. 새록새록 기억도 나고.

한계 상황에 처한 배역을 연기하는 걸 즐기고 그런 영화를 주로 선택한다고 했다. <루시드 드림>도 비슷한 맥락에서 선택한 건가?
맞다. 아이가 납치된 상황이잖나. 일어나서는 안 되고,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에 처한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손에 땀나고, 그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겠더라. 감독님 찾아가서 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들을 찾으려는 아버지의 마음이 굉장히 절실하다. 반면 범인을 찾는 과정은 현실적이지 않다. 꿈이라는 소재로 접근해가는 게 굉장히 새로웠다. 어떻게 보면 판타지를 통해 희망과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간절히 바라는 걸 이루었을 때 상황이 오묘했다.

영화를 선택할 때 배역의 매력과 이야기의 매력 중 어디에 더 무게를 두나. 물론 둘 다 신경 쓰겠지만, 한쪽을 포기할 때가 생기잖나.
백 퍼센트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기 힘들고, 그런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족한 게 아닌, 조금 비어 있는 부분을 본다. 영화는 여럿이 함께 협업하므로 하다 보면 못 보던 것들을 볼 수도, 빈 부분을 채울 수도 있으니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영화란 작업이 재밌다. 생각하지도 못한 것들이 예기치 않게 나오기도 하니 내심 그런 것을 기대하며 작업한다.

이번 영화는 설경구라는 묵직한 배우와 박유천이라는 다른 분야에서 온 재능 있는 배우와 함께했다. 성질이 다른 배우와 함께해서 특별한 점이 있었나?
일단 설경구 선배님은 워낙 존재감이 확실한 역할을 많이 해왔잖나. 현장에서도 힘이 강렬했다. 많이 이야기하며 선배님의 존재감, 무엇보다 캐릭터를 대하는 자세를 많이 배웠다. 각 배우들이 모두 열정적으로 임하지만 그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 유천이도 굉장히 매력 있는 배우다. 나와 설경구 선배님, 혜정이와는 다른 에너지를 보여줬다. 그래서 너무나 재밌는 작업이었다.

함께하는 배우에게 많이 영향받는 편인가?
아무래도 호흡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예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걸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감독님과 나누는 이야기도 굉장히 중요하고. 그래서 새로운 배우를 만나는 게 재밌다.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자기 캐릭터를 표현할지 너무 재밌다.

배우는 작품을 통해 성장한다. 이번에 그런 경험이 있었나?
매번 작품에서 많이 배운다. 이 작품은 2년 전에 찍었지만. 또 그 이후에 다른 작품을 하면서도 조금씩이나마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배워보자는 마음이 있어야 그런 것들이 들어오잖나. 난 늘 모든 사물, 모든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고 분명히 생각한다. 그런 직업이다. 늘 배우는 자세로 임한다.

특히 어떤 부분을 많이 배우려고 하나?
일단 감독님이나 다른 배우들과 대화하는 와중에 많이 배운다. 그리고 각자 표현하는 방법, 노하우라고 할까, 다 비밀들이 있으니 그걸 본다, 하하. 모두 열정을 쏟는다고 하지만 외부에서 볼 땐 차이가 있잖나. 그런 걸 보면서 많이 자극받는 편이다. 나 스스로 여러 작품에 참여하면서 이런저런 걸 시도하기도 한다. 어떨 땐 힘 빼면서 발성, 발음에 신경 안 쓰고 임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땐 아예 카메라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거 같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나 나름대로 늘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한다.

이젠 경력도, 작품 수도 많이 쌓여서 스스로 편한 걸 그냥 해나갈 수 있지 않나?
이제부터라고 생각한다, 하하. 지금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에 늘 이제부터라는 마음을 먹는다. 기술이나 기교를 많이 표현하는 배우가 있고, 반면 기교는 없지만 정말로 진중하게 표현하는 배우가 있다. 난 후자에 가까운 사람인 거 같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 기술을 발휘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일단 후자를 지향한다. 그게 더 오래 해나갈 수 있는 길인 듯하다.

뭘 하지 않아도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연기는 수많은 배우가 바라는 지점일 게다.
예전에 카메라가 있으면 무조건 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많은 배우가 그러하지만. 그런데 하다 보니 그건 또 아닌 거 같다. 최대한 뭐가 내 정답에 가까운지 꾸준히 찾아야 한다. 숙제라고 생각한다.  

