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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 앤 더 시티

반짝하고 사라지는 유행 말고, 진짜 서핑이 뭔지 알고 싶다면 이들에게 주목할 것. 각자의 도시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서핑 문화를 만드는 멋진 남자들이다.

UpdatedOn July 19, 2016

City1 Yang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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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양양 죽도 해변은 서핑하는 청춘들로 북적인다.쇼양양 죽도 해변은 서핑하는 청춘들로 북적인다.
  • 사계절 내내 서퍼들을 만날 수 있다사계절 내내 서퍼들을 만날 수 있다
  • 싱글핀 에일웍스에서 열린 공연을 <wsb farm=에서 취재했다. ">싱글핀 에일웍스에서 열린 공연을 에서 취재했다.
  • 아티스트 솔잎의 전시로 활기를 띤 모습.아티스트 솔잎의 전시로 활기를 띤 모습.
  • 〈WSB FARM 서프 매거진〉 한동훈 디렉터와 사진을 찍는 엄준식.〈WSB FARM 서프 매거진〉 한동훈 디렉터와 사진을 찍는 엄준식.
  • 죽도 해변에는 서프 숍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죽도 해변에는 서프 숍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한동훈

WSB FARM, SURF MAGAZINE

강원도 양양 죽도 해변에 처음 온 사람들은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발리 풍경에 놀란다.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쓰고 커다란 개와 함께 해변을 걷거나, 선블록 스틱을 얼굴에 잔뜩 바르고 실컷 파도를 타다 시원하게 맥주 한 캔 들이켜는 사람들이 어슬렁 돌아다닌다.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여유롭고 멋스러운 풍경이다.

 

국내 최초의 서핑 관련 잡지 〈WSB FARM 서프 매거진〉의 한동훈 디렉터도 양양에 살고 있다. 그는 양양 풍경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무엇이 그들을 서핑 이전의 삶과 전혀 다른 태도 살아가게 만드는지에 주목한다. 그 또한 서핑을 통해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강렬한 경험을 했다. 그가 만드는 잡지에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떤 계기로 서핑 매거진을 창간하게 됐나요?
일본, 미국, 호주 그리고 발리까지. 서핑 문화가 발달한 곳에는 서핑 매체가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국내에도 서핑이 유입된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 우후죽순 생긴 커뮤니티와 동호회에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옷을 만들던 사람이었어요. 1년에 절반은 한국에서, 나머지 절반은 발리에서 살면서 옷을 만들어 팔았죠. <고아웃 코리아>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쪽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게 됐는데, 서핑 매거진을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아내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고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언젠가 에세이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게 서핑 매거진 형태로 발전한 셈이죠. 전에 옷을 만들었지만, 어떤 정성을 들여도 시간이 지나면 값이 떨어지잖아요. 하지만 글, 그리고 콘텐츠는 시간이 지날수록 값어치가 빛을 발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저는 서핑을 평생 할 거라서, 평생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 거죠.

그럼 편집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우리는 작은 회사예요. 처음엔 영상 제작을 하던 친구와 둘이 시작했어요. 에디터이면서 영상 제작자이면서 포토그래퍼였죠. 그러다 보니 주위에 재미있는 사람들이 모였어요. 장래홍이라는 친구가 편집장이고 온라인 미디어를 끌어주는 친구, 포토그래퍼 3명과 영상 제작자 2명 그리고 서퍼 중에 멋있고 감각적인 사람이 많은데 그들 중 추려서 모델 크루도 형성했어요. 다들 무급에 가깝게 일하고 있죠. 하하.

지금은 웹 매거진 형태로 만들잖아요. 조만간 종이 형태로도 발행할 거라고 들었습니다.
〈WSB FARM 서프 매거진〉은 기본적으로 온라인 잡지예요. 한국에서는 다들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보니까 가장 적합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더해서, 저희만의 강점이 바로 서핑 라이브 웹캠이에요. 국내에 서핑할 수 있는 해변이 정해져 있는데, 그곳에 웹캠을 달아서 그날그날 파도를 볼 수 있는 서비스죠.

