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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밖의 조정석

새 영화 <시간이탈자>에서, 조정석은 아주 보편적인 남자가 되기로 했다. 반짝이는 캐릭터를 만들기보다 이야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모두가 표현하려 애쓸 때, 조용히 존재를 드러내는 법을 안다. 흥행도 논외의 일이다.

UpdatedOn May 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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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셔츠·줄무늬 와이드 팬츠는 모두 오디너리 피플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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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아레나>와의 지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람으로서의 조정석을 많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요. “다 보여주면 배우로서의 조정석이 궁금할까?”라고 덧붙였죠.
맞아요.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결국 <꽃보다 청춘-아이슬란드>에서 다 보여준 것 같아요. 하하하.

보여주고 나니 어때요?
자연스럽게 보여준 것이어서 좋아요. 꺼벙한 안경을 낀 얼굴, 속옷 입고 널브러져 자는 모습. 제 일상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는데, 생각 외로 많은 분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저를 좀 더 편안하게 생각해주기도 하고요. 결과적으로 배우 조정석에게는 득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많이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바뀌기도 했나요?
아니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전에도 ‘진짜 내 모습은 절대 안 보여줄 거야’라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에요. ‘많이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정도지. <아레나>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말 했던 거 기억나요. 실은 대답하면서도 좀 아이러니했어요. 묻는 쪽에서는 좋다 혹은 싫다고 이야기하길 원하는 것 같았는데, 저는 좋지도 싫지도 않고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다고 대답했죠. 그런데 그게 정확한 제 생각이었단 말이에요.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예를 들어, “너무 긍정적으로 살면 재미없지 않아요?” 이런 질문을 받아요. 그러면 저는 “글쎄요. 재미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살려고 해요”라고 대답하죠. 일반적이고 회피하는 듯한 대답일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저는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다기보다, 그냥 그게 저예요. 어려서부터 그랬어요. 좋고 싫은 것을 가리는 데 집중하지 않았어요. 갖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조르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사람들은 극단적이고 명확한 말을 듣고 싶어 하잖아요.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렇게 따지면 전 진짜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인터뷰하는 기자는 제가 밉기도 하겠죠. A라는 대답이 듣고 싶은데, 자꾸 “A이기도 한데 A`이기도 하고 A`이기도 해요” 이런 식으로 말하니까.

배우로서 작품을 볼 때, 연기에 접근할 때는 어때요?
좀 더 분명하죠. 일단, 이야기만으로도 매력적인 영화를 보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요.

이야기의 힘을 전적으로 믿어요?
네. 이번에 개봉한 <시간이탈자>는 숨 가쁘게 펼쳐지는 이야기의 매력이 특출해서 욕심이 난 작품이었죠.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힘이 대단해요. 이야기가 중요한 관객에게는 분명 반가운 영화가 될 거예요. 그런데 후시 녹음 때 보니까 시나리오보다 영상이 더 잘 나왔더라고요.
 

흰색 헨리넥 셔츠는 YMC, 와이드 팬츠는 노앙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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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탈자>에서 맡은 지환 역은 사랑이 최고인 남자더라고요. 사랑에 꽤 순정적인.
맞아요. 아주 평범한 남자이고요. 유쾌하거나 열정적이거나 재미있지 않죠. 특징이 없어요. 그런데 이 남자, 무척 용감해요. 희생할 줄 아는 남자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뭘 하려 하지 않았어요. 지환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영화에 도움되지 않거든요. 지환이 보여주어야 할 건 명확했어요. 아주 평범한 사람의 용기. 촬영 내내 이런 생각이 줄곧 들었죠. ‘조정석이었다면 이렇게 못했을 거야.’

현실에서 자신을 희생할 만한 용기를 내는 일은 쉽지 않죠.
영화에서 지환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미래를 보게 돼요. 실제로 정말 그 사람이 죽고요. 정말 무서운 일이잖아요. 저라면 꽤 오래 두려움에 떨 것 같아요. 그런데 지환은 용기 있게 움직여요. 많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에 이르고요.

