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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투수들이 마쓰자카는 아니다

On December 21, 2006

선수를 보호해야 하는 게 코치의 직무다. 하지만 이겨야 하는 야구를 해야 했던 대한민국에서 혹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괴물 신인들을 더 오래 보고 싶어 하는 염원으로 선수 혹사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싶은 마음이다.<br><br>[2007년 1월호]

Words 최민규( 기자) Illustration 양원빈 Editor 성범수

한화 투수 류현진(19세)은 어린 나이에 선동열 이후 두 번째 투수 3관왕에 오르며 ‘괴물 신인’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2007년 그의 투구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포스트시즌에서 류현진의 왼쪽 팔꿈치 각도는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다. 시속 150km가 넘는 강속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정규 시즌에서 많이 던지지 않은 커브가 잦았다. 류현진은 올해 201⅔이닝을 던졌다. 지금까지 만 20세 이전에 18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김수경, 김진우, 박명환, 박정현, 염종석, 이승호, 정민철, 주형광 등 모두 8명이다. 모두 어린 나이에 스타로 발돋움했던 투수들. 그러나 이들 가운데 25세 넘어서까지 꾸준히 등판하며 수준급 성적을 낸 투수는 정민철이 거의 유일하다. 박명환은 최근 LG와 4년간 40억원에 프리에이전트 계약을 맺었지만, 1999년 이후 규정 이닝을 채운 해는 두 번밖에 없었다. 한때 ‘유일한 2백 승 투수 후보’라던 주형광, 신인으로 19승을 따낸 박정현은 23세를 끝으로 평범 이하의 투수로 전락했다.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많은 공을 던졌다는 것, 즉 ‘혹사’가 이 비극의 주범으로 지적받는다.
올해 청룡기 대회에서 광주진흥고 투수 정영일(현 LA 에인절스)은 5경기에서 무려 7백41구를 던지며 혹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국가인권위원회에 ‘학생 야구 선수들을 보호할 조치가 필요하다’는 진정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 프로야구 투수 코치는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보라”며 “많은 투구 수가 반드시 투수 생명을 단축시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코치는 “부상은 투구 수보다는 투구 폼이 나쁘거나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는 등의 이유가 더 크다”고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내년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마쓰자카는 요코하마 고교 시절 고시엔대회에서 엄청나게 많은 공을 던졌다.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해서도 19세부터 26세까지 1시즌만 빼놓고 매년 규정 이닝을 소화했다. 초창기보다 투구 회전 수가 줄었다는 평가는 있지만 그래도 5천만 달러가 넘는 이적료를 받아낼 정도로 세계적인 투수로 인정받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8차례 20승 이상을 기록한 짐 파머는 ‘투구 수=혹사’ 이론에 대해 “끔찍하다. 나는 절대 투구 수를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메이저리그에서 최근 선발투수 한계 투구 수는 1백 개가 정설이다. 하지만 여전히 젊은 투수들은 부상을 당하고 있다. 파머는 “요즘 투수들은 어려서 우리 때보다 야구를 하지 않는다. 대신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다”며 피칭에 익숙지 않은 점을 부상의 이유로 든다.
내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트리플A팀에서 뛰게 될 손혁은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대해 ‘만신창이’
라고 표현한다. 그는 2002년 오른쪽 어깨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인대뿐만이 아니다. 그는 “의사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라고 하더라”며 “부상이란 부상은 다 당해봤다”고 말한다. 손혁은 1996년 LG에서 데뷔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8시즌을 뛰었다. 손혁은 1백 시즌 이상을 세 번만 소화했을 뿐이다. 그의 부상을 ‘혹사’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는 지금 메이저리그 투수 출신 톰 하우스가 운영하는 NPA(National Pitching Association)에서 투수 수업을 받고 있다. 하우스는 손혁의 투구를 처음 보고는 “부상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NPA는 ‘인체에 적합한 투구법’을 강조하는 곳이다. 리틀야구 선수부터 랜디 존슨, 마크 프라이어 등 메이저리그 스타들도 이곳을 찾는다. 손혁은 “나는 처음부터 배운다는 생각으로 생소한 이론을 받아들였다”며 “1년을 쉬었지만 한국 시절보다 더 빠른 시속 140km 중반까지 스피드를 끌어올렸다”고 말한다. NPA 이론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미국 코치들도 있다. 하지만 손혁은 이 이론이 효과적이라고 납득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상 위험이 적은 투구폼’을 배운다면 많은 투구 수는 관계없을까.
