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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돼지갈비

뛰는 게 돈이었던, 택시들의 황금시대가 있었다. 성북동돼지갈비는 당시 서울 시내에서 제일 인기 좋은 기사 식당이었다. 세월이 흘러 기사들의 시대는 갔지만, 이 작은 노포는 여전하다. 연탄 때는 옛날 화덕에 지글지글 돼지고기를 구워 ‘스뎅’ 접시에 척 담아 낸다.

UpdatedOn September 29, 2016

박찬일의 백년식당 2

에세이스트이자 요리사인 박찬일의 오래된 식당 탐방기 <백년식당>의 두 번째 이야기가 <아레나>에 연재된다. 박찬일이 오랜 취재를 통해 어렵게 찾아내고 담아낸 노포들의 역사를 기록할 예정이다.
 

서울에서 택시 잡기 편해졌다고 한다. 체감할 수 있다. 1980~1990년대에 회사를 다닌 사람들은 택시에 관한 끔찍했던 기억이 있다. 합승은 기본이고, 트리플, 콰트로플(?) 합승도 있었다. 콰트로플 합승이란 첫 손님 빼고 세 명의 손님이 모두 합승으로 탄 것이다.

요금도 ‘따블’에 ‘따따블’까지 있었다. 기사 맘대로 돌아가도 아무 말도 못했다. 1974년 8월 15일 1호선 서울역-청량리 구간을 시작으로 1983년 2호선이 완전히 개통하기까지 지하철도 부족했다. 야간 운행하는 대중교통은 더 드물었다. 합승을 하기 위해 행선지를 크게 쓴 팻말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택시에 행선지를 수십, 수백 번 외쳐야 탈 수 있었으니까.

1977년도 서울 인구는 7백50만 명이었다. 자가용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택시는 고작 2만4천 대였다. 종로, 을지로, 서울역, 영등포에서 귀가 전쟁이 벌어졌다. 택시 수입은 쏠쏠했다. 하루 400~500km를 뛰는 택시가 흔했다(요즘은 200km를 뛰는 경우도 드물다). 택시를 죽음의 핸들이라고도 불렀다. ‘타이밍’ 같은 각성제를 먹는 기사마저 있었다. 잠을 잊으려고 먹었다. 뛰는 게 곧 돈이었으니까.

마약 복용 기사 얘기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이 무렵, 기사식당이 등장했다. 기사들이 바쁘게 밥 먹을 수 있는 집을 뜻했다. 기사에게는 하루 종일 강행군에 잠시라도 느긋하게 밥 먹을 수 있는 식당이 필요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혼자 가서 밥 먹을 수 있는 집은 흔치 않다. 눈총 받는다. 기사식당은 그 틈을 뚫었다. 세차 서비스와 동전 교환, 커피 제공, 장갑(운전용 흰 장갑)과 박카스도 팔았다.

‘종합기사복지센터’라고 불렀다. 서울 동부 쪽으로는 자양동 송림식당이 유명했고, 시내는 성북동돼지갈비가 인기를 얻었다. 이건, 서울의 어떤 전설이다. 교통대란과 택시 황금시대의 유적이다. 이제 택시는 인기 없는 직업이 되었고, 기사식당에는 기사가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돈다. 일반인이 더 많이 온다는 얘기다. 자기 차를 끌고 다니는 지금 시절의 삽화다.

“1970년의 일이에요. 백반을 팔았지. 기사들 상대로. 여긴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라 기사들이 차 대놓고 밥 먹기 좋았지. 서울 시내에는 주차 공간이 없었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밥 파는 집이 없었으니까.” 이 집의 창업자 강부자 여사(73세)의 증언이다. 원래 이 식당 자리가 옆에 있는 비슷한 업종의 식당에 포함됐다고 한다. 그 자리가 처음 창업한 곳이다.

지금 자리는 창업 8년 후 전세로 이사 왔다가 아예 산 것이다. “처음부터 돼지갈비를 판 건 아니고 백반이 메뉴였어요. 소문이 나면서 기사 손님이 엄청 쏟아져서 마당에 평상 깔고 장사했어요. 어떤 기사는 밥을 먹어야 하니까 오봉(쟁반)에 밥 받아다가 자기 차에 가서 먹기도 했어요. 기사식당이 없을 때니까, 우리 집이 미어터졌어.”

“아버지는 광양 사람이었고, 김해에서 자랐어요. 아버지가 왜정 때 요리사였다고 해요. 고기를 잘 먹었어요. 결혼해서 서울로 왔어요. 친정어머니가 서울 살았거든.” 친정어머니는 성북동에서 목로주점 같은 걸 운영했다. 돼지주물럭이 주 메뉴였다. 여기서 눈썰미로 배웠다.

“그냥 막 안주에 막걸리를 파는 집이었어. 어머니는 나중에 이 동네가 헐리면서 성남으로 딱지 받아서 이주하셨고, 나는 그냥 남았지.” 정확한 기억은 없으신데, 아마도 광주대단지로 이주하셨다는 이야기 같다. 1970년대에 서울의 무허가 주택이 헐리면서 경기도 광주로 대규모 이주 사업을 벌였다. 일종의 강제 이주였다. 이곳이 나중에 성남시의 모태가 된다. 이때 철거민 투쟁을 공권력이 진압하는 모순이 터져 나왔다. 소설가 윤흥길의 출세작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의 배경이 된 사건이기도 하다.

성남은 이후에도 분당 신도시 건설로 또 주목받는데, 광주대단지 이주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분당 건설은 사실상 강남 중산층을 위한 신규 주택 공급이 핵심이었다. 지금 성남의 내적 모순(분당구 독립 주장과 성남의 슬럼화)은 이런 역사적 사건이 거듭되면서 생겨난다.