영웅이네요.
하지만 지환이라는 인물의 매력에 먼저 끌렸던 건 아니에요.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작품이 무척 재미있더라고요. 신선했어요. 타임슬립과 살인 사건. 두 가지 장치를 바탕으로 재미있게 풀어냈죠. 읽는 내내 다음 장이 계속 궁금했어요. 지환 역이든 이진욱이 맡은 건우 역이든 상관없었어요. 이 이야기에 참여하고 싶었거든요.

한편으로 아주 보편적인 인간애에 관한 영화인 것 같아요. 조정석의 인간애는 어떤 식이에요?
‘인간이라면 이렇게 해야지’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어’라고 여기는 쪽이에요. 다름을 인정하죠. 

긍정적인 방식이네요.
긍정적으로 살고 싶거든요. 우리 코드가 맞고 안 맞고를 따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다름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름을 인식하는 데 크게 힘주지 않아야 정말로 인정하는 셈이 되는 거죠. 저는 누굴 미워하는 게 싫어요. 그러지 않으려면 인정해야 하죠. 사람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그럼 누군가를 싫어하지도,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도 않겠네요.
물론 간혹 상처 주기도 했죠. 사람이니까. 어떤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 준 걸 알게 되면 너무 신경 쓰여요. 많은 생각을 하죠. 나는 무척 무디기도 하고 예민하기도 한 사람인데, 제일 예민해질 때가 사람들을 대할 때예요. 사람에게 신경 쓰고 배려하려고 하는 부분에 민감하죠.

무딘 구석은요?
내가 지금 안경을 끼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어요. 운전하면서 옷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면, 중간에 잠시 벗어두어도 되는데 운전과 옷 벗는 일을 동시에 할 생각을 못하죠. 갑갑하다고 느끼면서도 운전이 끝날 때까지 못 벗어요. 두 가지를 동시에 못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는 말도 못하게 심해요. 두 가지를 아예 못하는 사람이에요. 연기도 그래요. 무딘 구석이 있어요. 그래서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죠.

조정석의 연기가 무딘 적이 있나요?
완벽한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있지 않나요? 어차피 연기는 배우와 감독과 작품이 만들어내는 완벽한 계산이니까. 저도 계산하고 연기를 합니다. 그런데 나의 계산 안에 헐렁헐렁한 부분이 가끔 있어요. 저는 칼로 잰 듯 똑 부러지게 연기하지 못하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어떤지 모르겠지만요.
 

셔츠는 김서룡 옴므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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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티셔츠·체크무늬 베스트·재킷·와이드 팬츠는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슬리퍼는 암위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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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렁헐렁한 연기도 완벽한 계산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모습을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까지는 해요. 그런데 완벽히 정교한 형태가 되지 않더라고요. 젤리마냥, 말랑말랑하게 된다고 할까요? 이런 나라서 좋을 때가 있고, 왜 저랬지 싶을 때도 많죠. 원체 말랑말랑한데, 말랑말랑하게 계산해서 할 땐 엄청 이상해져요.

그렇다면 배우로서 지금껏 가장 요긴하게 쓴 구석이 있다면요?
승부욕이요. 무척 강하거든요. 그냥 치고받는 스타일이에요. 뭔가를 두려워한 적이 별로 없을 정도로요. 어릴 때 태권도를 했어요. 심사를 위해 겨루기를 할 때 상대방에게 다운당하면 다음 심사 때 꼭 그 친구를 다운시켜야 했어요. 그만큼 지는 걸 싫어해요. 티를 내지는 않고요. 뒤에서 칼을 가는 스타일이에요. 연기자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할 때는 입학식 날 학교 문 앞에 딱 서서 ‘그래, 이제 다 죽었어’ 하면서 들어섰죠.

