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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시선

박찬욱이 말한다. 영화가 아닌, 자신의 사진에 대해서. 라이카라는 필터를 통해 무엇을 보는지. 라이카라는 도구를 통해 얻은 사진으로 무엇을 하는지, 어떤 영감을 얻는지. 과연 세계적 거장의 시선은 남달랐다.

UpdatedOn January 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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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러려고 감독이 됐나

<아가씨> 미국 개봉에 맞춰 출국해 무려 47일 동안 외국 홍보 투어를 다녀왔어요. 그저께 막 도착했죠. 토론토 영화제부터 시작해서 뉴욕, 텍사스, 오스틴, LA, 다시 뉴욕, 그다음에는 런던, 파리, 리옹, 다시 런던 이렇게 돌았어요. 내가 이러려고 감독이 됐나, 자괴감도 막 들고.(웃음) 마지막 날 즈음엔 앞으로 감독을 그만두고 제작자로만 남는 게 어떨까 심각하게 고민도 했어요. 그럼 인터뷰 따위는 안 해도 되는 거 아냐? 막 이러면서.(웃음) 그래도 LA에서 다음 작품 제안이 꽤 들어와서 각본을 잔뜩 받아왔어요. 이제부터 읽어보고 좋은 작품이 있는지 확인해봐야죠.

# 영화보다 사진이 먼저였다
아버지가 건축과 교수여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미술, 사진과 친해졌죠. 아버지가 펜탁스 카메라로 우리 삼남매를 흑백 필름으로 종종 찍곤 하셨거든요. 결정적인 계기는 대학 때 사진반에 들어가서죠. 당시 영화는 좀 겁나서 그나마 비슷하다고 생각한 사진반에 들어갔거든요. 당시 서강대 사진반은 다큐멘터리 기풍이 강한 모임이었고, 그래서 거리 사진을 많이 찍었죠. 조형적이고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리얼리티를 포착하는 게 중요하다는 태도가 지배적이었어요. 그 속에서 일종의 드라마를 찾았죠. 그런 접점이 나를 점점 영화로 이끌었던 것 같아요.

# 영화와는 반대되는 즐거움
실제로 감독이 된 다음부터는 양상이 달라졌어요. 요즘 내가 만들고 있는 영화는 대학 사진반 때 추구한 것과는 정반대에 있어요. 세공되고 만들어진 거죠. 인위적이라는 것과는 좀 달라요. 내 영화 세계는 다 면밀한 계산과 계획 속에 설계되고 디자인된 것들이죠. 자연스러움조차도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반대급부적으로 감독이 되고 나서 찍은 사진들은 영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 것 같아요. 연출이 없는 것, 디자인이 없는 것, 계획 없이 우연히 포착된 것.

그래서 지금의 내 사진에는 드라마보다는 단일한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시적인 감흥이라든가, 명상적인 면이라든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리하여 영화감독으로서 이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냐? 영화와 반대되는 일을 할 때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작업이죠. 만드는 게 아니라. 특별한 구도를 따로 만들지도 않아요. 그냥 정직하게 그 순간을 포착하는 거죠.

# 사진은 또 하나의 직업이다
영화를 쉴 때, 또는 머리를 비우기 위해 하는 취미는 아니에요. 난 좀 심각해요. 또 하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하니까. 사진을 찍기 위해 시간을 점점 더 많이 내려 하고 있어요. 뭐, 나이가 들수록 내 영화가 점점 더 젊은 세태를 쫓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영화로 투자받기는 어려워질 테니까.(웃음) 사진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할 수 있겠죠. 어떤 면에서는 그럴 때가 기다려지기도 해요.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죠.

# 사진을 찍는 순간들
아, 보통 어떤 순간에 사진을 찍느냐고요? 사진반 후배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이 친구가 뉴욕에서 사진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먹고사는 게 힘들어서 다른 직업을 갖게 됐어요. 가구 만드는 장인의 공방에 조수로 들어갔죠. 점심시간이면 밥을 서둘러 먹고 그 근처인 퀸즈 지역을 카메라 들고 다니는 거예요. 그렇게 매일 1시간 동안 사진을 찍었어요.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그런데 그 시간대의 광선은 사진에 적합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주어진 시간이 그때밖에 없기 때문에 같은 동네를 같은 시간대에만 계속 찍었어요. 그리고 사진집을 낸 거예요. 사진이 기가 막히게 좋아요. 그래서 내가 그 사진집에 서문까지 썼죠.

나도 마찬가지예요. 매일 산책하다 보면 늘 같은 풍경인데도 늘 새롭게 찾는 뭔가가 있어요. 사실 난 여행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집에 있는 걸 제일 좋아하는데 감독 일이라는 게 영화를 찍으려면 돌아다녀야 하고, 영화를 완성하면 세계 곳곳으로 프로모션이나 영화제를 다녀야 해요. 남미도 가고, 보통 관광객이라면 가지 않는 도시도 가죠. 그나마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억지로 견디고 즐길 수 있는 거죠. 내 사진은 그래서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보통 관광객은 잘 가지 않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접한 느낌과 이미지들을 찍은 거예요.  

