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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식이라는 얼굴

다시 들춰볼 것 없이, 묵직하게 기억되는 얼굴이 있다. 배우 정만식이 그렇다.

UpdatedOn November 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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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셔츠는 덴, 갈색 타이는 매멘토모리 제품.

흰색 셔츠는 덴, 갈색 타이는 매멘토모리 제품.


그는 잘 웃지 않았다. 크게 찡그리는 법도 없었다. 그런 채로 몇 컷을 찍었다. 그가 슬쩍 짜증을 섞어 눈두덩을 움직일 때, <아수라>의 도창학이 보였다. 눈꼬리를 둥글게 내려 카메라를 응시할 때는 <부당거래>의 공 사무관이 스쳤다. 얼굴이 품은 강한 기운을, 정만식은 조금씩 썼다. 눈 주위 근육만 움직여도 얼굴의 명암은 바뀌었다. 그가 이 얼굴에, 감정을 남김없이 실었던 <대호>의 구경이 문득 떠올랐다.

영화 <아수라>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지옥도다. 그 속에서 모두 저마다의 욕망을 화면에 쏟아붓는 동안, 정만식이 연기한 도창학은 준비된 사냥개처럼 이를 물고 앉아 있었다. 그런 얼굴로 지옥 같은 아수라장을 관조했다. 묵직하고 형형한 눈빛으로, 소리 없이 스크린을 베어냈다. 김성수 감독이 <아수라>라는 그림에 정만식을 넣은 이유는 그의 얼굴과 눈빛이 만들어내는 투박한 누아르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성수는 말했다. “진짜 남자, 진짜 사나이의 얼굴을 정만식이 가지고 있다”고.

묻고 싶은 게 있다. “뭘 쳐다봐. 잘생겼냐?”는 대본에 있던 대사인가? <아수라>에서 도창학이 한도경에게 한 말이다.

하하. 대본에 있는 그대로 한 거다. 그런데 내가 엄청 자신감 있게 뱉었지. 촬영 전부터 감독님이 내게 자신감을 과하게 실어주셨다. 덕분에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다.

김성수 감독이 어떻게 했기에?
“나는 ‘시발’ 다시 태어나면 만식이 얼굴로 태어날 거야” 하시더라. 옆에서 들은 주지훈이 “감독님 솔직히 (정)우성 형 얼굴은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아 그러시는 거죠?”라고 받아치니 그냥 웃으시더라만. 하여튼 나에게 “너는 진짜 멋있어”라는 말을 자꾸 해주셨다. 농담이라도 이런 말 들을 때면 기분이 이상하다. 10여 년 전에는 내 눈빛이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캐스팅에 떨어지곤 했거든. 그땐 눈 감은 프로필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눈 감은 사진을 프로필에 썼다고? 배우가?

한번 그래 봤다. 2000년대 초반 일이다. 사실 나도 안다. 내 눈이, 내 얼굴이 세 보인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어렸을 때부터 눈 하나 잘못 굴리면 술자리에서 시비가 났으니까. 배우로 일하면서도 눈이 그렇게 문제가 됐다. 눈빛이 사납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쌍꺼풀이 진하고 눈이 큰데, 이런 눈은 장동건으로 족하다나.

눈 감고 찍어보니 어떻던가?
재미있었다. 나도 보지 못한 내 모습이니까. 배우의 얼굴로는 어때 보였는지 모르겠다. 눈 감은 프로필 사진을 내니 사람들이 물었다. “왜 눈을 감았어요?” 나는 “부끄러워서요”라고 대답했다. 그냥 “그러시구나” 하고 넘어가는 사람도 있고 희한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배우의 얼굴에 대한 시각이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너무 강한 눈’이라는 말은 이제 어떤 배우에게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은 당신의 눈을 ‘개의 눈’이라며 좋아했다.
그랬지. 감독님이 내 눈을 좋다고 하시더라. 전작인 <대호>를 보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2005년 <잠복근무>로 처음 상업 영화에 출연한 이래, 12년 동안 35편의 영화를 찍었더라. 드라마도 14편 출연했다. 작은 역할이 많았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정만식은 꼭 필요한 자리에 쓰인 것 같았다.
나는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내가 정말 필요한지 꼭 묻고 들어간다. 그렇게 해왔다. 작은 역할만 하는 건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다만 내가 쓰일 곳에 꼭 쓰였으면 했다. 일단 감독이나 작가를 만나보는 편이다. 만나보면 느낄 수 있다. 내가 그 자리에 필요한지. 그들이 나를 신뢰하는지. 딱히 할 만한 사람을 못 찾아 날 찾아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여지없이 엎어지더라고.