일본과 호주 등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인터넷도 빠른데 아직 없더라고요. 종이 잡지는 원래 내년이 목표였는데 조금 빨리 당겼어요. 1년에 1회 혹은 2회 발행을 목표로 만들고 있습니다. 7월 첫째 주에 발행할 예정이에요.

종이 매거진 첫 호의 주제는 뭔가요?
아직까지 서핑에 관한 대부분 콘텐츠들이 매체를 통해 공개된 적이 없어서, 굉장한 노다지라고 생각해요. 물론 캐면 금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하하. 서핑을 매개로 소화할 수 있는 글, 사진, 영상 등이 너무 많아요. 그중에서도 일단 첫 번째로 힘을 주는 것이 ‘How To Surf’예요. 그리고 두 번째로 인물 인터뷰가 있죠. 서핑을 통해 삶이 바뀐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고, 그 안에서 밸런스를 잡는 것에 중점을 둔 사람도 있겠죠.

예를 들면 샘윤이라는 사람을 소개할 텐데, 그는 호주 교포예요. 그리고 산같이 어마어마한 파도를 타는 유일한 한국인이죠. 그 사람을 만나서 서핑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채소를 직접 재배하는 유기농적인 삶에 대해서도 들어봤어요. 서핑과 오가닉이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데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 서퍼로서 그가 내린 답변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서핑 자체보다 서핑하는 사람에 중점을 두고 있나요?
궁극적으로는 그렇죠. 일단 이번 창간호에서는 서핑을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룰 거예요. 이를테면 서핑할 수 있는 바다가 한정적인데 무엇이 파도를 만들고 어떤 파도가 좋은지를 설명해요. 그리고 또 우리나라에 어떤 서핑 장소가 있는지, 해외에서는 어떤 곳을 추천하는지도 알려주고요. 서핑을 하면서 아트를 한다는 것이 꼭 문화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는 서퍼들도 소개해요. 서핑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다고 볼 수 있죠.

양양에 오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다 멋쟁이예요. 타투도 괜히 멋있어 보이고요. 그런데 서핑의 어떤 철학이 모두를 이곳으로 이끈 걸까요?
언젠가 ‘서핑이 스포츠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스노보드를 타게 됐고, 음악을 하다 서핑을 시작했어요. 이런 흐름 속에서 서핑도 저의 또 다른 취미가 됐을 거예요. 그런데 그 안에서 제 삶을 송두리째 바꿀 어떤 것을 발견했어요.

어떤 건가요?
삶을 한번쯤 되새겨볼 만한 요소들이 있어요. 우리는 즐겁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고통을 견딜 때가 많아요. 서핑은 굉장히 단순하죠. 판때기 하나 들고 물 위에 떠다니는데, 그것도 1시간 이상은 못 타요. 물속에서가 아니라 물 밖에서 진짜 서핑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 양양 서퍼들을 봤을 때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하하. 멀쩡한 전문직을 때려치우고 온 사람, 유명한 작곡가 출신 혹은 영화나 뮤직비디오 감독도 있어요. 또 일용직 노동을 하다 아예 양양에 와서 하루 일하고 하루 파도를 타는 사람도 있고요. 한번쯤 삶에 대해 고민할 때가 있는데, 그 고민의 결과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양양에 모여 사는 것 같아요. 진짜 삶을 살게 되거든요.