“어머니한테 배운 대로 돼지주물럭을 했어요, 가오리무침하고. 테이블이 고작 4개였고, 간판에 그냥 ‘기사집’이라 써놓고 장사했어요. 소문이 나서 금세 손님이 몰려왔지. 연탄을 때서 돼지갈비를 구운 것도 그 직후예요.” 그 가게가 보증금 20만원에 월세 2만원이었다. 기사식당이랄 게 별로 없으니 손님이 밀어닥쳤다.
 

세차 서비스도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료였고, 나중에 5백원인가 받았다. 그 후에는 불법이 되면서 중단되었다. “세차도 처음에는 우리 아저씨하고 내가 했어요. 워낙 차가 밀려오면서 사람을 고용하기도 했지.”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쯤 닫았다. 2녀 1남을 기르면서 밥하고 장사했다. 지금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는 아들(윤영호)을 업고, 또 어린 딸아이들은 옆에서 건사하며 밥을 지었다. 꾸벅꾸벅 졸면서 일했다. 그 시절 우리 부모님들이 다 그랬듯이 생존하기 위해 일했고, 일 자체가 인생의 목적 같았다. 명절에도 문을 열었다.

“3백65일이 영업일이었지. 휴무가 어디 있어요. 한번은 아들이 기사 차 밑에서 노는데 차가 시동이 걸리는 거라. 다른 기사가 ‘저 밑에 아 있다!’ 외쳐서 살아난 적도 있고, 아들이 라면땅을 사러 길 건너다 차에 치여 붕 떠서 날아간 적도 있어요. 다섯 시간 만에 깨어났지. 그렇게 살았어요.”

이 동네는 산동네인지라 밤에는 물이 잘 안 나왔다. 제한 급수도 있었다. 온갖 일을 밤에 해야 했다. 잠이 늘 부족했다. 지금 가게 건너 하나은행 자리에 샘이 있어서 물지게를 지기도 했다. 처음 백반 값이 4백원인가 했다. 연탄을 때서 갈비를 굽는 건 친정아버지의 솜씨다.

아버지가 집에서 종종 갈비를 떠서 아이들에게 만들어 먹였던 것이다. 그이가 직접 갈비를 뜨고 연탄가스 마셔가며 구웠다. 옛날식으로 뼈 양쪽으로 펼치는 방식이었다. 요즘은 이 집도 한쪽으로 고기를 벌려 포를 뜨는 방식을 쓴다. “주방장을 13년 전에 고용했어요. 가게가 커지고 손님이 많아져서 나 혼자 할 수가 없었고. 허리가 아파 이제는 일을 거의 못해요.”

돼지갈비 백반을 한 상 시켜본다. 연탄불에 그을린 갈비와 기타 부위 고기가 자그마한 ‘스뎅’ 접시에 담겨 나온다. 이 접시에 가게 역사가 있다. 폼 나는 커다란 접시가 아니라, 손으로 잡을 틈도 없이 고기가 담긴 작은 접시다. 멋보다 실용 중심의 상차림이다. 조갯국이 특이하다.

“원래 김해는 재치국(재첩국)이 유명하잖아요. 그걸 생각해서 조개로 국 끓여내니 기사들이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 집 국은 조갯국이지.” 이 집은 별칭으로 기사들 사이에서 ‘돼지저금통집’이라고도 불렸다. 기사 개인별로 저금통을 만들어주고, 동전을 모으게 했다. 꽉 차면 그걸 내주고 축하 선물로 기사용 선글라스도 하나 줬다. 서비스였다.

“동전 바꿔드리는 게 일이었어요. 한 번에 3백~4백만원어치씩 바꿔놨으니까. 커피 서비스도 중요했고. 참 그때는 신나게 일했어요. 기사들도 좋아했고. 안타까운 것도 많이 봤지. 그때는 기사들이 밥 먹고 위장약을 그렇게 많이 먹었어요. 길은 밀리지, 차는 달려야 하니까 신경 곤두세우고 일하다 밥때 놓치고 하니까 속이 좋을 리가 있나. 요새? 위장약 먹는 기사들 별로 없어요. 낮에 차가 다 노는데 뭐. 느긋하게 식사하고 가실 수 있으니까.”

이 집 갈비는 여전히 19공탄 때는 옛날 화덕에서 굽는다. 초벌로 구운 후 재벌로 한 번 더 구워 낸다. 다른 건 현대화되고 있지만, 연탄 화덕은 포기하지 않는다. 돼지고기는 도축된 걸 마리째로 들여온다. 갈비, 다리 등을 고루 섞어 굽는다. 단골만의 주문법이 있는데, ‘기름 빼기’ ‘기름 많이’다.

비계 부위 없는 걸 싫어하는 이나 좋아하는 이의 기호에 맞춰 낸다. 연탄 값은 요즘 6백원. 20원 할 때부터 땠으니 연탄재만 해도 산을 이루었을 것이다. 차를 타고 이 근처를 지나면 돼지갈비 굽는 냄새가 난다. 그 냄새를 따라 옛 기사들의 시절도 흘러간다. 지금은 2016년. 지하철이 9호선까지 생기고, 온갖 지선이 수도권에 촘촘히 깔려 있으며, 거의 대부분 가정에 차가 있다. 기사들의 시대는 간 것이다. 

성북동돼지갈비

주소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115
문의 02-764-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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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경진
Words 박찬일
photography 노중훈

2016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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