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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실 습격 사건 - TBWA 대표이사 강철중

그렇다. 사장실을 기습했다. 이 네 명의 CEO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색창연한 대기업 `사장님`들과는 180도 다른 존재들로 새로운 감각, 디자인, 패셔너블, 크리에이티브 등 새 시대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각 분야에서 최고의 실적을 거두고 있는 `21세기 트렌디 CEO`의 전형이라 판단해서다. 이들의 잔잔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다른 걸 다 떠나서 무릇 블랙칼라 워커라면 이 정도 수준의 기사는 읽어줘야 하지 않나?<br><br>

UpdatedOn September 03, 2009

갈색 체크 재킷·흰색 베스트·갈색 체크 셔츠·흰색 팬츠 모두 란스미어, 갈색 체크 포켓치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강철중’ 또는 ‘TBWA’라는 이름은 몰라도 ‘Be the Reds!’라는 캠페인은 누구나 다 기억할 것이다. 아니면 ‘생각대로’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또 어떤가. 대한민국에서 ‘크리에이티브’라고 하면 이 사람을 빼놓고는 말을 꺼낼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20년 넘게 광고 외길을 걸어온 끝에 대기업에 소속되어 있는 ‘인하우스 에이전시’가 아닌 독립 에이전시도 창의성만 있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접 실현해 보인 바로 그 사람이다. ‘삽으로 땅만 파면 경제가 쑥쑥 자라날 것’이라는 1970년대식 경제 개발 시스템이 여전히 판을 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희망을 걸어볼 만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라는 뜻이다. 흔히들 지적하듯 요즘 기아자동차가 혁신적인 ‘디자인 경영’을 해내고 있는 배경에는 피터 슈라이어라는 걸출한 디자이너가 있다. 아직 그는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디자인 실력을 발휘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명성을 활용해 한국 디자이너들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창조성을 아무 제약 없이 이끌어내자마자 ‘쏘울’ ‘포르테’ 같은 우수한 작품들이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릇 창의성을 북돋우는 리더의 역할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강철중 대표는 지금껏 자신의 크리에이티브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인문학’과 ‘건전한 시장주의’라는 의외의 요소를 꼽았다. 흔히 좋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화, 음악, 전시 등 트렌디한 대중문화를 자주 접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는데, 이 ‘광고계의 대부’는 마치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모든 학문의 근원과 사회제도의 작동 원리를 깊이 천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세계 최초로 광고라는 매체를 통해 4천만 명의 국민이 흔쾌히 동일한 행동 강령을 따라 하게 만들었던, 전무후무한 신화를 창조한 인물이 남들과 똑같은 노하우를 갖고 있다면 그 또한 말이 되지 않을 터이니. 창의성을 위해서라면 힘이 센 보스는 무조건 뒷전으로 빠지는 게 최선이라는 극약 처방도 서슴지 않는 강 대표의 복잡다단하면서도 단순한 삶의 원칙에 귀 기울여보자.

▶ 강철중 대표는 ‘건전한 시장주의’와 ‘인문학’이라는 두 가지 무기 덕분에 이 위치에 설 수 있었다고 말한다.

광고인이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은 내가 대학을 다니던 15년 전에도, 지금도 곳곳에 넘쳐난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광고 하면 ‘크리에이티브’와 동일시하는 수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전문 광고인이 보는 광고란 과연 무엇인가.

일단 광고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와는 많이 다르다. 오케스트라에서 마에스트로가 차지하는 비율은 90% 이상이고, 수많은 스태프들이 동원되는 영화도 결국은 감독이 모든 걸 책임진다. 하지만 광고만은 팀원들이 모두 똑같은 권한과 책임을 진다. 흔히 성공한 작품이 하나 나오면 “내가 했소!”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서너 명은 꼭 나오는 이유다. 물론 실패하면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웃음) 요는 훌륭한 광고는 철저하게 수평적인 팀 구조에서만 창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캐릭터를 가진 팀원들이 마치 전투에 나서듯 아이디어를 던지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독창적인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자율적인 협업’이 아니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바로 광고다.

그렇지만 한국의 대다수 광고사는 대기업에 소속되어 있는 ‘인하우스 에이전시’인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한국식 대기업의 수직적 문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텐데.