종이 매체는 아무래도 기록의 의미가 크잖아요.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는 것 외에 어떤 것을 담고 싶으신가요?
저희 온라인 매거진을 보면 ‘DO PEOPLE’이라는 영상 인터뷰가 있어요. 서핑이라는 문화 안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의 삶을 보며 공감하고 공유하고 싶어요. 인터뷰 1호의 주인공은 일본인 서퍼 이에 노부히토에요. 이 형은 54세인데 아직도 큰 파도를 타요. 15세 때 처음 서핑을 시작해 30년간 혼자 1인 미용실을 운영했죠. 하루에 5명 이상의 손님은 받지 않고,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손님의 이미지를 헤어스타일로 표현했대요. 그러다 매일매일 파도를 타고 싶어서 발리로 이사를 갔어요. 지금도 손님에게 전화가 오면 가서 머리 잘라주고 그 사람이 준 만큼만 돈을 받아 생활해요. 이 형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뭔가 마음이 움직이거든요. 그걸 공유하고 싶은 거죠.

다시 한 번 물어볼게요. 왜 서핑을 하나요?
처음에는 다른 사람보다 잘 타고 싶고, 더 큰 파도를 타고 멋지게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출발점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초반의 그런 재미가 지나가고 난 후에는 서핑은 ‘너’의 기준에서 ‘나’의 기준으로 삶의 주체가 바뀌는 과정 같아요. 저희 부모님도 마찬가지겠죠. 서울 살던 제가 갑자기 양양에 내려가 산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이 “너 무슨 일 하려고?”였어요. 바꿔 말하면 주변의 기대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가 하는 의미거든요. 그런데 이 질문의 중심이 비로소 내가 되는 경험을, 서핑을 통해 할 수 있어요. ‘내 마음대로 살 거야.’ 이 대답이 가능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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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루팍스튜디오 작업실에서 10분만 걸어가면 첨성대가 나온다.트루팍스튜디오 작업실에서 10분만 걸어가면 첨성대가 나온다.
  • 작업실은 의뢰받은 서프보드로 가득 차 있다.작업실은 의뢰받은 서프보드로 가득 차 있다.
  • 한국적인 서프보드 디자인을 고민하는 그는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영감을 받았다.한국적인 서프보드 디자인을 고민하는 그는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영감을 받았다.
  • 트루팍스튜디오 전경.트루팍스튜디오 전경.
  • 서프보드가 탄생하기까지 2~3주의 시간이 소요된다.서프보드가 탄생하기까지 2~3주의 시간이 소요된다.
  • 갓을 쓴 선비가 서핑을 하고 있다. 트루팍스튜디오가 앞으로 견지하고 싶은 이미지다.갓을 쓴 선비가 서핑을 하고 있다. 트루팍스튜디오가 앞으로 견지하고 싶은 이미지다.

박철우

트루팍스튜디오

서퍼들 사이에서 ‘경주 로컬 셰이퍼’로 이름을 알린 트루팍스튜디오는 경주 첨성대 인근에 위치한다. 신라 시대 왕의 무덤 사이에서 서프보드를 만드는 장인이라니,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경주에서 나고 자라 포항에서 서핑을 하는 박철우 대표는 전공인 미술과 서핑을 결합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고 싶어 한다.

 

미인도가 그려진 서프보드가 될 수도 있고, 서핑하는 선비의 모습이 담긴 판화가 될 수도 있다.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한국에 자부심을 느끼며 다양한 방식으로 서핑과 예술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날씨가 좋을 땐 길 건너 왕릉에 가서 스케치한다는 그에게 경주는 한국적 서프 문화에 대한 영감을 주는 곳이다. 


서프보드를 만드는 작업실이 바닷가가 아닌 경주 첨성대에 있어요. 왜 경주인가요?
경주에서 태어나고 쭉 자랐어요. 이 건물 1층에는 저희 가업인 옛날 엿을 만드는 공방이 있어요. 여기가 제 집이라서 경주가 된 거죠.

엿 만드는 일도 하세요?
말하자면 투잡인 셈이에요. 가업도 잇고, 제 작업도 하는 거죠. 저는 포항에서 서핑하는데 두 가지 일을 하다 보면 바다로 많이 못 가요.