내년에 방영될 드라마 <맨투맨>에도 출연한다. 주연으로 나선 박해진이 정만식을 열렬히 원했다던데.

너무 고맙고 좋지. 최근에 이런 얘기 많이 듣는다. 하하. 요즘 유독 겉보기와 달리 착하고 순하고 눈물도 많다는 말을 듣는데, 그래서 많이 좋아해주나?

눈물이 많다고? 정만식이?
뭔가 나를 건드리면 눈물이 터진다. 어느 날 갑자기 외로운 기분이 들 때라든지. 결혼한 것과는 별개로 그런 기분이 될 때도 있거든. 그러면 재빨리 아내를 찾는다. 괜히 “여보, 여보” 하고 불러보고 아내가 대답하면 “아니야” 하고 만다. 아내는 에너지와 오라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그 옆에 붙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집이 고양시 능곡에 있다. 집에서 쓱 걸어 나가면 논두렁이 있다. 울고 싶을 때면 내 논인 양 그곳을 걷기도 한다. 혼자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냥 그렇게 혼자서 버틴다. 일할 때 외에는 연예인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지속하지 않는 편이거든. 연예인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연예인이라 여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네.

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지. 연예인은 아니고. 나는 연예인이라는 범주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영화도 하고 드라마도 하고 연극도 하지만, 그냥 배우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이것저것 다 경험해보고 싶을 뿐이다. 앞으로 어떤 역을 해보고 싶냐고 물으면 꼭 ‘트랜스젠더’라고 대답한다. 안 해본 건 다 해보고 싶다.

정만식의 얼굴이 도드라진 작품 중에 영화 <부당거래>가 있다. <부당거래>의 공 사무관 역할로는 뭘 해보고 싶었나?
소심한 사람. 아주 보통의 인간. 공 사무관도 <아수라>의 도창학처럼 검찰 사무관이었는데, 도창학과는 완전 딴판인 인간이었잖나. 공 사무관은 그냥 공무원이다. 내가 그때 류승완 감독에게 형사 시켜달라고 했는데 안 된다더라. “당신 정말 착한 사람이다. 순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 역할 좀 부탁한다”고 하더라.

할 수밖에 없었겠네.

하하. 다른 수가 있겠나. 감사한 마음으로 했지. 그런데 막상 촬영 들어가서는 조금 힘들었다. 공 사무관을 맡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런데 그게 하나의 방법이 됐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해버렸다. 세트장에 출근해서 쳐 자고 있다가, 부르면 멍한 얼굴로 나와서 촬영했다. 감독님이 너무 좋아하시더라. 공 사무관은 뭔가를 연기해서 만들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거든. 위에서 지시하더라도 “예” 한마디로 끝나는 사람이다. 한없이 수동적이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 극단이 노량진에 있거든.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로 그득한 동네다. 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좀 그렇다. 왜 이 친구들은 꿈을 찾아가지 못했을까, 왜 자신이 어떤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검은색 니트는 DBYD, 줄무늬 팬츠는 펀지 제품.

당신은 어땠나? 자신의 재능을 탐색하며 찾은 일이 배우였나?

그랬다. 처음 연극판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자신감이 넘쳤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스스로 연기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하. 무대에 올라가 떨어본 적이 없다. 정말 잘 놀았다. 그러다 처음으로 단편 영화를 하나 찍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쉽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메라에 담기 위한 연기를 하는 게 어색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모니터를 해보니 엉망이었다. 대체 왜 저렇게 뻣뻣하지? 왜 저 장면에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대사도 연극 톤으로 치고. 그때부터 이런저런 영화에 단역, 조·단역으로 계속 들어갔다. 한 4~5년쯤은 그렇게 보낸 것 같다. 그러다 만난 작품이 2005년 <잠복근무>다. 첫 촬영을 위해 부산 현장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문득 마음을 다잡게 되더라. ‘그래. 이제는 부끄럽거나 창피해하지 않는 거다. 무대에서 놀던 나처럼 다시 잘난 척하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자. 뻔뻔하게, 자신감 있게 해보자.’ 그렇게 다짐한 게 먹히더라고. 그 마음으로, 그 힘으로 오랫동안 해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딜레마에 빠지는 작품을 만났다. 완전히 슬럼프를 겪었다. 그게 <대호>다.

<대호>는 정만식의 인생작 아닌가? 미묘한 감정을 안고 호랑이를 바라보던 구경의 눈을 기억한다.
맞다. 인생 작품이다. 동시에 가장 큰 슬럼프를 겪은 작품이기도 하다. <대호> 찍으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고민도, 생각도 엄청나게 했고. 너무 매진했는데, 결국 다 채우지 못했다.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너무 큰 걸 받아버린 거였다. 시작부터 부담이 컸고 결국에는 못 이겼다고, 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혹 흥행이 잘 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나?