‘인하우스’라고 해서 무조건 창의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제는 옳지 않다. 하지만 광고업계에 온통 인하우스 에이전시만 존재한다면 업계 전반의 수준이 다운그레이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고? 경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광고에는 절대적인 정답이 없다. 경쟁자가 나보다 더 훌륭한 창의성을 발휘하면 곧바로 지는 것이다. 100%가 다인 줄 알았는데 110%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지. 하지만 인하우스 시스템은 아무래도 자기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의무적으로 선택되는 관계란,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우열을 가리는 관계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 광고는 비전문가, 즉 소비자를 설득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당연히 광고주부터 설득할 수 있어야 소비자도 설득할 수 있을 테고. 그런데 이 단계가 생략된다면 아무래도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프로젝트에 결합할 때면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한 팀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건전한 시장주의’라고 부른다. 본래 경쟁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오픈 마인드로 상대의 의견을 청취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즐거운 단계이지.”

잘나가던 직장에서 뛰쳐나와 TBWA에 뛰어든 이유가 ‘창의성’을 제대로 발현할 수 있는 조직 구조를 만들고 싶다는 고민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애초의 목표를 얼만큼이나 이뤘다고 생각하나.

팀장과 팀원 간에 차이가 거의 없는 TBWA만의 독특한 문화를 창출했다고 자평한다. 나 또한 프로젝트에 결합할 때면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한 팀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건전한 시장주의’라고 부른다. 본래 경쟁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사회 일부에 만연한 불공정한 경쟁이야말로 피해야 할 것이지. 나를 포함해 모든 팀원들이 직급에 상관없이 순수히 창의성만으로 승부를 건다. 만약 그 과정에서 내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방해가 된다면 과감하게 현장에서 물러나야 한다.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결코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단계가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오픈 마인드로 상대의 의견을 청취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즐거운 단계이지. 영화감독, 작가, 시인들은 고통스럽게 창조를 하는 반면, 우리는 즐겁고 행복하게 창의성을 발휘한다. 바로 팀원들과 함께 미션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디스럽션(Disruption)’이라는 구호를 사회 곳곳에 알린 것도 성과로 꼽고 싶다. 단절과 틀 깨기라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미처 고민하지 못한 새로운 가치를 증폭시키는 데 앞장서 나갈 것이다. 다만, 경기가 나빠진 탓에 한동안 유행을 탔던 ‘독립 에이전시’ 회사들이 위축되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 다시 인하우스 시스템으로 회귀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하지만 아무리 회사 사정이 어렵더라도 기존 인력을 줄이지 않겠다는 나만의 결심은 끝까지 지켜나가려 한다. 지금까지 수평적인 조직 구조 위에 창의성이 넘쳐나는 인재를 모으느라 노심초사했는데 잠깐 어렵다고 해서 광고회사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사람’을 버리는 일만큼은 정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껏 만들어온 광고를 꼽자면 일일이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캠페인이나 작품이 있다면 무엇일까.

당연히 ‘Be the Reds!’ 시리즈다. 이 작품을 통해 한국 광고의 지형도는 180도 뒤바뀌었다. 그때까지 광고는 단순히 상품 정보를 소개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광고도 전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동력이 되고, 국가 차원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파워를 갖췄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캠페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여전히 사회 전반에 광고를 천시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만약 서구나 일본 같았으면 이런 독특한 현상을 조망하는 다큐멘터리가 등장했을 것이다. 모든 국민의 행동이 통일되고, 동일한 응원가를 부르고, 결국 한마음이 되는 거대한 캠페인이 완성된 역사적인 현장을 제대로 조망한 언론 매체는 없었다. 광고만이 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능력의 극한을 보여준 사건이었는데도 말이다.

평소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는가? 당신만이 갖고 있는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광고는 물론, 영화, 드라마 등 모든 매체가 하는 일은 결국 ‘사람’과의 소통이다. 결국 인문학의 영역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사람을 알고, 그 통찰력에 깊이를 더하는 일에 지름길이 따로 있을 수 없다. 평소 꾸준하게 갈고 닦는 수밖에. 뭐니 뭐니 해도 책이 최고다. 전문가의 노하우를 가장 잘 빼먹는 방법이 뭔지 아는가? 사람에게는 누구나 과시욕이 있다. 따라서 그 사람에게 강의를 시키면 된다. 그러면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 얘기해서는 안 되는 비밀스러운 노하우까지 모두 공개하게 된다. 책도 마찬가지다. 과시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기가 아는 만큼, 아니면 그 이상을 그 안에 담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한 사람의 정수가 담긴 책에서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무척 자명한 일인 거다. 최근에는 <총, 균, 쇠> <지식의 발견>이라는 인문학 서적과 공지영의 소설을 읽고 있다. 소설에는 ‘사람’이 사는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다. 아,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이라는 책도 좋았다. 인문학자와 물리학자의 근원적인 차이, 유사성 등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젊은 시절, 인문학을 많이 접해볼수록 나중에 빼먹을 거리는 그만큼 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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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박지호
PHOTOGRAPHY 안주영
STYLIST 이진규
HAIR&MAKE-Up 이은혜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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