당연히 서핑에 빠져들어서 보드 셰이핑까지 하게 된 거죠?
2001년도에 미국으로 미술 공부를 하러 갔어요. 중부 네브래스카였는데 여름에 한 번씩 캘리포니아 바닷가에 놀러 가서 서핑하는 사람들을 봤죠. 그때는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어요. 물놀이나 하고 서핑 숍 구경이나 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조각가로 활동했어요. 그러다 서핑을 접하게 됐고 2013년부터는 서프보드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서프보드 사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았죠?
이제 만든 지 3년 정도 됐는데, 초기보다 주문이 훨씬 늘어나고 있어요. 서프보드는 사람이 타는 것이니 안전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가구처럼 튼튼하고 예쁜 디자인만으로는 부족하죠. 그래서 몇 년을 거쳐서 테스트도 해야 하고, 과정이 복잡해요. 저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죠.

독학으로 배우신 건가요?
혼자 공부했어요. 그런데 관련 자료는 굉장히 많아요. 다 찾아보고 정리하면서 모르는 게 있으면 해외 유명 셰이퍼들에게 이메일로 질문을 하죠. 그럼 또 친절하게 답을 해주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하나둘 터득했어요. 가장 큰 도움이 된 곳은 스티븐 퍼시(Stephen Pirsh)의 ‘How To Build Your First Surfboard’라는 사이트예요. 처음 서프보드를 만드는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실수, 서프보드의 기본적인 기능을 굉장히 쉽게 설명해놓았어요. 또 토론 사이트 ‘Swaylocks’도 유용한 정보가 많아요. 한국의 셰이퍼들과도 교류하면서 조금씩 틀을 잡아갔죠.

단순히 좋아서 시작한 일인가요?
미술을 전공했으니까 항상 작업실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어떤 형태로든 내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지 생각했죠. 제주도에도 저랑 비슷한 시기에 서프보드를 만들기 시작한 분들이 계세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서핑 붐이 일어났잖아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약간 부추긴 것도 있어요. 하하. 작업실을 만든 김에 조금씩 장비를 사서 보드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적금까지 깨고 있더라고요. 아, 이제는 취미를 넘어섰구나 생각했죠. 처음에 만든 서프보드는 제가 탔어요, 그냥. 주위에서 자기한테 팔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직업이 된 거죠.

전공인 미술과 서프보드 만드는 일이 비슷한 점이 있나요?
판화나 조각 쪽으로 관심이 더 많았는데, 서프보드와 접목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았어요. 트루팍스튜디오 서핑 앤 아트라는 타이틀을 붙여봤어요.

서프보드 외에 다른 것들도 만들잖아요.
서핑 바람개비 같은 디자인 소품도 만들었고, 서핑 판화도 많이 제작했어요. 선비가 보드를 타고 있는 작품인데, 경주라는 특색을 살려보고 싶었거든요. 해외에서 작품 활동을 할 때 한국적인 것을 늘 고민했어요.

롱보드만 제작하나요?
제가 롱보드를 타기 때문에 제작도 롱보드만 해요. 직접 타보고, 수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요. 간혹 ‘샤넬 보드’를 만들어달라는 문의가 들어오는데, 완전 까만색 보드를 만드는 건 어렵거든요. 색칠을 하는 게 아니라 안료를 써서 만들어야 하는데 까만색이면 잡티가 잘 보이잖아요. 굉장히 세심한 작업을 요해요. 색 작업이 잘못돼서 다시 만들기도 하고 그랬죠.

경주에 맞는 서프보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로컬 셰이퍼가 만드는 보드라면, 그 지역의 색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시작 때부터 가장 고민하던 문제였어요. 지금 제가 만드는 서프보드는 포항 주변, 혹은 동해안 파도의 특색이 묻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서핑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포항은 파도가 거칠고 사나워요. 높은 파도가 강한 바람을 동반해서 들어오거든요. 그래서 롱보드보다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갈 수 있는 쇼트보드가 유리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롱보드도 패들을 쉽게 할 수 있고 빠르게 테이크오프해서 초기에 파도를 잡을 수 있다면 전혀 문제가 없어요. 그래서 컨트롤이 용이하게 날렵한 롱보드를 만들고 있죠. 사실상 지역에 맞는 서프보드보다는 개인의 취향과 개성에 맞는 서프보드를 만드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봐요.