학교 안에서만큼은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몸부림쳤겠네요.
열심히 했어요. 연기를 배우면서 순간순간 얻고 싶은 게 생기면 죽어도 그걸 찾아내야 하는 학생이었죠. 이런 적도 있어요. 막심 고리키의 <밑바닥에서>라는 작품 수업이 있었어요. 저는 알코올 의존자 역할을 맡았고요. 그땐 술 별로 먹지도 않고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알코올 의존자가 뭔지 느끼고 싶었어요. 어떤 느낌인지 찾고 싶었어요. 한순간만이라도. 그래서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술을 마셨죠. 수업에도 취한 상태로 들어갔어요. 취했으니 대사도 생각이 안 났죠. 그때 교수님께 따귀를 맞았어요. 무대 위에서는 늘 바른 정신으로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큰 깨달음을 얻었고, 감사했어요. 그런데 저는 아직 그 느낌을 못 찾은 거잖아요. 계속 술을 마셔대면서 찾으려고 애썼어요. 그때 그 캐릭터의 이름이 그냥 ‘배우’였거든요. 결국 공연 올린 날 교수님께서 저에게 “정석이가 이제 진짜 ‘배우’가 됐구나” 하시는데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학점 4점짜리 제작 실습 수업이었는데 에이플러스 받았어요.

현장에 뛰어들어서도 그랬어요? 원하는 게 있으면 들이받으면서?
뮤지컬 <헤드윅>을 너무 하고 싶었는데, 오디션에서 떨어졌어요. 얼굴이 너무 동안이라는 게 이유였어요. 화가 났죠. 포기할 수 없었어요. 다시 준비해서 오디션을 봤어요. 그때 그쪽에서 <벽을 뚫는 남자>라는 뮤지컬을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열심히 했어요. 그러니까 <벽을 뚫는 남자> 끝날 때쯤, 이 다음에 <헤드윅>을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결국에는 얻어냈고, 좋았죠.

열망이 뜨거운 덕이었을까요? 꽤 순조롭게 획득했네요.
감사했지요. 그런데 <헤드윅>이 보통 작품이 아니에요. 저는 그때 어렸고, 신인이었고, 아무것도 모를 때였단 말이에요. 헤드윅 역할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를 때였어요. 그 역할을 하겠다고 달려든 것 자체가 무모했어요. 주위에 알고 지내던 어떤 배우는 <헤드윅> 하면서 스스로 실망을 많이 했다고, 못하겠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저는 무모해요. 돌이켜보면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무모한 덕에 원하는 걸 얻어낸 경우가 많았어요. 원래 성격이 그래요. 운동을 했고, 아직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환경도 한몫한 것 같아요. 뮤지컬 무대에 데뷔하기 전에 이미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 중 하나를 잃었고, 그로 인한 상실감을 경험했어요. 난 아프면 안 되고, 돈을 벌어야 하고, 집을 이끌며 건사해야 했으니까.

조정석은 바위 같다고 생각했어요.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서요. 그런 시간을 다행히 잘 지나왔기 때문인가 봐요.
그래서 같은 맥락으로, 실패하는 것 역시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실패는 많이 해봤어요. 쫄딱 망한 공연도 해보고, 별 볼 일 없이 흔한 공연도 해봤고, 흥한 공연도 해봤죠. 흥했다고 우쭐댈 필요도 없고, 망했다고 우울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에서든 나는 뭔가를 분명히 얻으니까. 저는 뭔가를 하는 게 두려운 마음보다, 달려들지 않아서 생기는 후회의 크기가 훨씬 더 큰 편이죠.

언제고 그럴 수 있을까요?
변할 수도 있겠죠. 나이 들면서 또 어떤 일을 겪을지 모르니까요. 지금은 배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젠가는 은퇴할 수도 있고요. 아직은 말도 안 되죠. 한창 하고 싶어 죽겠어요. 제 몸뚱이를 재료 삼아 이러쿵저러쿵 들이받으면서 새로운 걸 계속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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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김영준
STYLIST 정혜진
HAIR 미영(엔끌로에)
MAKE-UP 화영(엔끌로에)

201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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