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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지만 괜찮아

벤틀리 노래를 부르던 한 어린양이 기어이 벤틀리 컨티넨탈 GT와 플라잉 스퍼의 운전석에 앉아 인천 영종도를 누비고 말았다. 어쩌다 마주친 벤틀리에게 마음을 빼앗긴 2시간의 기록. <br><br>[2007년 1월호]

UpdatedOn December 21, 2006

Photography 정재환 cooperation 벤틀리 모터스 코리아

서른 중반에 할 말은 아니지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공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로봇 청소기 하며 믿기 힘들 만큼 얇은 LCD 모니터 하며 삶의 패턴을 바꿔놓은 DMB폰과 DSLR 하며…. 자동차 담당 기자로 보낸 지난 7년만 해도 그렇다.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던 마이바흐와 롤스로이스의 국내 데뷔 무대를 지켜봤고, 요원하기만 했던 페라리와 미니 쿠페와도 통성명했다. 그리고 벤틀리를 영접하는 벅찬 순간이 찾아왔다. 벤틀리 말이다. 1918년 월터 오웬 벤틀리의 이름을 딴 자동차 회사로 시작한 벤틀리는 1920년대 롤스로이스의 라이벌로 맹위를 떨쳤다. 이후 경제 공황 여파로 롤스로이스, BMW를 거쳐 2003년 폭스바겐으로 적을 옮기는 시련도 겪었다. 폭스바겐 그룹에 편입되면서 2004년 6천5백76대, 2005년 9천 대로 볼륨이 크게 높아졌는데, 그 중심에 ‘그랜드 투어러의 완벽한 재현’으로 찬사를 받은 컨티넨탈 GT가 있다. 부호들의 럭셔리 카에 대한 소유욕은 아주 특별하다. 평범한 부자들과 다른 취향을 차로 표현하고 싶은 이들에게 흔해 빠진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재규어, 렉서스 등은 욕구 불만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 허전함을 채우는 것이 벤틀리와 애스턴 마틴, 마세라티고, 그보다 더 심한 극소수를 위한 차가 바로 롤스로이스와 마이바흐다. 이제 국내 무대에 애스턴 마틴만 추가되면 ‘그림의 떡’ 리스트가 그런대로 완성되는 셈이다. 지난 11월 30일 아침 8시, 나는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인천 영종도로 향하는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결국 약속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해 ‘그’를 기다렸다. 잠시 뒤 하얏트 리젠시 인천 로비 앞으로 벤틀리 컨티넨탈 GT와 플라잉 스퍼가 나타났다. 그만 노크를 할 뻔했다. 아무에게나 열지 않는 그녀의 마음처럼 단단한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검은색 시트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서울 구경 나온 시골 영감이 따로 없다. 생각보다 편안한 시트에서 둘러본 실내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럭셔리 카들과는 확실히 다른 무드다. 나무와 가죽이 많이 쓰였고, 스틸의 질감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 재규어, 롤스로이스, 애스턴 마틴 등 거의 모든 영국 메이커들이 다른 나라 회사에 합병되었지만 영국 장인의 고집과 그로 인한 귀족 계급 분위기는 여전하다. 벤틀리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괜스레 기분이 좋다. AV 시스템과 공조 장치에서 에어 서스펜션과 댐핑까지, 생각보다 버튼이 많았다. 묵직한 4스포크 스티어링 휠에도 틸팅과 텔레스코픽, 패들 시프트 등 많은 기능이 딸려 있다. 계기반은 스포츠카의 표식 중 하나인 두툼한 원통형. 보란 듯이 340km/h까지 나와 있는 스피드미터에도 절로 눈길이 간다. 센터페시아 아래에서 리어 시트까지 미끄러지듯 이어진 패널 안에는 각종 편의장비가 점잖게 들어 있다. ‘4인승 쿠페’임을 거듭 강조하는 GT는 확실히 오너드리븐 카에 더 가까운 포석이다. 컨티넨탈 GT의 리어 시트는 플라잉 스퍼만큼 여유롭지는 않지만, 그리 불편할 것도 없다. 조수석 시트를 접고 고개를 숙인 채 다리와 몸통, 머리를 차례대로 집어넣는 연속 동작은 언제 봐도 다이내믹하다. 참고로 4도어 세단인 플라잉 스퍼의 시트는 4인승과 5인승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잔뜩 찌푸린 영종도 하늘이 ‘설마’했던 비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살짝 떨렸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중저음에 가까운 ‘부웅’ 소리가 귓전을 울린 까닭이다. 5998cc W12 DOHC 48밸브 트윈 터보 엔진은 폭스바겐 페이톤과 아우디 A8에도 쓰이는데, 출력에서는 한 수 위인 게 분명하다. 6100rpm에서 최고 출력 560마력을 내는 이 엔진에 화답하는 트랜스미션은 ZF제 6단 AT로 수동 모드가 겸비돼 있다. 길이 미끄러운 대신 신호 대기할 일이 많았다.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힘껏 밟으면 머리와 등이 시트에 밀착되는 전율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퓨어 스포츠카보다는 GT 카에 가까운 차이니, 엔진 회전 수를 굳이 올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당시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정제된’일 것이다. 속도를 올리고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도 결코 가벼운 모양이 아니다. 게다가 젖은 노면과 대형 트럭들은 300km/h 고지를 넘어보려는 이 어린양을 허락하지 않았다. 차고는 컴포트에서 스포츠까지 3단계로 조절할 수 있고, 4개의 댐핑 모드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차고는 노멀 모드에서 25mm를 높일 수 있고, 15mm를 낮출 수 있다. 컴포트와 스포츠 모드의 차이는 뚜렷한 편이다. 하지만 기계의 힘을 빌려 승차감을 선택하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고 황송하다.
벤틀리와 함께한 2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공항북로 주변에서 잠시 정차했다. 있는 힘껏 껴안고 싶은 차체는 바다표범의 그것처럼 매끄럽고 아름답다. 육안으로 본 사이즈는 실제 수치(4804×1916×1390mm)보다 작아 보인다. 그래서 압축 파일처럼 열어보고 싶은 기대를 갖게 만든다. 차체를 한 바퀴 둘러보니 빛나는 ‘B’ 앰블럼과 격자 무늬의 라디에이터 그릴, 총명한 4등식 헤드램프, 19인치 7스포크 알로이 휠, 트윈 머플러 등이 차례대로 빛을 발한다. 높게 설정된 허리선과 좁은 윈도 때문인지 하체는 무척 길어 보였다. 리어 스포일러는 고속 주행 시 올라가 공기 저항을 줄이고, 트렁크 공간은 2주간의 여행에도 문제없을 만큼 넉넉하게 마련돼 있다. 본연의 임무 - 그랜드 투어링 - 에 충실하다.
그런데 국내에서 벤틀리 컨티넨탈 GT를 타는 높은 안목의 소유자는 과연 누구일까? 혹시 그게 나일 수는 없을까? 벤틀리지만 괜찮아. 나를 빚더미에 올려놓은 33평 아파트를 팔면 이 차를 살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불상사’는 없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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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정재환
cooperation 벤틀리 모터스 코리아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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