서핑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보드 셰이핑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의 문의도 많아졌을 것 같아요.
만들어보고 싶다는 사람들은 많죠. 그런데 전혀 공부하지 않고 온 사람에게 1부터 10까지 다 가르쳐준다는 것은 의미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수업을 하려면 결국 자기가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하거든요. 근데 여기가 그 정도로 넓진 않아서 어려움이 많아요. 시설을 갖춰서 나중에는 한번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요.

전국에서 사람들이 서프보드를 의뢰하기 위해 경주의 트루팍스튜디오를 찾고 있어요. 이 정도로 서핑이 인기라면, 어떤 식으로 문화가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한국에선 아직까지 1차적으로 서핑 숍만 생기고 있잖아요. 거기에 조금 더 나아가면 커피숍을 묶는 정도로요. 양양에 싱글핀 에일웍스가 있는데 맥주를 팔면서 전시도 하고, 공연도 해요. 그런 식으로 서핑을 기반으로 2차, 3차 문화가 발전해야 한다고 봐요. 제가 집중하는 것은 아트예요. 서핑이란 아이콘을 활용해서 누구나 갖고 싶은 어떤 것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살고 있는 경주만 하더라도, 첨성대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없잖아요. 파리에서는 그게 자연스럽고 낭만적이라 느끼면서,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거죠. 저는 그런 문화를 살리고 싶어요. 지난번에 서프보드에 신윤복의 미인도를 그려 넣은 적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뭔가를 계속 시도하는 중이에요.

보드 모양이나 규격에는 아무래도 제한이 있잖아요. 그래도 시도하고 싶은 디자인이 있나요?
그렇죠. 사이즈가 정해져 있으니까, 패턴 같은 걸 고민해요. 대리석 패턴을 만들고 싶었는데 벌써 다른 친구가 주문해서 만들어줬어요. 그리고 글씨를 넣는 것도 생각보다 별로예요. 그래서 글씨를 새기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붙였다 뗄 수 있는 걸 고려하라고 해요.

전시 계획도 있으세요?
늘 생각하고 있고 문의도 많이 들어와요. 경주 작업실 인근에도 서핑을 하면서 디자인하는 분들이 좀 있거든요. 서핑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이런 분들과도 협업을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해요. 서핑을 매개로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싶어요.
 

City3 Bu 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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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프 숍이자 카페를 겸하는 킬러스웰.서프 숍이자 카페를 겸하는 킬러스웰.
  • 선블록 등 서핑에 필요한 용품과 다양한 핀을 진열해놓았다.선블록 등 서핑에 필요한 용품과 다양한 핀을 진열해놓았다.
  • 부산 스웨그는 역시 부산역에서부터 시작된다.부산 스웨그는 역시 부산역에서부터 시작된다.
  • 비욘드 개러지는 다양한 공연과 전시, 이벤트를 위해 열어둔 복합 문화 공간이다.비욘드 개러지는 다양한 공연과 전시, 이벤트를 위해 열어둔 복합 문화 공간이다.
  • 캘리포니아 어느 해변의 서프 숍처럼 아기자기하다.캘리포니아 어느 해변의 서프 숍처럼 아기자기하다.
  •  패션 소품과 의류 모두 서핑과 관련된 것들이다. 패션 소품과 의류 모두 서핑과 관련된 것들이다.