# 사진이 영화에 영향을 미친 케이스들
물론 사진이 영화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가씨> 히데코의 이미지에 결정적 영향을 준 흰 고양이 사진, 조진웅의 손 사진 등은 확실히 사진이 영화에 영향을 준 경우죠. 나중에 영감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배우들을 계속 찍는 경우도 있고요. 고양이 사진처럼 그냥 개인 작품으로 찍은 사진인데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절로 영화에 영향을 주게 될 때도 있죠.

# 디지털로 넘어온 이유
내가 디지털로 옮겨온 이유가 바로 태블릿 PC 때문이에요. 사진을 태블릿 PC에 옮겨 가지고 다니면서 계속 볼 수 있다는 것. 시간 날 때마다 찍은 사진들을 계속 보면서 조금씩 초보적인 후보정을 하죠. 필요 없는 것들은 없애기도 하고요. 처음에 찍었을 때는 좋다고 느꼈던 것도 한두 달이 지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많아요. 그래서 끊임없이 보면서 계속 없애요. 사진을 들여다보며 참 잘 찍었구나, 하고 감탄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대목에서 반했나, 무엇을 원하고 있나, 이런 것들을 성찰하게 돼요. 자연스럽게 그즈음 만드는 영화에 영향을 주기도 하죠.

# 라이카를 좋아하는 이유
라이카는 색깔이 유난스럽거나 인위적이지 않아서 좋아요. 유명한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제품이 아니잖아요. 그냥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방해되는 것들을 배제한 미니멀한 디자인인데 그 어떤 스타 디자이너의 작품보다 우월하죠. 물건에 대한 존경심이 아니라 물건을 만든 장인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하는 제품이에요. 영화를 만든다는 건 여러 기술자들이 모여서 일하는 것이거든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지만 순간적인 영감을 쫓아서 막 분출하는 게 아니라 톱니바퀴처럼 계산하는 수학에 가깝죠. 그래서 촬영감독, 세트를 만드는 목수, 송강호까지 다 완벽한 장인이에요. 송강호는 정말 최고의 기술자죠. 나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톱니바퀴처럼 잘 조율된 기계처럼 돌아가는 현장을 볼 때 어마어마한 존경심과 감동을 느껴요.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물건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죠.

# M 모노크롬을 사용할 때
디지털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이상한 물건이어서 좋아해요.(웃음) 이 시대에 흑백 전용 카메라라니. M 모노크롬이라면 굳이 필름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훌륭한 기계입니다. 그런데 다른 제품들은 솔직히 디지털 시대에 빛이 좀 바랜 느낌도 있어요. 필름 시대의 완벽한 기계는 1백 년도 쓸 수 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기술이 계속 바뀌니까 완벽할 필요가 없는 기계가 되어버렸어요. 그래도 렌즈에는 아직 완벽함이 남아 있죠. 35mm 주미크론 첫 세대, 아포 주미크론 50mm를 보면 알 수 있어요.

# 내가 좋아하는 사진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가는 윌리엄 이글스턴입니다. 코냑 한 병 사들고 직접 찾아가서 만나기도 했죠. 내슈빌에서 <스토커>를 찍었는데 자택이 그 근처여서 찾아갈 수 있었어요. 하모니 코린이라는 친구 감독이 내슈빌에 사는데 <스토커>에도 짧게 우정 출연했어요. 그가 윌리엄을 소개해줬죠. 캐비닛을 열어서 보여줬는데 라이카 보디가 50개 이상 쫙 깔려 있었어요.

그 밑에 있는 리모와 트렁크를 열면 아끼는 라이카 보디만 30개 정도 따로 모아놓았어요. 이글스턴이 다이 트랜스퍼 프린트(Dye Transfer Print) 기법으로 유명한데 전시장에도 작품이 다 나오지 않아요. 전시장에서는 유리가 반사되기 때문에 디테일을 보기도 쉽지 않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구경했죠. 황홀했어요. 사진은 복제할 수 있는 예술이지만 윌리엄 이글스턴의 다이 트랜스퍼 기법으로 만든 프린트는 그런 게 아니니까.

*다이 트랜스퍼 프린트(Dye Transfer Print) 기법
젤라틴 판에 용액을 바르면 염료를 흡수해 컬러 이미지를 형성하는 프린트의 한 방법. 색상이 영구적으로 보존될 정도로 보존력이 좋고, 색감을 풍부하게 하는 데도 유용하다. 이 프린트 방식을 대표하는 작가가 바로 윌리엄 이글스턴이다.

#사진가 박찬욱은 언제쯤
전시도 구상 중이고, 영화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사진적 가치로만 접근한 책도 내려고 해요. 언젠가는 꼭 사진가 박찬욱을 보게 될 겁니다.

라이카로 영감을 찍는 사람들

<아레나>는 2017년 특별한 기획을 시작한다. 인터뷰라는 장르를 새롭게 해석한 기획 기사들을 준비할 예정. 이 기사도 그에 상응하는 1년 연속 기획이다. ‘라이카’ 브랜드를 바탕으로 영감을 얻거나,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본다. 박찬욱 감독이 그 첫 번째 인터뷰이다. 박지호 편집장이 직접 인터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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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박지호
PHOTOGRAPHY 이오반

2017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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