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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서점

집 밖에 사랑하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에 책을 놓아두고 싶다. 런던, 도쿄, 파리, 니스 그리고 뉴욕 통신원들이 저마다 사랑하는 서점을 공개했다. Editor 조진혁

UpdatedOn October 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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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셴 Taschen

파리에 적을 둔 것은 6년 전이다. 그때 나는 소르본-파리 제4대학 부설 어학당을 다녔다. 다른 언어보다 몇 곱절 어렵다고 소문난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역시 어려웠다. 프랑스어 공부는 파리에 대한 환상을 좌절시킬 만큼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파리 생활 초기, 나는 더 이상 알파벳은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글자보다 이미지를 탐독했다. 그림을 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지친 나를 끌고 다닌 것은 저 고상한 파리지앵 유령인지도 모르겠다. 유령은 나를 타셴으로 이끌었고, 타셴의 모든 책들, 그러니까 그림과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들이 나를 반겼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타셴에 한 번 발을 들이면 오랜 시간을 보냈다. 기뻤다. 유령이 내민 그림에 기쁜 마음으로 응답했다. 그리하여 나의 타셴 체류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소개한 고상한 책부터 헬무트 뉴턴이나 베티나 랭스, 장루프 시아프, 장 외젠 앗제의 사진집 정독으로 이어졌다.

마무리는 언제나 에드 폭스나 리처드 컨 같은 포르노에 가까운 포토그래피, 그러니까 훌륭한 에로틱 사진집들이었다. 그 책들은 꼭 찾아 봤다. 타셴은 고상한 미술 작품집부터 페티시나 에로틱한 사진집까지 충실히 다룬다. 심지어 성기와 같이 신체의 특정 부위만 다룬 서적도 많다. 타셴에서 에로틱한 사진집을 보고 있노라면, 소싯적 책방에서 <핫윈드>를 보며 흥분했을 때가 향수처럼 떠올랐다.

아, 그 시절 타셴을 즐겨 찾은 데는 굉장히 책값이 싸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타셴에서는 대개 10유로에서 50유로면 훌륭한 사진집이나 미술 서적을 구매할 수 있다. 외국 사진집 한 권이 한국에서 10만원 정도를 호가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파리의 껌 값이나 다름없다. 헬무트 뉴턴의 사진집 <World Without Men>을 39.99유로에 구입한 적이 있는데, 집에 갈 때 횡재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표지는 미녀 모델을 보며 발기한 곰의 사진이었다. 수컷의 세계는 인간과 동물을 막론하고 다를 바 없다는 심오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파리 타셴은 독일 본사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유일한 서점이다. 오데옹역 근처에 있어서 미술과 사진에 관심 많은 파리지앵 그리고 미술학도로 항상 북적인다. 사진이라는 이미지로 세상과 소통하는 나에게, 오데옹 한구석에 자리한 타셴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지금도 프랑스어와 파리지앵에게 치여 심신이 피곤한 날이면, 타셴에 간다. 고상한 세계부터 음란한 세계까지 탐닉하기 위해서다.

파리
위치 2 Rue de Buci, 75006 Paris, France
영업시간 11:0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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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랜드 서점 Strand Book Store

서점 외벽 스트리트를 따라 늘어선 가판대에는 1달러짜리 헌책이 새롭게 채워진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큰 글씨의 ‘ASK US(물어봐)’ 문구에 압도되고, 다시 고개를 눈높이로 내리면 직원의 미소와 마주한다. 마치 잘 짜인 공식 같지만, 한 번도 인위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낮은 천장과 퀴퀴한 냄새, 환기를 위해 켜둔 요란한 선풍기 소리가 대학 도서관을 떠올리게 하는 지하 섹션은 정겹다.

퍽퍽한 일상에 지친 뉴요커의 감각을 자극하는 예술 서적을 망라한 2층, 희귀 서적만을 모아 책장 속 비밀 공간처럼 꾸민 3층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몰라 약속 시간을 넘긴 적도 있을 정도다. 이런 스트랜드 서점을 설명하자면 과연 다양성의 상징 뉴욕답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없이 산만한 나 자신을 보는 것 같다. 바쁜 하루를 사는 뉴요커의 책 사랑은 대단하다.