감사한 마음마저 생기더라. <대호>가 만약 성공했으면 나는 정말 잘못된 길로 가버렸을지 모른다. 엄청난 후폭풍을 겪었을 테다. 그러니 다행이지. <대호> 이후로 나의 어떤 것이 비어 있었던 걸까 계속 생각했다. <아수라>를 찍으면서 조금씩 다시 길을 찾게 됐고. <아수라>는 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했다.

<아수라>로 찾은 건 무엇인가?
더 자유로운 태도로 이해하는 법. 물론 미리 분석하고 준비해야지. 그런데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현장에서 날이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더라. 마음에는 여유를 품고 미소 짓고 있어야 하고. 배우는 촬영을 앞두고 기본적으로 인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드는 일을 한다. <대호>의 구경을 연기할 땐 비하인드 스토리를 엄청나게 만들었다.

구경의 정서를 깊이 파고든 상태로 현장에 나갔다. 그러다 보니 구경에게서 내가 고민한 흔적이 보이고, 인물이 화면 밖으로 역동적으로 튀어나오질 않더라. 구경의 정서에 너무 함몰된 거지. 이렇게 말하면 김성수 감독님이 안 좋아하실 수도 있겠지만, <아수라> 때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다 말고, 또 하다가 말았다. <아수라>가 편한 영화였다는 말이 아니다. 현장에서 만들 수 있는 여지를 일부러 더 두었다는 말이다.

대본에 있던 대사를 현장에서 빼기도 했다고?
그랬다. 한 줄씩 뺐다. 감독님이 욕했지. “너 내 대사가 만만하냐. 대사를 뭘로 보냐. 다른 애들은 대사 더 달라고, 더 써달라고 지랄하는데 너는 왜 있는 걸 계속 빼냐.”

어떻게 타협했나?
나는 도창학이 너무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인 사람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감독님께 그 이야길 했다. 도창학의 모든 언행이 정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대신 시선을 제대로 던지겠다고. 파고드는 시선 말고, 짜증과 위협을 품은 눈빛으로 길게 관찰하고 살피겠다고. 감독님도 좋아하셨다. 최종 편집본을 보니 내가 한 것 중 80% 정도는 다 살아 있더라.

전체를 제대로 봤다는 이야기네. 필요한 게 무엇인지 분명히 간파한 거잖나.

물론 전체를 판단하는 역할은 감독의 몫이다. 배우는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배우에게도 자기 리듬이 있어야 하거든. 배우도 전체적인 흐름과 템포, 구도와 색감을 모두 볼 수 있어야 한다. <아수라> 때는 그 리듬을 주로 현장에서 만들었다.

정만식은 <아수라>에서 어떤 축을 맡았다기보다, ‘스피릿’을 불어넣는 역할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성수 감독은 <아수라>를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정만식 같은 남자들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정말?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나? 글쎄. 조연이든 주·조연이든 존재로서의 무게감이 필요한 자리에 나를 부르는 일이 많기는 하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갖가지 에너지를 분출할 때 묵직하게 앉아 있는 남자가 필요할 때, 굳이 멱살 잡고 무기 들고 달려들지 않아도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존재가 필요할 때 말이다.

개봉 예정인 영화 <그래, 가족>에서는 무능한 오빠 역할을 맡았다고?
옛날에는 운동 좀 했는데 이제는 무기력하고 만사 귀찮은 아저씨. 일 없을 때의 나 같다. 하하. 온순하고 건조한 사람.

<아수라>를 마친 지금, 정만식은 어떤 모양이 되어 있는 것 같나?
몇 년 전까지 나는 어딘가 뭉툭하고 또 어딘가는 너무 모가 난 배우였다. 그런 모양으로도 구를 수는 있었다. 구르고 구르다 <대호>에 다다랐고, <대호>를 거쳐 <아수라>에 이르면서 모든 면이 다듬어진 것 같다. 두려운 게 없어졌고,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아니 어쩌면 원래의 내가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날 때부터 두려움을 몰랐거든. 두려운 마음이 자아를 흔들면 척추를 제대로 세울 수도 없는 사람이라서. 음, 이렇게 말해본 건 처음인데, 좀 괜찮은 말 같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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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경진
PHOTOGRAPHY 김참
STYLIST 이은지
HAIR 임미현
MAKE-UP 도이
ASSISTANT 김윤희

20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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