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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가 아닌 안희연

On December 07, 2016

거친 덤불을 맨손으로 헤치며 지나온 소녀, 그게 하니다. 스물다섯의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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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수트는 막스 마라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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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활한 발걸음으로 스튜디오에 들어선 하니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오늘은 메이크업을 하지 말까요?” 한 1초쯤, 하니의 동공이 한 1초쯤 커졌던 것 같다. 하니는 잠시 놀라다 퍽 웃었다. 스스럼없는 태도였다. “좋아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확신은 있었다. 하니는 이미 말갛고 솔직한 얼굴과 태도로 우리를 설득해왔으니까. 정말로 괜찮을지 묻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보는데, 점이 있었다. 울 때면 눈물이 가장 먼저 떨어질 것 같은 자리에, 가느다란 펜촉으로 그려 넣은 듯한 점이.

점이 있네, 볼 위에. 방송에서는 못 본 것 같은데.
메이크업으로 꼭 가리거든. 뺐는데, 실패했다. 결국은 다 안 빠지고 그대로 남았다. 하니일 때는 메이크업으로 가린다.

본명이 안희연이더라. 소설에 나올 법한 이름이다. 예쁘다.
기쁠 희(喜)에 이을 연(延)자를 쓴다. 기쁨을 이어가며 살라는 뜻일 거다. 하니는 내 태명이고.

우리가 아는 하니 말고, 그냥 스물다섯 안희연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화장을 하지 말자고 했다. 맨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기 쉽지 않았을 텐데. 솔직히 너무 예쁘다. 화장한 하니보다도.
콘셉트에 대해 듣자마자,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되기도 했다. 예전이었으면 무척 겁냈을 거다. 피하고 싶었을 거다. 새로운 것에 대한 겁이 보통 사람보다 많은 편이거든. 그런데 왜인지 이번에는 겁나지 않더라. 내 본연의 모습이 어떻게 담길지 궁금한 마음이 컸다. 덕분에 내가 변한 걸 느꼈다. 긍정적인 변화겠지? 나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을 어렵지 않게 느낀다는 이야기니까.

자신감이 생긴 걸까?

자신감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냥,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걸 안 거지.

이제 2016년의 마지막 달이다. 데뷔한 지는 4년, 그 짧은 시간에 하니에게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지금 안희연에게 하니라는 이름은 어떤 느낌인가?
점점 무겁게 느껴진다. 나라는 사람이 커졌다는 건 아니다. 음. 산에 오를 때 말이다. 배낭 하나 메고 오르다 보면, 처음에는 그 무게가 별로 느껴지지 않다 계속 걸을수록 무거워지지 않나. 나에게는 하니라는 이름이 그 배낭 하나다. 나중에, 정말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하니라는 이름을 떠올린다면 좀 다를까? 다르겠지? 그땐 아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색깔이나 향기를 연상할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다.

요즘 하니의 타임라인 최대 주주는 고양이더라.

파티. 이름은 파티다.

무슨 뜻으로 지었나?
내 좌우명이 ‘아모르 파티(Amore Fati)’거든.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아모르가 ‘사랑하라’, 파티가 ‘운명’. 어느 날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였으면 했다. 인터넷으로 고양이 분양에 관해 알아보다 어느 사진 속에 있던 한 고양이에게 흠뻑 빠졌다. 분양하시는 아주머니를 만나보니, 사실 내가 본 고양이는 분양할 아이가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나를 알아보시고 팬이라며 선뜻 분양해주셨다.

운명적인 만남이네.
그렇지. 파티를 만나고는 청소를 엄청 자주 한다. 혹시나 파티가 뭔가를 주워 먹을까봐. 하하. 청소를 매일, 못해도 이틀에 한 번은 꼭 한다. 그게 습관이 됐다. 그리고… 혼잣말이 많아졌다. 원래는 혼자 있는 걸 무서워했는데, 파티와 함께 지낸 이후로는 그런 게 사라졌다.

요즘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중국어의 문법 구조가 너무 신기하다.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언어를 배우다 보면 이해보다 수용이 필요한 때가 있지 않나. 얼마 전 중국어 공부를 하다가 그런 순간을 맞닥뜨렸는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자꾸만 궁금해져서 계속 선생님께 “왜요? 이건 왜 그런 거예요? 이건 왜요?” 하며 물었다.

‘왜?’라고 자주 묻는 편인가? 예능 방송에서도 자주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맞다. 말버릇 중 하나다. 엄청 많이 묻는다.

뭐든, 본인이 확실하게 알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나 보다.
그래서 아마 내 주위 사람들은 조금 피곤할 거다. 하하. 그냥 넘어가는 일 없이, ‘왜?’라고 묻는 통에 한때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이유가 필요할 뿐인데 상대는 ‘따져 묻는다’고 여길 때가 많았던 거지?

그러니까. 가끔은 상대가 이렇게 반응하기도 하더라. “왜냐니, 하기 싫은 거야?” 그런데 나는 이유가 무척 중요한 사람이거든. 원래 그렇다. 뭔가를 할 때는 그 이유가 중요하다. 그래야 어떤 일의 목적을 제대로 설정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 필요한 계획도 세울 수 있고,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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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털한 줄만 알았는데. 엄청난 ‘계획주의자’인가 보다.

엄청나다. 평소에는 개의치 않는 일이 태반인데, 일할 때는 그렇지 않다. 꼼꼼하게 따져보는 편이다. 나는 나의 장단점을 분명히 안다. 내가 다져놓은 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면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낼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 틀 밖으로 벗어난 것에 대해선 많이 당황한다. 변화에 대한 순발력이나 융통성이 부족하다.