지하철에서는 스마트폰보다 책과 E-북을 보는 사람이 더 많고(뉴욕 지하철에서 데이터 지원이 안 되는 이유가 한몫한다), 점심시간 공원에서, 코인 세탁 건조를 기다리며, 심지어는 항상 사람이 붐비는 타임스퀘어를 가로질러 걸으면서도 책을 놓는 법이 없다. 스트랜드 북스가 위치한 맨해튼 4번 애비뉴는 과거 48개의 서점이 밀집한 거리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스트랜드 서점과 이웃한 앨러배스터(Alabaster) 서점만 존재한다. 스트랜드 서점은 변화했고, 생존했다.

서점 한편에는 직원들이 직접 읽고 친필로 책을 추천하는 스태프 픽(Staff Pick)과 유명 작가의 책장을 옮겨놓은 작가의 책장(The Author’s Book Shelf)을 통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마련하는가 하면, ‘E-북보다 저렴한 책 모음’이라든가, ‘해변에 챙겨 가야 할 책’ ‘언론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훌륭한 책’ 등의 섹션을 만들어 다양한 독서를 권유한다. 내 책을 팔수도 있고, 신간과 베스트셀러마저 시중보다 저렴하니 찾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쇼핑백과 에코 백이다. 유기농 마켓인 홀푸드(Whole Food)에서 장을 보면 ‘건강을 신경 쓰는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듯 스트랜드 로고의 노랗고 빨간 쇼핑백은 ‘나 뉴욕에서 책 좀 읽어’로 통한다. 스트랜드 에코 백 역시 ‘뉴요커의 공식 에코 백’이 된 지 오래다. 새롭고 다양한 것들의 홍수, 뉴욕에서 생존하려면 스트랜드 서점을 떠올려야 한다.


뉴욕
위치 828 Broadway, Manhattan, NY 10003-4805
영업시간 09:30~22:30, 11:00~22:30(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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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마 숍 Magma Shop

평소, 특히 작업을 앞두고 영감을 얻기 위해 찾는 곳은 디자인&아트 전문 서점이다. 모든 분야가 인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지만, 역시 비주얼이 담긴 책에서 하나씩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나에겐 더 익숙하다. 예술과 디자인을 사랑하는 런더너는 도시 한복판에 마련된 오아시스 같은 이곳을 찾는다. 디자인 소품 숍으로 시작한 마그마는 점차적으로 책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컨템퍼러리 비주얼 아트, 패션, 사진,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레이트, 타이포그래피, 광고, 아트, 건축까지 전 세계 크리에이티브 피플이 만들어낸 책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런던 코번트 가든 지역과 클러큰웰, 그리고 맨체스터 지방에 매장을 두고 있는 마그마는 지난해 플래그십 스토어 위치를 옮겨 더 넓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고 나 같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책과 잡지를 볼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제공한다. 모든 분야의 잡지와 묵직한 단행본까지 구비한 이곳에서 나의 하루는 수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로 가득 찬다. 그뿐 아니라 잡다한 소품도 함께 진열해놓았다.

마그마에서 직접 제작한 문구류에서부터 영국 디자인&아트 전문 출판사 로런스 킹과 함께 제작한 ‘마그마 포 로런스 킹’ 제품은 책과 카드 게임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잘 어우러져 있다. 마그마가 상업적으로 치우치는 다른 개인 서점과 구분되는 건 예술에 바탕을 둔 철학으로 운영하는 마그마의 창시자 마크 발리의 열정 덕분이다. 책방 경영은 기본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보여준 마그마의 마크 발리는 잡지 <엘리펀트>의 창간인이기도 하다.

예술의 정점에서 뮤지엄과 갤러리에 걸리는 컨템퍼러리 아트와 실제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응용 아트의 경계선을 무너뜨린 것이다. 새로운 아트 형태를 보여주는 잡지 매체를 시도함으로써 색다른 담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서점이라 일컫기에는 깊은 철학이 담긴 마그마는 여전히 나에게 예술적 영감을 충전시켜주는 서점이다.
 