서장현 + 김석관

안티도트 공동 대표

안티도트 공동 대표인 서장현과 김석관은 부산과 서핑을 사랑하는 남자들이다. 2007년부터 서핑 관련 브랜드를 소개하고, 서핑 숍을 운영하던 부산 서퍼들은 10여 년이 흐른 지금 부산 바닥에서 가장 유명한 서핑 형님들이 됐다. 이들은 서핑을 기반으로 한 편집매장 고사우스, 서프 숍 겸 카페 킬러스웰 그리고 문화 공간 비욘드 개러지의 공동 대표이기도 하다.

이들이 꿈꾸는 건, 그리고 실현 가능하다고 믿는 건 ‘부산포니아’다. 바다와 서핑이 일상의 한 부분으로 균형 있게 자리한 캘리포니아처럼 부산에서도 서핑과 삶이, 도시와 바다가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돼서도 서퍼로 살아갈 이들에게는 이제 얼만큼 멋지게 파도를 타는지, 서퍼의 올바른 자세는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서핑이 삶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만들면서 공존할 수 있다면 그만큼 멋진 일도 없다는 생각이다.

서핑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김석관 2000년도부터 시작했죠. 서핑 관련 비즈니스를 한 건 2007년도부터였고요.

비즈니스의 원형은 뭐였나요?
서장현 안티도트 회사를 차렸는데, 해운대에 있었거든요. 거기서 서핑 관련 브랜드를 수입하고, 문화 행사도 조그맣게 시작했죠.

그게 벌써 10년 전이네요. 그때는 서핑이라는 게 훨씬 낯설지 않았나요?
김석관 그랬죠. 한국에서 서핑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서장현 윈드서핑과도 헷갈리고.


김석관 서핑에 대한 인식이 없다 보니까 파도가 심하게 칠 때 바다에 들어갔다 체포당한 적이 많아요. 벌금도 냈고요. 하하. 지금은 제도적인 부분도 많이 완화됐죠.


서장현 서핑 장비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발전이에요. 저희가 처음 시작했을때와 다르게 요즘은 원하는 장비를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거든요.

쭉 해운대에서만 서핑을 했나요?
김석관 송정, 해운대 등 부산에 있는 바다는 다 왔다 갔다 했죠. 파도가 한 군데에서만 치는 게 아니니까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탔고요. 겨울 되면 포항 쪽 바다로 많이 갔어요. 그리고 여름에는 제주도 중문도 자주 갔고요. 제주도에서 살기도 했으니까요.

요즘은 다들 서핑이 쿨하다고 생각해요. 바닷가에서 서프보드 들고 서퍼들의 제스처인 ‘샤카’를 하면서 사진 찍으면 멋져 보이잖아요. 그런데 진짜로 소개하고 싶은 서핑 문화가 따로 있을 것 같아요.
서장현 결국 서핑은 해변 문화거든요. 서핑을 기화로 해변의 삶을 풍요롭게 즐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서핑에도 서브컬처가 있긴 하지만 더 포괄적으로는 해변 문화라고 보면 돼요. 해운대에 ‘오션뷰’를 내세우며 아파트를 많이 지어놨는데, 정작 거기 살아도 여름 한때 아니고는 바닷가 근처에도 안 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게 보면 해변 문화라는 것이 아직 한국에 없다고 봐야죠. 어려서부터 물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어 물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있잖아요.

제가 기대하는 건 서핑을 통해 젊은이들이 바다를 자주 오가면서 친근하게 느끼는 거예요. 바다에서 캠핑도 하고 서핑도 하면서, 그러다 보면 우리 다음 세대는 진짜 해변 문화를 형성하고 즐길 거 같아요. 요즘 서울에서 강원도 양양으로 거주지를 옮겨 서핑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그곳에서 결혼하고 2세를 낳으면 그 아이들은 진짜 바다를 친구 삼아 성장하겠죠. 바다가, 물이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놀이터가 되는 거예요. 그런 게 우리가 꿈꾸는 해변 문화죠.