최근까지 예능 방송에서 굉장히 활약했는데, 예능 방송은 순발력과 융통성이 꼭 필요한 분야 아닌가.
그래서 쉽지 않았다. 잘하기 위한 계획을 꼼꼼히 세워야 했다. 준비를 많이 했다.

순발력과 융통성을 위한 준비라니 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
준비한 것 중 하나는 모니터링 노트였다. 모니터링한 내용을 적는 노트를 하나 만들고 내가 출연한 방송은 무조건 다시 봤다. 보면서 노트에 나의 좋은 점 3가지와 나쁜 점 3가지를 찾아 적었다. 적어도 내 눈에 보인 나쁜 점 3가지는 반드시 고치려고 노력했다. 방송하러 가기 전에는 그 방송에 대해서 미리 공부를 했고. 성격적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순간이 나에겐 유일한 기회였으니까. 많이 공부하고, 준비했다.

뜻밖이다. 예능 방송 속의 하니는 늘 순간 적응력이 빠른 사람처럼 보였다. 긴장하는 법도 없고. 그래서 그 여유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작전 성공이네. 헤헤. 부족한 걸 스스로 아니까, 적어도 내 눈에 보이는 부족한 점만큼은 극복하려고 노력했거든. 딱 그만큼 자연스러울 수 있었을 거다. 노력한 만큼만.

올해 했던 새로운 경험으로는 영화 <국가대표2>가 있었다. 카메오로 출연해 연기 맛을 조금 봤다. 이제 연기 활동도 해보고 싶은 건가?
기회가 된다면 조금씩 해보고 싶다. <국가대표2>에서 아주 조금 경험한 연기가 재미있었거든.

준비성 투철하니, 카메오 출연이라도 촬영 전에 여러모로 준비했겠지?
연기에 관해서라면 아무것도 모르니 막막하더라. 아주 원초적으로 시작했다. 카메오이지만, 내가 맡은 인물이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그런 삶을 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계속해서 연구했다.

수월하던가?
아니. 전혀. 당연히 수월하지 않았지.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안 맞는지조차 모르겠더라. 맞게 하고 있는 건지도 알 수가 없는 것, 그게 가장 어려웠다.

예쁜 아이돌이 참 많다. 하니는 그냥 예쁜 아이돌은 아니고 예쁜데 털털하고 영리하기까지 하다. 영리한 하니가 알려지면서, 하니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그런 변화를 스스로도 느꼈나?
물론이다. 사실 처음 EXID가 ‘위아래’로 역주행할 때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시선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럼 늘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언제나 외줄타기 하는 기분이었다”고. 물론 좋고 행복했지.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더 컸다. 어느 성탄절에, 산타클로스가 내게 큰 선물을 주고 간 거다. 심지어는 그게 나보다도 우리 부모님이 더 좋아하실 만큼, EXID 멤버가 더욱 반갑고 기쁘게 여길 정도로 좋은 선물인 거다. “이게 딱 우리에게 필요한 거였어. 너무 좋다!” 하면서 기뻐하면서도 불안감을 느꼈다. 산타클로스가 다시 돌아와서 “이 선물은 너에게 너무 큰 것 같다. 사실은 네 것이 아니었어. 미안해” 하고는 다시 가져가버리면 어떡하지?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되더라. 매일매일 외줄타기 하는 기분이었다.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이 선물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눈물이 맺혔네. 그때가 생각나나 보다.

정말 절박했거든. EXID에게, 그리고 나에게 두 번의 기회 같은 건 절대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외줄 위에 있는 기분인가?
이제는 괜찮다. 외줄에서 내려와 땅을 딛고 선 것 같다. 최근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만약 네가 죽기 전에 스스로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 같아? 어떤 삶을 살아야 네가 죽는 순간에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

대답할 수 있었나?
말문이 막혀버렸다. 못하겠더라. 몇 날 며칠 고민했다. 도대체 어떻게 살면, 죽기 전에 스스로 잘 살았다 생각할 수 있을까. 알아낸 한 가지는 이거다. 내가 사람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 사람에게 얻는 위로, 사람에게 주는 마음이 나에겐 정말 중요하거든.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면, 세상 떠나는 날에도 전혀 아쉬움이 없을 것 같더라. 그래서 요즘 그런 시간을 많이 만들려고 무척 노력한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인가? 하하. 하지만 정말 이게 내 삶의 새로운 목표인걸.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기억 많이 만들기.

데뷔한 이래, 지나온 4년 동안에도 있었을까? 죽는 순간 떠오를 만한 장면이.

있다. 잊을 새 없이 머릿속에 반복 재생되는 순간이.

EXID가 음악 방송에서 1위했을 때?
아니. 1위 한 날은 아니고, ‘위아래’가 차트에 재진입한 소식을 들은 순간이다. 그때 우리는 모두 차 안에 있었다. 부산에서 일정을 마치고 올라가는 중이었다. 재진입 소식을 듣고 멤버 모두 차 안에서 소리 지르고 난리였다. 그때의 행복감은 바래질 않는다. 또 쉬는 날 멤버와 함께 볼링 치고 당구 치며 놀던 장면도 종종 떠오르는데 그때마다 나 자신도 좀 놀란다. 그게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될지, 그때는 정말 몰랐거든. 소중한 것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나 보다. 그땐 그저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좋은 사람들과 함께 겪은 행복한 순간이더라.

 

거친 덤불을 맨손으로 헤치며 지나온 소녀, 그게 하니다. 스물다섯의 안희연.

Credit Info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장덕화
STYLIST
김누리
HAIR
이지현
MAKE-UP
박지혜
ASSISTANT
김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