그러나 손혁은 “좋은 투구법을 익히면 부상을 피할 수 있지만, ‘좋은 투구법’으로도 많이 던지면 다칠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손혁은 “마운드는 경사져 있다”고 설명한다. 즉, 마운드 위의 투구 자체가 몸에 무리를 주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NPA에서는 훈련 때 평지에서보다 마운드 위에서 투구 수를 더 줄이라고 가르친다. LG 김용수 코치는 “사람의 근육에는 한계가 있다. 과도한 투구 수는 부상을 부른다”고 말한다.
미국의 야구 통계전문가 키스 울너는 ‘투수혹사도’라는 통계를 고안했다. 투구 수가 투수의 투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그는 이 방법으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기록을 검토했다. 결과는 “한 경기에서 많은 공을 던지면 다음 등판 때 주목할 만한 악영향이 발생한다”였다. 강속구 투수 케리 우드의 경우 1백20구 이상을 던졌을 때와 1백20구 미만을 던졌을 때를 비교해보면, 다음 경기의 성적은 15%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구중계에서 가끔 8회나 9회에도 시속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를 볼 수 있다. 그러나 ‘평균’으로 따져보면 결과는 명확하다. <투수 구하기(Saving the Pitchers)>의 저자 짐 캐럴은 투구 수와 투구 속도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시도를 했다. 그에 따르면 마크 프라이어의 경우 최고 속도는 오히려 7회에 가장 높지만 평균 속도는 5회부터 급격하게 떨어진다. 더 중요한 것은, 투구 속도가 5% 감소하기 시작할 때부터 투수의 피로도가 높아지며, 부상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메이저리그의 명투수코치 레오 마조니는 “투수는 힘이 떨어지면 더 세게 던지려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면 투구 폼이 무너지며 부상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국 프로야구에서 시즌 2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74명이다. 흥미롭게도 프로야구 전반부(1982~1993년)에는 47명이 나왔지만, 후반부(1994~2006년)엔 27명뿐이다. 지금 투수들은 과거보다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많은 이닝과 많은 공을 소화할 수 있는 투수는 더 줄었을까. 지금 투수들은 과거보다 더 크고, 강해진 타자들과 상대한다. 그만큼 피로와 긴장도가 높다. 현대 김시진 감독은 현역 시절 볼넷을 1백 개 이상 내주면서도 15승, 20승을 밥먹듯 했다. 컨트롤이 나빠서가 아니라 강타자를 피해가고 약한 타자를 상대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지금 그렇게 공을 던지는 투수는 살아남기 어렵다. ‘우리 때는 연투를 밥먹듯 했다’고 말하는 코치들은 지금 투수들이 더 빠른 공을 던지면서도 더 많은 안타를 맞는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

P/S 혹사는 투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롯데 포수 강민호(21세)는 올해 팀의 1백26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지난해는 사상 최초로 20세에 1백 경기 이상 출전한 포수였다. 그의 무릎이 걱정된다.

선수를 보호해야 하는 게 코치의 직무다. 하지만 이겨야 하는 야구를 해야 했던 대한민국에서 혹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괴물 신인들을 더 오래 보고 싶어 하는 염원으로 선수 혹사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싶은 마음이다.&lt;br&gt;&lt;br&gt;[2007년 1월호]

Credit Info

Words
최민규( 기자)
Illustration
양원빈
Editor
성범수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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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규( 기자)
Illustration
양원빈
Editor
성범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