김석관 요즘 인스타그램 보면 서핑을 해야 ‘힙’한 것처럼 말하잖아요. 가까운 일본만 봐도 서핑 신을 키운 건 진짜 서퍼가 아니라 서핑 흉내 내는 사람들이었어요. 일명 ‘간지 서퍼’라고 하는데요. 서퍼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을 입고, 시계는 어떤 걸 차야 하고 이런 거. 까무잡잡한 피부에 머리 엄청 기르고, 그렇게 서퍼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시장을 많이 키웠다는 것도 재미있는 지점이에요.

서장현 부산은 서핑이 시작된 지 꽤 오래됐거든요. 그래서 겉모습으로 ‘서퍼’임을 표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부산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도시예요. 새벽에 일찍 파도 한 번 타고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죠. 부산 서퍼는 자기 삶과 서핑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어요. 오랜 서핑 역사를 이어오며 문화가 발달한 미국 캘리포니아를 가보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히피 같은 서퍼는 찾기 힘들어요. 서핑은 그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취미일 뿐이지, 인생 전반이 바뀌는 걸 저는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부산포니아라는 말을 만들었어요. 캘리포니아처럼, 내 삶과 서핑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는 도시라는 생각 때문에요.

파도가 좋아 보이면 차를 세워서 겉옷만 훌렁 벗고 보드 들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 부산에선 가능하겠네요.
서장현 삶의 균형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희 역시 예전에는 뭔가 자유로워 보이는 것에 빠졌어요. 차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히피처럼 돌아다니고. 돈 떨어지면 아르바이트해서 겨울 내내 발리에 가 있고. 이런 게 멋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삶의 균형 자체가 깨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김석관 우리끼리 ‘간지 부리다 굶어 죽는다’는 말을 자주 해요. 하하. 문화란 대부분 사람들의 리스펙트가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잖아요. 사람들이 서핑을 어떻게 접하게 됐는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각자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단계 같아요. 우리가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정의 내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니겠죠. 적어도 저희가 생각하는 중요한 지점은 밸런스예요.

항상 어떤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발전하기까지, 그 과정에서 늘 충돌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방금 말씀하신 사람들끼리 벽을 치고 선을 긋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는 문화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겪는 현상 같거든요.
김석관 지금 서핑도 과도기예요. 서핑 숍도 우후죽순 많이 생기고요.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러한 현상을 좋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다 서핑을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시작하는 거잖아요. 자기만의 방식대로요. 어느 시점에 유행이 끝났을 때 떠날 사람은 떠나겠죠. 우리는 서핑을 평생 할 사람들이고, 해변에서 계속 살고 있어요. 엄청 길게 보는 거죠. ‘간지 서퍼’가 늘어나니 하는 건 사실 우리에게 전혀 이슈가 안 돼요. 각자 좋아하는 걸 표현하면 되니까요.

서핑은 로컬 서퍼들이 주축을 이루는 문화로 알고 있어요. 배타적이고 폐쇄적일 수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서장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가 바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잘못된 로컬리즘을 취하는 친구들이 꽤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여기는 내 바다니까 우리에게 예의를 갖춰라, 뭐 이런 건데. 저는 역으로 묻고 싶어요. 이 바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정말 몇이나 되며, 또 파도 타는 것 말고 바다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서퍼는 바다를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나요? 이를테면 ‘클린 비치 캠페인’ 같은 것이 떠오르는데요.
김석관 일단 부산 바다에 한정해 이야기하자면, 시에서 아침마다 해변 청소를 엄청 깨끗하게 하기 때문에 따로 캠페인을 할 필요가 없어요. 아까 말했듯 해변 문화란 파도가 없어도 일단 바다에 와서 놀아야 가능하거든요.

서장현 프로 서퍼가 아닌 이상, 취미로 서핑을 하는 사람이라면 스트레스 받지 말고 파도를 타면 좋겠어요. 바다에 모여 다 같이 재미있게 놀자는 것이 우리의 모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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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서동현
PHOTOGRAPHER 박종수, 이준열

2016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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