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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마초가 온다

On September 14, 2016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남자는 마동석이다. 좀비 정도는 가볍게 맨손으로 때려잡지만, 사랑하는 여자의 한마디엔 꼼짝도 못하는 순정마초. 왜 이런 남자가 뜨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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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성 전쟁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는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마초가 인기를 끌고 있다. 바로 ‘마요미’ 마동석이다. 비록 2004년부터 꾸준히 영화에 출연해온 배우이지만, 사람들이 배우 마동석을 제대로 인지한 건 2012년 작품 <이웃사람>부터였을 거다. 그는 연쇄살인마를 ‘쫄게’ 하는 무서운 건달을 연기했는데 극사실적인 연기에 관객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시작된 마동석의 ‘착한 깡패’ 캐릭터는 드라마 <나쁜 녀석들>을 거치며 ‘정의 구현’ 깡패로 진화했고 <베테랑>의 ‘아트박스 사장님’으로 카메오 출연해 귀여움까지 장착하더니 마침내 <부산행>의 순정마초 캐릭터로 매력을 폭발했다. 그의 인기는 영화 개봉 전 예고편에서부터 감지할 수 있었다.

양팔을 보호대로 무장하고 좀비 떼와 대결하는 마동석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오히려 좀비들이 불쌍하다는 반응이었다. 실제 영화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는 관객의 기대에 뜨겁게 부응했다. 그 결과 마동석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배우가 됐다. 그런데 왜 지금 마초 캐릭터가 뜨는 걸까?

사실부터 따져보자. 현재까지 수렵 채집 상태를 유지하는 인간 공동체에서 구성원을 먹여 살리는 일은 주로 여자가 한다. 가축을 관리하고, 천을 만들거나 옷을 짓고, 음식을 만들고, 그 외에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온갖 허드렛일, 그러니까 의식주의 대부분은 여자가 맡는다.

남자의 일이라고는 가끔 키워놓은 가축을 도축하거나, 역시 가끔 사냥해오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사냥이란 게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아서 그것에만 의지하다간 굶어 죽기 딱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다. 그런데 남자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공동체에서 특권을 누린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남자의 역할이 하나 더 있다고 말한다. 바로 전쟁이다. 소규모 부족 간의 전쟁은 이긴 쪽이 진 쪽의 모든 자원을 독점하고 심지어 잡아먹기까지 하는, 부족의 존망을 결정하는 이벤트로, 전적으로 남자 몫이었다. 그러니까 남자의 특권은 언젠가 자신들이 부족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근거해 부여된 것이다.

남자는 유전적으로도, 생리적으로도 오래 살기에는 불리한 특성을 타고났다. 남자의 성염색체는 XY로 구성되어 있어서 유전적 결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게다가 남성호르몬은 근육과 힘을 키우지만 질병에 대한 저항력은 떨어뜨리므로 남자는 미친 듯이 힘을 내며 싸우다가 조만간 죽어버리는 역할에 딱 어울린다.

실제로 남자에게는 일찍 죽기 좋은 일들이 맡겨졌다. 전쟁에 나가고, 사냥하러 나가고, 그것도 없으면 자기들끼리 힘을 겨루고 스피드를 겨룬다. 모두 일찍 죽기 딱 좋은 일들이다. 결국 남자가 된다는 건 더 쉽게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고, 의외로 나약한 저항력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일찍 죽을 각오로 살다 보니 원래 남자는 남의 눈에 띄거나 남들의 시선을 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경 쓰지 않거나 오히려 즐겼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지적했듯 루이 14세 시절 남자의 복장은 여자보다 더 화려했다. 긴 가발, 스타킹, 하이힐, 그리고 댄서 같은 자세는 모두 여자가 아니라 남자 몫이었다. 동물도 그렇지 않던가. 사자도, 공작새도, 사슴이나 코끼리까지 수컷은 불필요할 정도로 거창한 표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수컷들의 역할도 비슷하다. 자기 무리를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 죽도로 싸우기.

다시 영화 <부산행>의 마동석을 보자. 우선 그는 힘이 세다. 남성호르몬의 산물인 근육과 골격의 발달 덕분이다. 그리고 그 강한 힘을 여자를 보호하고 받드는 데 사용한다. 그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혹은 여자친구)인 정유미의 명령에 복종해 그녀를 보호하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

더 중요한 건,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여자 말에 고분고분 따르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건 자신이 정말로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 있느냐는 것이고, 정유미가 자신을 얼마나 인정해주느냐는 것이지, 그 외에 나머지 떨거지들이 뭐라고 하는지는 뒷전이다.

마동석의 자아와 사회성은 정유미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자부심은 자신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서 자손을 남겼고,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자손을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그는 이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

마초성은 현대 사회에서 진즉에 멸종했어야 할 본능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에게 마초성이 남아 있다는 건 인류에 뭔가 기여했다는 얘기다. 마초성을 유지하지 못한 개체는 다 죽고 자손도 남기지 못한 반면, 마초성을 가진 개체는 번성하고 자손을 많이 남긴 덕분에 우리의 유전자 속에 이 본성이 박혀 있을 거 아닌가.

그런 면에서 마동석, 마요미가 뜨는 이유는 현재 한국 사회에 그와 같은 마초가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사회에서 목숨을 바쳐 남을 구하던 마동석 같은 진짜 남자들은 정말로 다 죽고, 그 자리를 김의성이 연기한 천리마 고속 상무 같은 비겁한 졸장부가 차지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러니 지금은 마요미를 그저 좋아하기만 할 때가 아니라 나부터라도 마초성의 미덕을 지켜보려고 노력해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남자는 마동석이다. 좀비 정도는 가볍게 맨손으로 때려잡지만, 사랑하는 여자의 한마디엔 꼼짝도 못하는 순정마초. 왜 이런 남자가 뜨는 걸까?

Credit Info

Words
장근영(심리학자)
Editor
서동현
illustration
이우식

2016년 09월호

이달의 목차
Words
장근영(심리학자)
Editor
서동현
illustration
이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