런던
위치 29 Shorts Gardens, Covent Garden, London WC2H 9AP
영업시간 11:00~19:00, 12:00~18:00 (일요일)
 

3 / 10

 

장 조레스 서점 Librairie Jean Jaurès

프랑스를 여행하면 부러운 점이 하나 있다. 도시마다 오랜 시간을 간직한 서점이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남부 도시 니스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서 언급된 도시다. 이 책을 사기 위해 니스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장 조레스를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낡은 가죽 소파 두 개가 시간의 흐름을 멋스럽게 간직하고 있었다.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해 시야가 탁 트인 이곳은 소설, 어린아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들로 가득하다.

이곳이 특별한 것은 바로 서점의 살롱 역할을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들의 낭독회 혹은 토론회를 펼치기도 하고, 재즈 페스티벌로 유명한 니스답게 서점 한편에서 작은 재즈 공연을 열기도 한다. 집에서 오전에 간단히 클릭하면 오후에 책을 받을 수 있는 편리한 오늘날, 서점에 가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불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장 조레스에서 엄마는 유모차를 끌고 아이와 함께 책을 고르고, 할머니는 소설을 고른다. 이 모습에서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상행위 장소로만 전락한 오래된 서점들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한 세대의 추억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공유할 수 있는 시간 여행 공간이 되는 니스의 작은 서점처럼 시간이 쌓여 추억이 담기고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간 학교 앞 서점이 사라진 게 내심 서운한 요즘이다.


니스
위치 2 Rue Centrale, 06300 Nice, France
영업시간 09:00~19:00 (일요일 휴무)

 

3 / 10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 

커다란 나무와 산책길 사이에 나지막하게 세워진 3개 동의 건물.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커다란 창을 통해 그대로 서점 안으로 들어온다. 곳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나무 그늘 아래에서 원하는 책을 얼마든지 찾아 읽을 수 있다.

간접 조명 비율을 높이고 서가의 높이를 낮춰 서점이라기보다 마치 누군가의 서재에 몰래 들어온 느낌마저 든다. 음반 코너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츠타야와 오랜 시간 파트너십을 맺어온 스타벅스의 고소한 커피 향까지. 후각마저 만족시키는 서점이라니. 인문과 문학, 디자인과 건축, 요리와 여행으로 서적을 분류하고 각 테마별 ‘컨시어지’를 배치한 것 또한 츠타야 서점만의 강점이다.

이곳에 상주하는 컨시어지는 대부분 해당 분야 직종에 오래 몸담은,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베테랑이다. 단순히 책의 위치를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하거나 그에 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점과 함께 새벽 2시까지 영업하는 라이브러리 라운지 ‘안진’에서 보내는 시간 역시 각별하다. “어른을 위한 도심 속 리조트를 만들고 싶었다”는 마스다 무네아키 대표의 말처럼 출근길에 잠시 들러 일간지를 훑어보는 사람들부터 휴일을 맞이해 가족과 함께 산책을 즐기거나 해가 지면 술잔을 기울이며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하는 사람들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츠타야 서점이 문을 열면서 내가 다이칸야마에서 보내는 패턴 또한 크게 달라졌다. 작품을 위한 새로운 영감이 필요한 날, 화창한 날 친구와의 점심 약속,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미팅이나 유독 일찍이 잠들기 싫은 날 언제든 나를 위해 열려 있는 서점의 존재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도쿄
위치 17-5 Sarugakucho, Shibuya-ku, Tokyo
영업시간 1층 07:00~ 02:00, 2층 09:00 ~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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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파리 Words & Photography 신창용(포토그래퍼)
뉴욕 Words & Photography 이종헌(여행 칼럼니스트)
런던 Words & Photography 레이문(포토그래퍼)
니스 Words & Photography 이한나(여행 칼럼니스트)
도쿄 Words & Photography 남혜미(가구 디자이너)
Editor 조진혁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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