연한 모래색 재킷은 비비안 웨스트우드, 절개된 실크 셔츠는 우영미, 면 팬츠는 루이 비통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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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무늬 수트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낙낙한 셔츠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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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 편해질 만한 경력이다. 이제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게 익숙할 법도 하다.
제일 겁나고 무서운 게 익숙함이다. 또는 능숙함. 난 이런 것들을 제일 피하고 싶다.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능숙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떤 직업군은 익숙함과 능숙함이 필요하잖나. 그런데 내 직업은 그렇지 않다.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고 끝내길 반복하는 직업이라 뭔가 익숙해지는 건 기계적인 거 같다. 배우로서 굉장히 피해야 할 상태라고 생각한다. 현장 경험이 쌓이는 점은 도움이 되지만, 감독님과 스태프, 배우, 캐릭터를 대할 때는 굉장히 떨리는, 설렘이 있는 게 좋다.

스태프를 대할 때도 떨리나?
맞다. 떨린다. 지금 인터뷰하면서도 떨린다, 하하.

매너리즘을 경계하기 위해 어떤 부분에서 노력하나?
스스로 환경을 바꿔준다. 내가 너무 편하게 있는 거 같으면, 예를 들어 현장에 혼자 가기도 하고 버스 타고 가기도 하는 등 일부러 다른 환경을 찾는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옛날부터 불안정한 사람인 거 같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 중간 지점을 찾아간다.

우유부단한?

하하, 그게 아니라 경계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디 속해 있는 것보다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가령 문지방에 있는 거랄까. 약간 불안정한 상태를 좋아하는 성향이다. 확 앉은 것도 아니고 일어선 것도 아닌, 어중간하게 앉을까 말까 한 상황 있잖나. 그게 정말로 살아 있는 순간인 거 같다. 그런 성향이라서 한동안 천장이 막힌 곳에서 잠을 못 자던 때도 있었다.

천장이 막히지 않은 곳이라면? 지붕 없는 곳이 있나?

한동안 산을 좋아해 막 다니면서 비박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막힌 곳에서 잠을 못 잤다. 그냥 뻥 뚫려 있어야 잠을 잤다. 그런 곳을 많이 찾아가는 편이긴 하다. 원래 이쪽 일하는 사람들이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굉장히 많잖나. 밤 서리 맞으면서 아침을 맞이하는 직업이니까. 그래서 그런지 한동안 그런 환경을 못 겪으면 일부러 찾아갔다. 너무 답답해서. 나라는 사람 특성상 편안한 걸 추구하진 않는다.

어떻게 보면 한계에 몰린 배역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성향과 통하는 부분이다. 평범하지 않은 감정과 상황에 스스로 몰아넣고 싶은 욕망이랄까?
밖에서 그렇게 일하니 집에선 단조롭게 생활할 수밖에 없다, 하하. 그런 점에서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엔 악역도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연기에서도 색다른 감정과 상황을 찾고자 하는 거다. 악인도 사람인데,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니 그런 사람도 깊이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이젠 든다. 인간적으로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전에는 악역을 딱히 생각하지 않았나?
딱히. 너무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체도 아직 감성이 불안하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맡았을 때 주변 사람에게 어떤 피해를 줄까 걱정해서. 예전에는 좀 많이 그랬다. 약한 거 같다, 마음이.

연기하는 건 즐겁나? 오랜 시간 연기했으니 직업인으로 일하듯 할 수도 있다.
너무 즐겁다고, 늘 생각한다. 아니, 너무 즐겁다. 사실 즐거움과 고통이 늘 공존하는 거 같다. 연기에는 정답이 없지만, 그래도 많은 관객에게 어떤 공감대를 줄 수 있는 게 중요하잖나. 그게 뭘까 최대한 고민한다. 배우도 다 자기 주관이, 자기 색이 있다. 왜 그렇게 표현했느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많은 관객이 공감하고 끄덕일 수 있는 연기가 뭘까 고민한다.

배우에게 외모가 선물인 건 맞다. 하지만 배우로서 활동해나가는 데 힘이 되는 건 다른 지점일 수도 있다.
아직 모르겠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누굴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람들이 좋아해주시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이 뭘까. 관객이 날 통해서 보고 싶어 하는 것과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 사이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 그런데 그게 뭘까. 그 차이를 좁히는 건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건 아닌 거 같다. 자연스럽게 만날 때가 있지 않을까? 그 접점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말 있잖나. 젊은 사람은 신이 만들고 나이 든 사람은 사람이 만든다고. 그 말을 믿기 때문에, 난 계속 만들어가는 사람이기에 언젠가는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해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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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종훈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김혜정(인트렌드)
HAIR 박미형(아우라)
MAKE-UP 문혜은(꼼나나)
ASSISTANT 김윤희

201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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